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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루 님의 서재입니다.

덜떨어진 용과 멸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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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루
작품등록일 :
2018.10.12 14:09
최근연재일 :
2018.11.09 00:5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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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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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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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6

DUMMY

케이텐이 메블로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자 자연히 남은 이들끼리 뭉치게 되었다. 특히 야켄은 아까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소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할라피의 본능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라 하기에는 묘하게 미숙한 태도였다.


"그러니까, 저희는 지금껏 수많은 드래곤을 구해 온 베테랑이니까 믿으셔도 돼요! 아, 저는 가장 마지막에 합류해서 아직 하나밖에 못 구해봤지만,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진짜 베테랑이에요! 멸룡자로부터 수많은 드래곤을 구해왔어요! 저도, 뭐, 신세 좀 졌고요!"


야켄은 횡설수설했고 유하는 그런 야켄을 안타까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보통 같으면 그런 눈초리는 진작 읽었을 야켄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야켄은 평소의 자연스러운 태도가 아닌, 과장된 장난스러움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케이텐 씨, 그러니까 지금 어머님께 말하는 사람 말이에요, 정말 굉장한 사람이거든요. 강한 것도 있는데, 뭐랄까. 안정적이라고 해야할까.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내 목표를 완수할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들어요."


그저 말을 이어 붙여나가는 것이 목적인 중구난방에 이어지지 않는 말이었으나, 다행히도 청자가 이야기에 적극적이었다.


"야켄 님에게도 목표가 있군요."

"그럼요! 사나이 되는 자, 목표가 있어야... 어? 제 이름을 아세요?"

"아까 야켄 님께서 곰탱이이라 부른 분이 한 말을 들었어요."


졸지에 곰탱이가 되어버린 바르톨에게 비웃음을 날린 야켄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 그, 그쪽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아니, 제 이름을 알았으니 그쪽도 이름을 대라는 그런 상거래적인 의미가 아니라, 서로 이름을 알아야 더 완만한 대화가 대지 않을까 하고...."

"제 이름은 알키에, 메블로프의 딸이에요."

"알키에라, 좋은 이름이네요!"


딸, 물론 아들로 보이지는 않지만 드래곤치고는 조금 특이한 소개였다. 하지만 야켄은 말을 붙이느라 바빠 그 점을 짚지 못했다. 그리고 알키에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되물은 질문에 당황했다.


"이름에도 좋고 나쁨을 가리는 기준이 있나요? 궁금하네요.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난관에 봉착한 야켄을 뒤로 한 채 유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알키에를 바라보았다.


"메블로프의 딸이라, 묘한 소개네요."


드래곤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하나는 부르는 이름. 알키에라고 외치면 그녀가 돌아보듯 누군가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본질. 메블로프가 스스로를 '나비의 허물을 벗은 뱀'이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소개하는 말이다.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드래곤에게는, 변신이 자유롭기 때문에 도리어 변하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본질. 본질은 고향이다. 돌아올 고향이 없다면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고향이 있어야 비로소 여행은 일탈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더더욱 자기와 세계를 구별할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예외가 있다면...


"이렇게 소중히 대하는 걸 보면 해츨링이 분명한데 말이죠."


해츨링. 터전조차 정해지지 않은 떠돌이. 알키에는 지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뿐 주변 환경에 따라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다. 드래곤하트가 제대로 뿌리내리기에는 한참 남았을 터이니.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과 해츨링은 구분되며, 드래곤이 해츨링을 애지중지 키우는 이유다.

유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래곤이 손수 만든 레어.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을 위해 한땀한땀 가꿔진 터전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 한 인간을 위한 장소였다. 양털, 양젖, 가죽포대, 밀, 보리, 나물, 깨끗한 물, 고기, 집과 나무.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메블로프가 알키에를 위해 준비했다는 건 명약관화했다.


"딸이 본질은 아닐 텐데... 거기다 성별을 무엇으로 정할지 모르는데 딸이라는 정체성은 족쇄밖에 되지 않을 텐데요."

"뭐가 중요하냐? 드래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무엇이라도 이상하지 않거늘. 좀 별난 놈 만났다 생각하면 되지."


