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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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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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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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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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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33화

DUMMY

어느 순간 잠에서 깬 레아는 자신의 시야가 살짝 검붉은 색이라는 걸 깨달았다.

혹시 상처를 입어서 피가 눈에 들어간 건가 싶었으나 그 검붉은 색은 아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눈꺼풀을 비춰서 그런 것이었다.

감각이 없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자 눈앞에 생소한 방의 모습이 들어왔다.

푹신한 침대와 가슴팍까지 내려가 있는 솜이불을 머리 끝까지 잡아당기고 싶은 충돌을 억누르고 자신의 붉은 앞머리를 쓸어올려 시야를 확보한 레아는 자기 옆자리에 누가 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일어났나?"



벌써 일찍 일어나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비비고 있는 파우스의 얼굴을 보자 레아는 두루뭉실하던 머리가 바짝 서면서 지금까지 일을 기억해냈다.

분노, 허탈감, 근육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지만 레아는 참아내고 파트너에게 물었다.



"언제 출발할 거야?"


"아직 2일 정도 여유가 있다. 최소 하루 정도는 암살 건에 대해 조사를 할 예정이다."



레아는 굳이 어젯밤에 파우스가 뭘 했는지 묻지 않았다.

비열하게도 혼자 활력 마법을 사용해 원기를 보충한 파트너는 분명 야밤에 여러가지 조사를 위해 돌아다녔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레아는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와 장비를 착용했다.

장비를 착용하는 동안 파우스는 옆에서 자신이 어젯밤에 알아낸 정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후 파우스와 함께 방을 나선 레아는 여관 1층에서 하루 더 연장한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와 아침식사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룻밤에 금화 2장인 숙소로 옮길 생각 있나?"


"당신이 왠일이야?"



파우스 쪽에서 먼저 더 비싼 여관으로 옮기자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레아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순간 그녀의 본능이 마구 경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래놓고 4일만에 수도로 돌진한다거나 그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전형적인 선물을 미리 줘서 힘든 일을 거부하기 힘들게 만드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하며 레아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파우스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지금 여관도 꽤 괜찮잖아 굳이 돈 낭비할 필요는 없는거 같은데?"



파우스는 같은 제안을 거듭해서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연 노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그 자리에서 점심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조사를 거의 파우스에게 맡겼지만 레아는 레아 나름대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모험자 길드였다.



'여긴 1층이 술집인 형태네 접수는 2층인가?'



아벤티스 시의 모험자 길드 건물로 들어간 레아는 베테랑 모험자답게 그 즉시 이곳이 어떤 형식의 체제인지 깨닫고 아직도 퍼질러져 있는 모험자가 즐비한 1층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모험자들의 대기구역과 직원구역으로 나눠져 있었고 대기구역에는 아침 일찍 일거리를 찾아온 모험자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들어 적당한 의뢰를 찾고 있었다.



"임마 밀치지마! 의뢰서 찢어질 뻔했잖아!"


"누가 밀쳤다고 그래? 슬쩍 닿았다고 밀려난 니놈의 허약한 몸 탓이지"


"누가 허약하다고!"



어떤 모험자 길드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다툼을 뒤로 하고 레아는 게시판을 조금 떨어져서 의뢰서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사냥과 납품 의뢰보다는 호위와 일반적인 일거리 쪽이 많네.'



미궁과 북부의 미개척지에 넘쳐나는 몬스터 사냥이 주요 과제인 타티아와 달리 북부에서 수도로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아벤티스 시는 수도를 오고가는 호위 의뢰가 게시판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냥과 소재 납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위 의뢰 쪽의 수요가 많은 건 분명했다.


레아는 몇 개 없는 약초 납품 의뢰서를 게시판에서 떼어내 데스크로 가지고 갔다.

레아는 적당하게 비어있는 접수원의 앞으로 가서 의뢰서를 내밀었고 접수원은 모험자 증명패를 요구하였다.

