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766,365
추천수 :
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20.01.06 12:00
조회
2,846
추천
113
글자
24쪽

전조(前兆) #4

DUMMY

종종 여러 매체에서 승리의 냄새가 났다는 표현이 사용될 때가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이 무언가 불에 타들어가는 냄새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선한 피 냄새라고 주장하며 싸움을 좋아하는 어떤 용병들은 싸움이 끝난 뒤 손에 들린 맥주와 녹슨 동전과 금화의 냄새가 섞인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미나스 왕국에게는 동부 전선이라 불리고, 레헴 왕국에게는 서부 전선이라 불리는 메자이야 지역의 한 이름 없는 평원에서 나는 냄새는 승리와는 연관이 적어보였다.

어젯밤에 비가 내려 물기를 가득 품은 풀냄새가 나던 평원은 이제는 희생자들의 피와 그들이 죽기 직전에 싼 오물의 악취와 축축하게 젖은 옷감에 스며든 땀 냄새가 마법사들이 불러낸 불꽃이 내는 유황 냄새에 파묻혀 사라졌다.



"전진! 전진! 국왕폐하를 위하여!"


"신호가 올라왔다! 5번 방진!"



1개월 전, 미나스 왕국의 매복으로 레헴 왕국의 군 하나가 괴멸된 뒤 새로 투입된 스틸리나 플라비시우스의 군대는 정예답게 금세 새로운 전장에 적응하였다.

오늘도 국왕들이 직접 전장에 나온 양측 군대는 전선을 형성하며 대치하다 다시 충돌하였다.


미나스 왕국의 중장보병대가 전진하기 시작하자 그에 맞춰 레헴 왕국의 중앙군에서 노란색 깃발이 올라와 8자를 그리며 움직이자 우익을 담당하고 있는 스틸리나 플라비시우스 장군은 자신의 플라비시우스 군을 움직여 방어진을 형성하였다.

레헴 왕국의 국왕 아이아스 4세는 중앙군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밀려드는 미나스 왕국 군대를 보며 호령하였고 중앙군 뒤에서 대기하던 기병대가 좌측으로 크게 우회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레헴의 선봉과 우익이 미나스 왕국의 중장보병대와 충돌하였고 미나스 왕국의 기병대는 자신들 기준으로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는 레헴의 기병대를 따라갔다.



"아이아스 4세의 목을 가져와라!"



미나스 왕국 중장보병대는 커다란 타워실드를 앞세워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뱀처럼 구불구불한 진형을 이루고 있는 플라비시우스 군의 보병대와 충돌했다.



"3번대! 밀어붙여라!"



스틸리나는 말을 타고 직접 전선을 뛰어다니며 외쳤고 그 말에 중앙부분의 부대가 창과 방패를 든 채 갑자기 미나스 왕국의 중장부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보병의 모루는 서로의 측면을 지켜줘야 방어하기 쉬운데 돌격을 막아낸 부대가 다른 부대의 보조 없이 오히려 상대의 보병을 밀어내는 행동은 혼자 고립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레헴의 3번대 뒤에는 5번대와 6번대가 붙어서 모루의 두께를 보충한 상태였고 5번대는 전진하는 3번대의 뒤에 바짝 붙은 채 3번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나스 왕국 보병대의 왼쪽 측면을 공격하고, 6번대는 3번대의 오른쪽 측면이 뚫리지 않도록 방어하는데 전념하였다.



뿌우웅!


"물러나! 물러나!"


"마법이 온다!"



순식간에 전열이 2개로 분단되어버릴 위기가 오자 미나스 왕국의 장군은 모루를 조금 뒤로 물리기로 하면서 동시에 마법사들을 투입하였다.

순간적으로 마력의 흐름을 장악한 미나스 왕국의 마법사들이 물러나는 미나스 왕국 보병대의 뒤를 쫓아오려는 레헴의 병사들을 막아서는 불의 벽을 소환했고 레헴의 마법사들은 즉시 마력의 흐름을 다시 되찾아 불의 벽에 공급되는 마력을 차단하였다.


아주 잠깐 동안 나타난 불의 벽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잠깐의 순간 덕분에 미나스 왕국 보병대는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진형을 갖췄고 스틸리나는 혀를 차면서 돌출된 3번대에게 귀환을 명했다.


