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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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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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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19.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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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2

DUMMY

오랜 세월동안 인류를 좀 먹던 질병이 남긴 고름이 펼쳐진 땅을 걷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자신을 백혈구라고 믿던 세균과 아무 생각없이 끌려온 백혈구들의 시체가 뒤엉킨 이곳을 조금 직설적으로 전장이라고 부른다.

뉘른 왕국군의 침공부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한 청년이 멍하니 동료들의 시체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 포이부스 일행을 보지 못한 채 그저 화염 마법으로 타들어간 시체들이 내뿜은 연기로 흐려진 것 같은 잿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인류와 지성체의 역사를 좀 먹어온 전쟁이라는 이름의 질병이 남긴 고름이나 다름 없는 시체가 쌓인 전장 한복판에서 청년은 피로 얼룩져서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갑옷을 벗을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에 대한 원망도, 살아남았다는 안도도 없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이 보이는 청년을 보다못한 한 남자가 다가왔고 그는 청년의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야 임마 에라스! 그냥 두고 가자니까 뭐하는 거야!"


"성질내지말고 쓸만한 거 없나 찾기나 해 이젝투스."



보통의 전쟁은 광기와 욕망과 냉혹한 계산이라는 베이스에 우연이라는 첨가물이 들어간 잡탕 스프 같은 것이지만 이번에 들어간 첨가물은 우연 대신 신의 의지라는 이름의 아주 특별한 첨가물이었다.

신의 뜻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포이부스는 청년과 마찬가지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담긴 것은 분노도 아니요, 존경과 경외는 더더욱 아니고, 한가지 질문이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답을 들을 수 있음에도 굳이 소리내서 답을 묻지 않았다.



"신병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가벼운 증상입니다. 저렇게 코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넋이 나간 건 나약하다는 증거죠. 팔라딘이 되려는 자는 저런 나약함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팔라딘 오리스는 얼을 빼놓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시선을 보냈으나 자신을 섬뜩한 눈으로 바라보는 포이부스를 보고 숨을 삼켰고 포이부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전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가벼운 증상인지 심각한 증상인지는 본인 말고 아무도 모르니 함부로 말하지 마라 오리스. 지금은 그저 나약하다고, 약하다고 하면서 욕하지만 저건 흔히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정신적인 자상이자 흉터지."



포이부스는 아직 싱싱한 축에 속하는 시체를 뒤지는 부하들말고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이 반응이 없는 청년을 보면서 자신의 옆에 남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영혼과 정신이 입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에 남은 상처는 치료되지 않는다. 그저 더 성장한 정신의 살점이 상처부위를 덮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을 수차례나 겪고도 저런 상처가 없는 우리들이야말로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기억해둬라."



넋이 나가있던 청년은 에라스가 한참을 붙잡고 흔들고서야 그를 발견한 것처럼 몸서리를 치며 뒤로 넘어지더니 바닥을 기어갔다.

에라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내민채 멈춰있는 동안 갑옷을 입은 청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쳤고 그동안 전장을 뒤지던 팔라딘들이 이것저것 아직 쓸만한 무기와 갑옷과 잡동사니들을 가득 챙겨서 돌아왔다.



"아무래도 소대끼리 예상치 못하게 충돌한 뒤 공멸한 것 같습니다. 약탈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수십 자루의 검과 창, 둔기, 지휘관들의 짐으로 보이는 잡동사니 사이에는 은으로 된 팬던트도 있었고 팬던트 안에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의 작은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허나 팔라딘들은 그걸 보고도 그저 오늘 수입이 짭짤하다면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포이부스는 눈앞의 상황이 비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팔라딘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돈으로 환산하고 계산하면서 한 동안 자금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하는 자신 역시 정상은 아니고, 시체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 히히덕대는 팔라딘들의 반응을 보고 두려운 눈을 하고 있는 템플리 나이트들과 에라스, 마가렛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며 이동을 명령했다.


몇 시간 정도를 더 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조금 속도를 줄였다.

전쟁통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는 말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하기에는 부적합했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느리게 달린 뒤에 도로가 끝나고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졌다.

그 평야지대에는 진격하다 비가 와서 급히 야영지를 만들고 있는 뉘른 왕국군의 본대가 있었고 왕국군의 척후들은 포이부스 일행이 접근하는 걸 발견했는지 급히 본대로 돌아갔다.



"조금 기다려줄까요?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요?"


