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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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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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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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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9

DUMMY

대체 왜 방심을 했던 걸까?

어떻게 경계를 한 순간이라도 풀 수 있던 걸까?

이 위험천만한 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는 이미 그가 가지고 놀던 게임판으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던가?

포이부스는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진명이라는 것은 마법적, 주술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지구의 인간들은 서양과 동양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름이 지닌 힘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서양에서 엑소시스트들이 악마들을 상대하는 퇴마의식을 거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정체를 감춘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름이 대상의 본질을 가리킨다 믿고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이 아닌 진실된 이름을 알고 있다면 상대를 지배하거나 해를 끼칠 수도, 반대로 보호하고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대 서양사람의 믿음을 보여주는 서양의 전설 중 하나로서 한 수도사가 트롤의 진명을 알아내서 트롤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거나 하는 습관 말고도 진실된 이름을 알아내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그 대상의 기가 흩어지거나 저주해서 해를 끼칠 수 있다 믿었기에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습관이 하나의 풍습이 되어 이름을 부르는 대신 자나 호를 부르거나, 왕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바꾸거나 아예 다르게 부르는 피휘(避諱)하는 관습으로 전해져왔다.


또한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에서 종종 저주를 걸려고 하다가 상대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해서 엉뚱한 사람에게 저주가 가거나, 자신에게 저주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흔히 돌아다닐만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마법과 주술이 머나먼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에 불과한 지구와 달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그 힘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물론 이 세계에서 진명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도 많은 편이고 창조신이 뭔가 조치를 취해놔서 그런지 숨겨지지 않은 진명은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원래 세계에서도 오히려 악마의 이름을 마음대로 불렀더니 갑자기 튀어나와 난동을 부리고 사라졌다는 소리도 있었으니 그저 진명의 힘을 다룰 줄 모르는 자가 부르는 건 상관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포이부스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그는 진짜 이름을 간직한 채 이 세상으로 넘어왔다.

불꽃 부족은 그에게 떠도는 어두움이라는 이름을, 하로나스와 이그니는 그에게 탄'메펫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포이부스는 언제나 새로운 이름을 뒤집어 썼을 뿐 본질자체는 바뀐 적이 없었다.


포이부스의 진짜 이름은 그를 이 세상에 데려온 창조신과 포이부스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포이부스 역시 그 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포이부스의 진짜 이름은 지난 2천년 동안 숨겨져왔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존재는 그 진명의 힘을 완벽하게 쓸 수 있는 신이었다.



"설마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냐는 얼굴인데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전부 사실일세.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이 전부. 단지 지금 자네의 이름을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야. 정말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네. 나중에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지만."



포이부스는 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뒤에 펼쳐진 우주의 별들이 떨어져서 회전하며 쏟아지고, 자신의 몸 전체를 관통하는 힘의 언어 그 자체로 변환되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봐온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축에 속하는 힘을 지닌 신의 속박에 저항하던 포이부스는 피를 한움큼 토해냈다.



"어디에 써먹느냐고? 자네 정도되는 이의 진명은 아주 쓸데가 많지. 걱정말게나, 난 그런 귀중한 걸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닐세."


"5회... 입니다."


"무엇이 말인가?"


"아내한테 등짝을... 맞고... 운 횟수입니다."



그 순간 갑자기 포이부스를 휘감고 있던 힘의 속박이 깨져버렸다.

신이 요구한 진명이 아닌, 포이부스가 말하겠다고 한 부끄러운 비밀이 밝혀진 것으로 속박이 해제되자 포이부스는 바로 자세를 고쳐 전투태세에 들어갔지만 이 보랏빛의 사악한 어둠에 휩싸인 신은 오히려 웃으면서, 비웃음이 아닌 그냥 즐거움을 표현하는 미소를 지으며 포이부스에게 말했다.



"좋아, 그것도 꽤 쓸만한 정보로군. 하지만 난 자네의 진명을 알고 싶은데?"



그러자 지금까지 느꼈던 충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감정의 폭풍우가 포이부스의 머리와 가슴을 휘저어놓았다.

지금까지 운명조작으로 인해 느꼈던 충동과 이끌림 따위는 그저 장난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엄청난 권능에 당장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과 감정이 포이부스를 지배할 뻔했으나 포이부스는 자신의 옆구리의 상처에 주먹을 날렸다.



"웁! 푸헉!"


"오우... 그건 좀 아프겠는데?"



사냥의 신에 의해 생긴 흉터에서 피가 튀어나오며 포이부스는 정신이 아득해진 덕분에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실의 신은 그걸 보며 과장된 몸짓으로 눈을 가렸고 포이부스는 자신을 고의로 놓아주려는 것 같은 그 행동이 이유있는 여유라는 걸 알면서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허나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포이부스가 지나온 복도가 아니라 끝도 없이 펼쳐진 황야였다.