양측의 보병대가 서로 물러나자 보병대 뒤에 있던 궁병대가 일제히 사격을 가했고 미나스 왕국 보병대는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화살을 막아낸 뒤 각 부대끼리 뭉쳐 방어진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아군 궁병대의 시야를 확보해주었다.


두 왕국의 군대가 서로를 향해 사격을 가하며 멈춰있는 동안 레헴의 좌측, 미나스의 우측에서 기병대가 충돌하였다.

말과 사람, 그들이 착용한 강철로 된 장비까지 더해서 합계 1톤이 넘어가는 육중한 망치와 다름없는 기병들이 시속 40~60km에 달하는 빠른 속도로 서로 충돌할 때 생겨나는 충격량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번째 충돌로 수많은 기병과 말이 몸이 박살나며 쓰러졌고 양측 기병대가 얽혀서 창과 검을 주고받는 동안 양측 중앙군에서 다시 깃발이 올라왔다.



"돌격 명령입니다!"


"선봉인 파르지팔 장군의 군대와 맞춰서 달려라! 너무 앞서가거나 뒤쳐지면 안된다!"



레헴 왕국에서 먼저 돌격 명령을 의미하는 붉은 깃발이 위아래로 여러차례 움직이고, 미나스 왕국의 군대는 자신들의 중앙군에서 내려온 지시를 보고는 중앙에 궁병과 마법사가 있고, 보병들은 사각형으로 방패를 세우는 사각진 여러 개를 벌집처럼 만들어냈다.


스틸리나는 섣불리 저 벌집 모양 사각방어진형 속으로 뛰어들었다가는 순식간에 포위되거나 창의 벽에 가로막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적의 방어를 돌파하기 위해 직접 말에 타서 자신의 군대의 기병들을 이끌었다.



"공격!"



그녀는 한손에는 창을, 한손에는 고삐를 쥔 채 보병대와 맞춰서 말을 몰았다.

돌격하는 레헴 왕국군은 먼저 미나스 왕국의 궁병대와 마법사들의 사격을 맞이하였다.

하늘에서 우박만한 크기의 불타는 돌멩이들과 화살의 비가 쏟아졌고 가장 앞에 있는 이들은 일제히 방패를 들어올린 채 뛰어갔다.


레헴의 마법사들은 미처 방패를 들어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선두의 보병들의 머리 위로 투명한 방어벽을 만들어내거나, 바람을 불러내 궤도를 꺾게 만들었다.

마법사들의 지원에 힘 입어 레헴 왕국군의 일제 공격의 1파는 곧바로 미나스 왕국의 방어진과 충돌하였다.


서로의 방패의 틈새로 창을 찔러넣고, 마법사들은 자신들끼리 원거리에서 마력의 흐름을 가져오려는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스틸리나 장군은 전원이 말을 타고 있는 자신의 직속 의장대를 이끌고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달마샤!"


"예!"


"예!"


"예!"



벌집 모양의 사각방진 무리 속으로 흘러들어간 급류처럼 스틸리나의 군대는 순식간에 갈라져버렸고 스틸리나의 호령에 사방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스틸리나는 창을 집어넣고 활을 들고 자신의 호령에 가장 많은 대답이 들려온 좌측 방향을 보고 그쪽 방향을 막고 있는 한 미나스 왕국 부대가 3방향에서 포위당해 틈이 많이 벌어진 걸 확인한 뒤 지시를 내렸다.



삐이이익!



스틸리나의 부관 셰톨은 목에 걸고 있던 피리로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난전 중에도 그 소리에 반응한 스틸리나의 부대의 지휘관들이 스틸리나를 바라보았다.

스틸리나는 말 없이 미나스 왕국의 어느 한 부대를 지목했고 스틸리나의 군대는 다함께 그곳으로 뛰어갔다.



"돌격!"


"어어어어?!"



안 그래도 사방이 적이라 힘겹게 적의 파상공세를 밀어내던 미나스 왕국의 한 부대는 갑자기 자신들에게 공격이 더 많이 집중되는 것에 혼비백산하였고 스틸리나는 그 순간 아주 잠깐 열린 방진의 틈새로 화살을 쐈고 그녀가 쏜 화살에 맞아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가 넘어진 순간 그녀는 즉시 다른 화살을 꺼내 그곳으로 쐈다.