레아는 타티아 모험자 길드 직원 증명서 대신 모험자로 활동하면서 만들어놨던 예전 증명패를 내밀었고 증명패와 의뢰서를 확인한 접수원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타티아에서 오신 분이군요. 증명패에 기록된 정보가 맞다면 더 좋은 의뢰도 있는데 굳이 약초 납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처음 오는 도시라 적응할 시간을 들이고 분위기 파악하면서 천천히 어떤 의뢰가 좋은지 알아보려고요."



접수원은 레아가 돈이 급한 가난한 모험자가 아니라 적당히 여유가 있는 베테랑이라는 걸 재차 확인하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뢰를 접수해줬다.

물론 레아의 위상도약 파우치에는 여유분의 약초와 힐링 포션이 있었지만 레아는 바로 납품을 하는 대신 1층의 술집으로 향했다.



"주인장, 에일 하나"


"에일 하나? 가볍게 마시는거 보니 사냥 나갈 예정인가 아가씨?"


"약초 채취"



경솔한 자라면 여기서 레아를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모험자 길드 부속 술집에서 일을 해온 술집 주인은 벌써 레아가 착용한 장비의 질과 분위기, 걸음걸이 등의 정보를 토대로 레아의 역량을 파악한 상태였다.



"솔로라 적당한 의뢰를 못 찾았나보구만"


"아니, 파트너가 있는데 다른 일 한다고 먼저 가버려서 시간 때우는 중이야."



레아는 자기 앞에 나무잔에 담긴 에일이 나오자 테이블 위에 돈을 올리고 손바닥으로 가린 채 주인장 앞으로 밀었다.

주인장은 손가락 사이에서 보이는 금빛을 보고 눈빛도 바꾸지 않은 채 돈을 받고는 주변에 다른 모험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 말했다.



"3일 후에 소그드 상단의 대규모 물자 수송이 있을 예정이야. 모험자 길드 게시판에 의뢰서가 안 남아있지만 아직 호위 모집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그쪽 정도 실력이면 받아주겠지."


"관심없어."



레아는 에일을 단숨에 비워버린 뒤 한잔 더 요구했고 술집 주인은 받아든 잔에 다시 맥주를 채워서 건네며 말했다.



"최근에 혹시 도시 안에서 사라진 사람 없어?"


"도시 내의 실종자?"


"실종자 수색 전문이거든."


"로그로 보이지는 않는데"



술집 주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때 2층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잠깐 잔을 닦으며 시간을 보냈다.

레아는 3잔째의 에일을 요구하였고 주인은 맥주를 다시 잔에 가득 채워주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말했다.



"혹시 죽은 사람 조사는 하나?"



레아는 술집주인이 자신을 길드마스터 암살 건에 대해 캐고 다니는 첩자가 아닌가 의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아는 평정을 유지한 채 에일을 반쯤 마시고 대답했다.



"사람 시체 조사는 취급 안해. 이미 죽은 놈 조사는 귀찮은 경우가 많고 수입도 짭짤하지가 않으니까. 반면 실종자 수색은 일단 살아있든 죽어있든 녀석을 데려오기만 하면 깔끔하게 종결되거든. 사망자로 확정된 녀석들 말고 진짜 실종자에 대해 말해줘. 살아있을 확률이 높은 녀석들로."



술집 주인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순간 레아는 그가 화를 내는 건가 생각했으나 조금 침착하게 살펴보니 그냥 고민하면서 눈가를 찡그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고 술집 주인의 이마 주름이 펴진 뒤 자신이 알고 있는 실종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한달 반 전 쯤에 영주님이 주기적으로 내는 하수도의 쥐 떼 구제 의뢰를 하던 이 지역 태생 사람으로 구성된 5인 모험자 파티 하나가 실종됐지. 그런데 최근 길드마스터가 죽는 바람에 그거 관련으로 하수도를 몽땅 뒤집어 엎었는데도 그 녀석들 흔적이 안나왔어. 혹시 그 개구쟁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줄 수 있나? 정식 의뢰가 아니라 보상은 못 주겠지만."


