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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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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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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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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34화

DUMMY

8일에 아벤티스 시에서 출발한 레아와 파우스는 12일이 되어서도 수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우스가 전과 마찬가지고 앞뒤가리지 않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쉬는 시간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과 같이 했다고 해도 아벤티스에서 바로 수도 엘레키움에 도착할 만큼 아벤티스와 수도가 가깝지 않다.


속도가 조금 줄었기에 레아는 제대로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여름의 더위가 물러날 시기를 놓쳐 맴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과 초목은 서서히 알록달록한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겨울잠을 자는 일부 짐승들과 몬스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먹을 것을 모으고, 지나가는 영지의 농지에는 노랗게 익은 밀을 단으로 만들어 쌓아올리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밀이 완전히 익지 않은 일부 농지는 농부들 대신 겨울잠을 위해 영양을 보충하려는 작은 동물들이 밀이삭 끝에 달린 밀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직 수확시기가 되지 않은 농지 근처의 반면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농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봄도 아닌데 땅을 갈고 몇 명은 굳어진 나무줄기를 짜서 만든 바구니에 든 뭔가를 연신 뿌리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가을 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봄밀의 수확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지만 가을밀과 보리는 이제부터 씨를 뿌리거나 춘화처리를 하고 심어져 겨울을 거칠 것이다.

지금 파종되는 가을밀과 보리는 겨울을 견뎌내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 사람들이 다음해 봄의 보릿고개를 넘게 해줄 선물이 될 것이다.



"누군가 따라온다."



파우스가 팬텀 스티드를 몰고 바로 옆까지 바짝 다가와 말했다.

레아는 아마추어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대신 팬텀 스티드의 고삐를 꽉 쥐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파우스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팬텀 스티드의 속도가 점점 올라갔고 팬텀 스티드는 살짝 가도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와 바깥에서 레아와 파우스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서야 레아는 고개를 돌렸고 저 멀리 희미하게 점처럼 되어 있는 말을 타고 있는 집단이 보였다.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그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옷이나 갑옷을 입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황급히 꺾어 레아와 파우스가 들어간 숲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번 여행 내내 파우스와 레아는 누군가에게 시비 붙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기에 굳이 가도를 벗어나면서까지 그들을 쫒아오는 저들이 그리 좋은 의도를 가진 자들이 아닌 건 분명했다.


파우스와 레아는 엄청난 속도로 팬텀 스티드를 몰아 숲을 통과하였고 팬텀 스티드들이 숲을 통과하면서 숲에서 얌전히 먹이를 모으고 있던 짐승들과 몬스터들을 놀라 자빠지게 만들어 숲에는 도망쳐나오는 짐승들과 위협의 울부짖음을 토해내는 몬스터 때문에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팬텀 스티드를 쫒아오는 것들은 없었고 레아와 파우스는 얼마 있지 않아 숲을 통과하였다.



"따돌렸나?"


"아직이다."



숲을 빠져나온 레아는 속도를 줄이려고 했으나 파우스는 속도를 줄였지만 고삐를 놓고 다리 힘만으로 말을 타고 팬텀 스티드 소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주기적으로 취하던 휴식을 포기하고 도주를 택한 것이다.

주문이 완성되어 그들이 타고 있던 팬텀 스티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바로 새로운 팬텀 스티드가 형성될 때 하마터면 레아는 말 위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새로 형성된 고삐를 잡고 균형을 되찾았다.

위험하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기 직전, 레아는 숲 중심부에서 몬스터가 경고의 의미가 아니라 싸움을 하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적들은 추격을 단념하지 않고 쫒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뒤집어논 숲의 주민이 싸우는 걸까?

계속 최고 속도를 유지하려는 걸로 봐선 파우스는 전자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던 파우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질주했다.

가로를 한참 벗어난 것으로도 모자라서 고의로 먼 곳에 돌을 던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풀을 헤집어서 엉뚱한 곳에 흔적을 남기면서 달려가는 파우스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태양이 벌써 지평선 너머로 퇴근해버리고 주변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파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파우스는 한참동안 팬텀 스티드 주문 갱신을 반복하다 레아가 간신히 앞에 산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어두워지고서야 멈춰섰다.


레아는 파우스가 드디어 팬텀 스티드 소환 주문을 갱신하지 않고 멈춰자마자 이야기도 듣지 않고 내려서 먼저 볼일부터 처리했고 레아가 볼일을 다 처리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파우스는 레아 몫의 짐까지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파우스는 빛조차 띄우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보이는 것처럼 비틀거리는 기색 하나 없이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이내 마력이 넘실거리는 청색 안광을 흩뿌리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한다."