그 화살은 누구도 맞추지 못하고 바닥에 박혔으나 마법으로 빚나는 수정으로 만든 깃 때문에 눈부신 빛이 났고, 빛이 나는 화살이 박힌 곳으로 스틸리나의 보병대가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사각 방진의 모서리 부분에 틈이 생겼고 스틸리나는 자신의 직속 의장대를 이끌고 돌격을 감행했다.


스틸리나가 이끄는 기병대가 사각 방진의 중앙에 있던 궁병대와 마법사와 지휘관을 말 그대로 뺑소니치고 반대편의 모루 보병들의 뒤통수에 창을 박아넣자 사각 방진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좋아 하나 잡았다! 이대로 밀어붙여!"


"달마샤!"



방어를 담당하는 사각 방진 부대 중 하나가 뚫리자 근처에 있던 다른 2개 부대가 조금씩 전진하며 진형이 무너진 부대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다른 레헴의 군대에 의해 차단되었고 스틸리나는 다시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호령하였다.



"""예!"""



그러자 아까보다 더 많은 대답이 일제히 들려왔고 스틸리나는 방금 전에 미나스 왕국의 부대 하나를 붕괴시키면서 전선의 모양이 변해 여유가 생겼다는 걸 파악하고 부대를 재정비시켜 다음 방진을 돌파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고 고개를 돌린 그녀가 본 것은 적의 기병대에게 돌파당한 레헴의 기병대가 후퇴하는 광경이었다.

마침 중앙군에서도 그걸 보고 예비대를 보내 적의 기병을 막게 하려고 했으나 레헴의 예비대가 투입되자마자 미나스 왕국 기병대는 바로 전선을 밀어붙이고 있는 스틸리나와 파르지팔 장군의 부대의 뒤를 찌르기 위해 선회하기 시작했다.


레헴의 중앙군은 예비대가 미나스의 기병대를 묶기 전에 미나스 기병대의 충격돌격이 아군 보병대를 덮칠 거라고 판단했는지 퇴각 신호를 보냈고 스틸리나는 어느새 그녀 근처로 온 파르지팔 장군과 눈빛을 교환하고 뒤로 물러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걸 그대로 내버려둘 미나스 왕국이 아니었다.

미나스 왕국의 모루가 방어진형을 버리고 쐐기진형 5개를 형성해 밀려오기 시작했고 스틸리나는 양쪽을 번갈아보고는 파르지팔 장군에게 말했다.



"저에게 남은 기병들을 전부 주십쇼! 제가 적의 기병대를 묶겠습니다!"


"알겠네! 의장대! 스틸리나 장군을 지원하라!"



파르지팔 장군은 모루를, 스틸리나는 아군의 소수정예 기병들을 지휘하며 레헴의 기병대를 돌파하고 육박하는 미나스 왕국 기병대를 향해 돌격했다.

스틸리나는 먼저 창으로 선두에 있던 미나스 왕국 기병의 창을 쳐내고 미나스 왕국 기병대 틈으로 파고든 뒤 고삐를 놓고 양손으로 창을 잡고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아군이 적절히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스틸리나의 곁을 그냥 지나가려던 기병 2명이 갑자기 휘둘러진 창에 맞아 낙마했고 그동안 다른 곳 역시 어떻게든 미나스 왕국의 기병들을 레헴의 기병들이 몸으로 막아가며 돌격을 저지했다.


제 아무리 톤 단위의 무게를 지닌 기병이라 해도 일단 벽에 부딪치면 속도가 줄어들거나 심하면 멈추게 되어있고 레헴 보병대의 부속 기병들에게 충격력을 쏟아내느라 멈칫한 미나스의 기병대의 지휘관은 레헴의 보병대가 돌아오는 걸 보고 기수를 돌려 측면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간신히 적 기병대의 돌격을 저지했으나 수많은 레헴의 의장대가 쓰러졌고 스틸리나는 파르지팔 장군과 다시 합류해 쓰러진 이들을 데리고 중앙군과 예비대가 있는 곳까지 물러났다.


그렇게 서로에게 한방씩 주고받은지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걸 신호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양측 다 군을 물리면서 그날의 전투는 끝이 났다.


스틸리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늑대 한 마리가 개처럼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얌전히 있었니?"


"왈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정체 모를 정보 상인 엘 블라디미르로부터 이 늑대가 그녀의 중요한 아군이 될 거라는 말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지금에 와서는 그녀는 늑대에게 종종 정찰 임무나 적의 냄새를 쫓아 추적하는 일을 맡겼다.