"내가 원하던 의뢰는 아닌 것 같지만 심심풀이로 겸사겸사 알아보긴 할게. 그놈들은 보나마나 의뢰 끝나고 보고하기 전에 잠깐 즐기려고 사창가로 가다가 강도라도 만났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길드마스터가 죽었는데 하수도를 수색해? 길드마스터가 하수도에서 죽었나?"


"아니, 하지만 범인들이 하수도를 통해 이동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지."


"높으신 분 이야기는 이쯤하고, 실종된 녀석들의 유류품은 있어?"



술집 주인은 몸을 숙여 카운터 밑에서 뭔가를 주섬거리면서 꺼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피로 물들어 있는 가죽갑옷의 어깨 부분 조각이었다.

거의 검지손가락 정도 크기의 가죽 갑옷 파편의 단면은 예리한 칼날이 아니라 우악스런 몬스터 발톱 같은 것에 찢겨진 게 분명했다.



"파티 리더인 바르 녀석이 실종되기 전의 의뢰 수행 중 생채기가 난 채 귀환했을 때 벗어던진 가죽갑옷 조각이야. 거의 2개월 전 물건이라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충분해"



레아는 피가 굳어진 가죽갑옷 조각을 가지고 모험자 길드를 나섰다.

그녀가 얻은 정보는 길드마스터가 암살될 때 암살자들이 하수도를 이동루트로 이용했다는 점, 암살이 시행되기 전에 하수도에서 의뢰를 맡은 모험자 파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최소 일주일동안 준비한 암살이라는 소리인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암살자들의 실력이라면 아마 하수도에서 실종된 모험자들의 시체는 건지기 힘들 것이다.

물론 레아가 떠들어댄 것처럼 단순히 뒷골목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거라면 오히려 뭔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었다.


레아는 추가적인 정보수집을 위해 도시의 빈민가로 향했다.

대부분의 빈민들은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살기에 성실한 자들은 벌써 일터로 가버리고 남아있는 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노약자와 너무 어린 아이들, 일할 생각 없이 빈둥대는 것들과 이런 불우한 자들 사이에 숨기를 바라는 자들 뿐이었다.


레아가 향한 곳은 지체높은 귀족이라면 절대 접근하지 않고 가장 추잡하게 여길 빈민가 인근의 매음굴이었다.

시 혹은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곳과는 달리 불법적인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빈민가 인근의 매음굴은 온갖 범죄와 질병의 온상인 경우가 많다.

레아는 그 중에서 어느 정도 깨끗해보이는 매음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고 안쪽 데스크에서 한창 돈계산을 하고 있던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레아를 보고 말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랫입으로 뭔가 빨고 싶어서 왔냐?"


"약간 볼일이 있어서"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초면에 걸쭉한 음담패설을 내뱉는 남자의 도발에 레아는 화조차 내지 않고 슬쩍 데스크 위에 은화를 올려놓았다.

포주로 추정되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는 은화를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손도 대지 않고 말투를 고쳐서 말했다.



"팔러 온게 아니라 사러왔다면 지금 영업시간 끝났으니까 오늘 저녁에 다시 오쇼. 우린 예약 안받으니까."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시간 오래 안 끌거야."



레아는 데스크 위에 은화를 차례대로 세웠고 포주는 고민했지만 여전히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일단 질문은 해야겠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한달 반 전 쯤에 바르랑 친구들이 여기 찾아오지 않았어?"


"바르? 나는 모르... 아, 그 안제이 씨 아들인 꼬마 녀석?"



포주는 그게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굴리면서 모른다고 하려다가 뒤늦게 바르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조금 흥미가 당긴다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꼬맹이 가끔 찾아오긴 했지. 실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안제이 씨가 의뢰했나?"



