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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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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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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19.1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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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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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글자
18쪽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1

DUMMY

나의 이름은 탄'메펫

이전 이름은 떠도는 어두움이며 지금은 포이부스라고 불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크나시아의 수도 크세르크에서 탈출한지 벌써 2주일 하고도 5일이 흘렀다.

우리 일행은 온갖 험난한 시련들을 넘어 며칠 전에 수인들의 나라 릭샤카 왕국으로 진입했고 그동안 업진살 통통이는 훌륭한 영양공급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다.

너무 무럭무럭 자라버렸다.



"쿠호오오오!!"



마치 숲의 왕이 분노하는 것처럼 업진살 통통이의 포효에 공기가 떨리고 땅이 울부짖으며 짐승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위대하지 못한 멧돼지의 울음이 뜻하는 것은 허기였다.

끝없는 굶주림의 분노가 스스로 포효하는 것 같은 그 울음소리는 매우 심각한 청각적 테러이니 바로 응징해주자.



"저녁 식사 준비 중이니까 좀 조용히 해 돼지새뀌야. 배고프다고 울면 밥이 나오냐? 너는 소리를 음식으로 변환하는 기적의 마법사냐? 응?"


빠악!


"꾸이꾸이!"



내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꿀꿀대며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잡아올 때가 딱 성장기였던 모양인지 이 레무 대륙에 상륙한지 한달도 안되서 바윗덩이만한 몸집을 자랑하게 된 업진살 통통이는 그동안 우리 몰래 스테로이드랑 성장호르몬을 인슐린이랑 섞어서 섭취하고 헬스라도 한 것인지 옆구리가 지방으로 통통한 것이 아니라 근육으로 통통해졌다.

지금 진지하게 이 녀석 이름을 업진살 통통이가 아니라 업진살 울퉁불퉁으로 바꿔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지금은 괜찮지만 조금 더 지나면 마차에 싣지도 못할 거 같은데요?"



에라스는 업진살 통통이가 나한테 한대 얻어맞고 돌아다니다가 나무 밑동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북북 긁더니 나무 껍질을 떼어내 그 안에서 자고 있던 마력을 품은 벌레들을 낼름낼름하는 걸 보면서 귓속말을 건넸다.

내가 사냥해서 구워준 엄마아빠 멧돼지들의 살점을 맛있게 먹던 녀석은 이제 검은색 털 위에 마력이 넘실거리는 선들이 생겨났다.

그 선들은 이 녀석이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아마 우리가 마법을 쓰는 걸 보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 같았다.

어떤 효과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만은 이성이 아니라 피부로 느껴진다.



"다이어트를 시켜도 저거 다 근육이라 빠지지도 않잖아"


"못 움직이게 포박해놓으면 근손실이 와서 가벼워질지도 모릅니다."


"에라 모르겠다 식사 준비나 하자"



업진살 통통이의 옆구리살을 떼어내서 먹으려고 해도 근육 함량 90% 초과에 지방이 거의 없는 저 살점은 그리 맛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떻게든 지방 많이 붙는 먹을 걸로 꼬셔야 했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해 벌어진 대참사였다.


업진살 울퉁불퉁의 문제는 일단 뒤로 넘기고, 지금은 그동안 조금씩 먹고 있던 시토마틀, 노란색 토마토를 처리할 시간이었다.

재료는 시토마틀 12개, 릭샤카에 진입하면서 구한 박하향 나는 깻잎 비스무리한 허브 4쪽, 지나가다 잡은 정체 모를 검은 깃털의 엄청나게 거대한 뿔 달린 조류 5마리, 강황 비슷한 노란색 향신료, 엔리리아에서 구입한 과일주, 기본 양념 등이며, 이것들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닭찜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 예정이었다.


황금 사과라고도 불리는 이 시토마틀은 아직 개량이 덜 된 것인지 약간 독성이 있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훌륭한 음식이었다.

잡아온 정체불명의 새들은 다행히 아까 전에 해체되었고 지금은 검은색 깃털과는 다르게 새하얀 속살에 소금과 후추와 기름이 뿌려진 육수에 잠긴 상태였다.


