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고대신에게 선택받은 성기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2.10.29 18:19
최근연재일 :
2023.04.22 00:00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22,030
추천수 :
614
글자수 :
696,023

작성
22.11.02 18:00
조회
502
추천
14
글자
10쪽

기사와 도둑과 이교도 -4-

DUMMY

아엘리아 대륙에 이교도보다 나쁜게 있는데,

그건 바로 마물이다.

말이라도 통하고, 이해의 여지라도 있는 이교도와 달리,

마물은 어떠한 대화도, 소통도, 이해도 거부한다.

마물은 오로지 죽이고 파괴하며 집어삼킬 뿐이다.

“빅터! 지금 마물의 힘을···썼어요?”

“이건 내 힘이야.”

이제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빅터는 천천히 일어나 루아를 돌아봤다.

“그러는 너는, 혈마술을 썼나?”

“···이건 제 힘이에요.”

혈마술은 피눈물의 여인이 베푸는 권능.

이교도의 마법. 금빛 성채의 금기.

성기사가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의 증거.

“나, 날···죽일 건가요?”

이교도는 전부 죽여야 한다.

그것이 성기사가 지켜야 할 의무다.


철그렁!


빅터는 손에서 칼을 놔버렸다.

루아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빅···터?”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

“네에···”

“루아 메리골드. 너는 이교도인가?”

루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요!”



**



타닥 타닥.

타닥.


조그만 모닥불이 타올랐다.

두 사람은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 서로 등지고 앉았다.

“내가 먼저 묻지.”

“아니. 제가 먼저 물어볼래요. 제가 그걸···혈마술을 쓰는걸 봤잖아요?”

“봤어.”

“그런데, 왜 절 죽이지 않죠?”

“너도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지난 생이었다면, 루아의 목은 이미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이교도는 문답 무용. 즉결 처형.

그것이 성기사의 신성한 의무.

허나, 빅터는 그 의무에 회의를 품었다.

세상을 구하는데 의무는 별 쓸모가 없었다.

“네가 이교도인지도 모르고.”

“···저는, 이교도가 아니에요.”

루아가 나지막히 한숨쉬었다.

“예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닐 테고요.”

“너는 왜 이교도를 추적하지?”

“복수하려고요.”

루아는 고개를 떨궜다.

“저는 고아에요.”

“피눈물의 여인에게는 가족이 없다.”

“제겐 부모님이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반도에서 살았죠.”

타닥타닥 불씨 튀는 소리를 반주삼아,

루아가 음유시인처럼 이야기를 풀어놨다.

“넉넉하진 못해도, 좋은 가족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납치당했죠.”

“어쩌다가?”

“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묻고싶은걸요.”

빅터는 짚이는데가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침묵했다.

“납치당한 저는, 눈을 가린채 여기저기 끌려다녔어요. 그러다가 사막까지 오게 됐죠.”

“그랬군.”

“그놈들은 제게 무슨 실험을 했어요.”

루아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사막에서, 불 옆에 앉았는데도,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때부터 혈마술사가 되었죠.”

“피눈물의 여인을 믿지 않나?”

“전혀요! 전 그년을 죽여버리고 싶어요!”

루아는 신성 모독적인 말을 내뱉었다.

“운좋게 겨우 탈출했어요. 천신만고 끝에 반도로 돌아갔고요.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이교도에게는 자비가 없다.

아이를 납치할 때, 부모도 죽였으리라.

“그래서 사막으로 돌아왔군.”

“네.”

“프레지아 길드는 어떻게 알게 됐지?”

“사막에는 위험인물이 많죠. 그것들을 죽이다보니까, 그쪽에서 먼저 접촉했어요.”

스카웃을 받다니.

역시, 루아는 보통 실력이 아니다.

“이제 당신 차례에요. 난 다 말했어요.”

“나는. 성기사였다.”

빅터의 목소리가 큰북처럼 웅웅 울렸다.

“나와 무관하게, 고대신이 나를 선택했다. 그래서 기사단을 나오게 됐다.”

빅터가 입을 다물었다.

“···그게 다예요?”

“그래.”

“치사해! 난 할말 못할말 다 했는데!”

“더 할 말이 없어.”

빅터가 도로 입을 열었다.

“나는 7살때 기사단에 들어왔다. 그 전의 기억은 없고.”

“가족은요?”

“없어.”

“기사단에서는 어땠는데요?”

“늘 똑같은 하루를 보냈지.”

