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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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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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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전조(前兆) #6

DUMMY

반년도 더 된 사건이 전설 속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완벽하게 복구된 케트라 레기온은 평화 속에서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티로스 제국으로부터 불온한 바람이 불어오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계절이 바뀌고 더위가 물러나고 신성한 영산 케트라의 초록빛 물결이 다른 색깔의 옷 중에서 뭘 고를지 고민할 무렵, 갑자기 각 천인대에 군단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동물이랑 말을 할 줄 알거나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엘프를 뽑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특히 강한 엘프로 선발하라는 군단장님 지시다."



테이머 혹은 능숙한 정령사를 뽑는다는 말에 재편성된 티아누스 백부장의 부대원들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일까 궁금해했다.

전쟁의 전조가 뚜렷해져서 모든 것이 어수선한 시기에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 이들을 뽑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확실하였다.

대부분의 엘프들이 지원을 꺼렸으나 몇몇 엘프들은 분명 왕국에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원했고 지원자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케트라 산 중턱의 템플리 오더의 기사들이 나타나 지원자들과 함께 케트라 산의 중턱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템플리 오더의 요새를 지나, 한 차례 파괴되었다 복구된 시련의 길을 통과해 케트라 산의 정상에 도착하였다.

신성마법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산 정상에 펼쳐진 신성 결계와 그 안에 가득한 신들의 기운에 감탄을 내질렀고, 정령과의 친화도가 높은 이들은 물과 나무 정령들이 뛰노는 광경에 웃었고, 그냥 마법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충만하면서도 독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력 분포에 눈을 감은 채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을 이끈 템플리 나이트들은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다 모았냐? 카리칼라?"


"예, 이젝투스 선배님"



그때 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석조 건물 중 하나에서 팔라딘 이젝투스가 나타났고 산 정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팔라딘을 본 일반병(밀리테스)들은 바짝 긴장한 채 이젝투스의 말을 기다렸다.

이젝투스는 병사들을 쭉 둘러보고는 평소의 띠꺼운 표정 대신 뭔가 재미있는 걸 본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케트라 산의 정상에 온 걸 환영한다 꼬맹이들. 나는 이곳을 수호하는 팔라딘 중 한 명인 이젝투스 비텔리우스다. "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젝투스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몇몇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이젝투스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비텔리우스라는 성은 절대로 흔치 않은 가문명이었으며 이곳에 있는 일반병들 중 그 이름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자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설마 그 비텔리우스?"


"하지만 그 가문은 왕가에 반역을 저질렀다가 멸문당한 거 아니었나?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일반병들은 나름 조용히 한다고 조용히 말했건만 이미 하로나스의 축복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엘프와는 거리가 멀어진 이젝투스의 청력은 그들의 말을 잡아냈고 이젝투스는 투덜대며 중얼거렸다.



"그 머저리 반역자들 모가지를 수확해서 폐하께 바친 게 바로 나다 이 얼라들아."


"..."



비텔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면서 비텔리우스 가문을 자기 손으로 멸족시켰다는 말에 병사들은 그가 누구인지 깨닫고 공포에 질렸다.

반역을 일으킨 자기 증손자 증손녀들을 잡아다가 차례대로 왕 앞에서 참수한 뒤 웃으면서 '적의 피는 냄새도 향기롭다' 말하며 머리를 바쳤다는 믿을 수 없는 전설의 주인공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말에 엘프들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 임무가 기다리기에 이런 전설적인 존재가 튀어나온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혹시 알티로스 제국 황제의 목이라도 가지러 가는 위험한 임무가 아닌가 생각했으나 이들은 동물이랑 말을 할 줄 알거나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엘프들이 뽑혀왔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너희들이 여기에 불려온 건 영광스러운 일을 맡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기에는 명예도 없고,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고, 위험하고 고된 일이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돌아갈 실익은 전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지원자들이 침착함을 되찾자 이젝투스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에게 있을 메리트와 디메리트를 언급하였다.

그들은 거의 디메리트 밖에 없는 일이라는 이젝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란스럽게 떠드는 대신 침묵하며 이젝투스의 말을 경청하였다.



"이곳에 남게 될 이들은 동료들이 알티로스 제국과 싸우기 위해 출진하는 와중에도 이곳에 남겨져 명예와는 거리가 먼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에 남을 이들에게 안전한 후방에 남아서 속된 말로 꿀을 빤다고 욕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너희를 기다리는 건 욕은 욕대로 먹고, 위험은 위험대로 있는 임무다."