"평소대로 상인으로 위장해.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포이부스는 속도를 줄일 것을 명령했고 아주 천천히 뉘른 왕국군의 옆을 지나가려는 것처럼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제 막 지어지고 있는 진지에서 기병 몇 명이 나왔고 그들은 천천히 자신들 방향으로 오는 포이부스 일행 앞에서 말을 세우고 말했다.



"그대들은 지금 뉘른 왕국의 멘데스 다 코스타 장군의 부대에 접근하고 있다! 소속과 신분을 밝혀라!"


"저희는 레무 대륙에서 온 크라두스 상회의 상인들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물자 없으십니까?"



에라스는 레무 대륙에서 상인으로 위장하려고 미리 만들어둔 진짜 상업 길드의 증서를 꺼내서 보였고 기병들의 분대장 정도로 보이는 검은 수염을 빡빡하게 기른 남자가 천천히 다가와 증서를 거의 빼앗다시피 들어올려서 확인하였다.



"레무 대륙 출신이 여긴 어쩐 일이지?"


"여기저기 활로를 뚫어놓는 게 상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레무 대륙은 다 좋은데 경쟁이 너무 심해서 아틀란 대륙으로 넘어왔습니다. 여기 엘프들은 제 상단과 호위임무를 계약한 크나시아의 용병대고, 이쪽은 대지모신 교단의 사제님이신데 갈 곳이 있다 하여 잠깐 동행 중입니다."



에라스는 포이부스와 엘프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는 그들을 마차 뒤쪽으로 안내해서 마차의 차양막을 걷고 거기에 가득 실린 온갖 무기와 상품들을 슬쩍 보여주며 말했고 분대장은 일행에 인간이 아닌 엘프들이 많다는 걸 보고 오히려 안심하며 말했다.



"그럼 혹시 시클로 금화나 퓨닉크 은화있나? 요즘 전쟁이 길어져서 그런지 마르두크 은화나 올문두 금화는 적국의 간자가 뿌린 위폐가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말이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간단하게 적국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위조지폐나 가짜 돈을 만들어 뿌리는 것이다.

특히나 금은본위제도를 실행하는 국가들에게 있어서 화폐에 들어가는 금과 은의 함량을 속이는 건 해당 화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신뢰도가 떨어진 화폐는 상대적으로 다른 화폐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기에 나라를 뒤집어놓으려는 행위로 간주되어 최소 사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죄로 여겨졌다.


인간이 인구의 대부분인 아틀란 대륙에서 포이부스 일행 대부분이 엘프라는 사실은 오히려 적군의 간자가 아니라 진짜 상인이라는 믿음을 주는 요소였고 일행들은 기병들의 안내를 받아 건설 중인 야영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손님이 온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그들은 즉시 뉘른 왕국의 멘데스 다 코스타 장군의 눈에 들어왔고 기병 분대장은 장군의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상인이고 길드 증서의 확인도 끝났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엘프가 호위 용병으로 붙어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다 판단하여 들여보냈습니다."


"흠?"



그러더니 장군은 천천히 걸어와서 포이부스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물론 그 걸어온 거리는 족히 10m는 더 떨어진 곳이었고 그는 암살을 경계하는 것인지 그 이상 가까워지지는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말했다.



"상인이 아닌 사람이 좀 보이는데?"


"나는 대지모신이신 우샤스 님을 모시는 사제요. 여기 교단의 증서를 보시오."



포이부스는 벌써 1년 가까이 된 대지모신 교단의 무녀장 아르아네스가 직접 써준 대지모신 교단의 사제임을 증명하는 증서를 꺼내서 보여주었고 병사 중 하나가 포이부스의 증서를 받아 전달하였다.

장군은 증서를 천천히 보더니 밀랍 인장에 자기 반지를 가져대댔고, 반지가 살짝 빛나자 놀란 눈으로 말했다.



"반응이 있는 걸 보니 진짜군! 마손이면 뮤 대륙의 파로나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고 유명한 휴양지지. 그곳의 무녀장이라면 성녀 아르아네스를 말하는 건가? 옛 성녀이자 현 무녀장이 신분을 보증하는 사제라..."


'저런 기능이 있단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아니 그보다 이 양반 아틀란 대륙의 왕국 소속이면서 뮤 대륙 정세는 또 어떻게 알고 있어?'



