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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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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20.07.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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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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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18쪽

눈물과 피로 씻는 손 #11

DUMMY

강인한 용 즈뮤는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액자가 잔뜩 걸린 앞과 뒤가 끝없이 이어진 동굴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이곳을 한 번도 본적이 없고, 분명 발을 지면에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붕뜬 감각 덕분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즈뮤는 천천히 동굴을 걸어가며 벽에 걸린 액자를 보았다.

즈뮤의 오른쪽에 있던 액자 속에는 즈뮤가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그림자의 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자의 신은 그 호칭답게 지면에 죽 늘어난 그림자에 얼굴이 달린 모습이었고 다른 신들과 달리 어린아이가 멋대로 지면에 그린 그림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만큼 단순화된 모습이었다.

그림자의 신은 즈뮤의 부모들인 최초의 다두룡들을 데리고 뭔가를 하고 있었으나 멈춰있는 그림만으로는 그림자의 신이 즈뮤의 부모들을 혼내는지 다독이는지 무언가를 설명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다음 액자에는 둥글고 예쁜 알을 지켜보는 즈뮤의 부모들이 보였다.

그림자의 신이 이상한 이름을 붙여서 친척들이 니드호그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준 2번째 용은 그 옆에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직 어린 새끼용인 스목은 즈뮤의 알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구석에서 칸헬의 세르피누스와 함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기를 뜯어먹는 게 보였다.


옆에 있는 액자는 니드호그가 1세대의 마지막 새끼용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보였다.

니드호그는 용족 최고 연장자 중 하나로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신들도 모르는 각각의 용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걸 깨닫게 하는데 능한 자였다.

그러나 즈뮤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저 장면 뒤에 집으로 가다가 아빠 쪽의 혈족인 사두룡 마자타브가 어린 게 벌써부터 발랑까져서 꼬리랑 발톱 장식하고 다닌다고 꼬리로 등짝을 후려친 일이 함께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즈뮤는 좋지 못한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다음 액자 속에는 용들의 특성을 개량해서 2세대 용들의 알을 얻고 히죽거리는 그림자의 신과 어느새 성룡으로 성장한 1세대의 어린 용들과 그런 용들에게 알을 들고 도망치라고 외치는 고룡들이 보였다.

용의 계곡의 입구에는 새하얀 눈이 떠오르는 작은 생물이 그려져 있었고 즈뮤는 이것이 즈뮤의 아버지 세대를 학살한 카르바노그의 등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때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막 성룡이 된 즈뮤 세대의 용들과 니드호그와 마자타브 뿐이었고 다른 용들은 카르바노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쓰러졌다.

그 뒤로 액자들은 쭉 카르바노그를 보여주고 있었고 즈뮤는 카르바노그가 그려진 액자들을 쭉 넘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멈춘 곳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쓰러진 마자타브와 그 위에서 니드호그의 시체로 만든 갑옷과 무기를 든 아르드바르였다.

그림자의 신이 제2시대에 떠나버린 후 힘을 잃은 용들은 지각 변동으로 지하로 파묻힌 옛 용의 계곡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즈뮤와 즈메이 같은 다두룡들을 이끄는 이는 마자타브였고 즈뮤는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사사건건 마자타브와 충돌했었다.

하지만 이미 최연장자로서 입지가 탄탄한 마자타브와 달리 즈뮤는 다른 이들에게 비판받기 일쑤였고 결국 그녀는 다두룡들이 모여사는 지역에서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았었다.

그렇기에 즈뮤는 마자타브가 죽는 순간을 보지 못하고 뒤늦게 전령으로 온 어린 용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 뒤에 어린 동생과 친척들이 마자타브의 조각난 시체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잖아?'



그렇기에 즈뮤는 이 액자들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이곳이 그녀의 꿈의 공간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꿈에 개입할 수 있는 누군가에 의해 정신만 납치되었으며 그는 아마 오랫동안 그녀 주위를 유심하게 보고 있던 존재라는 걸 깨달았고 그럴 수 있는 족속은 하나뿐이었다.



"위대한 존재시여, 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액자로 가득한 동굴의 천장에 대고 외쳤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동굴이 살아있는 것처럼 꿀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옆에 있던 액자들이 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가 핏빛 색깔의 액자가 되어 다시 튀어나올 뿐이었다.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나타난 새로운 액자 속에는 학살당한 용들과 그걸 보고 절망하고 있는 즈뮤의 모습이 있었다.