포주는 초면에 음담패설을 날린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친근한 태도로 바뀌었다.

레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지만 포주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 사람 걱정시키는 망할 꼬맹이랑 그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한달하고도 보름 전 쯤이었어. 하수도의 거대한 쥐 떼를 조지는 의뢰를 받은 그 녀석들이 큰 돈을 벌었다고 떠들면서 술 퍼마시려고 여기에 왔었지. 한창 즐길대로 즐겨놓고 여기서 나간 뒤로 소식이 끊어져서 안제이 씨랑 주변 사람들이 계속 찾아다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하지만 바르와 친구들은 모험자 길드에 의뢰 완료 보고를 하지 않았어.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하수도 해충구제 의뢰는 큰 돈이 걸린 의뢰가 아니야."



레아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한 걸 눈치챘다.

물론 포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쪽 장물아비들 중 그날 밤에 바르와 친구들을 본 녀석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다들 그 녀석들이 하수도에서 귀족이 떨군 반지나 목걸이라도 찾아내서 장물로 넘기려다 귀족한테 걸려서 죽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험자 길드의 길드장이 죽고 영주의 병사들과 모험자 길드가 동원한 모험자들이 하수도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녀석들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은 걸로 봐선 귀족들한테 처리당한 게 분명해."



포주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귀족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레아에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빈민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르와 그 친구들이 하수도에서 발견한 귀족의 장물을 처리하다 추적당해 제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마 평소부터 계층 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피가 흐른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벌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니까 바르와 친구들 정도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여버렸겠지. 제대로 조사를 할 생각이면 그놈들 주변을 조사해봐 분명 뭔가 나올 거야."



레아는 데스크 위에 은화를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레아는 빈민가를 돌아다니면서 바르와 모험자 길드의 길드마스터 암살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러나 모은 정보 대다수가 빈민가를 나선 바르와 친구들을 그 뒤로 영영 볼 수 없었다는 말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자신이 묵은 고급 여관 근처 노점으로 간 레아는 파우스가 벌써 돌아와서 구운 몬스터 고기를 꿰어놓은 꼬치를 여러 개 들고 있는 걸 발견하였다.



"뭐 찾은 거 있어?"


"귀족들의 저택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길드마스터 암살과 관련된 건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는 빈민가와 하수도를 뒤져볼 생각이다."



파우스는 레아에게 고기 꼬치 몇 개를 건네주며 자기가 얻은 정보에 대해 말해주었고 레아는 받아든 고기 꼬치를 입에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빈민가는 소용없어. 내가 오전 내내 알아봤는데 그쪽은 모험자 실종 건으로 분위기가 살벌하더라고."


"모험자 실종?"



레아는 잠깐 입에 물고 있는 고기 덩이를 꼭꼭 씹어서 삼킨 뒤에 자기가 조사한 일에 대해 말해주었고 파우스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일은 저쪽도 어쩔 수 없이 시행한 일인가?"


"무슨 소리야?"


"이번 아벤티스 시 길드마스터 암살이 반쯤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우발적이라고?"


"원래 연말에 열렸어야 했던 모험자 길드 총회를 긴급 소집까지 걸어서 9월 중순으로 앞당긴 건 대륙 남부 모험자 길드 연합이 대륙 서부 모험자 길드 연합과 제도 통합 등의 안건으로 협의를 하기 위해서다. 사비니 왕국 모험자 길드가 그랜드마스터를 뽑으려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지."


"정체를 모르는 흑막 입장에서 총회가 앞당겨지는 바람에 암살을 급하게 해야 했단 말이야?"



레아는 이번 사태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취객이 하수도를 통해 길드마스터의 집으로 오고 간 수상한 자들을 목격했고 그들이 드나든 하수도에는 비정상적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누가봐도 계획적으로 시행한 암살 후 암살자들이 흔적을 지우고 떠나간 것인데 절대 우발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파우스는 그런 레아에게 자신이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을 썼다고 사과하며 말했다.