정보상인이 카론이라 부른 늑대는 단 한 번도 실패를 한 적이 없었고 점점 그녀가 신뢰하는 인물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놈의 전쟁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갑자기 내린 빗방울이 투구에 스며들어 밝은 금빛 머리카락이 젖은 것에 투덜대며 스틸리나는 마른 옷감으로 머리를 닦았고 그때 갑자기 늑대가 허공에 통로를 만들어내 사라지는 걸 보고 늑대가 신뢰하지 않는 어떤 자들이 접근한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후 그녀의 천막 근처에 빗소리를 뚫고 누군가가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들렸고 그들은 스틸리나의 천막 앞에 서서 말했다.



"플라비시우스 장군님, 폐하께서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알았다 바로 가마."



그들은 왕이 보낸 전령들이었고 스틸리나는 이번에는 국왕이 무슨 작전을 세워서 장군들을 소집했는지 궁금해하며 갑옷을 챙겨 천막 밖으로 나갔다.



##



뮤 대륙 동부에 있는 하이엘프 왕국 에스티나의 항구도시 보스포루스는 전운이 감도는 뮤 대륙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활기찬 흥정 대신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뮤 대륙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알티로스 제국의 내부 종교투쟁이 격화되면서 드디어 첫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대륙 전체로 퍼졌고 사람들은 알티로스 제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국가들에게 폐를 끼칠 거라는 예측을 하였다.


이 사태를 가장 심히 우려하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알티로스 제국이 대륙의 패권을 거머쥐는 걸 번번이 막아온 에스티나 왕국이었고 에스티나 왕국의 해상 교역 중심지인 보스포루스는 그 영향을 직격으로 받아야 했다.


머지않아 알티로스 제국에서 내부의 우환을 외부로 내보내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던, 알티로스 제국에서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그 후폭풍이 에스티아 왕국으로 날아올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에 상인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군수품으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쟁여놓거나 은근 슬쩍 공무원들에게 접근해 비축해놓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타국의 간첩들이 어떻게든 상황을 혼란스럽게 끌고가서 어떤 정보가 튀어나오나 보기 위해 헛소문을 퍼트리고 항구에서 사보타주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평소의 깐깐한 관문과 항구의 검역, 검열로 인해 마나메탈 표본, 에스티나 정찰 보고서 등 타국에 유용한 자료나 물자는 대부분 차단되었고 저잣거리에 스파이 행위를 시도하던 이들의 목 혹은 신체 일부가 효수되어 올라갔다.


안 그래도 까다롭던 보스포루스의 검역이 한 층 더 까다로워지자 상인들은 서로 앞다퉈 전쟁을 대비한 비축에 들어갔고 그런 상황에서 낡은 배 한 척이 항구로 들어왔다.



"뭐야 저 배? 마치 바다 위에 떠다니는 유령선을 끌고 온 것만 같군."


"요즘 다른 대륙도 험악한 분위기인데다 바다에 해적이 들끓고 있다니 습격이라도 받아서 긴급수리를 했을지도 모르지"



낡은 배를 본 항구의 등대지기는 현재 보스포루스의 항구 상태를 보고는 빛 신호로 3번 상항에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냈으나 낡은 상선은 신호를 무시한 채 군용 항으로 향했고 등대지기는 바로 정령을 통해 군항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에게 신호를 무시한 자가 나왔다는 걸 알렸다.


항구의 해군기지에서 종소리가 들리면서 병사들은 즉시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작은 프리깃에 올라타 낡은 배를 막으려고 하였다.

프리깃들이 접근하는 걸 보고 뒤늦게 낡은 배의 갑판에 있던 자가 뒤를 바라보며 뭐라뭐라 소리치자 망루에 있던 엘프 선원이 급하게 망루에서 내려와 선실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가져왔고 그는 다시 망루로 올라가 낑낑대며 깃발을 걸었다.



"뭔지 보여?"


"바람 안 불어서 안 펄럭 거리는데?"



안타깝게도 때마침 항구에 바람이 잦아든 상태라 깃발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서 깃발에 뭐가 그려져 있는지 항구와 프리깃의 해병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거기 신원불명의 배! 당장 정지하지 않으면 불순분자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확성마법을 건 프리깃의 함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갑판에 있던 선원 중 하나가 갑판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니들은 이 깃발도 안 보이냐! 규정대로 확인 마법 안 걸고 뭐해?"