"지내기 좋은 동굴이라도 있어?"



레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어둠에 눈이 조금 익숙해져서 파우스 근처로 다가갔고 파우스의 앞에 있는 것이 동굴이 아니라 그냥 바위산의 절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환영마법으로 숨겨놓은 아지트야?"



레아는 예전에 에트루리아 왕국의 우로스 산맥 은신처에서 살던 경험을 떠올리며 바위산으로 돌진했다가 절벽에 머리를 박았다.

레아가 머리를 붙잡고 뒹구는 동안 파우스는 레아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대신 주문을 외웠다.



"로프 트릭!"



파우스는 위상도약 파우치에서 꺼낸 로프를 하늘에 던지면서 주문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허공에 던져져서 바위산에 닿은 로프는 아무런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위산에 딱 달라붙었고 파우스는 레아 몫의 가방까지 짊어진 채 로프를 타고 올라갔다.

로프 끝까지 올라간 파우스는 미리 가방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 로프 끝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짐을 다 던진 뒤 파우스 본인도 로프를 향해 얼굴을 처박았고 레아와는 달리 파우스는 연결된 절벽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레아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지금 파우스가 시전한 주문을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은신처 만드는 주문인건 알겠는데 지속 시간 1시간 밖에 안되잖아. 주문이 끝날 때 안에 있으면 죽는다고!"



레아는 파우스를 따라 로프를 타고 올라가며 소리쳤는데 그 얼굴에는 다급함이 서려있었다.

예전에 토니우스 일당과 파티를 짜기 전에 한번 다른 모험자 파티에 들어갔던 레아는 모험 도중 은신처 생성 마법을 알고 있다고 한 마법사를 믿고 로프 트릭 주문으로 만들어진 은신처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결과를 끔찍했다.

잠깐 쉬고 있던 도중 갑자기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고 레아와 몇몇 모험자들은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자기 마법을 너무 믿고 있던 마법사는 입구가 닫혀버린 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파우스는 절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걱정으로 가득한 레아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로프 트릭 주문은 시전자의 실력에 비례해서 지속시간이 늘어난다. 이전에 네가 봤다는 주문은 최소 레벨로 시전된 로프 트릭일 거다."


"이건 몇 시간 짜리인데?"


"7시간만 쉬고 나갈 거다."



7시간이라는 말에 레아는 그 정도면 한숨 자고 일어나도 충분할 거라고 납득하면서도 동시에 재수없게 7시간을 넘기라도 하면 예전에 봤던 그 불행한 마법사처럼 이 세상에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정체모를 추적자들이 그들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로프 트릭 은신처는 꽤 안전한 야영장소다.

레아는 투덜거리면서 무슨 일 생기면 네탓이라면서 파우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로프 트릭 은신처에는 파우스가 미리 꺼내놓은 휴대용 마석등이 작동해서 밝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파우스는 레아가 들어오자 로프 트릭 주문에 사용한 밧줄을 잡아당겨 안으로 가져왔다.

로프가 밖에 내걸린 상태에서도 입구가 잘 보이지 않았으니 밧줄을 아예 안으로 끌고 온 지금은 아마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안에는 방금 막 파우스가 던져놓은 보존식과 물병, 침낭과 소변처리용 요강, 일회용 갑옷 정비도구가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마석등의 빛을 반사해 빛났다.

놀랍게도 은신처에는 창문이 달려있었지만 그 창문은 어째서인지 절벽 바깥이 아니라 절벽 안쪽을 비추고 있어서 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아는 자신의 위상도약 파우치를 열려고 했지만 파우스가 레아의 손을 잡고 제지하며 말했다.



"공간 계통 마법 적용 범위 안에서 또 다른 공간 계통 아이템을 사용하는 건 주문이 서로 간섭할 위험이 있다. 여기서는 되도록이면 열지마라."


"좀 말로 하면 어디 덧나?"



레아는 투덜거리면서 갑옷을 벗어서 정비한 뒤 옆에 가지런히 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끝마친 뒤 적당히 운동을 하다가 소화가 다 된 뒤 레아는 이 바위산의 위치를 물었고 파우스는 지도를 꺼내서 그들이 이동한 방향을 떠올리며 계산을 하다가 수도로부터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여기에 표시된 아니에네 강 인근 수비아코 산 끝자락으로 보인다."


"수도랑 꽤 가깝네. 전력질주가 아니더라도 반나절 정도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겠어."



수도에 거의 도착했다는 걸 확인한 레아는 추적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다.

