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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루 님의 서재입니다.

덜떨어진 용과 멸룡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속도루
작품등록일 :
2018.10.12 14:09
최근연재일 :
2018.11.0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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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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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2

DUMMY

자그마한 분지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땅의 흔적만이 간신히 기억할 정도로 오랜 시간 전에 이곳은 분화구였다. 한참동안 불보다 뜨거운 용암을 토해내야 할 곳이었지만 어느 순간 열기는 잦아들었고 대신 차가운 물이 고였다. 물이 생기자 식물이 자랐고, 그러자 동물들이 찾아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좀 더 안정적인 형태로 향하는 변화를 겪은 다음 이 분화구는 산 정상 바로 옆에 자리한 분지가 되었다. 산이 둘러싸고 있어 아래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초목이 무성해서 정상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천혜의 은신처였다.

곰과 호랑이 등등 다른 쟁쟁한 경쟁자를 무찌를 능력만 있다면 무엇보다도 편한 안식처가 되는 장소에서, 그럴 능력이 충분한 한 존재가 눈을 떴다.


[좋지 않아. 좋지 않아...]


그것은 과장을 좀 보태면 집도 조여 으스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뱀이었다. 매끈한 동체에 어지러이 새겨진 줄무늬를 보면 한 때 굉장히 아름다웠을 짐승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허나 비늘은 빛을 잃은 지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벌름거렸고 등에 달린 거대한 세 쌍의 나비 날개는 미처 못 털어낸 먼지와 나뭇잎이 의도하지 않은 보호색을 만들어냈다.

나비와 뱀을 동시에 닮은 그 존재는 용이었다. 그것은 날개를 이용해서 나는 대신 날개로 균형을 잡으며 뱀처럼 기어갔다.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는 접히거나 오므라들거나 늘어날 수 있었으며 용은 그것을 손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예전에는 본래 의도처럼 하늘을 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럴 수 없지만.

용은 날개로 바람을 읽었다. 산이 예전보다 한층 소란스러웠다. 산짐승과 미물이 전체적으로 움직이고 공기 속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났다. 한 무리의 인간이 방문한 게 틀림없었다.

인간이라는 거대한 짐승은 자신의 강함에 자신을 가지고 산을 들쑤신다. 또한 다른 산짐승과는 다르게 영역을 정하지 않고 발 닿는대로 돌아다닌다. 인간처럼 산에 거대한 흔적을 남기는 생물은 드물다.

약초꾼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산과 함께 살아온 약초꾼은 산의 섭리 안에 있으니까. 이건 분명 모험가 파티가 방문한 것이다.

용을 찾기 위해서.


[...이제 내 생명도 머지 않았군. 그들이 내 종말인가...]


용은 힘없이 중얼거리며 산읽기를 끝마쳤다. 산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는 때부터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날이 밝아보여도 산그림자가 지면 곧장 밤이다. 그런데도 바뀐 바람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걸 보니 산에서 야영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실력 있는 모험자 파티라도 밤의 산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야영을 한다는 것은...

이곳에 '그들'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슬슬 준비를 끝마쳐야 해...]


용은 혼잣말하며 그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가파른 경사로 이루어진 가장자리에는 키 작은 풀이 초록 융단처럼 자라고 있었다. 비탈을 타고 부는 바람에 초록 들풀이 반짝이며 색을 바꾸고, 소박한 들꽃이 심심하지 않게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양 떼가 그 가운데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희고 뭉실뭉실한 털을 가진 양들은 구름처럼 느긋하게 걷다가 내키는 때 고개를 숙여 지천에 널린 풀을 먹었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흐르고, 초록의 땅은 바람을 타고 흔들리며, 희고 뭉실뭉실한 동물들은 종종걸음으로 걸어다닌다. 목가적인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그림 한가운데에서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메아리가 들려오는 작은 산에서-"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동요처럼 잔잔한 가락이었다. 가끔씩 들리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장식처럼 곁들어졌다.


"하얀나비 하얀 꽃에 내려앉아요-."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은 열다섯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 신비로운 은발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는 노래를 부르며 양을 몰았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소녀였다. 다만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실용성을 중시한 옷, 초라한 밀짚모자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졌으나, 신비로운 외모와 현실적인 차림이 함께 있으니 더더욱 이질적이었다.