포이부스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원리로 반지에서 빛이 난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신분이 보증되어서 그런지 장군은 증서를 포이부스에게 돌려준 뒤 자세한 검사 없이 에라스에게 물건을 최대한 팔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방금 막 세워진 자기 막사로 들어가버렸다.


장군도 사라지자 방문객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백부장 이상의 고급지휘관들이 에라스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물어봤고 에라스는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물건을 꺼내다줬다.


뉘른 왕국군 내의 금속이나 땅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들이 호출되어 에라스가 가지고 있는 다른 대륙의 화폐들의 금과 은 함량이 각 국가에서 공식 발표한 수치와 일치하거나 근사값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뒤에는 가치가 더 올라가 지휘관들은 물물교환을 요구하거나, 전리품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에라스에게 팔아넘기려고 하면서 다른 대륙의 금화와 은화를 줄 것을 요구하였다.


포이부스는 그런 지휘관들을 바라보다가 에라스가 레무 대륙에서 구입한 크나시아제 연고를 구입해간 천부장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마르두크와 올문두 화폐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 것 같은데 위폐가 얼마나 유통된 건지 아는가?"


"말도 마십쇼 사제님. 지금 레헴과 미나스 놈들이 상대방 경제를 박살내겠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위폐를 찍어내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 전쟁광들은 직접 전쟁 중이 아닌 우리나라 화폐의 위조품까지 뽑아내고 있는 악독한 놈들이라니까요!"



천부장은 그 덕분에 요즘 화폐의 성분을 자세히 판별해주고 화폐에서 순수한 금과 은만 뽑아낼 수 있는 금속과 땅 속성 마법사들이 인기가 있다면서 말하고는 방금 막 에라스가 지닌 돈들의 금과 은 함량을 판별해주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낡은 마법서를 팔아치워 아우레우스 금화를 받은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세상이 전쟁으로 혼란해지는 와중에도 이득을 보는 사람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봤자 전쟁으로 땅이 못 쓰게 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전쟁으로 농부들이 다 죽으면 빵을 만들 밀은 누가 키우겠나? 튀김옷을 만들 튀김가루는 누가 만들겠는가? 튀김용 기름의 재료인 콩과 작물을 누가 만들겠는가? 그들이 전부 죽은 뒤에도 금과 은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가?"


"대지모신 교단 소속이라 그러신지 저희와는 생각이 다르시군요. 그래도 결국 사람은 이런 혼세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입니다. 아무리 밀과 밀가루가 중요해도 마지막에 승리하지 못하면 그것들이 적에게 넘어가게 될 테니 누군가 최후의 승자가 나타날 때까지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물론 최후의 승자는 우리 뉘른 왕국이 될 겁니다."



이름 모를 천부장은 그런 말을 남기고 자기 막사로 돌아갔다.

포이부스는 연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충분히 대지모신 사제로 보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에라스에게 돌아갔고 에라스는 놀랍게도 지난 몇 개월 동안 성장한 것인지 짐이 가득 실려있던 마차 2대를 거의 다 비워버린 상태였다.


지금 위폐가 많이 유통되서 아틀란 대륙의 화폐들은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지 진짜로 금과 은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틀란 대륙의 화폐들과 타 대륙 화폐들은 거의 1 : 1.5 비율로 교환되었다는 걸 말하며 에라스는 포이부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물건은 다 팔아치웠는데 그냥 떠날까요? 아니면 친분을 쌓게 된 걸 이용해서 정보 수집 좀 해볼까요?"


"떠나도록 하지. 필요한 정보는 다른 녀석들이 구한 것 같으니 말이야."



포이부스는 수도사의 로브를 푹 내린 채 이마에 사냥신의 눈을 꺼냈고 그의 눈에는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상태로 야영지 곳곳을 누비다 돌아온 팔라딘들이 보였다.

물건을 전부 팔아치운 에라스가 이제 떠나겠다고하자 천부장들은 다음에 만나면 술 좀 많이 실어놓으라는 농담을 던졌고 포이부스 일행은 무사히 뉘른 왕국군의 야영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참동안 다시 평야지대를 지나쳐 숲으로 들어온 포이부스 일행은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야영준비를 시작하였고 그제서야 팔라딘들이 야영지에서 수집한 정보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고급 지휘관들 막사를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필사하고 기억했습니다. 며칠 전에 아틀란 대륙 북부에서 미나스 왕국과 레헴 왕국이 대규모 회전을 시작했는데 아직 결판이 안났고, 뉘른 왕국군은 그 틈을 타서 미나스 왕국의 속국이나 우호국들을 집어삼키며 위로 진군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수집한 정보를 총합해서 중요한 부분들을 말해주는 모르테스의 말에 포이부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대균열 수다르샨에 대한 정보는 있었나?"