알티로스 제국과의 전쟁이 코앞인데 굳이 하이엘프 왕국의 정예 군단인 케트라 레기온에서 인원을 차출해야 할 만큼 위험하고 명예도 없고 실익도 거의 없는 임무가 기다린다는 말을 재차 강조하자 이번에는 몇몇 인원들에게서 불안감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젝투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일단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거나 잘 길들일 수 있는 자는 왼쪽으로,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오른쪽으로, 이도저도 아닌 자들은 가운데에 남아있어라."



그 말에 엘프들은 즉각 반응하여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오와 열을 맞춰 세 그룹으로 나눠졌고 이젝투스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정령을 다루는 자들 중에서 지원자를 뽑겠다. 굉장히 고되고 보상도 거의 없는 임무이니 빠진다고해서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이젝투스의 말에 정령술사들은 다들 눈치를 보았으나 아까 이젝투스의 말에 불안감을 보이던 정령술사 한 명이 자리를 떠나자 눈치를 보던 이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라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단 2명 뿐이었고 이젝투스는 나쁘지 않다는 듯이 템플리 나이트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 2명을 저 언덕 너머로 데려가게 하였다.



"그럼 동물을 다루는 이들에게도 묻겠다. 지원할 자가 있는가?"


"정령과 동물을 다루는 자를 중점으로 뽑는 걸 보아하니 이번 임무는 위험한 생물을 키우는 것입니까?"



그때 동물을 다룰 줄 안다고 답한 엘프 중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고 이젝투스는 웃었다.

그저 웃고만 있는 이젝투스의 반응을 본 엘프들은 저 엘프가 한 말이 정답이었다는 걸 직감하고 5명이 앞으로 나왔다.



"오? 자살을 원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군. 자, 인솔해라."



그걸 본 이젝투스는 대놓고 자살 지원자라고 말하면서 지원자들을 아까 정령술사들이 간 곳으로 데려가라 말했고 남은 인원들은 템플리 나이트들의 인솔하에 산밑으로 내려가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도저도 아닌 이들 집단 앞에 선 이젝투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솔직히 동물 다루는 것도 못하고, 정령과 친화도가 높은 것도 아닌 녀석들은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차라리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서 힘을 기르는 걸 추천한다. 너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자, 지원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템플리 나이트들의 인솔하에 원대복귀해라."



이젝투스의 말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남아있는 템플리 나이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한 사람의 병사가 자리에 남았다.

그 병사는 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난 순박해보이지만 온몸에 근육이 붙어있는 건장한 청년이었고 이젝투스는 그에게 물었다.



"뭐야?"


"다리에 쥐가 나서요"



매우 태연하게 다리에 쥐가 나서 못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병사를 보고 이젝투스는 이 녀석은 엄청난 거물이라고 생각하고는 템플리 나이트에게 남은 병사를 데려가라 말했다.

그 병사는 아직도 다리에 전기가 오르는지 절뚝거리며 동료들의 뒤를 따라갔고 이젝투스는 별 이상한 놈을 다본다고 투덜대며 언덕너머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난 몇 주 동안 팔라딘들과 마스터 나이트들이 열심히 만든 건물이 있었고 건물 앞에서 지원자 7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지원자들은 건물 앞에서 수다를 떠는 두 팔라딘들을 보고 넋이 나가있었고 이젝투스는 팔라딘 제니스와 팔라딘 파일라에게 물었다.



"애들한테 겁이라도 줬냐?"


"우리가 너 같은 줄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확실히 겁을 준 건 아니었는지 그 뒤 지원자들 사이에서 도미티아 파일라 트라키아라는 이름과 제니스 글뤽스라는 이름이 오르내렸고 이젝투스는 겁 먹은 게 아니라 그냥 놀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건물의 문을 열었다.

마법으로 뽑아낸 암석을 깎아만든 벽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건물의 중심부에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너머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것은 마법을 주창하는 팔라딘 오리스였고 이번에는 지원자들에게서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누구지?"


"평범한 엘프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튀어나온 자들이 죄다 전설적인 엘프들이었으니 건물에 있는 팔라딘 오리스도 틀림없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엘프일 거라고 생각하며 지원자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이제 너희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 왔구나."



이젝투스는 건물의 문을 닫았고 문이 닫히자 창문 하나 없는 건물은 순식간에 오리스가 뿜어내는 마법의 빛을 제외하고 온통 어둠에 휩싸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젝투스가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말하자 지원자들 일부는 침을 꿀꺽삼켰고 그때 오리스는 주문을 외우던 걸 완료하고 마력을 방출하였다.