"늦은 봄날 멍울지는 꽃잎 위에서-"


소녀를 향해 기어가던 용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그녀는 양떼가 놀라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 때문에 소녀가 노래가 끊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용은 느릿하게 풀숲을 기어 소녀에게로 향했다.


"하얀나비 잠이 들어 꽃이 되었네-."


노래가 끝났다. 양들이 환호하듯 메에-하고 울음소리를 내고 소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지개를 폈다. 용은 다시 움직였다. 기척을 느낀 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양들은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뱀의 모습을 보고는 곧장 몸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소녀에게 달라붙었다. 흰 구름이 소녀를 둘러쌌다. 소녀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다 용을 보았다.


"어?"


늑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뱀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용은 내킨다면 여기 있는 양 떼를 전부 먹어치울 만한 크기였다. 아무리 소녀가 뛰어난 양치기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도망뿐이겠지만, 소녀는 용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비명을 지를만한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라면 용과 가까운 장소에서 양을 치는 소녀의 정체를 예상했을 것이다.

소녀가 작은 입술을 벌리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이번에도 격언의 가치를 증명했다.


"어머니, 일은 끝내셨어요?"


소녀는 친숙하게 말했다. 어머니라 불린 용은 차갑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엄한 부모가 낼 법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지 않다. 누군가가 이 땅에 발을 들였어. 풍수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숨어있었는데, 세상에 드러난다면 우리의 종말은 결정된다.]


용은 자신이 읽은 운명을 자식에게 전했다. 하지만 소녀는 어두운 운명을 전해 듣고도 태평하게 대꾸했다.


"으음, 그러면 여기를 떠나야 하는 건가요? 지금까지 정들었는데..."

[멍청한 소리 마라. 지금까지 여기 숨어있던 이유가 운명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스스로 세상의 흐름에 뛰어들어서야 어찌 살아날 수 있겠나!]


용은 다그치듯 소리쳤다. 용의 노호 앞에서 양들은 몸을 더욱 움츠린 채 소녀에게 매달리다시피 뭉쳤다. 그렇지만 소녀만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면 그 누군가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네요."


용은 코웃음쳤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로구나. 언제까지 그들이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것 같더냐? 언제부터 우리가 운명을 상대의 무능함에 맡겼더냐? 네 삶인데 궁리해낼 것이 그것밖에 없더냐?]


어리고 어리석은 소녀를 보며 용은 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소녀는 꾸짖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당돌하게 대꾸했다.


"제 삶이 제 것인지는 몰라도, 제 죽음은 멸룡자의 것이잖아요."


용이 얼어붙은 것처럼 멈추었다. 딸은 어미와 달랐다. 영겁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죽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지만 딸은 죽음과 함께 평생을 살았다. 식량과 의복까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삶이라기보단 그저 죽음의 유예였던 15년. 그 시간은 수천 년을 살아온 어미에게는 짧았으나 딸에게는 평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을 접해왔던 만큼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언제 멸룡자가 찾아와도 순순히 수긍할 만큼.

어차피 그녀는 죽는다.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태어났을 때부터 종말이 정해진 소녀는 삶의 가능성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뭘 해도 도리가 없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저도 죽고 싶지는 않지만, 멸룡자의 앞에서는 드래곤이라면 누구라도 공평해요. 죽음은 이미 결정되었어요. 그 과정을 어떻게 채울지 정할 수 있을 뿐."


소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드래곤이 되지 못한 소녀는 모든 걸 받아들인듯 초연한 얼굴로 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머니, 저를..."


소녀의 입술이 무언가를 내뱉기 직전 용의 목소리가 소녀의 말허리를 날카롭게 잘랐다.


[네 쓸데없는 넋두리따위 들어줄 시간 없다.]


소녀는 입을 다물었다. 용은 그런 소녀를 한층 냉엄하게 질책했다.


[나약한 것. 쓸데없이 허비할 시간에 기술이라도 하나 더 익혀라. 인간은 그 짧은 수명을 가지고도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한층 고민해도 모자를 시간에 허송세월이나 하고 있다니, 널 가르친 내 시간이 아깝구나. 쯧, 모자란 녀석 같으니.]


소녀는 말하고 싶었다. 아까워 할 바에야 차라리 자신에게 시간을 쓰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냐고.