먼저 냄비에 껍질을 벗기고 잘게 조각낸 시토마틀을 넣고, 그 위에 잘게 썬 허브들을 올리고 약간의 점성 있는 치즈를 넣고 잘 조린다.

시토마틀이 물렁물렁해질 동안 마늘과 양파 대신 그냥 매운 맛이 나는 파로 추정되는 쪽파 비슷해보이는 식물을 기름에 볶고, 매운맛이 깃든 기름에 식초를 쫙 뺀 올리브 절임을 잘게 썰어서 볶는다.



"거기 준비 끝났나?"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불을 줄이고 열심히 흙마법으로 간이 오븐을 만드는 팔라딘들이 농땡이 안 부리는지 확인하고, 마리네이드한 새 고기를 확인한다.



"음, 아직 비린내가 덜 가셨어."



망할, 이놈들은 생각보다 육향이 강하다.

그것도 맛있는 육향이 아니라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린내 쪽에 가까웠다.

역시 미리 칼집을 넣어놔야 했나?

그게 아니면 우유나 술에 재워놨어야 했던 걸까?


급히 고기에 섬세한 칼집을 넣고, 육수에 독한 과실주를 부어버리고 뒤를 돌아보니 오븐 쪽도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어차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파기름 먹인 올리브를 볶는 팬을 불에서 떼어놓고, 시토마틀을 졸이는 냄비의 불을 약하게 조절한 뒤 열심히 식기를 준비하는 마스터 드루수스에게 물었다.



"그 신성력이 봉인되는 토굴이 어디있다고 그랬나 마스터 드루수스?"


"먼저 릭샤카 왕국의 역사에 대해 조금 설명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네. 아직 준비에 시간이 더 들어갈 것 같으니."



내 허락이 떨어지자 마스터 드루수스는 식기 준비를 후배 템플리 나이트에게 맡기고 마차에서 지도를 가져왔다.

팔라딘 오리스가 확보한 지도를 펼친 드루수스는 현재 우리가 있는 곳에 근처의 흙이 안 묻은 깨끗한 조약돌을 올려놓고 릭샤카 왕국의 영토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말했다.



"릭샤카 왕국은 수인들의 왕국으로 고양이 수인, 호랑이 수인, 표범 수인 등 그쪽 계통 수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국가입니다."


"고양이과?"


"고양이과? 호랑이과가 낫지 않습니까? 어쨌든 좁은 상자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종류의 수인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물론 릭샤카에는 개 수인이라던가 사슴 수인 같이 다른 수인들도 많이 살고 있지만 이들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드루수스는 호랑이 표범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고양이과에 속한다는 걸 알지 못하는지 친절하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그러고보니 전에 팔라딘 중 누군가가 신성력 봉인 토굴에 대한 소문을 손모가지 날아간 고양이 수인에게 들었다더니 그 고양이 수인도 릭샤카 왕국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내가 사냥교단에서 봤던 고양이 수인 사서도 릭샤카 왕국 출신이었던 걸까?

잡 생각을 하는 동안 마스터 드루수스는 멈추지 않고 설명을 쭉쭉 이어나갔다.



"릭샤카 왕국은 자유와 순환의 여신 산주나의 순환 교단이 국교고, 순환 교단은 현재 매장절차와 법 해석 쪽으로 왕국을 돕고 있습니다. 그 옆의 오크 왕국인 스칼라베이는 특이하게 여러 국가에서 숭배되는 바람 교단을 국교로 삼고 있고, 국토를 가로질러 레무 대륙 서쪽 바다로 이어지는 발라테네마, 즉 발라테의 은혜라는 이름의 거대한 강 덕분에 해운을 통한 상업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오크 왕국이 서부 해안가를 거의 차지하고 있어서 영토가 내륙 쪽으로 집중된 이디트야 왕국은 인간이 중심이 된 국가로 예전에 이 3개 국가과 콰둔 왕국, 크나시아와 남부와 서부의 소규모 왕국들까지 수많은 왕국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여러 차례 다툰 것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죠."