레아와 파우스는 보통 말이 전력질주하는 속도의 거의 3배나 되는 초월적인 속도로 가도를 돌파했으니 추적자들은 거의 다 떨쳐냈을 것이고 수도로 향하는 길에서만 조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일 일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파우스와 레아는 일찍 자기로 하였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자 피곤한데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레아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으음?"



거의 기절하듯이 잠든 레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파우스는 여전히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몸이 피곤에 쩔어있지만 그녀가 왜 도중에 깼는가?

딱히 큰 소리나 난 건 아니었다.

공격을 받은 흔적도 없고 옆에 자고 있는 파트너는 숨소리도 안내고 있다.

레아는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몸의 잔털이 마치 두려운 걸 본 고양이처럼 뻣뻣하게 서는 걸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웬수 같은 파트너와 짐들, 절벽 내부의 꽉 들어찬 바위만 보이는 창문, 마지막으로 출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밧줄 한뭉텅이와 요강 뿐이었다.

레아는 자다 깨서 기분도 더러운데 텁텁한 은신처의 공기 대신 맑은 산의 공기나 들이킬까 생각하며 밧줄 쪽의 출구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고개를 내민 그녀는 바깥 풍경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하게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건만 바깥에 횃불을 든 사람 몇 명이 산을 돌아다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우연히' 이 새벽에 등산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자들인가?

아니면 그들을 쫒아온 정체모를 추적자들인가?

제 아무리 수도 근처라지만 이런 새벽에 횃불을 들고 산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는 그들을 쫒아온 추적자들이 수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확률이 높았다.



"일어나!"


"?"



레아는 급히 파우스를 깨웠다.

파우스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귀찮아하는 평범한 얼굴과 마치 장난감 인형이 일어나는 것 같은 차렷자세로 상반신만 굽혀서 일어나는 기괴한 조합을 보여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되는지 반쯤 뜬 눈으로 레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처럼 눈빛을 보냈고 레아는 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낮에 우릴 쫒아온 놈들이 바깥을 뒤지고 있어."


"바깥 상태는 어떻지? 새벽인가? 아침?"


"아직 해가 안뜬 상태야. 놈들은 횃불을 들고 수색을 하고 있어."



파우스는 잠이 확 달아난 건지 귀찮아하던 표정이 싹 사라지고 평소의 진지하고 무감정한 얼굴로 돌아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레아에게 말했다.



"일단 이 은신처 안에 있는 이상 놈들에게 발견될 확률은 극히 낮다. 다만 전에 말했듯이 이 주문은 시간제한이 있고 그 제한시간이 2주간시 정도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 아침이 되서 주문이 해제될 때까지 놈들이 이 산을 수색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면 싸워야 할 거다."


"달아날 생각이라면 시야가 제한된 지금 도망쳐야 할까?"



로프 트릭 주문이 해제될 때까지 길어봤자 2시간 정도 밖에 안남았다는 말에 레아는 고민했다.

지금 횃불을 들고 산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다는 건 놈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이 산에서 놓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시에 산 전체에 마력탐지나 비전 시야 마법을 시전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지닌 마법사가 없거나 도착하지 않은 상태일 확률이 높다.


아침이 되어 주변이 밝아졌을 때 놈들이 철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투명화 주문을 계속 시전하면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로프 트릭 은신처에 숨어있는 것과 투명화 마법을 걸친 채 이동하는 건 위험성이 다르다.

로프 트릭은 은신처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 쉽게 찾지 못하지만 세상에는 투명화 감지나 마력 탐지 주문을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일회용 스크롤이 존재한다.


레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이 파우스는 출구 쪽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서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 머리를 은신처 안으로 집어넣었다.

파우스의 눈에 마력과 비전의 힘이 푸른색으로 흐르는 걸로 봐선 비전 시야나 마력 감지, 생명 감지 같은 능력을 사용한 것 같았다.



"횃불을 들고 있는 인간이 넷, 어둠 속에서 빛 없이 움직이고 있던 녀석들이 여섯이다."


"이 새벽에 횃불도 없이 돌아다닌다고? 아, 인간 외의 다른 종족 중에는 밤눈이 밝은 놈들이 있었지?"



파충류 계통 수인이나 용인들은 밤눈이 밝은 암시야 능력을 대부분 가지고 있고 포유류 계통 수인들은 일부만, 엘프와 드워프는 극히 소수가 보유하고 있는 암시야는 마법이나 권능 같은 것이 아니라 피로 계승되는 종족적 특색 같은 것이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상대를 똑바로 확인할 수 있고 종족적 특색에 마법적인 돌연변이가 더해진 일부는 어둠 속에서 물건의 형체를 파악하고 마력 감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기도 하다.


