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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고대신에게 선택받은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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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2.10.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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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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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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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성인식 -1-

DUMMY

천장에 매달린 침침한 등불이 이따금 흔들렸다.

검은 마차는 새벽의 황야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아가씨. 옷을 단단히 입으세요.”

드미트리는 니나에게 잿빛 로브를 내밀었다.

“난 로브 싫어.”

“아가씨. 산바람과 덤불, 벌레를 막으려면 입으세요.”

“그치만, 싫은걸.”

드미트리는 로브를 손에 들고 머뭇거렸다.

“그래도 일단 갖고 가세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뭐···응. 가지고는 가 볼게.”

드미트리는 순식간에 로브를 착착 접어 배낭에 넣었다.

“그럼 필요한건 다 챙겼네요.”

드미트리는 마차 차창을 열었다.

황무지 멀리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이 척박한 땅에는 한방울 이슬조차 맺히지 않았다.

모래조차 섞이지 않은, 순수히 차고 건조한 바람은,

들이마실 때마다 폐와 기관을 서서히 돌처럼 굳히는듯 했다.

“배낭은 내가 들게.”

빅터는 드미트리의 손에서 배낭을 넘겨받았다.

“성인식은 본래 혼자서, 빈 손으로 치르니까.”

니나와 드미트리가 빅터를 쳐다봤다.

“잘 안다. 빅터.”

“조금 들은게 있어서. 그런데, 마차를 써도 되나?”

와이즈 가문의 성인식은 순례길이다.

맨몸으로 직접 걸어 움직여야 할텐데.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도보 여행중에 이교도가 습격하면 속수무책 아닌가요?”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었다.

황무지 한 가운데서 포위당하면 곤란하니까.

이교도가 수십명인지, 수백명인지.

어쩌면 수천명쯤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노리엄의 오랜 전통에 따르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게 전통 아니겠어요.”

빅터는 드미트리의 얼굴을 관찰했다.

‘꽤 위험한 발언을 하는데.’

노리엄 사람이라면 함부로 입밖에 낼 수 없다.

특이 와이즈 가문 사람이라면 더더욱.

와이즈 가문은 서열 1위 귀족.

왕가 다음으로 권력이 강한데, 그 권력은 노리엄 사람들이 믿는 전통에서 온 것이다.

권력의 원천인 전통을 무시하는 발언이라.

‘분가 출신이랬던가. 그러면 이해는 가지만.’

빅터도 창밖을 내다봤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쓸쓸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바싹 마른 땅이 한없이 펼쳐졌다.

빅터는 마차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니나와 드미트리 모두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둘 다 긴장해서 안색이 창백했다.

하지만, 서로 긴장한 이유는 미묘하게 달라보였다.

“마차를 타고 어디까지 올라가지?”

“가까운 성에서 내릴 생각이에요.”

드미트리가 딴곳을 보며 대답했다.

“동행은 너와 나, 둘이 끝인가?”

“아니. 산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건 빅터 당신뿐이죠.”

“노리엄 가문 사람들은?”

드미트리가 이제서야 눈을 돌렸다.

“저택도 텅텅 비었고. 호위는커녕 배웅조차 없는데.”

“복잡한 정치적인 사정이 있다고만 알려드리죠.”

드미트리는 다시 딴곳을 쳐다봤다.

“대부분은 이교도에 얽힌 문제고요.”

“그게. 우리 가문 농장이 있는데.”

니나가 빅터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거기 무슨 일이 터졌다나봐. 다들 거기 가있어.”

“그래? 네 성인식도 보통 일은 아닐텐데.”

“그치만 나. 배웅은 안 받아도 괜찮고, 호위 없어도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그래. 호위는 필요없겠지.

니나는 강하니까.

“그렇다고 전부 혼자 하려고 들지는 마.”

빅터가 니나에게 말했다.

자꾸 말을 해 둬야 동료로 끌어들일수 있으니까.

루아나 오스카처럼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는 니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 으, 응···.”

니나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잔인한 말을 하는군요 빅터.”

드미트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신은 니나 아가씨를 몰라요.”

“아군까지 죽여버리는 마법사라고?”

빅터가 웃으며 대꾸했다.

“난 니나의 마법에 휩쓸려도 안 죽어. 그러니까, 나한테는 최고의 마법사일 뿐이야.”