그 와중에 오크들의 상업적 침략이 너무 심해져서 인간 왕국과 수인 왕국들이 힘을 합쳐 레무 종합 상인 길드를 만들어냈다는 쓸데없는 설명을 덧붙이고 마스터 드루수스는 잠깐 목을 가다듬고 설명을 계속하였다.



"전설은 릭샤카 왕국 어딘가에 무시무시한 지하 토굴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 토굴 안에는 토굴에 들어선 사람들의 귓가에 동료들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모욕을 주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해 들어간 순환교단의 사제들은 신성력을 갉아먹는 어둠 때문에 퇴마에 번번이 실패했으며 릭샤카 왕국이 건국되던 날, 초대 국왕인 베나도 릭샤카가 직접 방문한 뒤 토굴의 폐쇄 및 기록 말살을 명했다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대의 추측은 어떠한가 마스터 드루수스?"


빠악!


"뀌이이익! 꿀꿀! 꾸우울!"



내가 술과 향신료에 재워놓은 고기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다가 입맛을 다시는 업진살 통통이를 조금 진심으로 때리자 녀석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물론 아껴놨던 육포의 지방부분을 던져주자 금세 다시 기분 좋게 꿀꿀대며 조용해졌다.



"전설이 아닌 신뢰도 높은 역사서들을 교차검증하고 전설이 알려주는 것에서 부족한 부분을 조금 생각해본다면, 성립된지 얼마 안되서 전쟁에 휘말린 국가의 국왕이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장소라는 건 릭샤카 왕국의 수도 근처 혹은 국왕이 직접 나서야 했던 일이 있던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지금의 수도가 있는 위치는 아닐 겁니다."


"이유는?"


"수도 근처에 그런 위험한 장소가 있었다면 기록을 말살하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기록 말살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토굴에 대한 전설이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지고 있는 판국인데 릭샤카의 초대 국왕은 몰라도 그 다음 국왕들이 기록 말살에 실패했는데도 그런 위험한 장소를 그냥 방치했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그럼?"


"오븐 준비 끝났습니다!"



그때 팔라딘들이 오븐 건설을 끝마쳤다고 보고를 하고 근처에 모이기 시작했고 나는 육수와 술에 재워놓은 새 고기를 확인해보았다.

아까보다 비린내가 확실하게 많이 줄어들었다.

시토마틀도 슬슬 알맞게 뭉개져서 졸여졌고 나는 기본 간을 보고 아까 올리브를 볶던 팬에 고기를 잘라서 함께 볶기 시작하며 마스터 드루수스의 말을 경청했다.



"릭샤카의 초대 국왕은 국가 성립 이후 번번이 전장에 나섰습니다. 지금은 4개 왕국이 서로 나눠가졌지만 처음에는 오크 왕국이 차지하고 있던 아모스 지역에서 4개 국가의 초대 국왕들이 직접 이끄는 군대가 몇 번이나 충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토굴은 수도와 이 지역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드루수스는 손가락으로 릭샤카 왕국의 수도 베나도리아에서 아모스 접경지대까지 쭉 일직선을 그리며 말했고 일 끝내고 조용히 설명을 듣던 팔라딘 이젝투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범위가 너무 넓잖아!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냐 드루수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몰라!"



어느 정도 매운맛이 입혀진 기름에 고기 데쳐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팬에서 고기들을 전부 빼내 그 위에 살짝 녹인 치즈와 버터를 올리고, 남은 노란색 향신료를 뿌리고 시토마틀 소스를 살짝 뿌려 오븐에 넣고 불의 정령들을 불러 조리를 부탁하였다.

내가 요리를 진행하는 동안 드루수스는 선배 팔라딘들에게 자신의 추리에 대한 근거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전설에 나오는 신성력을 갉아먹는다는 구절이 아니라, 귓가에 동료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그림자들에 대한 쪽을 찾아봤습니다."


"뭔가 있었군?"


"예, 의외로 릭샤카 왕국 전지역에서 비슷한 현상을 일으키는 악령에 대한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전지역? 그럼 그냥 그 이간질을 하는 그림자 몬스터는 릭샤카 전역에 흔히 돌아다니는 몬스터라는 소리잖아! 너 일 제대로 한 거 맞냐?"