하지만 소녀는 말하지 못했다. 대신 소녀는 슬퍼 보이는 용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은 산 자를 위한 것.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녀에게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란 공허한 것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시켜서 하고 있을 뿐.

어차피 죽을 것, 뭘 하든 상관없다. 그러니까 기술을 익혀도 상관없다. 이건 자포자기였다.

용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양들이 풀을 다 뜯으면 나를 깨워라. 네가 해야 하는 일을 알려주마.]

"알았어요. 쉬세요."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번 것은 네가 지금까지 겪은 것과 차원을 달리할 테니.]


용은 으름장을 놓고는 거대한 몸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여유롭다기보다는 노인의 걸음걸이 같은 그 움직임을 소녀는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흰 양들이 멀어지는 용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용의 강력하고 거대한 몸은 어지간한 일을 단번에 해치울 수 있지만 겁 많은 양을 돌보는 일만은 언제나 소녀의 몫이었다. 소녀는 다시 지팡이를 들고 양 떼를 이끌기 시작했다. 양은 소녀의 지휘에 따라 가야할 곳으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정작 소녀의 방황하는 마음은 방향을 잡지 못했다.


@


-그리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건 누군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왠지 뱅뱅 돌고 있는 것 같지 않냐?"


바르톨이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다른 동료들 역시도 하나같이 녹초가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당한 의심이었다. 목표로 삼은 곳을 도착한지 하루. 근처 마을에서 푹 쉬고 일어난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탐색을 개시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해질녘까지 이어지는 산행과 몇 시간 마다 찾아오는 기시감이었다.


"드래곤 레어로 의심되는 지역은 이 근처가 분명한데..."


케이텐은 지도를 보고 살폈다. 테네라드에서도 이틀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근방의 약초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소문이 돌던 땅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가면 반드시 헤메게 된다는 기묘한 땅. 아무리 올라가도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맴돌이 언덕이다. 사람들을 맴돌게 하는 지형은 자연에도 존재하니 꼭 놀랄 만한 것도 아니지만, 만약 근처에 '무언가'가 있다고 친다면 분명 이곳일 터. 그래서 케이텐은 이곳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그건 이 지역의 드래곤 헌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맴돌이 언덕의 존재를 드라키옷에 알렸다. 드래곤이 존재할 거라 의심되는 땅으로. 중간에 그 첩보를 입수한 케이텐 일행은 멸룡자가 그 정보를 입수하기 한 발 먼저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바르톨은 야켄을 보고 말했다.


"길잡이는... 제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누구보다 좋은 시력과 가벼운 몸을 가져 길잡이를 자처한 야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무가 흔하지 않던 황야에서 자라온 그의 부족에서는 나무에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산에는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의 나무가 있다. 그런 장소에서 맴돌이 현상까지 벌어지니 야켄은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걷는 중이었다.

케이텐이 그를 변호했다.


"야켄은 할 일을 다했어. 여기까지 잘 찾아왔고,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것도 야켄이야. 이 정도 했는데 안 된다면 그건 길잡이의 문제가 아니지."

"그렇다는데. 그럼 이제 풍수사가 나설 차례 아니냐?"


바르톨이 파티의 유일한 풍수사를 바라보며 말하자 유하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으음, 애매하네요. 이곳 풍수지리는 읽기가 힘들어요."

"엥? 읽기가 힘들어? 풍수지리는 그저 존재하는 거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며. 오늘 컨디션 안 좋은 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가을 즈음이 털갈이 하는 기간이던가."

"털갈이라니, 실례에요! 엘프들에게는 '머릿단풍'이라 불리는 중대한 기간이고, 그리고 전 하프니까 색만 변하고 털을 갈지는 않는다고요!"


유하가 소리를 빽 지르자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날았다. 바르톨은 몸을 약간 오므린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유하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날아간 새가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진 무렵 바르톨이 조심히 물었다.


"혹시 너도 사춘기냐?"

"당신이 너무 무신경한 거거든요?! 여자의 신체변화를 너무 가볍게 짚지 말라고요! 우리에게는 중요하고도 민감한 일이니까!"


유하가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잠깐 생각하던 바르톨은 모든 비밀이 풀린 듯한 얼굴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 생리 같은 거구나. 알았어, 이제부터 조심할... 아, 때리지 마! 네 돌지팡이 그거 진짜 아프다고!"