그러자 건물 전체가 빛이 없음에도 환하게 변해갔고 마치 채도가 없던 세상에 채색을 하는 것처럼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리스가 있는 건물 중앙부의 뒤쪽으로 지금껏 젊은 엘프들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기괴하고 두려운 괴물들이 두 발로 서서 깃털을 가다듬고 있는 게 보였다.

눈과 머리에 나있는 뿔인지 볏인지 모를 것은 붉고, 몸통은 녹색 비늘에 흰색 깃털이 숭숭 나있고 두 발로 선 채 노란색 부리로 날개를 다듬고 있는 그것들은 빛이 들어오자 성가시다니는 듯이 꼭꼭꼭 거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그것들이 입에서 토해내는 건 소리만이 아닌 검은 안개가 섞여있었다.


그 안개는 바닥에 낮게 깔리면서 점점 차올랐으나 팔라딘 오리스가 손을 흔들자 나타난 물의 정령들이 뿌린 물뿌리개의 물에 의해 녹아내려 검은 액체로 굳어져서 흘러갔고 바닥에 나있는 배수로를 통해서 한쪽으로 모이게 되었다.



"저게 대체 뭡니까?"


"저것들의 이름은 코카트리스, 너희의 임무는 오늘부터 우리를 보조해서 저 녀석들을 사육하는 것이다."



저 엄청나게 위험해보이는 생물을 사육해야 한다는 말에 이젝투스가 했던 말들이 단순한 위협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깨달은 지원자들은 긴장의 수위가 높아졌다.

그때 지원자 중 하나가 손을 들고 팔라딘들에게 질문하였다.



"엄청난 독을 지닌 위험한 생물인 거 같은데 무기로 삼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 그분은 저것들을 무기로 삼으실 생각이 없으시다."


"꼬꼬댁!"


지잉!



그때 코카트리스 중 한 마리가 먹이로 던져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팔뚝만한 지렁이를 향해 눈에서 빛을 뿜어냈고 지렁이는 순식간에 돌덩어리로 바뀌었다.

괴물들은 석화되서 제압된 지렁이에게 몰려가 사저없이 부리로 쪼아댔고 지렁이 석상은 순식간에 바삭한 겉부분과 석화가 덜 된 속살이 드러난 채 수천 조각으로 나눠져서 괴물들의 부리를 통해 뱃속으로 들어갔다.



"저걸 무기로 삼을 생각이 없으시다고요?"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아무리봐도 전쟁에 써먹으려고 키우는 것이 분명한 코카트리스들을 보면서 팔라딘 이젝투스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대답했고 지원자 중 하나가 대표로 나서며 물었다.



"무기로 삼을 생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사용되는 겁니까?"


"먹을 거다."


"잘... 못 들었습니다?"


"저거 키워다가 잡아먹을 거라고."


"????"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엘프들의 표정이 복사 + 붙여넣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변해버렸다.

대균열 같은 몬스터 천국에 떨어져서 살아남아야 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데 저 강력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도저히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는 엘프들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이젝투스와 팔라딘들을 바라보았으나 이젝투스는 거기에 제대로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아, 이해했습니다. 저희가 저 녀석들 먹이라는 거죠?"



그때 마침내 정신줄을 놔버린 엘프 하나가 이해했다는 듯이 해맑은 표정으로 말하자 이젝투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대답했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저것들 한끼 식사 혹은 비명을 지르는 엘프 석상으로 축사에 전시되기 싫으면 저것들과 최대한 빨리 친해져야 할 거다."


"...."


"...."



그 말을 듣고 드디어 상황파악이 된 엘프들의 표정은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있었다.

혼란, 공포, 자책, 체념이 황금비율로 섞여있는 그 오묘한 표정은 이내 눈을 감고 피자를 먹었는데 눈을 감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파인애플 토핑의 뜨거운 과즙이 입에서 터져나온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하는 인간의 표정 그 자체였다.

물론 파인애플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뜻밖의 선물이었겠지만 최소한 이 엘프들은 아니었다.



"저것들이 좋아하는 건 뭡니까?"


"잠은 자는 겁니까?"



그러나 케트라 산에 주둔하는 케트라 레기온으로 들어온 정예답게 그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팔라딘들에게 코카트리스의 정보를 묻기 시작했고 그 때 엘프 지원자 중 하나가 중요한 사항을 물었다.



"아까 저것들을 먹는다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요리로 해먹으신 겁니까?"


"치킨이다."


"인간들이 제사 음식으로 쓰는 과일가루 튀김 말씀입니까?"



엘프 지원자들은 그 맛없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이런 위험한 곳을 만들었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팔라딘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상관으로부터 세상에 퍼진 치킨이 가짜이며 진정한 치킨이 어떤 맛을 내는지 알고 있었다.