사비니 왕국은 인간 왕국이지만 그래도 다른 종족을 심하게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드워프나 엘프가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고 드물긴 하지만 수인들도 마음 먹고 찾아다니면 도시마다 한두 명 정도는 볼 수 있다.

특히 모험자라는 험하고 몸 쓰는 일이 많은 직업군에서는 인간 외 종족들의 육체적 특성과 외국인이라 돈 벌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환경 덕택에 더더욱 보기 쉬운 것이다.



"거기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적인 탐색을 하는 놈들이 있다. 마법의 눈이 돌아다니고 있어."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 우리를 이렇게까지 해서 찾으려는 이유가 뭐지?"



마법의 눈은 옛 동료이자 배신자인 수잔 같은 스스로 마법사라고 떠들고 다녀도 될 숙련자들이 쓰는 주문이다.

그런 인재는 길거리에 널려있는 어중이 떠중이가 아닌 진짜배기인데 그런 마법사가 수색자에 섞여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그들을 수색하고 있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제 아무리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인원 집중이 이루어지면 흔적이 남겨질 확률이 높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타티아 모험자 길드 마스터 대리인 레아와 파우스를 찾아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쩌면 아벤티스 시에서 우리가 놈들의 꼬리를 잡은 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그랜드마스터 선출과 관련해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져 다급해진 걸지도 모르지."



정보가 부족한 레아와 파우스로서는 저들이 왜 저렇게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저들에게 들키는 순간 단순히 욕설을 주고받는 수준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어쩔 거지 레아?"


"분위기를 보아하니 순순히 물러날 거 같지는 않아.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틈이 생기면 바로 빠져나가자."



레아는 아침까지 기다리는 건 위험하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야음을 타 도망치기로 결정하였다.

파우스는 최대한 정리할 수 있는 짐을 조금씩 가방과 짐만 밖으로 빼내서 가방에 집어넣는 걸로 정리를 시작했고 5분이 지났을 때 그들이 로프 트릭 은신처에 남긴 건 요강 하나뿐이었다.

마석등조차 가방으로 들어가 어둠과 긴장감 만이 은신처를 가득채우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40분 정도 흘렀을 때 산 곳곳에 있던 횃불이 저멀리 산 밑 분지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중간 보고를 위해 모여든 것 같았고 중간중간 얼굴만 내밀어서 바깥을 확인하던 레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우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파우스와 레아는 밧줄을 은신처 밖으로 꺼내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바닥에 착지할 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내려오는데 성공한 그들은 횃불이 모여든 곳과 반대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달도 뜨지 않고 별빛만 반짝거리는 하늘 아래에서 천천히 이동하던 중 레아는 갑자기 자신을 제지하는 파우스의 손길에 멈춰섰다.

어둠 속에서 파우스는 레아가 간신히 알아볼 수 있도록 허공에 손짓을 하였고 파우스가 가리킨 방향 쪽으로 온 신경을 집중한 레아는 누군가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중간보고를 위해 모여들었다고 해도 탐색을 완전히 멈춘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 저 앞에서 조용하게 걸어오고 있는 상대는 암시야나 적외선 감지 능력이 있는 종족의 암살자가 분명했다.



[투명화 주문은?]


[조금 있으면 암시야 범위 안이라 길게 주문을 외우면 무조건 들킨다]



레아와 파우스는 서로의 몸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걸로 의사소통을 대신하였다.

소리를 내는 영창을 거치지 않는 마법의 무음 시전은 보통 1단계, 주문을 동작 없이 발동시키는 것 역시 1단계, 주문을 정해진 규격보다 신속하게 시전하는 경우는 4단계 정도 난이도가 올라간다.


지금 저 앞에서 걸어오는 상대는 어둠 속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청각도 뛰어난 종족의 암살자일 확률이 높다.

그런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법을 시전하려면 소리와 동작 없이 신속하게 주문을 시전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평범한 투명화 주문을 시전하기 위해 6단계나 더 어려운 전설적인 마법인 검은 사령술사의 끔찍한 고사와 비슷한 난이도의 실력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 상대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주변이 너무 고요해서 선명하게 들리는 발소리가 점점 다가왔고 레아가 파우스를 재촉하는 의미로 팔뚝을 약하게 잡아당겼지만 파우스는 레아의 손바닥 위에 글을 쓰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마법은 만능이 아니다. 눈으로는 안 보여도 마력감지에 걸리면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 이대로 있으면 들켜!]



파우스는 레아의 닦달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리도 내지 않고 순식간에 주문을 완성시켰다.

