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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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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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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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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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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전조(前兆) #1

DUMMY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크게 고민해야 할 요소는 상당히 많다.

게임의 기초가 되는 장르와 컨셉부터 시작해서 스토리, 그래픽와 그래픽 같은 유저가 바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과 플랫폼, 필요한 사양 등등 어른의 사정에 맞춰야 하는 요소들까지 신경 쓸 요소가 넘쳐난다.

특히 실시간으로 작동되는 온라인 게임이라면 유저들이 피로를 느끼는 한계점을 잘 알아둬야 게임이 장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게임판은 너무 마니악한 게임이었다.

사보타주, 배신, 방해공작이 난무하는 이 게임판에는 트롤러, 깽판주의자, 때와 장소를 잘못찾아온 아나키스트, 컨셉에 잡아먹힌 고인물, 진짜 미친놈, 불친절한 UI와 숨겨져 있어서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히든 룰까지 초보자들을 힘들게 하는 각양각색의 온갖 쓰레기 같은 요소가 많았다.


특히나 튜토리얼도 없이 숨겨진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서 초보자들은 다들 제1시대나 제2시대 중반즘에 거의 다 떠나버렸고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이런 불친절한 요소들을 세세한 점까지 신경썼다면서 극찬하는 하드코어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거나 그냥 운이 좋았던 이들 뿐이었다.


물과 나무의 여신 하로나스는 그런 불편한 요소들이 가득한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질려버렸다.

소규모 부족 수준이었던 제2시대의 국가들 비해 인구도 영토도 확 늘어난 제3시대는 그녀가 관리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녀가 한 번에 볼 수 있는 지역은 한군데 뿐이건만 5개 대륙에 퍼진 그녀의 신도들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화면을 옮겨야 했다.


아틀란 대륙에서는 그녀의 제일가는 부하들이 귀환을 위해 배가 정박 중인 서부 해안지역으로 가려고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고, 레무 대륙에서는 하로나스가 보낸 나무의 대정령 헤카가 크나시아의 왕족들에게 계시를 내릴 타이밍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게 보였다.

곤드 대륙에서는 하이엘프 왕 필리우스 2세가 보낸 전권대리인이 드워프들과 교섭 중이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는지 술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뮤 대륙에서는 필리우스 2세가 대신들을 불러놓고 며칠 째 결론이 안나는 회의를 하느라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감싸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밖에도 세상 곳곳에서 그녀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엘프 및 기타 종족들의 기원이 화면 옆의 작은 창을 통해 초당 수십 개씩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알고로스, 프레두스. 그쪽 작업은 잘 되고 있어?"


"전혀전혀. 드워프 놈들 분명 2천년 전에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래도 나는 지금 쟤들이 마음에 들어. 드모'우레스가 다시 일어나면 거품 물고 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크하하하!"



같은 방에서 다른 화면을 보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불화의 신 알고로스와 악몽의 신 프레두스는 그나마 하로나스와 다르게 개인적으로 돌봐야할 종족이 없기에 여유로웠으나 알고로스의 화면이 가끔 지하 쪽으로 향하는 걸로 봐서는 아직 던전에 대한 미련을 못 떨쳐낸 것 같았다.

하로나스는 지금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사실을 알고도 알고로스를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언니 다른 녀석들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때 구석에서 카론과 통통이와 다른 신들의 정령들을 관리하던 에우레테가 쪼르르 달려와서 언니에게 말했고 하로나스는 시선은 화면에 고정시킨 채 물었다.



"이번엔 누군데?"


"미트라야."


"가끔 너랑 같이 놀던 그 소년 신?"


"응, 다른 만신전에 가입했나봐."



만신전 체계는 일단 믿을 만한 동료를 구하는 게 매우 힘들지만 한 번 결성되면 생각보다 많은 이점이 있다.

지금 하로나스처럼 다른 신들에게 자기 종족이나 정령을 맡겨서 대신 관리하게 할 수도 있고, 각각의 신들의 포인트를 공유하는 것으로 혼자 쓰기에는 부담되는 막강한 권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제2시대에 하로나스와 이그니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만신전은 다른 신들을 자극하였고 제3시대에 와서 그들 말고도 여러 만신전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누구랑 손 잡았는데?"