"내가 말을 좀 잘못했군. 계획 자체는 그 전부터 세워놨을 거다. 마스터 켄투스와 마스터 네르비나가 그랜드마스터 자리를 탐내고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파우스는 고기 꼬치를 입에 쑤셔넣고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킨 뒤 말을 이어갔다.



"사비니 왕국 북부 아벤티스의 길드마스터와 남부 게누아의 길드마스터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암살되었다. 똑같이 암살자들의 신원조차 파악되지 않았지. 누가보더라도 그랜드마스터 자리를 원하는 누군가가 저지른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다른 길드마스터들을 압박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파우스의 말에 레아는 이번 그랜드마스터 선출에 나서는 길드마스터들에 대한 소문을 생각해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랜드마스터가 될 생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이정도 암살에 무서워서 사퇴할 인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암살을 저지른 것이 상대 후보라고 흑색선전을 펼칠 이들이었다.



"원래 마스터 네르비나를 암살한 뒤에 시간을 들여 관련성을 짐작하기 힘들게 세공작업을 끝내고 암살을 하려던 암살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 암살을 앞당긴 거라면?"


"바르와 친구들이 하수도에서 암살자들과 관련된 뭔가를 찾아낸 것 때문에 작전을 앞당겼단 말이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 암살에 투입된 암살자들은 초짜, 뉴비가 아니라 제대로 훈련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수도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바르와 그 친구들의 실종 역시 암살자들이 저지른 짓이 맞다면 그들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처리당했을 것이다.

이제와서 이런 사실을 알아내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일은 없는 것이다.



"작전을 급하게 진행하게 만든 원흉인 모험자들을 처리했을 때 암살자들이 실수를 저질렀지도 모른다."


"그럼 하수도로 갈 거야?"



레아는 파우스의 대답을 기다리며 고기 꼬치를 베어물었고 레아가 우물거리면서 고기를 씹는 동안 파우스는 설명을 해줬다.



"아니, 생각해봐라. 만약 하수도가 녀석들의 본거지만 아니었다면 하수도에서 시체처리를 했겠지. 하지만 실종된 모험자들이 맡은 임무는 하수도 쥐떼 처리였다. 심지어 완료 보고도 안한 상태였지. 겨우 쥐떼 처리만으로 힘을 들일 일도 아닌데 완료보고가 며칠이나 늦어진다면 모험자 길드는 분명 사람을 보내 모험자들을 찾으려고 했을 거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맡은 임무 지역인 하수도로 주목이 쏠렸겠지."


"구래숴 어쩌 수 읍었따?"



레아는 이빨로 잘게 부숴진 고기를 삼키면서 말했고 파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십중팔구 그렇겠지만 하수도에 남은 자신들의 흔적을 꼼꼼하게 지워버린 놈들이다. 시체처리 정도는 얼마든지 눈에 띠지 않게 할 수 있다. 다만 시간 제한이 생겨나서 암살을 급하게 시행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거지."


"그럼 어디를 찾아야 하는데?"



레아는 고기 꼬치 3개를 막대기만 남기고 해치웠고 파우스는 레아에게 남은 막대기를 받아 자기가 남긴 막대기와 함께 마법의 불꽃으로 태워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와라."



파우스를 따라간 레아가 도착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모험자 길드였다.

파우스는 모험자 길드 앞에서 레아가 할 일을 알려주었고 레아는 모험자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모험자 길드 1층의 술집은 청소가 끝나 있었고 주인장은 퇴근한 뒤였다.

2층은 점심시간이라 모험자와 접수원 모두 숫자가 줄어들어 있었고 레아는 약초를 납품하면서 접수원에게 물었다.



"혹시 바르의 파티가 실종되고 며칠 안 지나서 하수도 해충 구제 의뢰에 대해 누군가 묻지 않았나요? 좀 실력 있어보이는 모험자가요."