용들의 피로 물든 붉은 산맥에서 거대한 기계룡이 포효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용들의 시체를 짓밟고 지나가는 그림을 무시하고 앞으로 간 즈뮤는 수술대 위에 올려진 채 배가 갈라진 브리트라의 장기들을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하나씩 빼서 해부하는 그림을 보게되었다.


구역질나는 광경에 눈을 돌린 즈뮤가 반대편 벽에 걸린 액자에서 본 것은 제2세대 용들의 리더이자 신의 아들인 신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끝내 카르바노그에게 패배해 눈밭 위에서 산채로 뜯어먹히는 그림이었다.


즈뮤가 뭐라고 천장을 향해 외치려는 순간 갑자기 동굴 곳곳에서 핏줄과 힘줄들이 암석을 뚫고 흘러나오더니 핏물과 함께 살점이 동굴을 느리게 채우기 시작하였다.

즈뮤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살점의 파도가 동굴을 가득 채워가며 그녀를 따라왔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동굴을 한참 달려가다보니 저 멀리 빛이 보였고 즈뮤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현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발을 움직여 빛을 향해 뛰어갔다.

긴 통로를 나와서 본 것은 그녀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도 충분히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동이었고 그곳에는 천장에서 뻗어나온 석순과 종유석 석주들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도와줘'



그러나 석주들에서 나오는 녹색빛이 닿는 곳에 보이는 것은 용의 뼈였다.



'도와줘'



그 뼈들로부터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즈뮤는 자신이 지나쳐온 통로에서 살점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한 걸 보고 급히 달려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용들의 뼈무더기를 지나치려고 할 때 갑자기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도와줘'



스스로 움직이는 용의 뼈가 그녀의 발목을 움켜쥐었고 즈뮤는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이건 분명 꿈에 불과할 텐데 이런 통증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즈뮤는 그것 때문에 지금 자신이 통증마저 구현된 정교한 꿈의 세상에 갇힌 것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이 지워져서 어딘가로 성격이 좋지 못한 신의 영역에 떨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즈뮤는 일단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걸 파악하고 자신의 발목을 잡은 용의 뼈를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곳곳에서 뼈만 남은 용들이 튀어나왔지만 즈뮤는 상대적으로 작은 인간의 몸으로 그 모든 방해를 뚫고 나아갔고 마침내 저 멀리에서 또 다른 빛을 볼 수 있었다.


살점의 파도가 어느새 뼈로 된 용들을 집어삼켰지만 뼈로 된 용들은 되려 살점의 파도 속에서 천천히 빈공간이 채워졌고 어느새 살아있는 용으로 바뀌어 즈뮤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배은망덕한 것! 그날 널 훈계한다고 꼬리로 내리치는 게 아니라 아예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너만 얌전히 있었다면 나는 죽지 않고 아르드바르를 격퇴했을 거다!"



뼈일 때는 불분명했던 메아리가 살점이 입혀지고 성대가 복원되자 즈뮤의 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부모님과 마자타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즈뮤는 카르바노그에게 살해된 부모님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볼 뻔했지만 지금 뒤를 돌아보면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하고 이를 악물고 계속 나아갔다.



"돌아와! 너의 잘못을 직시해!"


"너는 일족의 수치다 즈뮤!"



전부 전능하고 사악한 신이 보여주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즈뮤는 부모님이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하마터면 발걸음을 멈출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꺾이지 않고 계속 나아갔고 마침내 빛에 닿을 수 있었다.

동굴 속의 빛으로 뛰어든 순간 갑자기 어둠이 물러났고 그녀는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동굴이 아니라 싱그러운 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여긴 어디지?'



즈뮤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가 방금 전까지 있던 망자들의 동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 대신 생명이 흘러넘치는 숲이 펼쳐져 있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즈뮤는 마력을 끌어올려보려고 했지만 아예 마력이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마력은 반응하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심문을 받고 있을 때는 마력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건만 지금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았고 즈뮤는 아직도 자신이 꿈속의 세상에 있다는 걸 깨닫고 출구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지?'



즈뮤는 지금 자신이 있는 숲이 평범해보여도 아까처럼 괴이한 현상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고 여기며 바짝 경계하며 나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일 뿐 그녀를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즈뮤는 잡생각이 머리를 채워갔다.