대범하다고도, 무관심하다고도 평가받는 드워프 다운 말이었다. 오히려 로기탄 정도면 드워프들 사이에서 주책인 노인으로 취급받는다. 로기탄은 망치를 공연히 빙빙 돌리며 당황하는 야켄을 보고 씨익 웃었다.


"다행이지 않느냐. 딸이면 최소한 여자일 테니, 꼬마 궁수에게 첫눈에 반한 여자가 남자로 변한다는, 괴이한 방식의 바람 맞을 일은 없어 보이니까!"

"그 말, 절대 들리지 않게 하세요..."


유하가 보기에는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또 모른다. 야켄의 기분은 바람처럼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뭐, 로기탄도 그걸 면전에 대고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지만...

유하는 그보다 눈치 없는 한 명을 알고 있다. 면전에다 대고 쓸데없는 부분까지 전부 말할 망할 인간을.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리며 바르톨을 보았다.


"바르톨! 아니, 곰탱이 씨! 그쪽도 마찬가지에요!...어? 바르톨?"


바르톨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알키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태도에 불안해진 유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바르톨은 조금 늦게 대꾸했다.


"...강해."

"네?"


영문 모를 말이었다. 유하가 반문하자 바르톨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여자, 강하다고. 뭐라고 할까... 어--엄청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을 보는 것 같달까. 행동 하나하나에 무가 녹아있어. 무기를 들면 나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겠는데..."


바르톨은 이 파티의 전위이며, 그의 능력은 그의 몸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에서 나온다. 하지만 지금껏 이 파티는 태양궁수와 세계수의 대행자라는 어마어마한 후위를 가지고도 전위의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그토록 바르톨의 실력은 경지에 달해 있다. 그의 눈이라면 말 그대로일 것이다. 유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해츨링이 어째서 그 정도의 실력을 쌓았을까요?"


정작 그 분위기를 잡았던 바르톨은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취미인가보지. 한 번 대련하자고 해볼까."

"어째서 그런 쪽만 무신경한 건데요?! 분위기 좀 이어갈 수 없어요?!"

"이번에도 나야? 왜 다들 나한테만 읽으라고 하는 게 많아?"


그때 케이텐이 여의를 치켜들었다. 여의가 그의 손에서 요동치며 문자를 만들고 드래곤하트의 마나가 그에 따라 마법을 이루었다. 그 신비로운 과정은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두들 말없이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게 쓰인 글자를 감상했다. 마나가 글자의 탄생을 기뻐하듯 주변에서 반짝거리고, 힘을 담은 문자가 빛을 내며 거대한 존재감을 뿜었다.

유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언제 보더라도... 아름다운 광경이네요."


마나가 빛처럼 번뜩이며 허공을 수놓았다. 북극의 오로라 같은 빛무리는 펄럭이더니 곧 한 점으로 수렴했다. 그리고 여의가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모든 이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만들어진 소녀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땅에 누워있었다.

바르톨은 그 모습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 이번에 보여주는 몸은 여성형인가. 좀 어리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눈호강... 으악?! 눈에 갑자기 이끼가 자랐어?!"

"댁은 좀!"


바르톨은 필사적으로 얼굴에 들러붙은 덩굴과 이끼를 떼어내려고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래서 그는 만들어진 소녀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케이텐이 만들어낸 인간 모형은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는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졸린 듯 가늘게 뜬 눈 사이로는 회색 눈동자가 반짝였고 새하얀 피부에는 서서히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흰 피부와 대비되는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그녀의 작은 몸 위에 드리워졌다.

회색이 섞이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희고 검은 소녀. 자그마한 몸과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 압도적인 생명력이 느껴졌다.

모두가 말을 잃었다. 심지어 자신이 마법을 쓴 케이텐마저도 눈을 부릅뜬 채 여의를 보았다. 그 가운데에서 여의는 자기 몸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확 들어 케이텐을 노려보았다.


[뭐야, 몸을 또 만들었냐? 거기다 여자? 이 후레자식 같으니. 제 아비 심장을 잘도 가지고 노는군.]


케이텐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단 하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이 전후사정을 파악하기도 전에 본능이 먼저 멋대로 입을 열었다. 케이텐은 떨리는 목소리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불렀다.


"아버지? 어떻게?"