팔라딘들이 항의하는 동안 마가렛과 에라스, 팔라딘 오리스는 야영장 근처에 알림 마법과 함정 설치를 끝냈는지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말들에게 풀을 먹이는 팔라딘 마르세우스 일행도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 릭샤카에 들어온 뒤 또 조사했습니다. 지난번에 물자보충하러 도시에 들렸을 때 기억하십니까?"


"어, 그러고보니 너 그때 뭐 좀 찾겠다고 잠깐 자리비웠었지. 짐들기 싫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제가 다시 지역 전설들을 찾아봤는데 릭샤카에서 딱 2개 지역만 해당 몬스터가 나왔다는 전설이 없더군요."


"없는 곳? 그게 뭐가 중요하지?"



어느새 작업을 거의 마친 일행들이 전부 돌아왔고 그들은 다른 동료가 만들어낸 엄청나게 거대한 흙마법으로 만든 오븐 속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기대를 드러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드루수스는 팔라딘 선배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하나는 수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곳입니다."


"부라나 지역?"



그가 가리킨 곳은 아모스 접경지대의 옆에 있는 한 시골 지방이었다.

릭샤카 왕국의 수도 베나도리아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나오는 이 부라나 지역은 특별한 특산물도 없고, 아모스 접경지대로 가는 2개의 길 중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예전에 윗 지방인 포르치니에 릭샤카 왕국에서 뚫어놓은 대로가 있어 많은 여행객과 행상인을 빼앗겨 낙후되어버린 곳이었다.



"릭샤카 왕국은 해당 토굴에 대한 기록말살에 실패했습니다. 기록을 말살하고 토굴을 봉인하는 건 초대 국왕의 지시였으니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럼 후손들이 뭘 했겠습니까?"


"고의로 가짜 정보를 뿌려서 추적자들을 혼란시킨다?"



팔라딘들의 말에 마스터 드루수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덤으로 아무런 특징도 없는 장소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두면 관심이 멀어져서 진실을 숨기기 더 쉽습니다. 토굴에 있던 그림자 몬스터가 나온다는 정보를 고의로 차단한 것일지도, 아니면 진짜로 그런 몬스터가 부라나 지역에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부라나 지역은 아모스로 가는 대로가 뚫린 3대 국왕 집권기 이전에는 초대 국왕과 2대 국왕이 수시로 지나다녔던 장소입니다. 즉, 릭샤카 초대 국왕이 한 번 쯤은 지나갔을 지역이죠."


"정보가 이렇게 풀려있는데 지금까지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내지 못했다."



허나 마스터 드루수스의 말은 증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선배들이 부정적으로 대답하자 마스터 드루수스는 조금 시무룩해졌고 팔라딘들이 잠깐 나의 눈치를 보다가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순환 교단에 침투해서 자료라도 빼올까요?"


"엔리리아 대학 털었다가 그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그럴 생각이 드냐?"


"저 녀석의 말은 과격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탄 사제님. 우리는 무작정 모든 곳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수명은 길지만 신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팔라딘 오리스의 말이 타당하였다.

다시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한 신들 때문에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조용한 혼돈 속에 잠겨있다.

지금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수면 밑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어떠한 계기만 있다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펑하고 터져나올만큼 불안정한 현 시국에 느긋하게 일을 진행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일단은 정보를 수집하는 쪽이 확실하겠지. 하지만 이미 신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려있어. 엔리리아 마법대학을 털어서 자료를 빼내는 사소한 일에도 바람의 신이 직접 움직인 것만 봐도 분명하지. 우리의 움직임을 너무 오랫동안 노출하면 어떤 트러블이 생길지 몰라."



팔라딘 모르테스는 상당한 우려를 표하며 경계심을 드러냈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결국 최종결졍을 내리는 건 나였고 나는 잠깐 고민한 끝에 마스터 드루수스를 보며 말했다.



"마스터 드루수스를 믿어보자. 부라나 지역으로 간다."


"그렇게 개고생을 한 저희한테는 모질게 대하시면서 드루수스 녀석한테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시는군요. 너무 차별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때 팔라딘 마르세우스가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자식은 양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양심이 동그랗게 변해버린 걸까?