"락슈미 언니랑 수르야 아저씨랑 우투 아저씨였던가?"


"관용의 여신에 빛의 신에 검과 법의 신에다 맹세와 계약의 신이 뭉쳤다는 소리네."



하로나스는 서로 별다른 연관이 없는 8명의 신으로 구성된 그들의 만신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속성의 소유자들끼리 뭉친 걸 확인하고는 자기 신도인 필리우스 2세와 똑같이 이마를 감싸쥐었다.



"그들이 뭘 하고 있는데?"


"나무 정령들이 그러는데 미트라랑 우투 아저씨가 레무 대륙에 있는 수르야 아저씨한테 사람을 보냈데. 그런데 그들이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 게 베스코스인 것 같아."



딱 봐도 선신들이 이미 게임판을 떠나버린 명예와 결투의 신 안드로스를 찾아다니는 미치광이 오크에게 접촉하려고 한다는 말에 하로나스는 두통이 더 심해졌다.

창조신이 만들어낸 게임판 위에 나타난 버그 캐릭터인 베스코스는 필멸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키며 자신의 정의를 부르짖는 존재였다.

원래 주인이어야 할 바람의 신 발라테아조차 질려버려서 손을 놔버린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시스템상의 통제권한을 상실한 것인지 오크 왕국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데도 가만히 놔두는 그런 존재에게 만신전을 구성한 신들이 접촉을 시도한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에 봉인에서 나온 올'쏜은 그들을 보지도 않고 볼일이 있다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으니 하로나스는 차라리 성실한 드모'우레스를 먼저 깨웠어야 했던 게 아닌가 후회하며 악신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혹시 올'쏜 님 어디가셨는지 알아?"


"보나마나 아자타샤트루 녀석 잡으러간거 아니겠어? 그 자식 제2시대 후반부에 탈락해서 자기 세계로 돌아갔었잖아."



정복의 신 아자타샤트루는 자기 부족이 올문두 왕국에게 멸망하면서 게임판을 떠나버린 신이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전쟁의 신 마헤스 무르간에게 정보를 흘려서 올'쏜이 비밀리에 자기 종족에게 하사하던 마나강제연쇄폭발 주문을 가로채게 만들었고 그 결과 올'쏜의 부족과 마헤스 무르간의 종족이 공멸해버렸다.

비록 아자타샤트루 본인이 이득을 보지는 못했지만 제2시대의 1,2위를 다투던 두 세력을 공멸시킨 것만으로도 정복의 신이 게임의 판도를 아예 뒤집어버렸다는 걸 부정할 신은 없었다.



"발라테아는 지금 뭐하고 있어?"


"아모스 접경지대 먹겠다고 다른 녀석들이랑 투닥대느라 바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네. 당장 우리 밑에 있는 저 알티로스 제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발라테아까지 날뛰면 답이 없었겠지?"



이제 하로나스가 보고 있는 수은 같은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화면은 알티로스 제국에 침투한 엘프 첩보원이 보고 있는 시야로 옮겨졌다.

그 첩보원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알티로스 제국의 어느 한 신전 천장이었고 그는 신전 안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거래를 영상을 기록하는 수정구에 입력하고 있었다.



"풍요교단과 사랑교단이 손을 잡았네."



전쟁의 신의 후손들인 알티로스 제국은 국가가 지정한 특정한 종교 없이 수많은 교단들이 난립한 상황이고 제국의 국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신들의 암투 속에서 역시나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한 이들끼리 손을 잡는 상황이 생겨났다.



"풍요 교단이랑 사랑 교단이면 그 녀석들이잖아? 원래 비슷한 년놈들끼리 붙어먹는 거지 뭐."



하로나스는 그 말에 슬쩍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넓게 펼쳐진 대양이었다.

아무런 섬도 없는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두 남녀가 웃으면서 떠 있었고 그들은 다름 아닌 바다와 맥주의 신 에기르 압주와 바다의 여신 테티아맷이었다.

하로나스의 형제 자매들을 낳은 신들이자 창조신 부리 아우둠라와 대지모신 우샤스의 자식들인 부부는 동시에 남매였음에도 오늘도 금슬이 좋아보였다.