“빅터. 저기, 그건···.”

“니나. 네 탓이 아니야.”

빅터가 니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마법이 불안정한건 네 탓이 아냐.”

“···그럼, 누구 탓인데?”

“네게 마법 스승을 찾아주지도 않고, 마법을 연마할 시간도 주지 않은 사람들.”

니나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차차 알게 될거야. 어쨌든 니나.”

빅터는 약속하듯 말했다.

“내 옆에선 마음대로 마법을 써도 괜찮아. 날 상대로 마법을 연습해도 좋고.”

“아, 으응···.”

“난 네 마법으로 죽지 않으니까.”



**



워어어어—이!!


마부가 마차를 멈춰세웠다.

바위산처럼 위압적인 성문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

“아가씨의 성인식은 이미 시작했죠.”

드미트리가 먼저 내려 마차 문을 열었다.

“성에 들어오진 못하십니다.”

“알아 드미트리.”

“그럼 저는 여기까지. 성에 볼일이 있거든요.”

드미트리는 마차에서 내리는 니나의 손을 잡아줬다.

“아가씨.”

그는 내려온 니나에게 말했다.

“몸조심 하세요. 그리고 로브, 꼭 입으시고요.”

“드미트리. 늘 고마워.”

드미트리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빅터? 당신한테 부탁이 하나 있어요.”

“니나를 지키라는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빅터가 마차에서 내리면서 대꾸했다.

“아가씨와 최소 다섯 발자국 간격을 두세요.”

드미트리의 부탁은 전혀 딴얘기였다.

“원래 성인식은 혼자 치르는게 전통이니까.”

“뭐. 알았어.”

“그럼 두 분 모두, 수고하세요.”

드미트리는 말을 마치고 성문 안으로 걸어갔다.

입구의 경비병 둘이 창을 가로질러 척 막았다.

잠시 신원 검증이 있은 뒤에, 드미트리가 사라졌다.

“저기. 방금 드미트리가 한 말 말인데.”

니나가 빅터를 살짝 돌아봤다.

“두 발자국 간격이라도 괜찮아.”

“알았어. 그럼 우리도 출발할까.”

빅터와 니나는 북쪽을 쳐다봤다.

톱날처럼 뾰족뾰족 솟은 산맥.

그중에서 유난히 날카롭게 튀어나온 산.


칼날의 산.


그들의 목적지였다.



**



노리엄 왕국 북부는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뾰족한 산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몇몇 오만한 탐험가가 비행선을 타고 산맥을 넘으려 했다지만, 그들 모두는 실패했다.


칼날의 산은 산맥에서 아래로 삐죽 튀어나온 산이다.

이름만큼이나 차갑고, 위험한 산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신화가 엮이기엔 오히려 좋은 곳이다.


서걱! 스걱!


철퍽!


빅터는 달려드는 늑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열댓마리 남짓한 늑대는 대부분 죽거나 도망쳤다.


푹!


그는 쓰러진 늑대의 배에 칼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칼을 뽑아 피를 털어냈다.

그는 주변을 한바퀴 빙 둘러봤다.

“상황 종료야.”

두 손으로 지팡이를 꼭 쥔 니나가 가까이 왔다.

“내가 해도 되는데.”

“그럼 내가 호위로 온 의미가 없으니까. 마법은 아껴둬. 곧 쓸일이 생길거야.”

빅터는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걷는데 불편한건 없어?”

“응. 나, 익숙해서.”

니나는 조그만 발로 울퉁불퉁한 산을 잘도 올라왔다.

“계속 올라가면 되나?”

“응. 직진. 남쪽 사당 가는 길은 눈에 잘 보일거야.”

빅터는 덤불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갔다.

“거긴 성인식 아니라도, 종종 사람들이 찾거든.”

“서늘한 달을 모시는 사당이지?”

“응.”

“신을 모시러 가는 사람들인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흠.”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빅터는 손을 뻗어 니나를 멈춰세웠다.

그는 조심히 칼을 들고 수풀을 응시했다.


불쑥.


흑곰이 머리를 내밀었다.


쉬이익!


빅터의 칼이 허공을 잘랐다.

흑곰의 얼굴에 상처가 패였다.