[뭐냐. 아비가 말하는 게 불만이냐? 죽은 뒤에야 지극정성으로 모시다가 제사상에 짠하고 나타나니 당황스럽냐? 하하! 그러니까 생전에 효도했어야지!]


여의가 호탕하게 웃었다. 케이텐은 그 모습을 보며 이질감과 기시감이 동시에 느꼈다.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그 말투와 유쾌한 웃음은 분명 케이텐이 알고 있는 그의 아버지의 것이었다. 케이텐은 평정을 잃고 말했다.


"어째서... 어째서? 왜..."

[어허, 아들놈아. 아비한테 관심 가져주는 건 좋은데, 눈앞에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면 안 되지. 수라장이 되어버린다고.]


케이텐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지금 문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분명한 그의 아버지를 볼 때가 아니다. 굳은 채 고개를 숙인 메블로프를 마주하며 케이텐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어째서 이번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마법의 능력은 도리어 증명된 셈이지요. 보십시오. 제대로 숨쉬고, 제대로 움직입니다. 이 육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 타버린 잿더미에서 어떻게 불이 타올랐지?]


메블로프가 담담히 말했다. 순간 분지에 찬물을 끼얹어졌다. 케이텐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메블로프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절망했는지 감격했는지 고개를 땅에 박고 있었으니까.

둘이 입을 다문 상황에서 여의만이 분위기 파악을 못한 듯 자기 몸을 이리저리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왜 이런 모습으로 만든 거냐? 아비를 여자, 그것도 여아의 모습으로 만들다니. 아들아, 이 아비는 널 그런 성벽으로 키운 적 없다.]


케이텐은 말없이 여의의 어깨를 잡고 강하게 당겼다. 알맹이야 어쨌든 가녀린 소녀의 모습을 한 여의는 힘없이 그에게로 딸려왔다.


[으윽, 불효막심한 놈. 아비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아차, 여자가 된 김에 이럴 때는 비명을 질러야 했나? 꺄아--...]


소녀의 촌극과도 같은 행동에 케이텐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케이텐은 망토를 벗어서 여의에게 둘러주며 말하는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여의를 마주보았다.

여의의 표정에서 웃음이 차츰 사라졌다. 그 대신 표정을 메우는 건 반항하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헤엥, 관짝 박차고 일어난 아비에게 부탁하는 꼬라지 봐라. 버릇없기 그지없지만...]


행해주마, 건방진 아들아.

여의가 입술만 달싹여 말하고는 곧장 몸을 돌려 총총걸음으로 걸어갔다. 다시 대화의 장에는 케이텐과 메블로프만이 남겨졌다. 케이텐은 초조하게 메블로프를 관찰했다. 오기 전부터 수많은 가능성을 상정했던 케이텐이지만 이런 경우는 그의 계산 아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메블로프가 어떤 행동을 취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랬나. 드래곤블러드. 그 불꽃은 너에게서 비롯된 것이구나.]

"당신은 괜찮습니다. 비록 제가 아버지의 심장 일부를 가졌더라도 드래곤에 비하면 불똥일 뿐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끝까지 '당신'이라고만 하는군. 용의 거짓말을 네가 쓰는 건가.]


창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케이텐의 몸이 우뚝 멎었다. 메블로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기대도, 신뢰도 없는 얼굴에는 체념이 깃들어있었다.


[...그런가.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메블로프는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뱀의 얼굴을 한 그것에는 약간의 체념이 섞인, 하지만 밝은 미소가 서려있었다.


[그래도 그대가 와서 다행이다. 우릴 도울 수는 있겠구나.]


그 미소를 본 케이텐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갔다. 케이텐은 고통으로 이성을 다잡으며 외쳤다.


"메블로프. 당신의 방법은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제 방법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메블로프가 애지중지했던 것.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했던 것. 그게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했다. 하지만 케이텐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버이를 잃은 입장으로써 그보다 더한 일을 겪을 알키에를 동정했으며 또한 이도저도 아닌 운명 속에 무책임하게 내던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자식에게 그런 끔찍한 행위를 강요할 수...!"


케이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단지 솟구친 뱀의 몸이 그를 강타했다는, 그래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는 이유 때문에 케이텐은 입을 다물었다.

말은 사라지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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