"예, 뉘른 왕국은 수다르샨으로 정예부대를 몰래 파견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문서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만약 그들이 보급 요청을 해오면 최우선적으로 보급해주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특징이나 신호는 지휘관의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모양이군. 수다르샨까지 가는데 얼마나 남았지?"


"대략 2~3주, 좀 지체하면 한달 정도는 더 가야할 것 같습니다."



포이부스 일행이 아틀란 대륙 서부 해안에 상륙하고 말을 타서 이동하기 시작한 게 2주하고도 3일 전의 일이니 이제 거의 반 정도 왔다고 보면 되었다.

이 어둡고 우울한 전쟁의 공기가 가득한 아틀란 대륙에서 지금까지 본 광경을 몇 번이나 더 봐야 대균열 수다르샨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마가렛이 기겁하며 말했다.



"전 이 대륙이 영 마음에 안 들어요.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물가도 쓸데없이 높고."


"그래도 무기 가격은 레무 대륙보다 저렴하잖냐 마가렛."


"무기는 먹을 수가 없잖아요 마르세우스 아저씨."



팔라딘 마르세우스의 말에 마가렛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고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팔라딘 이젝투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동네는 무기만 저렴한게 아니라 사람 목숨값도 저렴해. 아까 뉘른 왕국군 막사에 있던 현상수배서 봤어? 18개 마을에서 사람 50명을 죽이고 달아났는데 현상금이 은화 50닢이라니! 한 사람당 은화 한닢이라는 소리라고! 다른 대륙 같았으면 연쇄살인마라고 금화 몇 장은 더 붙었을 거야."


"전쟁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아참, 그러고보니 아까 우리를 고용하고 싶다는 백부장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때 팔라딘 제니스가 방금 막 기억났다는 듯이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설마 의뢰 받아들였냐?"


"아니, 당연히 지금 계약한 임무 끝날 때까지 안된다고 했지. 그런데 만약 계약 끝나고 일 없으면 교관해볼 생각 없냐면서 이걸 주더라고."



팔라딘 제니스가 보여준 종이는 다름 아닌 검투사 양성소 홍보용 양피지였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 뿌리는 그런 전단지가 아니라 귀족들에게 편지나 전보 형식으로 전달되는 홍보용 양피지에는 고급스러운 물감으로 두 남자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위치는 뉘른의 수도 베르거인가? 검투사가 아니라 교관이면 할만한데?"


"아틀란 대륙 전체가 난장판인데 당당하게 호위임무를 받을 정도의 용병단이라면 교관으로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군."


"나중에 혹시 써먹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잘 챙겨놔."


"예"



포이부스는 혹시 나중에 상인이나 사제 신분을 쓸 수 없을 때 뉘른의 수도에 잠입할 일이 생기면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고 팔라딘 제니스는 양피지를 잘게 접어서 갑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서로가 가진 정보를 풀어놓으면서 계획을 짜내려가는 동안 별빛과 달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비가 내리는 밤이 찾아왔고 밤중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야영지를 정리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지만 포이부스 일행이 향하는 곳에서 보이는 건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간 흔적들과 죽지 못해 살아남은 이들 뿐이었다.

그렇게 3주나 되는 시간동안 슬슬 포이부스 일행이 시체에 무감각해질 때 쯤, 그들은 대균열 수다르샨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그 어떠한 왕국도 자기 영토라고 확실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무법지대 베링 지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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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전조(前兆) #1 +10 20.01.02 2,779 114 20쪽
101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1 +17 20.01.01 2,663 118 18쪽
100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0 +18 19.12.31 2,663 1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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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8 +11 19.12.29 2,613 106 16쪽
97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7 +11 19.12.28 2,647 106 16쪽
96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6 +9 19.12.27 2,664 95 17쪽
95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5 +8 19.12.26 2,716 100 20쪽
94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4 +5 19.12.25 2,727 101 17쪽
93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3 +4 19.12.24 2,920 111 17쪽
»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2 +5 19.12.23 2,895 105 17쪽
91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1 +8 19.12.22 3,085 114 15쪽
90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9 +33 19.12.21 3,094 13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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