"바람이 불지 않아 깃발의 확인이 불가하다. 깃발을 흔들어라."


"알았다. 잘 봐라."



여전히 바람이 불지 않아 망루에 걸린 깃발은 축 늘어진 상태였고 결국 누군가 바람 마법을 사용해서 깃발 근처에 바람이 불게 하였다.

그러자 구겨진 채 축 늘어져 있던 낡은 배의 깃발이 펄럭였고 그것은 다름아닌 에스티나 왕국 왕가와 에스티나 왕국에서 보시는 만신전의 상징인 7개의 별과 나뭇가지에 휘감긴 파란색 물방울 깃발이었다.


분명 양식은 에스티나 왕국의 깃발이 맞지만 추가 휘핑마냥 저런 데코레이션이 들어간 버전은 300년이나 되는 삶 동안 처음 본 프리깃함의 함장은 최신 규정집을 뒤적거렸지만 저 깃발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잠깐만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위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아니, 확인마법을 쓰라니까! 니들 관련 규정 모르냐?"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규정 써먹은 게 600년 전이잖냐 이젝투스. 애들이 몰라도 안 이상하지."



프리깃 함 중 하나가 다시 항구로 돌아가 함장을 내리게 했고 함장은 즉시 보스포루스의 해군 사령부로 달려가 자신이 본 것을 보고했고, 보스포루스 주둔 해군 사령부에서 해군 사령관이자 동시에 보스포루스 시의 태수인 카이온 샤브릴썬에게 보고를 올렸다.


성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태수는 어떤 낡은 배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깃발을 걸고 군항으로 무작정 밀고들어오려고 한다는 말에 평소처럼 처리하라고 말하려다 그 깃발에 대한 묘사를 듣고는 바로 서류고 뭐고 전부 내던지고 항구로 달려갔다.


에스티나 왕국을 상징하는 깃발은 그냥 하얀 바탕에 나뭇가지에 휘감긴 파란 물방울 문양의 깃발이지만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준 선왕이나 신에게 인정받은 만신전의 주요 인물들, 특히나 팔라딘들은 거기에 7개의 별이 추가된 깃발을 내걸 수 있었다.

현재 국왕의 아버지 뻘 왕족 혹은 하로나스를 모시는 교단의 핵심인물을 뜻하는 깃발이 내걸린 배가 들어왔는데 확인 마법으로 확인해서 안 들여보내고 포위 및 대치 중이라는 말에 태수는 당장 오늘 당직사령부터 죽이고 시작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일단 사태 해결이 먼저라고 판단해서 사령부가 아니라 군항으로 향했다.


군항 앞 바다에는 보고가 올라온 대로 태수가 살아생전 딱 한 번 밖에 본적이 없는 깃발이 내걸린 배가 프리깃들에게 포위되어 있었고 그 배의 갑판 위에는 이 자식들이 언제까지 자기들을 붙잡아두고 있을지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시간을 체크하고 있는 팔라딘들이 있었다.

태수는 갑판 위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급히 확성마법으로 외쳤다.



"당장 포위 풀어!"


"예?"


"깃발에 마법도 제대로 걸려있구만 왜 확인을 안하는 건데! 여기 메뉴얼 특수상황 34-6항에 대응법 있잖아 바보들아!"


"하지만 그건 사용되지 않은지 천년도 더 넘은..."


"지금 함대 사령관인 이 카이온 샤브릴썬의 정당한 지시에 항명하는 건가 함장?"



태수는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한 규정을 말했고 늙은 태수보다 어린 엘프 해병들은 뒤늦게 최신판 대신 케케묵은 낡은 규율이 적힌 규정집을 가져와서 뒤져보고는 특수한 깃발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마법 주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급히 지금 쓰는 체계와 전혀 다른 확인 마법을 발동시켰고 마법에 반응한 낡은 배의 깃발에 새겨진 일곱 개의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낡은 배는 전함이나 순양함에 비해 작지만 그 누구보다 위풍당당하게 나아갔고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며 덱에 충돌하였다.

배가 부서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에 의해 갑판에서 다리가 내려갔고 거기서 12명의 팔라딘과 4명의 템플리 나이트와 인간 세 명이 차례대로 내려왔다.

그들 전부 태수인 카이온 샤브릴썬이 알고 있는 얼굴이었고 태수는 이마의 식은땀이 콧등을 타고 내려와 코 끝에서 떨어져서 바닥에 부딪친 소리마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하였다.