"볼 것도 없는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나? 여기에는 한 때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걸 보는 것을 좋아하는 잔인한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네. 허나 탈출한 검투사가 데려온 군대에게 마지막 최후의 1인까지 살해되고 멸망한 채 폐허로 남았지."



아드보카투스는 잘게 바스라진 유골들과 먼지만 떠다니는 황야를 보며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을 지었다.

포이부스는 무작정 황야로 뛰쳐나가는 대신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고 이번에는 제대로 그들이 있던 복도가 나왔다.



"부하들을 찾나?"


"예"



포이부스는 아니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신의 대답에 순순히 사실대로 말했다.

신은 여전히 사악한 보랏빛 어둠에 휩싸인 채 손을 흔들었고 그가 손을 흔든 곳에 여전히 식탁에 앉아서 즐겁게 떠들고 있는 포이부스의 부하들을 비추는 은막이 형성되었고 신은 그 은막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아악! 뭐, 뭐야?!"


"자, 자네가 찾는 부하들이 여기있네."



놀랍게도 은막 속에 비춰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포이부스의 부하들은 그대로 신에게 끌려나와 포이부스 앞에 내던져졌고 팔라딘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바로 포이부스 옆으로 뛰어가 무기를 꺼내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별 일 아니지만 정신은 똑바로 차려라."



포이부스는 속으로는 엄청나게 심각했지만 부하들이 동요하는 걸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는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게 무슨 저주를 내리신 겁니까?"


"저주라니? 나한테 무조건 진실만 말하는 축복일세. 진실의 신에게 자신도 모르게 거짓을 말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축복!"



신은 굉장히 즐겁다는 듯이 보랏빛 어둠으로 구성된 얼굴이 꿈틀거렸고 포이부스는 그가 뭘 말하려는지 깨닫고 시험 삼아 한가지 말을 하였다.



"아바리투스 님은 인간에게 봉..."



아바리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인간에게 봉인되었다고 말하려는 순간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포이부스의 혀를 마비시켰다.

포이부스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한 거짓과 참을 판별할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제 사용법을 터특했군? 축하하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을 걸세. 자, 자네의 진명을 말해보게나."



포이부스는 또 다시 저 신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이며 자신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귀 위쪽을 주먹으로 때렸다.

한 순간 의식이 끊어질 것 같은 충격에 눈앞이 순간 까맣게 되었고 포이부스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몸의 균형을 잡자 아드보카투스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너무 막나가는 것 아닌가? 날 즐겁게 할 생각이었다면 다른 걸 하는 게 좋을 텐데? 자네의 이름을 말해보게나."


"탄'메펫!"



다시 신조차도 무릎을 꿇릴 수 있는 지배의 힘이 포이부스의 의지를 꺾어버렸으나 포이부스는 신들이 지어준 이름을 말했고 진실의 신은 살짝 화가 난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사실이긴하군. 하지만 내가 원하던 이름은 아닌데? 자네 턴이니 질문 하나 받아주지."


"..."



포이부스는 질문을 하는 대신 어떻게든 신들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어쨰서인지 신들은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이 정체모를 공간에서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 신에게 빠져나갈 방법을 물으면 순순히 알려줄 것 같기는 했지만 다시 거절하기 힘든 힘이 포이부스를 휘감을 게 분명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뭡니까?"



그때 에라스가 용기있게 포이부스 대신 입을 열었다.

에라스는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고 다른 이들을 대신해 나선 것이었고 진실의 신은 감히 대화에 끼어든 필멸자에게 화내는 대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쪽에 문이 있네. 그럼 내 차례군?"


"어서! 어서 가세요! 어서! 저는 신경쓰지 말고!"



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갑자기 황야에 서 있는 문을 찾을 수 있었다.

에라스는 신의 질문이 오기 전에 일행들에게 최대한 빨리 달아나라고 외쳤지만 신은 에라스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질문을 하였다.



"자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마가렛이 화내는 겁니다!"


"좋아, 솔직한 게 보기 좋구만. 나는 아내보다 딸내미가 더 무섭다네."



에라스가 진실의 신을 붙잡고 있는 동안 일행들은 문을 열었지만 그곳은 다시 우주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다행히도 그 우주공간은 방금 전까지 포이부스가 있던 테라스였고 옆에 있는 원래 존재하던 문을 열자 동굴의 복도가 나타났다.

포이부스 일행은 음식을 먹었던 방 쪽으로 뛰어갔고 그곳에 미리 와서 대기하던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자네들이 놓고 간 친구는 챙겨야하지 않겠나? 아무리 요리가 맛있어도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닐세."