"일단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마음은 가슴에 있는 게 아니라 머리에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이 녀석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생각은 뇌로 하는 거라며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한다.



"아오 진짜! 니들이 얘만큼 말 잘 들었으면 내가 이러겠냐!"



내가 마스터 드루수스를 두둔하며 말하자 팔라딘 마르세우스는 시무룩해졌고 업진살 통통이가 앞발로 마르세우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고기! 고기! 고기!



그때 불의 정령들이 고기가 다 익었다는 신호를 보내줬고 닫아놨던 흙 오븐을 열자 우리의 앞에는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기가 드러났다.

회의를 하느라 치솟던 짜증이 한 순간에 가라앉았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에게 고기와 시토마틀 소스를 배분하였다.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힘을 내려주신 하로나스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그럼 좋은 식사를!"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취향에 따라 시토마틀 소스나 치즈에 고기를 찍어먹을 수도 있는 시토마틀 소스와 향신료 볶은 기름을 곁들인 정체 모를 조류 오븐 구이 완성이다!


원산지 표시

고기: 레무 대륙 릭샤카 왕국

향신료: 전세계 곳곳

올리브와 올리브유: 레무 대륙 크나시아의 크세르크

치즈: 레무 대륙 크나시아의 엔리리아

과일주: 레무 대륙 크나시아의 엔리리아


평가!



"살짝 비린내가 덜 잡혔는뎁쇼?"


"제가 먹은 부위는 비린내 안 나고 맛은 있는데... 들인 수고에 비해 영..."


"다 좋은데 이건 야외에서 먹을 음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파티에나 내놓을 음식 아닙니까?"


"저도 후각은 덜 예민해서 비린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가니쉬가 좀 별로네요"


-맛있어! 바삭바삭!


"꾸이꾸이! 뀍뀍 꿀꿀꿀"


"업진살 통통이가 비린내 잡는데 쓴 술의 향기가 별로라고 합니다. 저는 만족했지만 일행의 의견을 대표해서 3.5점 드립니다."



평가: 3.5점.

감점사유: 비린내가 덜 잡힘, 조리시간과 준비과정이 너무 김, 주변 환경과 맞지 않음, 가니쉬가 별로임, 사용된 과실주 냄새가 저질임.



"젠장! 천하의 이 내가! 이런 실수를!"



역시 처음보는 식재료를 너무 성급하게 사용했다.

다음부터는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요리해야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38 n4******..
    작성일
    19.11.24 12:19
    No. 1

    그와중에도 닭 요리를 시험하는 주인공. 암요, 치킨은 중대사항이죠.

    찬성: 6 | 반대: 1

  • 작성자
    Lv.82 치즈비
    작성일
    19.11.24 12:40
    No. 2

    먹을 건 중요하죠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36 괴물입니다
    작성일
    19.11.24 12:50
    No. 3

    치킨을 위해 요리실력을 가다듬고 있군요!

    저는 대충 https://www.youtube.com/channel/UCVVAnxQ2YMC_qlc7QfPA2YQ
    ★↑위꼴주의↑★

    여기나오는 음식들을 상상하고 있슴니다.

    돼지는 월레 근육질이지요 돼지의 근육비율을 본다면 돼지를 지방 덩어리라고 하는건
    돼지한테 매우 모욕감을 주는소리 사람보다 월등함니다....

    또 돼지는 가축화 되기전에는 자유와 탐험을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였다고
    함니다.

    또한 음식으로서의 돼지는 과거에는 소나 말보다 고급이였다고 하고요
    사람도 먹어야 하는 곡물로 키워야하니 건초를 먹이면 되는 소나 말보다 고급이였고

    소나 말의경우 여러 이용방법이 있지만 돼지는 오직 고기를 얻기위해 사육된점도 있음

    찬성: 6 | 반대: 1

  • 작성자
    Lv.66 이에나군
    작성일
    19.11.24 13:17
    No. 4

    드루수스 유능!