'지금이라도 일 제대로 못한 당직사령을 참수해서 목을 가져와야 하나?'


"뭔 확인이 이리 오래걸려? 거의 전시수준이구만."



태수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팔라딘 이젝투스의 말에 태수는 자기 아버지 세대에도 전설로 불리던 자들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요즘 알티로스 제국에서 불온한 바람이 계속 불어와서 병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명백히 저희의 실책입니다.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론 제대로 교육 좀 시켜 쨔샤! 우리가 장군이던 시절에 이랬으면 바로 목 날아갔..."


"그만."



팔라딘 이젝투스가 깐죽대는 걸 제지한 자가 있었고 그건 다름 아닌 포이부스였다.

포이부스의 말에 이젝투스는 한 발 뒤로 물러났고 포이부스는 같이 걸어가자고 눈치를 줬고 태수는 바로 포이부스에게 바짝 붙어 그를 수행하였다.

그동안 팔라딘들은 자신들을 막아섰던 해병들을 자기 부하 부리듯이 지시를 내려 배에서 짐과 말과 마차를 내리게했다.



"뮤 대륙 상황은 어떻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염구 같은 상태입니다. 알티로스 제국 내부에서 계속해서 군대가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타국의 간자들이 국내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이 보스포루스만해도 3일에 한 번씩 첩자가 체포되는 상황이니 국경 지대의 도시들은 더 할 겁니다."



태수는 다행히도 포이부스가 항구에서 뱃길을 막은 해군들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 걸 보고 보고하였고 포이부스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물었다.



"필리우스는?"


"폐하께서는 지금 수도에 안 계십니다. 알티로스 제국과의 국경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점검하겠다고 얼마 전에 내려오셨다가 떠나셨습니다."



태수는 주변의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포이부스의 귀에 바짝대고 속삭였고 포이부스는 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1개월 전에 하로나스 님으로부터 귀환할 것을 명 받았다. 조만간 알티로스 제국과 결판을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더군."



여신의 신탁을 받았다는 포이부스의 말에 태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미 대륙 전체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신님의 말씀이 있었다면 더 확실해졌군요."


"어쩌면 내전이 일어나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도 모르지.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계속 경계태세를 유지해라. 넌 잘하고 있다 카이온."



포이부스는 부하들이 실례를 저지른 게 마음에 걸리는 태수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려줬고 태수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포이부스가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알았다고 답하였다.

태수와 포이부스가 대화를 하는 동안 어느새 낡은 배에 실려있던 짐들이 거의 다 내려졌고 거기에는 황금빛 털을 자랑하는 아할테케를 선두로 한 말과 마차의 무리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참, 저건 우리가 아틀란 대륙에서 쭉 올라오면서 얻은 물건들인데 전부 처분해서 돈으로 바꿔서 보스포루스 시 재정에 보태게나."



말과 마차를 제외하고 배에 실려있던 짐들은 해적들이 꽁꽁 감춰두고 있던 온갖 보물과 황금과 귀중한 타 대륙의 특산품과 손질된 바다 괴물들의 신체부위였고 태수는 포이부스의 손을 잡고 계속 감사하다 말했다.

포이부스는 아할 테케의 안장에 몸을 싣고 시간이 없다며 출발하자 외쳤고 태수는 즉각 포이부스 일행을 검문없이 바로 통과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지체되는 일 없이 포이부스 일행은 관문을 통과하였고 그들은 바로 수도 스도티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마차 안에는 아주 간단한 식료와 물과 상비약과 꼭꼬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표지에 아무런 글자도 적히지 않은 책 한권이 있었다.

책은 아무렇게나 마차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마차가 흔들리면서 저절로 표지가 열렸고 첫 장에 쓰여진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닭의 사육과 품종개량, 진정한 치킨의 레시피, 진실을 위해 이 책이 완성되기를. 앞으로 이 책이 완성되고 전 세상으로 퍼져 모두가 닭다리 하나씩 뜯을 수 있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 작성자
    Lv.36 백반육천원
    작성일
    20.01.06 12:21
    No. 1
  • 작성자
    Lv.21 물찬거부기
    작성일
    20.01.06 12:21
    No. 2
  • 작성자
    Lv.90 쥬논13
    작성일
    20.01.06 12:29
    No. 3