팔라딘들은 진실의 신에게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 나온 치킨의 맛을 떠올리며 대답하려 했으나 그때 갑자기 축사의 문이 열리면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너무 설명을 축약했구나 이젝투스"



빛 속에서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가 울리자 엘프들은 육신이 아닌 영혼이 짓눌리는 것 같은 감각에 무릎을 꿇었고 팔라딘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엘프들이 빛에 익숙해지자 그들이 본 것은 반년 전보다 조금 더 커지고 근육이 늘어난 붉은 사자 같은 인간 남성이었다.

반년도 더 전에 케트라 레기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은 성스러운 후광을 내뿜으며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수백 년을 이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는 자는 지금 떠나라."



평소의 가벼운 말투도,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신들의 행동에 체념한 것 같은 태도도 없는 포이부스의 음성에 7명의 엘프들은 저마다 고민했고 그중 동물을 다루는데 자신있다고 했던 엘프 2명이 손을 들었다.

포이부스는 그들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팔라딘들에게 원대복귀 시키라고 한 뒤 남아있는 5명의 엘프에게 말했다.



"우리가 할 것은 단순한 사육이 아니다. 너희는 어찌 하로나스 님의 축복을 받아 다른 종족보다 몇 배는 되는 세월을 살아갈 수 있으면서 수명이 짧은 종족 같이 단기적인 생각만을 하느냐?"


"설마?"


"우리는 우리들의 장점인 긴 수명을 이용하여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저 흉폭한 종을 간신히 낫을 들 수 있는 작은 엘프도 기를 수 있는 종으로 바꿀 것이다."



눈에서는 석화 광선을 쏴대고 입에서는 독을 뿜어내고 부리로 돌도 쪼개버리는 저 흉악한 괴물을 어린 엘프도 기를 수 있는 종으로 바꾸겠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는 것 같았다.



"여기에 신들의 축복은 없을 것이며 오로지 생명공학과 마법과 지혜만이 있으리라."



거기에 세상의 법칙 자체를 뒤바꾸는 신의 축복마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엘프들은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포이부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열망이란 이름의 전능함이 빛으로서 타오르고, 확신이란 이름의 색채가 후광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전능해보이는 그의 모습에 고민하던 엘프들 중 하나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우리에게 그 어떠한 영광도, 그 어떠한 실익도 없을 거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신께서 내리시는 명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너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구나 아이야."



그러면서 포이부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데 실익이 없을 거라고 누가 그러느냐? 너희는 오늘부로 케트라 레기온이 아닌 나의 직속 연구팀으로 부서 이동을 하게 될 것이며 오늘부터 에스티나 왕국의 일반병의 월급의 1.5배의 월급과 조식, 중식, 석식 제공 시간을 제외한 하루 10시간 근무를 보장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야간 근무는 거기에 1.5배를 더 주겠노라."


"아니 잠깐만, 저희한테는 그런 거 안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지금 월급도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저희한테는 최저 근무시간 보장은 안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입이 떡 벌어지는 조건에 팔라딘 이젝투스와 제니스가 항의했으나 포이부스는 지옥의 업화 같은 불길을 눈에서 뿜어내며 말했다.



"니들은 팔라딘 직책을 받아들인 순간 종족이 엘프가 아니게 되었으니 법령이 보장하는 범위를 넘어섰노라. 게다가 지금까지 쌓은 업보를 생각하거라. 징징대는 새끼들이여."


"아니 이런 X같은 경우가..."


"꼬우면 하로나스 님한테 근로조건 개선해달라고 하던가. 아, 오리스는 제외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유일하게 칼침 안 놓았으니."



처음 만났을 때 칼침을 박아놨던 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포이부스를 본 팔라딘들은 질풍노도의 반항기를 주체하지 못한 걸 후회했으나 이미 떠나간 버스였다.

포이부스는 다시 엄숙한 태도로 돌아와 후광을 내뿜으며 엘프들에게 말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는 날, 나는 너희들에게 막대한 부와 명예를 줄 것이며 에스티나 왕국의 전 국민들에게 진정한 치킨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몇 번 하지 않은 맹세가 될지니 그 어떠한 장애도 나를 막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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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8 +11 19.12.29 2,613 106 16쪽
97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7 +11 19.12.28 2,647 106 16쪽
96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6 +9 19.12.27 2,664 95 17쪽
95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5 +8 19.12.26 2,716 10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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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3 +4 19.12.24 2,920 111 17쪽
92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2 +5 19.12.23 2,895 10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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