“아니. 정말 뭐 없어요? 그게 다라고요?”

“내가 할 말은 이게 전부야.”

구태여 지난 생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았다.

말한다고 믿어주지도 않을테고.

미치광이 취급 받을지도 모르니까.

“와. 빅터. 당신 진짜 재미없다.”

루아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쓰던 마물의 힘은, 그럼···.”

“낡은 어둠. 그것의 권능이지.”

“그 힘을 써도 돼요? 성기사가?”

“원래 주인이 누구든 간에, 지금은 내 힘이야.”

“···하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루아는 가만히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찢어진 상처에는 벌써 피딱지가 앉았다.

“넌 앞으로 어떡할거지? 복수를 완수했는데.”

“아직이에요. 이놈은 부하일 뿐이죠.”

루아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날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을 찾아야해요.”

“그래서 프레지아 길드를 이용하려는 건가.”

“맞아요. 당신은 어떡할거죠?”

“프레지아 길드의 장서 보유량은 대륙 최대. 거기서 낡은 어둠에 관한 정보를 찾을 생각이야.”

“그것뿐?”

“아니. 다른 할일도 많아.”

빅터는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하고.”

“세계 곳곳의 위험을 막으며.”

“가장 뛰어난 영웅들을 모아야 해.”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루아 메리골드. 동행하지 않겠어?”

“네? 저랑요?”

“그래. 네 뛰어난 실력이 탐나서 그래.”

빅터는 솔직하게 말했다.

“거절해도 괜찮아. 너는 내게 두번다시 만나지 말자고 그랬으니까..”

“그건 당신이 날 죽일까봐 그랬죠. 성기사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말이 통하네요.”

“동행하겠다면, 악수하자.”

빅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과 동행하면, 제게 무슨 이익이 있죠?”

“앞으로는 내가 신원보증인이 되어주지.”

빅터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내가 너를 보증하면, 성기사도 함부로 널 처형하지 못해.”

이제 루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악수하지 않고 빅터를 물끄러미 봤다.

“하지만, 전 당신한테 줄게 없어요.”

“내 동료가 되어주면 그걸로 충분해.”

루아 메리골드의 혈마술은 강하다.

이교도 간부의 머리를 단박에 날릴 정도.

여기에 10년의 수행이 더해진다면,

전생 동료 대마법사 니나와 맞먹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교도의 힘을 쓰는데요?”

“나도 마찬가지야.”

“기사의 의무는요?”

“무의미한 허례허식은 더이상 필요없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쓰기로 작정했다.

“좋아요! 악수해요 우리.”

루아가 빅터와 악수를 나누었다.

“루아 메리골드. 피눈물의 여인을 죽이고 싶은 혈마술사.”

“빅터 루멘. 낡은 어둠에게 점찍힌 성기사.”



**



루아 메리골드와 동맹을 맺은지 2일째.

이제 사막 여행도 거의 끝이 보였다.

그들은 사막 어귀의 마을 여관에 앉았다.

“손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여관 주인이 말을 걸었다.

“우리는 프레지아 길드로 가는중이다.”

“프레지아! 대륙 최고 길드죠!”

여관 주인의 손이 잔 위에서 잠시 멈칫했다.

“저도 가보고싶네요. 공중섬이라죠?”

“주문한 음료는 아직인가?”

“여기. 맥주 한 잔, 물 한잔입니다.”

빅터와 루아는 잔을 가만히 보기만했다.

잔 속에서 시꺼먼 손이 일렁일렁 튀어나왔다.

‘음?’

손이 빅터에게 휘휘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지말라는듯이.

‘이건···계시?’

“왜 안 드시나요 손님들?”

“전 마실 것에 장난치는 사람이 싫어요.”

루아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왼손 손바닥이 메마른 황무지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여긴 피냄새가 너무 짙어요.”

“소, 손님?”


푸화앗!


피가 주인의 얼굴을 덮쳤다.

염산처럼 피가 타들어갔다.

“아아악!!”


벌떡!


스릉 스릉! 스릉!


순식간에 다른 손님들이 강도로 돌변했다.

“둘 다 잡아!”

“빅터. 이 마을도 꽝이네요.”

빅터는 달려드는 강도에게 의자를 집어던졌다.

바로 칼을 뽑아 두번째로 오는 놈을 베어넘기고,

세번째로 눈에 띈 강도를 푹 찔렀다.


투두두두두!!


뒤에서는 루아가 피로 탄환을 쏘아댔다.