순식간에 레아와 파우스 주변 범위를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주문의 장막이 펼쳐졌다.

장막이 펼쳐지고 수십 초가 지나 레아의 어두운 밤눈에도 확실하게 종족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상대는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얼굴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정확하게 나뭇가지를 피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키는 드워프 같은 키 작은 종족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고 두건 사이로 보이는 미간의 색깔은 확실히 초록색은 아니었다.



'인간처럼 보이는데 암시야 능력이 있는 걸 보니 엘프거나 엘프 혼혈인가?'



레아는 상대가 엘프거나 엘프 혼혈일 것으로 추측하였다.

혹시나 마법 저항이 높은 엘프라 이 어둠속에서 투명화 주문으로 생기는 위화감을 눈치채기라도 하면 다른 자들에게 알리기 전에 죽여버리는 것이 제일 깔끔하기에 레아는 단검 한자루를 소리 없이 빼들었다.



'휴, 그냥 갔네.'



제 아무리 엘프들에게 암시야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런 별빛도 희미한 깊은 어둠 속에서 투명화 주문으로 생겨나는 위화감을 눈치챌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 수색자는 파우스와 레아를 지나쳐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이동한다."



파우스는 암살자가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암살자와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신호를 보냈고 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파우스를 따라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들이 투명화 주문을 시전할 때 주문의 범위 안에 자신과 파우스만 있던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딱 범위 투명화 주문이 시전될 때 그 경계에 걸쳐 있을 거리에 위치한 바위 근처 어둠 속에서 동그란 눈 한쌍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레아는 그 눈동자의 주인이 산에서 흔히들 마주칠 수 있는 송곳니 노루, 뱀파이어 노루, 물노루, 시슴, 고라니 등으로 불리는 최약체의 유해조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투명화 주문이 시전될 때 범위 안에 있어서 함께 주문에 걸려 레아를 인식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쉬잇!"



갑자기 들이닥친 수색대의 눈을 피해 숨어있던 축생은 흉악한 송곳니를 득득거리면서 당장이라도 그 기괴한 사람 비명소리 같은 울음을 내뱉으려고 했으나 레아는 최대한 뒤로 천천히 물러나면서 야생동물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짐승은 뒤로 물러나는 레아를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끼웨에이이이!!!"



모든 기대를 배반하고 놈은 우렁차게 울음소리를 내뱉고는 전속력으로 바위 뒤로 뛰쳐나갔다.

레아가 정신이 멍해져서 멈춰있는 동안 저 멀리 가고 있던 암살자가 소리를 듣고는 몸을 돌려 바로 주머니에서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발사하였다.



"저쪽이다!"



중간보고를 하고 있던 산 밑 분지 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파우스는 벌써 탈출은 글러먹었다는 걸 깨닫고 신호탄을 발사한 암살자에게 달려들어 검으로 목을 쳐내고 있었다.



"X같은 뱀파이어 노루 새끼! 다음에 보면 무조건 다 죽여버리겠어!"



레아는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죽여버리겠다고 송곳니 달린 노루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다가 대검을 빼들고 싸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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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23.07.09 15 1 19쪽
39 39화 23.07.09 13 1 16쪽
38 38화 23.07.09 15 1 17쪽
37 37화 23.07.09 13 1 20쪽
36 36화 23.07.09 12 1 16쪽
35 35화 23.07.08 17 1 22쪽
» 34화 23.07.08 20 1 23쪽
33 33화 23.07.08 17 1 22쪽
32 32화 23.07.08 14 1 19쪽
31 31화 23.07.08 16 2 16쪽
30 30화 23.07.07 20 1 16쪽
29 29화 23.07.04 21 1 21쪽
28 28화 23.07.04 20 1 15쪽
27 27화 23.07.04 19 1 17쪽
26 26화 23.07.04 17 1 13쪽
25 25화 23.07.04 16 1 14쪽
24 24화 23.07.04 18 1 14쪽
23 23화 23.07.04 20 1 16쪽
22 22화 23.07.04 22 1 14쪽
21 21화 23.07.04 21 1 18쪽
20 20화 23.07.03 26 1 16쪽
19 19화 23.07.03 21 1 16쪽
18 18화 23.07.03 24 2 17쪽
17 17화 23.07.03 24 1 21쪽
16 16화 23.07.02 20 2 16쪽
15 15화 23.07.02 20 1 16쪽
14 14화 23.07.02 22 1 18쪽
13 13화 23.07.02 25 1 14쪽
12 12화 23.07.02 20 2 23쪽
11 11화 23.07.02 23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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