    닭서리를 위해서는 석화저주를 막을 보호구 착용 필수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23 일단읽을까
    작성일
    20.01.06 13:46
    No. 4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의 목넘김으로. 치멘-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8 글장난
    작성일
    20.01.06 13:59
    No. 5

    치킨은 초고가 음식이 되겟네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51 NeipiEl
    작성일
    20.01.06 14:23
    No. 6

    하지만 바실리스크를 잡아야 한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6 샥샥거미
    작성일
    20.01.06 22:35
    No. 7

    치킨(바실리스크를 재료로 쓰는 위험한음식)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9 셰아
    작성일
    20.01.06 22:52
    No. 8

    하루만에 쭉 달렸는데 확실히 초반개그가 부족해졌어영..... 난 고런맛(?)이 좋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괴물입니다
    작성일
    20.01.07 19:01
    No. 9

    ㅋㅋㅋ 원시 치킨은 용고기썼고

    근대치킨은 코카트리스 쓰니 이거 나중에 치킨은 진짜 용기있는자들이 만드는 음식이
    될법하내요 ㅋㅋ

    맛없는 음식에서는 벋어날듯헌대 제사음식이나 진짜 특별한날아니면 먹기힘든 음식이 될지도 ㅋㅋ

    코카트리스 품종 계량에 얼마나 걸리는지에따라서 대중화의 기간이 틀릴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괴물입니다
    작성일
    20.01.07 19:06
    No. 10

    ㄴ코카트리스는 바실리스크 아종이라고 볼수 있으니 던전에서 바실리스크가 진화하여
    코카트리스가 된 개체들을 포이부스가 포혹한거라 생각됨니다.

    바실리스크나 코카트리스 이름의 뜻을 생각하면 일단 이번 새대에서는 치킨이
    제사음식에서 벋어나긴 글른듯허내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괴물입니다
    작성일
    20.01.08 18:02
    No. 11

    저 코카트리스 에들 품종 계량하면서 어떤 품종의 아이들이 나올지 ㅋㅋ

    어디 동화버전으로는 코카트리스들이 석화의 마안이 아니라 작열의 마안(히트레이).....쓰거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독자777
    작성일
    20.04.28 17:12
    No. 12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미칭
    작성일
    21.02.10 11:04
    No. 13

    참모총장 들어오는데 근무자가 암구호 까먹어놓고 신원확인 안 된다고 막은 격이네 ㅋㅋ 당직사령 잘 가고 ㅋㅋ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0 뷔토스와 소피아 #1 +13 20.01.13 2,451 106 20쪽
109 전조(前兆) #8 +16 20.01.10 2,605 90 16쪽
108 전조(前兆) #7 +13 20.01.09 2,502 90 16쪽
107 전조(前兆) #6 +27 20.01.08 2,498 131 19쪽
106 전조(前兆) #5 +11 20.01.07 2,536 104 22쪽
» 전조(前兆) #4 +13 20.01.06 2,847 113 24쪽
104 전조(前兆) #3 +19 20.01.04 2,670 111 16쪽
103 전조(前兆) #2 +21 20.01.03 2,712 99 17쪽
102 전조(前兆) #1 +10 20.01.02 2,779 114 20쪽
101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1 +17 20.01.01 2,663 118 18쪽
100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0 +18 19.12.31 2,663 124 17쪽
99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9 +27 19.12.30 2,636 106 24쪽
98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8 +11 19.12.29 2,613 106 16쪽
97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7 +11 19.12.28 2,647 106 16쪽
96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6 +9 19.12.27 2,664 95 17쪽
95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5 +8 19.12.26 2,716 100 20쪽
94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4 +5 19.12.25 2,727 101 17쪽
93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3 +4 19.12.24 2,920 111 17쪽
92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2 +5 19.12.23 2,895 105 17쪽
91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 +8 19.12.22 3,085 114 15쪽
90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9 +33 19.12.21 3,094 137 20쪽
89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8 +21 19.12.20 3,015 120 22쪽
88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7 +16 19.12.19 2,937 123 16쪽
87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6 +8 19.12.18 2,891 102 16쪽
86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5 +14 19.12.17 2,979 120 17쪽
85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4 +12 19.12.16 3,117 105 20쪽
84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3 +8 19.12.15 3,078 109 15쪽
83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2 +7 19.12.14 3,357 116 15쪽
82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1 +8 19.12.13 3,479 122 17쪽
81 사슴과 늑대의 우정 #9 +12 19.12.12 3,475 124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