"돌지팡이가 아니라 작은 세계수! 세계수의 권능이 담긴 신장!"

"아따, 돌로 된 지팡이면 돌지팡이지 뭔... 악! 미안, 실언이었다!"

"그래서, 유하. 어떻게 읽기 힘듭니까?"


바르톨을 후두려 패던 유하가 몸을 멈칫했다. 그리고 팔을 공손히 모은 채 케이텐의 눈치를 보며 다소곳하게 말했다.


"그, 뭐라고 할까요... 풍수지리는 물과 나무, 산과 땅, 거리와 높이, 형과 세를 말하죠.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면 원의 형태이며 닫혔다고 하고, 산세가 뻗어나가는 곳이면 선의 형태이며 열렸다고 해요. 원의 형태는 감추거나 지키는데 좋다, 선의 형태는 힘차게 뻗어 나오는데 좋다. 이렇게 분류하는데..."


유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는 하늘을 가렸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뿐이었다. 높낮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지표도 없었으며, 비교한다고 그것마저 확신할 수 없었다.

분명 올라가고 있다는 자각은 있는데 아무리 올라도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올라갔다 싶으면 내려와 있고 한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돌아와 있다.


"모르겠어요. 분명 열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닫히지도 않았죠. 풍수지리가 단순히 그 두가지로 귀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산인 이상 형세가 분명해야 하는데 이건 그 중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케이텐은 그녀를 나무라거나 실망을 표하지 않았다. 한수림의 하프엘프이자 산지기의 딸인 그녀보다 풍수지리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니었기에. 자기도 모르는 걸 상대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각도의 시선을 알려줄 수는 있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면, 인위적으로는 가능합니까?"

"네? 에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산을 바꾸나요?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는 것도 아니고 산을 옮겨야 할 텐데..."


그렇게 말하던 유하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케이텐의 말을 대충은 이해한 탓이다. 케이텐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유하, 당신은 이런 지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물론 당신에게 땅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케이텐의 말은 유하의 사고를 자극했다. 나무와 땅은 움직일 수 없다. 그건 풍수의 기본이다. 괜히 땅과 산의 세를 읽는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기에 읽는다고 하지.

하지만 만약 땅을, 산을 움직일 수 있다면? 풍수를 고쳐 쓸 수 있다면?

유하의 얼굴에 경악이 담겼다. 그녀는 빠르게 중얼거렸다.


"...본래 닫힌 지형의 산에서, 산 아래의 지반 전체를 한쪽으로 기울여야 해요. 그러면서도 산이 붕괴하지 않게 해야 하죠. 쌓아둔 빵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며 쟁반을 기울이는 것처럼. 어디든 동일해야 할 원을 어긋나게 해서 양 극단을 만들어야 해요!"


그녀의 말이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이라는 걸 알아챈 케이텐은 말없이 경청했다. 유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되면 감추는 형태 안에 나오는 형태가 있어요. 은형의 결계를 펼 수 있으면서도 안에서 밖을 주시할 수 있어요! 원이 기울어져 있으니 요동을 칠 거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원이 테두리에... 그러면 부수적으로 맴돌이도 생길 거예요! 무슨 이런 일이...! 가능, 가능이야 하지만...!"


유하는 패닉에 빠져 스스로의 머리를 헝클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그녀의 머리는 손짓을 따라 갈라지거나 빠졌지만 그녀는 자각을 못한 듯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바르톨이 유하에게로 다가갔다. 바르톨이 아는 패닉에서의 탈출법은 등을 세게 치는 것뿐이었고 그걸 하려고 했지만 케이텐이 그런 그를 막아섰다.

풍수사에게 풍수란 주어지는 것이지 바꾸어 나가는 게 아니다. 지세는 인간의 힘으로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온 가설은 그 모든 걸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었으며 그 충격은 전통적인 풍수사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가혹했다. 케이텐은 유하에게 현실을 인정하라고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풍수사에게 묻겠습니다. 그런 지형이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그라미의 끝으로 가야해요. 거기서..."


유하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놀란 표정이었다. 케이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겠습니다. 밤에 산을 오르는 건 위험하니까. 하지만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밤을 보낸 뒤, 날이 밝는 대로 우리는 이 산의 정상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 안쪽을 향해 떨어질 겁니다. 마음에 준비를 해두세요."




비정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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