신은 그들보다 빠르게 식탁이 있는 방으로 돌아와 에라스를 앉혀놓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에라스는 그 사이에 대체 뭘 봤던건지 얼이 빠진 채 포이부스와 신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고 있었고 포이부스와 일행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진형을 펼치자 에라스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이 신은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 달아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딱!



에라스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신이 손가락을 튕겼고, 방의 공간이 차례차례 접혀버리며 깨진 유리조각처럼 흩어져버렸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지금 추락하는 중인지 멀쩡하게 서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란이 그들을 덮쳤다.

그 박살나고 산산조각난 세상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몸을 지닌 신은 포이부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잊어버렸나? 여긴 내 구역이라는 걸? 그럼 대답하주게. 자네의 이름은?"


"떠, 떠도는 어두움!"



이제는 두려운 걸 넘어서 짜증이 나는 진실의 신에 대한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포이부스는 신체적 고통없이 저항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신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포이부스는 그가 고의로 세뇌나 정신지배의 강도를 낮춘 게 아닌가 의심하였다.

아드보카투스는 웃으면서 뭔가를 말하려다가 짐짓 놀란 척을 하면서 말했다.



"자네 보호자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구만. 거의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고 있는데 혹시 아까 호출했었나?"



포이부스는 아까 신들을 소환하려고 시도했던 게 아무 소용이 없던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그 다음 벌어진 일을 보고 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진실의 신은 품속에서 연필 한 자루를 꺼내 허공에 문을 그려놓고는 그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강철도 잘라낼 물줄기 다발이 사방으로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포이부스! 괜찮...."



문을 박살내려는 것처럼 튀어나온 물과 나무의 신 하로나스는 문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보인 웃고 있는 진실의 신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며 얼어붙었고 진실의 신은 연필로 아주 그럴듯한 수납장을 그려서 거기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안녕 하로나스. 이 아저씨 안 보고 싶었니?"


"하필! 하필! 저 대머리가! 포이부스! 당장 도망치세요!"


"하로나스! 도우러 왔다! 적은!... 대머리 악신이다! 도망쳐!"



잠깐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문에서 에우레테와 알고로스, 프레두스가 나왔다가 안쪽에 누가 있는지 보고는 바로 도망쳐버렸다.

하지만 에우레테가 타고 온 거대한 늑대는 에우레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걸 거부하고 포이부스와 아드보카투스의 사이에 서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들아!"


"컹컹!"



포이부스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비록 말은 못하지만 기억이 돌아온 것 같은 아들에게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물론 눈앞에 있는 저 사악하기 짝이 없는 신 앞에서는 그저 동네에 돌아다니는 강아지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아들의 대견함에 포이부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컹!"



카론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는 생각인지 진실의 신에게 돌격했다.

레무 대륙에 전해지는 거대한 늑대 전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그 무시무시한 돌격에도 진실의 신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 개껌은 아주 맛있단다. 아빠한테 갔다주렴."



안타깝게도 카론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진실의 신은 포이부스에게 했던 것처럼 무조건 상대를 복종시키는 힘으로 명령하며 개껌을 던졌고 카론은 방향을 꺾어 개껌 쪽으로 날아갔다.

입에 개껌을 물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포이부스 곁으로 돌아온 카론은 개껌을 내려놓은 뒤에야 자신이 뭘 했는지 깨닫고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었다.



"포이부스, 저 위험한 반짝이는 것이 뭘 요구했습니까?"


"제 진명입니다."


"그건 대체 어디에 써먹으려고! 이번 게임에는 참여도 안했잖아! 그런다고 당신 정수리에 나 있던 게 돌아올 거 같아?"



하로나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카론과 포이부스를 감싸며 외쳤고 진실의 신은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저로서 참여 안했다고 특정 대상의 진짜 이름을 알아내지 말라는 법은 없잖냐. 그리고 자꾸 대머리 대머리 거리는데 방심하지마라 하로나스! 너도 방심하면 그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유지하는 거 한 순간이다."



하로나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방에 있던 자신의 신도들과 에라스, 마가렛을 자신이 들어온 문 안에 쑤셔넣고 포이부스와 카론도 내보내려고 했지만 신들조차 인식하지 못할만큼, 혹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것처럼 진실의 신은 문앞에 서 있었다.


포이부스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하로나스나 다른 신들의 반응을 보아할 때 이 신은 올'쏜 수준의 고위 신격이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위험한 존재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곳은 저 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이계이니 상대의 뱃속에서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제 아무리 하로나스라도 포이부스와 카론이라는 짐짝을 데리고 적의 본진에서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포이부스는 하로나스의 앞으로 나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디어 포기했구만"


"하지만 아까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진실의 신은 살짝 미소에 금이 간 것처럼 서서히 얼굴에 심술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포이부스에게 까탈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이미 훨씬 전에 뭐든 말해주겠다 하지 않았나?"