"그러고보니 포이부스가 치킨을 만들면 그 다음에는 최고의 맥주를 찾겠다고 했던가?"



하로나스는 아버지의 맥주 창고와 그녀의 제일가는 부하가 하던 말이 생각났고 이번에는 아틀란 대륙으로 화면을 전환하였다.

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말과 마차 무리에서 코카트리스들을 축소화마법으로 작게 만들어 상자에 넣은 채 키우고 있는 포이부스의 모습을 계속 보고있자니 물로 이루어진 하로나스의 눈에서 눈물이 다나왔다.

하지만 물과 나무로 이루어진 그녀의 눈물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채 바로 피부에 흡수되었다.


거기서 하로나스가 조금 더 화면을 돌리자 이번에는 갑옷을 착용한 금발의 여인이 나타났고 그녀는 자기 상관으로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에게 뭐라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레헴 왕국의 전쟁 영웅 스틸리코의 손녀이자 현 대장군 아에티우스의 딸인 장군 스틸리나 플라비시우스는 농담 반 진담 반 철의 여인이라 불리고 있었고 지금 그녀가 크게 소리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아에티우스였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무언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아에티우스 장군은 젊은 나이에 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된 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뭐라뭐라 대답하였다.


현재 레헴 왕국의 주신은 융화의 신 킴푸루샤고 그들 모녀가 있는 장소 역시 레헴 왕국인데다 하로나스가 파견한 첩자도 없으니 하로나스는 지금 이 광경을 볼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로나스는 마치 자기 신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 광경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엘바가 스틸리나로 환생한 뒤 아예 킴푸루샤에게 권한이 전부 넘어간 게 아니라 하로나스와 엘바의 영혼의 연결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영상만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스틸리나가 자신을 엘븐델의 엘바라고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포이부스에게 지시해서 스틸리나를 에스티나 왕국으로 데려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지금의 스틸리나는 전생의 기억도 없는데다 킴푸루샤의 권한에 반쯤 발을 걸친 상태라 데려왔다가 지금 레헴 왕국 상황을 하로나스가 엿보는 것처럼 킴푸루샤한테 에스티나 왕국 내부 사정을 엿보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로나스는 이 머리 아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에스티나 왕국 쪽에서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알림음을 듣고 화면을 돌려버리려고 했지만 그때 다급한 에우레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카론이 없어졌어!"



##



세상 모든 생물들 속에서 끓고있던 분노와 욕망이 마침내 신들에 의해 터져나와 혼세가 도래했으나 그래도 세상은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었다.

뮤 대륙의 패권을 목표로 여러 번 전쟁을 일으킨 알티로스 제국은 내부에 품고 있던 각 교단들이 마침내 지금의 옥좌는 신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반쪽짜리 황제자리이니 신들에게 인정 받기 위한 업을 쌓아야 한다고 선포한 것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레무 대륙의 아모스 접경지대는 아너써스터 베스코스에 의해 한 차례 강제로 싸움을 멈추게 되었으나 몇 개월만에 다시 모여든 4개 국가의 군대가 하루에도 5번씩 군사적,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전쟁터로 변하고 그 때문에 육로가 아닌 해상 교역이 더 활성화됨에 따라 해적들이 더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곤드 대륙과 라시아 대륙은 다른 대륙들에 비해 조용해보였으나 라시아 대륙은 원래 지성체가 거의 없는 괴물들의 대륙이고, 곤드 대륙은 곤드 대륙 나름대로 전쟁이 아닌 다른 형태의 싸움이 민생을 어지럽혔다.


아틀란 대륙은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해있다가 신들에 의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며 아틀란 대륙에서는 4개의 국가가 두각을 드러내고, 그 4개 국가는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남서쪽의 뉘른 왕국이 수많은 소국들을 집어삼키며 마침내 북쪽에 자리잡은 미나스 왕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북쪽에서는 오랜 숙적인 미나스와 레헴 왕국이 국경에서 소규모 국지전을 이어가고, 동쪽의 벨파스트 왕국은 북쪽으로는 레헴과 국경을 맞댄 채 남쪽 해안가를 위주로 정복을 하고 거기에 맞선 소국들이 연합해 대항하였다.