곧바로 곰이 앞발을 부웅 휘둘렀다.


쩌어엉!!


빅터는 칼로 곰의 발길질을 막았다.

육중한 충격에 발이 뒤로 밀리고, 근육이 찌릿했다.

하지만 빅터는 바로 반격했다.

연이은 검격에 곰의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결국 곰은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버렸다.

“괜찮아?”

“별거 아냐. 곰 정도는.”

빅터는 잠깐 숨을 골랐다.

“사당은 아직 멀었어?”

“곧, 아마 도착할거야. 이 바위만 올라가면···.”

빅터는 먼저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는 손을 뻗어 니나가 올라오는 것을 도와줬다.

“고마워. 이제 저 너머야. 여기서부턴 내가···.”


구워어엉–!!!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맹수의 포효.

빅터조차 순간 놀라 바위 아래로 몸을 숨겼다.

“잠깐, 기다려 니나!”

빅터는 서서히 바위 너머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털이 푸르스름한 곰이 사람을 찢고 있었다.


부우욱!!


역겨운 소리를 내며 찢어진 사람의 몸에서,

구더기떼가 바글바글 쏟아졌다.

‘이교도가 여기까지?!’


부그르륵!!


다른 이교도가 곰을 향해 썩은 체액을 뿜었다.

날개달린 벌레떼가 곰의 머리를 덮쳤다.


우워어엉!!!


곰이 앞발을 마구 휘둘렀다.

얻어걸린 나무와 바위가 박살났다.

이교도도 물론 마찬가지.

“니나. 이교도다.”

니나도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여긴 내가 정리할테니까···.”

“아니. 같이 해.”

니나가 먼저 바위 너머로 폴짝 올라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었다.

“저기. 정말 휩쓸려도 괜찮은거지?”

“그래.”

“그럼 간다.”

니나가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지팡이 끝에서 하늘을 향해 광선이 쏘아졌다.


우르르릉···.


멀리 천둥소리.

먼동이 터오던 하늘이 도로 시꺼멓게 물들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별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새하얀 별똥별 세례가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짐승과 벌레와 사람의 비명이 뒤섞였다.

그 속에서 니나는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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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북방의 성인식 -6- +2 22.11.24 189 7 11쪽
31 북방의 성인식 -5- +2 22.11.23 191 7 10쪽
30 북방의 성인식 -4- +1 22.11.22 187 6 10쪽
29 북방의 성인식 -3- +2 22.11.21 189 5 10쪽
28 북방의 성인식 -2- +1 22.11.20 184 7 10쪽
» 북방의 성인식 -1- +1 22.11.19 196 6 10쪽
26 10년 전의 대마법사 -2- +1 22.11.18 195 6 10쪽
25 10년 전의 대마법사 -1- +3 22.11.17 197 6 10쪽
24 북쪽으로 가는 길 -3- +2 22.11.16 199 6 9쪽
23 북쪽으로 가는 길 -2- +3 22.11.15 188 6 10쪽
22 북쪽으로 가는 길 -1- +1 22.11.14 199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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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늘섬의 길드 -5- +1 22.11.12 206 6 10쪽
19 하늘섬의 길드 -4- +2 22.11.11 227 8 10쪽
18 하늘섬의 길드 -3- +3 22.11.10 222 9 10쪽
17 하늘섬의 길드 -2- +2 22.11.09 237 8 10쪽
16 하늘섬의 길드 -1- +2 22.11.08 249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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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자유 도시의 투기장 -5- +1 22.11.06 247 6 11쪽
13 자유 도시의 투기장 -4- +1 22.11.05 246 5 10쪽
12 자유 도시의 투기장 -3- +1 22.11.04 256 8 10쪽
11 자유 도시의 투기장 -2- +1 22.11.03 286 9 9쪽
10 자유 도시의 투기장 -1- +4 22.11.02 344 11 9쪽
9 녹색의 국경 -3- +1 22.11.02 353 10 10쪽
8 녹색의 국경 -2- +1 22.11.02 370 10 10쪽
7 녹색의 국경 -1- +1 22.11.02 435 11 10쪽
6 기사와 도둑과 이교도 -4- +1 22.11.02 503 14 10쪽
5 기사와 도둑과 이교도 -3- +1 22.11.01 575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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