"그건 이미 제가 아내한테 등짝 맞고 운 횟수를 말하면서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몸을 묶던 구속이 풀릴 리가 없다는 추측을 하며 말한 것이지만 의외로 사실이었는지 진실의 신은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았다.

하로나스는 정말 괜찮겠냐는 얼굴로 포이부스를 바라보았고 포이부스는 눈을 감고 힘겹게 자기 이름을 말했다.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전생의 지인들이 그를 부르던 이름이 내뱉어지자 진실의 신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영태? 생각보다 별 느낌 없는 이름이군. 자, 그럼 자네가 요구할 것을 말해보게. 단,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요구를 해야 할 걸세."



진실의 신은 어떠한 요구가 오던 대부분 대처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걸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듯이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 말에 포이부스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저를 지켜주고,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재미없는 요구로군. 그러니 기간 제한은 걸어야겠네. 자네는 한가지 대상에 빗댄 기간 만을 말할 수 있고 그 대상은 이성이 있어서 땅을 발로 걷고 인간에게 통용되는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존재에게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네. 예를 들어 2족 보행하는 와이번형 드래곤들의 수염이 길어지는 세월만큼 혹은 코끼리 수인의 상아가 자라나는 시간만큼 이런 식으로."



생명이 있는 것들은 유한하지만 이 세계에는 마법이 존재했다.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드래곤 중 일부는 두 발로 서서 다닐 수도 있고 수천 살에 달하니 드래곤들의 수명만큼이라고 대답한다면 꼼짝없이 수천 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그런 대답이 나올 시 아드보카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장 세상에 있는 모든 드래곤을 죽여버린 뒤 되살리고는 기간이 끝났다고 대답할 존재였다.


혹시나 골렘 같은 것에 생명부여를 하고 인공지능을 탑재시킨 뒤 이 녀석의 원자 하나하나가 남아있는 동안이라고 대답한다고 해도 아드보카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자 하나하나를 소멸시켜버리고는 끝났다고 통보를 할 것이고 하로나스 역시 그걸 알고 있기에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드보카투스는 포이부스가 내건 조건을 듣고는 눈을 커다랗게 떠야 했다.



"훗날 아드보카투스 님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난 모발이 존재할 시간만큼!"



말이 끝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진실의 신은 휘청거렸다.

다시 고개를 든 그는 보랏빛 어둠에 휩싸인 모습이었으며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악신다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포이부스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포이부스를 공격하는 건 앞으로 머리가 다시 나도 바로 빠져나갈 거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강력하고 사악한 신은 눈에서 눈물과 안광 대신 어둠을 뿜어내며 포이부스에게 말했다.



"머리를 잘 굴렸구나! 관찰력도 좋아! 허나 자만하지 말라!"


"자만하지 않습니다. 대머리라는 말에 발끈할 때 아드보카투스 님의 표정이 전생에 유전적 탈모에 스트레스성 탈모가 겹친 시절에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랑 똑같아서 알 수 있었을 뿐입니다."


"..."



포이부스의 말에 하로나스가 할 말을 잃은 사이 구석에 있던 마르켄데야가 그들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과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눈부신 빛과 함께 비명이 포이부스 일행을 덮쳤다.

순수한 절대악이 패배하며 내뱉는 소리 같은 비명이 사라진 뒤 다시 눈을 뜬 포이부스 일행은 어느새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 떠 있는 배의 갑판에 자신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였고 악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의 악몽과도 같았고 너무 지쳐버린 포이부스와 팔라딘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하로나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가의말

다음화부터는 스토리 진도를 빠르게 나가려고 합니다


TMI: 성서의 열왕기에 나오는 선지자 엘리사는 아이들이 나타나 “대머리야 꺼져라(올라가라 또는 승천해라), 대머리야 꺼져라”라고 협박을 하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저주했고, 하나님은 엘리사의 대머리를 치료해주는 대신 암곰 2마리를 불러내 그 42명을 찢어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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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8 +21 19.12.20 3,015 120 22쪽
88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7 +16 19.12.19 2,937 123 16쪽
87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6 +8 19.12.18 2,891 102 16쪽
86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5 +14 19.12.17 2,980 120 17쪽
85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4 +12 19.12.16 3,117 105 20쪽
84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3 +8 19.12.15 3,078 109 15쪽
83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2 +7 19.12.14 3,357 116 15쪽
82 고행의 바다와 진실의 속삭임 #1 +8 19.12.13 3,479 122 17쪽
81 사슴과 늑대의 우정 #9 +12 19.12.12 3,475 1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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