    찬성: 5 | 반대: 1

  • 작성자
    Lv.36 괴물입니다
    작성일
    19.11.24 13:46
    No. 5

    업진살 통통이의 성장도 기대되는것이 막 신화속의 신수가 될법한 잠제력이 보여요

    북유럽 신화와 엮어본다면 굴린부르스티 떠오르는 녀석

    포이부스 일행의 모험은 전설이나 신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딱 비슷한것이 존제함니다.

    아이손의
    아르고 호 원정 헤라클레스의 12시련 등등

    전개가 매우 흥미로움 코믹한 면으로는 디즈니헤라클레스 와 아스테릭스가 떠오르고

    진중한쪽으로는 여러 영웅과 신들의 서사시가 생각남니다.

    작품의 배경을 정말 훌륭하게 살리는 작품이라 저는 생각함니다.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63 미수가루
    작성일
    19.11.24 13:53
    No. 6

    괴생물체 여기도있네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36 백반육천원
    작성일
    19.11.24 15:51
    No. 7

    이대로 가면 업진살 통통이는 고대 괴수 수준이 될 것 같내요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99 등장음
    작성일
    19.11.24 17:05
    No. 8
  • 작성자
    Lv.55 사먁티791
    작성일
    19.11.24 20:48
    No. 9

    읽고나니 고기 먹고 싶어지네요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1 KNH1208
    작성일
    19.11.25 02:23
    No. 10

    정주행 끝 너무재밌네요 ㅋㅋ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85 YURIS
    작성일
    19.11.25 11:32
    No. 11

    이제꺼지 받은 평점 중 최하위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51 NeipiEl
    작성일
    19.12.24 21:14
    No. 12

    근손실 다이어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독자777
    작성일
    20.04.28 01:47
    No. 13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q2***
    작성일
    21.02.10 04:02
    No. 14

    진짜 평가 신스틸러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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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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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사슴과 늑대의 우정 #8 +17 19.12.11 3,414 118 22쪽
79 사슴과 늑대의 우정 #7 +23 19.12.10 3,388 153 19쪽
78 사슴과 늑대의 우정 #6 +22 19.12.09 3,412 149 18쪽
77 사슴과 늑대의 우정 #5 +16 19.12.08 3,440 120 14쪽
76 사슴과 늑대의 우정 #4 +9 19.12.07 3,527 124 21쪽
75 사슴과 늑대의 우정 #3 +12 19.12.06 3,635 138 13쪽
74 사슴과 늑대의 우정 #2 +20 19.12.05 3,695 134 19쪽
73 사슴과 늑대의 우정 #1 +13 19.12.04 3,884 115 14쪽
72 아모스에서의 하룻밤 #2 +14 19.12.03 3,820 128 19쪽
71 아모스에서의 하룻밤 #1 +8 19.12.02 3,959 138 13쪽
70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8 +35 19.12.01 3,956 183 13쪽
69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7 +18 19.11.30 3,856 160 17쪽
68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6 +17 19.11.29 3,931 158 14쪽
67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5 +68 19.11.28 4,078 146 14쪽
66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4 +14 19.11.27 4,178 160 18쪽
65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3 +11 19.11.26 4,231 143 16쪽
64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2 +18 19.11.25 4,319 166 18쪽
»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1 +14 19.11.24 4,390 166 18쪽
62 아이들의 흔적 #11 +12 19.11.23 4,291 148 16쪽
61 아이들의 흔적 #10 +13 19.11.22 4,181 160 16쪽
60 아이들의 흔적 #9 +22 19.11.21 4,411 146 18쪽
59 아이들의 흔적 #8 +41 19.11.20 4,549 177 21쪽
58 아이들의 흔적 #7 +14 19.11.19 4,255 148 11쪽
57 아이들의 흔적 #6 +9 19.11.19 4,113 146 13쪽
56 아이들의 흔적 #5 +10 19.11.18 4,307 172 18쪽
55 아이들의 흔적 #4 +8 19.11.18 4,068 153 14쪽
54 아이들의 흔적 #3 +5 19.11.18 4,197 147 16쪽
53 아이들의 흔적 #2 +7 19.11.17 4,206 167 12쪽
52 아이들의 흔적 #1 +2 19.11.17 4,463 163 12쪽
51 시대의 발소리 #17 +8 19.11.17 4,542 17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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