"예? 바르 씨랑 그 파티가 실종된 뒤요? 일반 문의는 따로 기록하지 않고 다른 모험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안제이 씨는 아직도 사라진 아들을 찾고 있었어요. 실종 사건에 대한 단서가 될지도 몰라요."



레아는 진중한 눈빛으로 접수원에게 물어보았고 접수원은 갈등하였다.

그러나 레아는 재차 안제이를 들먹이며 접수원을 설득하였고 결국 갈등하던 접수원이 넘어왔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그때 근무한 사람들에게 물어볼게요."



아무래도 접수원들도 바르의 파티가 실종된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접수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에 다들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고 잠시 후 접수원은 레아가 원하던 대답을 가지고 왔다.



"있었어요. 바르 씨의 파티가 실종되고 다음날 아퀼레이아아에서 온 모험자가 하수도 해충구제 의뢰가 나오는 주기에 대해 물어봤다고 해요. 해충구제 의뢰는 받지 않았지만 호위 임무를 몇 번이나 수행한 베테랑 모험자가 하수도 해충구제 의뢰 같은 걸 물어봐서 특이하다고 생각한 다른 접수원이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모험자는 지금 어디에?"


"한달 전 쯤에 마그나트 상단의 호위 의뢰를 받고 수도 엘레키움으로 떠났어요. 모험자 길드에 등록된 이름은 레프닌이네요."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 레아는 접수원에게 만약 레프닌이 다시 이 도시에 나타난다면 한번 진지하게 심문을 해보라고 한 뒤 길드 건물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파우스에게 알아낸 사실에 대해 말해줬다.



"아퀼레이아라... 아퀼레이아의 길드마스터 브란트는 그랜드마스터 선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사퇴 의사를 표명한 마스터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일단 위험인물 목록에서는 제외해놨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걸 알아냈으니 주의해야겠군.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마그나트 상단과 아퀼레이아의 레프닌, 이 두 이름을 기억해둬라. 수도에 도착한 뒤 이 이름들을 통해 추적을 개시한다."


"그럼 아벤티스 시의 실종된 모험자 조사는?"


"이번 그랜드마스터 선출이 끝난 뒤에나 진상을 밝힐 수 있겠지. 어차피 정식 의뢰도 아니었으니 패널티는 없지 않나?"



레아는 그래도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하고 아벤티스를 떠난다는 말에 찝찝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레아와 파우스는 그날 오후에 시장에서 물자 보충을 하고 저녁에 그들이 묵고 있는 고급 여관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도시의 성문이 열리자마자 도시를 빠져나온 파우스와 레아는 팬텀 스티드를 불러내 수도 엘레키움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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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23.07.08 17 1 22쪽
32 32화 23.07.08 14 1 19쪽
31 31화 23.07.08 16 2 16쪽
30 30화 23.07.07 20 1 16쪽
29 29화 23.07.04 21 1 21쪽
28 28화 23.07.04 19 1 15쪽
27 27화 23.07.04 19 1 17쪽
26 26화 23.07.04 17 1 13쪽
25 25화 23.07.04 16 1 14쪽
24 24화 23.07.04 18 1 14쪽
23 23화 23.07.04 20 1 16쪽
22 22화 23.07.04 22 1 14쪽
21 21화 23.07.04 21 1 18쪽
20 20화 23.07.03 26 1 16쪽
19 19화 23.07.03 20 1 16쪽
18 18화 23.07.03 24 2 17쪽
17 17화 23.07.03 24 1 21쪽
16 16화 23.07.02 20 2 16쪽
15 15화 23.07.02 20 1 16쪽
14 14화 23.07.02 22 1 18쪽
13 13화 23.07.02 25 1 14쪽
12 12화 23.07.02 20 2 23쪽
11 11화 23.07.02 23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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