"아무리 벨파스트 놈들이 뒤로 물러났다고 해도 지금은 방심하면 안될 시기입니다. 저 음침한 놈들이 이대로 물러나 있을 것 같으십니까?"



레헴 왕국의 수도인 왕도 레르하모시아는 왕국의 이름의 기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깊은 장소로서 레헴 왕국의 온갖 중요 시설들이 밀집된 장소였다.

레헴 왕국은 북동쪽 지역을 전부 집어삼키고 벨파스트와 충돌을 벌이다가 연이어 승리해서 벨파스트의 북진을 막아낸 뒤부터는 미나스 왕국과 군사적 충돌을 벌이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몇 차례나 달마샤 지역군을 지휘해서 벨파스트 군대를 격퇴한 장군을 수도로 소환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소환된 달마샤 군을 지휘하는 장군은 소집령을 받고 각지역 장군들의 인사권을 쥔 대장군의 집무실로 처들어가 바로 항의하였으나 대장군 아에티우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플라비시우스 장군.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시간도 인력도 물자도 전부 부족해."



대장군은 두꺼운 양피지에 그려진 아틀란 대륙 지도 위에 올려진 여러 색깔의 말들을 움직였다.

달마샤 지역의 주둔군들이 미나스 왕국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으로 움직이는 걸 의미하는 이동을 보이자 최전방의 텅 빈 구역 중 하나가 비로소 채워졌다.



"누가 죽었습니까?"



원래 빈틈없이 채워져 있어야 할 최전방 배치도에서 틈이 생겨났다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군 하나가 통째로 없어질 정도의 사태라면 분명 크게 소문이 돌았을 텐데 수도로 복귀하면서 스틸리나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대장군 아에티우스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스틸리나의 군을 의미하는 말을 빈자리에 채워넣으며 말했다.



"마세크티 장군이 매복에 걸려들었다. 지금 괴멸된 군의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있지만 미나스 쪽으로 흘러들어간 포로가 너무 많아. 군을 재편성하는 것보다 타지역 군을 데려오는 게 빠를 만큼 서부 전선은 여유가 없다. 국왕폐하께서 직접 친정을 하고 계신 전장에 이런 큰 틈이 생기는 건 있어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벨파스트 놈들과 대치 중인 군을 빼내는 건 위험합니다 제 아무리 벨파스트 놈들이 남부 왕국 연합에게 정신이 팔려있다지만 군을 빼내는 순간 어찌 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벨파스트와 싸워서 승리한 스틸리나의 달마샤 주둔군은 벨파스트가 북진을 포기하게 만든 큰 억지력이었건만 그걸 이제와서 빼버리면 벨파스트가 어떻게 나올까?

심지어 달마샤 지역은 벨파스트 북부의 주요 교통로를 끊어버리기 위해 점령한 곳이라 레헴 왕국의 영토에서 툭 튀어나온 상태니 벨파스트가 눈에 불을 켜고 영토를 되찾으려고 할 것은 안봐도 뻔했다.



"달마샤 지역은 제대로 정복한지 2년 밖에 안됬고 애초부터 벨파스트를 견제하려고 합병한 지역이라 잃어버려도 국내 방어에는 큰 문제는 안 되네."


"아버지!"


"여긴 집이 아니다 플라비시우스 장군. 예의를 지켜라. 그리고 지금 이 혼란에 빠진 세상에서 정에 이끌리면 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걸 기억해라."



지난 몇 년 동안 지역 주민들을 착취하지도 않고 완벽하게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서 이제야 겨우 신뢰를 얻고 그들은 진정으로 레헴의 국민으로 만들었건만 이제와서 벨파스트가 지역을 재정복하면 완전히 레헴에 동화된 주민들을 어떻게 다룰지 뻔했다.

그렇다고 주민들을 전부 레헴 안쪽으로 재정착시키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돈은 있지만 대장군은 당장 군을 이동시키라고 명령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달마샤 지역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이 쌓여있건만 그걸 포기하라는 아버지 아에티우스 대장군의 말에 스틸리나는 반발했으나 대장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할아버지인 스틸리코처럼 따뜻하고 정이 많은 장군이었지만 대장군 아에티우스는 아버지인 스틸리코나 딸인 스틸리나와는 전혀 다른 철저하고 냉혹한 계산으로 군을 움직이는 자였다.