혈탄이 맞은 자리가 뜨겁게 타올랐다.

“사람 살려!!”

공포스러운 광경에 강도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우욱!!


빅터의 몸에서 검은 촉수가 문어발처럼 쭉 뻗었다.

사방으로 뻗어간 촉수가 강도들을 덥썩 붙잡았다.

탈출하려던 강도들은 도로 끌려들어왔다.

한동안 여관에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휴우.”

루아는 새 잔에 새 물을 따라 꼴깍 마셨다.

여관은 죽은 강도들로 엉망이었다.

“사막은 이래서 싫다니까요.”

“동감이야.”

빅터는 칼에 묻은 피를 강도의 옷으로 닦았다.

“그래도 이제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죠.”

“그것도 동감이고.”

물을 마신 루아는 카운터를 타넘었다.

그녀가 금고를 뒤질 동안, 빅터는 먼저 나와 낙타에 올라탔다.

“근데, 왜 혼자만 낙타 타요?”

돈을 챙긴 루아가 금방 나왔다.

“이건 기사단이 내게 준 선물이니까.”

“저도 태워줘요.”

“1인승인데.”

“양보할 생각은 없어요?”

“혈마술사들은 체력이 좋아. 몸에 피가 많으니까.”

“한마디를 안 져주네.”

“합리적인 판단이지.”

두 사람은 티격태격 강도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곧 커다란 사구를 마주쳤다.

꼭대기에 도달하자, 눈앞이 확 트였다.

뿌연 모래바람은 더이상 없었다.

얇지만 짙은 방풍림이 녹색 국경을 그었고,

그 너머는 초록의 초원과 언덕이 펼쳐졌다.

“사막이 끝났어요!”

루아가 초원을 가리켰다.

“사막도 끝났으니까, 이젠 좀 낫겠죠?”

“겉모습만 보고는 몰라.”

빅터는 짙은 녹색의 국경을 보았다.

“오히려 이쪽이 더 끔찍할지도 모르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대신에게 선택받은 성기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둥지를 향하여 -1- +2 22.11.26 180 3 10쪽
33 북방의 성인식 -7- +3 22.11.25 196 6 10쪽
32 북방의 성인식 -6- +2 22.11.24 189 7 11쪽
31 북방의 성인식 -5- +2 22.11.23 191 7 10쪽
30 북방의 성인식 -4- +1 22.11.22 187 6 10쪽
29 북방의 성인식 -3- +2 22.11.21 189 5 10쪽
28 북방의 성인식 -2- +1 22.11.20 183 7 10쪽
27 북방의 성인식 -1- +1 22.11.19 195 6 10쪽
26 10년 전의 대마법사 -2- +1 22.11.18 195 6 10쪽
25 10년 전의 대마법사 -1- +3 22.11.17 197 6 10쪽
24 북쪽으로 가는 길 -3- +2 22.11.16 199 6 9쪽
23 북쪽으로 가는 길 -2- +3 22.11.15 188 6 10쪽
22 북쪽으로 가는 길 -1- +1 22.11.14 199 5 10쪽
21 하늘섬의 길드 -6- +1 22.11.13 207 6 10쪽
20 하늘섬의 길드 -5- +1 22.11.12 206 6 10쪽
19 하늘섬의 길드 -4- +2 22.11.11 227 8 10쪽
18 하늘섬의 길드 -3- +3 22.11.10 222 9 10쪽
17 하늘섬의 길드 -2- +2 22.11.09 237 8 10쪽
16 하늘섬의 길드 -1- +2 22.11.08 249 8 10쪽
15 자유 도시의 투기장 -6- +1 22.11.07 243 8 10쪽
14 자유 도시의 투기장 -5- +1 22.11.06 247 6 11쪽
13 자유 도시의 투기장 -4- +1 22.11.05 246 5 10쪽
12 자유 도시의 투기장 -3- +1 22.11.04 256 8 10쪽
11 자유 도시의 투기장 -2- +1 22.11.03 286 9 9쪽
10 자유 도시의 투기장 -1- +4 22.11.02 344 11 9쪽
9 녹색의 국경 -3- +1 22.11.02 353 10 10쪽
8 녹색의 국경 -2- +1 22.11.02 370 10 10쪽
7 녹색의 국경 -1- +1 22.11.02 434 11 10쪽
» 기사와 도둑과 이교도 -4- +1 22.11.02 503 14 10쪽
5 기사와 도둑과 이교도 -3- +1 22.11.01 575 1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