논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그녀는 결국 화가 잔뜩난 얼굴로 대장군 집무실을 나와야 했다.


집무실을 지키는 보초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최고사령부 건물을 나와 건물 옆에 높으신 분들이 몇 개 없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악한 계책을 짜내는데 도움되라고 만들어진 공원의 의자에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따뜻한 말 한 번 건넨 적 없는 냉혹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그 다음 든 생각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 데우스 불트 데우스 볼트 등 영문 모를 소리를 자주 하게 된 국왕폐하의 정신건강은 괜찮은지, 처음에는 거칠었지만 지금은 말 잘듣는 정예병이 된 부하들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헥헥헥헥"



그때 거의 그녀의 키만큼 거대한 관목의 수풀 너머에서 개가 기분좋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뉘집 개인지 모르지만 장군들이 주로 사용하는 휴식용 공원에 나돌아다니는 걸 보면 꽤 높으신 분의 개가 분명했고 스틸리나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개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왈왈!"



그때 수풀 너머에서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작게 구멍이 뚫리고 거기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고 스틸리나는 기분전환 겸 뉘집 개인지 보자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멍멍아? 너 주인은 어디에 갔길래 날 부르는 거..."



허나 그녀가 관목의 벽을 지나 본 것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어깨높이가 거의 사람 키만큼 크고 목줄 달린 늑대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그녀를 보고 있었고 그녀가 급히 방어자세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늑대는 화살보다도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햘쨕 햘쨕


"잠깐! 잠깐만! 축축해! 야!"



다행히도 그녀가 상상하던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녀를 넘어뜨린 늑대는 그대로 열심히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아직 자기가 몸집이 커진 줄 모르는 강아지처럼 연신 얼굴을 핥아대는 늑대에게서 스틸리나가 해방된 건 20분이나 지나서였고 20분이 지난 뒤 얌전히 기다려 자세로 앉아있는 늑대를 본 스틸리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보아하니 목줄도 달려있고 사납지도 않은 걸 보니 누가 키우는 애인 것 같은데 너 주인은 어디갔어?"


"왈왈!"



그러나 늑대는 마치 주인이 없다는 것처럼 짖고는 스틸리나의 얼굴을 핥으려고 하였고 스틸리나는 힘겹게 늑대인지 덩치 큰 강아지인지 구분이 안되기 시작한 존재를 떼어냈다.

애가 얌전하기는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누군가 괴물이 나타났다고 오해해서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스틸리나는 늑대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늑대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스틸리나는 병사를 불러 주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부 입구로 향했다.



"병사? 잠깐 시간 있나?"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장군님!"


"공원에 누가 키우는 게 분명한 좀... 커다란 개 한마리가 계속 방치되어 있는데 주인 좀 찾아주겠나?"



스틸리나 장군은 그냥 늑대라고 하기는 좀 그러니 커다란 개가 있다고 말했고 그러자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개?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령부 부속 공원은 애완동물 출입 금지입니다."


"뭐? 하지만 저기에 분명 개가 있는데?"


"당장 확인해보겠습니다."



병사는 사령부 안으로 들어가 동료를 더 불렀고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 대신 안에서 교대 준비를 하던 병사들이 불려나와 스틸리나와 함께 공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보다 거대한 늑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의말

익묘 님, 골드카우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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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대균열의 심연 속에서 #7 +11 19.12.28 2,647 10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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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8 +21 19.12.20 3,015 120 22쪽
88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7 +16 19.12.19 2,937 123 16쪽
87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6 +8 19.12.18 2,891 102 16쪽
86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5 +14 19.12.17 2,979 120 17쪽
85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4 +12 19.12.16 3,117 105 20쪽
84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3 +8 19.12.15 3,078 109 15쪽
83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2 +7 19.12.14 3,357 116 15쪽
82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1 +8 19.12.13 3,479 122 17쪽
81 사슴과 늑대의 우정 #9 +12 19.12.12 3,475 1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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