'그보다 대체 언제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거야?'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몸이 아르드바르의 지하감옥에 있고 자신은 정신만 꿈의 세계에 납치된 거라고 생각하며 언제쯤 탈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녀를 구속하는 족쇄는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데다 정신이 납치된 현 상황에서 몸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깊은 우려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브리트라가 탈출했으니 스목과 세르피누스에게 나와 즈메이가 잡혀갔다는 소식이 닿았을 텐데 우릴 구하러 올까? 아니야, 스목은 정에 약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휩쓸릴 용이 아니야. 보나마나 우릴 버리겠지.'



숲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적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고 즈뮤와 즈메이 남매를 구하러 오기에는 스목이 나서줄 것 같지도 않았다.

자비로운 세르피누스라면 그녀의 소식을 듣고 구해보자고 말해주겠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은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게 뻔했다.



'내가 지금까지 우리 용족을 위해 공헌한 게 얼마인데 설마 나를 버리겠어?'


'나를 버리기로 결정한다면 나도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잖아?'


'아르드바르는 끔찍한 식용종이지만 그래도 대화가 안통하는 놈은 아니었어. 여차하면 동족을 팔아서라도 동생을 지켜야 해.'



즈뮤는 머릿속에 자신의 목소리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것에 우울해졌다.

그냥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울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보다 즈메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 녀석 설마 날 팔아먹지는 않겠지?'


'아니야 동생 놈이 나를 시집도 못가서 알도 안 낳는 글러먹은 암컷용으로 보기는 하지만 그럴리가 없어.'


'그런데 진짜 동생 쪽에서 먼저 배신을 했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즈뮤는 아무런 위험한 것도 나오지 않는 숲길을 걸어가면서 되려 두렵고 슬픈 생각으로 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절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동포를 잡아먹는 아르드바르 진영에는 용족이 있었다.

대체 무엇을 약속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동포를 잡아먹는 괴물의 편에 서서 싸우는 용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용이라는 종족이 이익을 위해 동족을 배신할 수 있다는 증거였기에 그 용이 받은 제안을 즈메이가 받고 동포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난 대체 뭘 해야 돼?'



즈뮤는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고 근처의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나무들은 그녀의 울적한 심정과 달리 아주 상쾌해보였다.

그 모습과 대비되어 즈뮤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처참해보였고 머릿속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어찼다.



'브리트라도, 스목도, 세르피누스도 날 구하러 오지 않을 거야. 카르바노그에 대한 복수를 포기 못하는 멍청이 드라콘은 당연히 안오겠고. 난 이대로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서 평생동안 갇혀 지내야 하는 건가?'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을 거야. 아르드바르가 말은 통하는 놈이었지만 그 인내심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면 날 돼지처럼 도축해서 잡아먹는 건 아닐까?'


'그건 안돼! 그렇게 가축처럼 잡아먹히기는 싫어! 잡아먹히기 전에 뭔가 해야 해!'


'그럼 어떻게? 지금 빠져나갈 방법이 하나도 없는데 결국 타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살기 위해서는 동족을 팔아야 하는 건가?'



즈뮤는 머릿속에 울리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짓눌려 그 목소리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주위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화와 우울을 몰고오는 신이 손수 제작한 악령들이 뭉쳐있다는 걸 모르는 고룡은 점점 무력해지고 있었고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즈뮤는 자신의 코에 어떤 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응? 이건... 소고기 냄새?"



즈뮤는 그 냄새가 참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소고기를 굽는 냄새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눈물이 무릎을 적시고 있던 걸 뒤늦게 깨달을 정도로 정신이 궁지에 몰려있던 즈뮤는 자리에서 일어나 냄새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그떄 하늘로부터 천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썅! 거의 다 됐는데! 저 새끼들 저기서 뭐하는 거야?!


-아깝구나 알고로스! 이제 내 차례지?



즈뮤는 신성력이 담긴 신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절망에 빠진 것이 정체모를 신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누구인지 모를 여신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고 하는 소리에 즈뮤는 이것이 시련이며 누군가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즈뮤의 앞에 갑자기 새하얀 은막의 거울이 나타났고 즈뮤는 조심스럽게 거울을 만져보았다

거울은 액체로 되어 있는 건지 즈뮤의 손끝이 닿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표면에 파장이 생겨났고 즈뮤가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넣은 뒤 거울의 뒷면을 보자 그곳에는 튀어나와 있어야 할 손가락이 없었다.


즈뮤는 이 거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포탈이라는 걸 깨닫고 천천히 발 한쪽을 안에 넣었고 아무런 이상이 없자 몸 전체를 한순간에 밀어넣었다.



치이이이익!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지만 즈뮤는 자신이 제대로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꿈속의 세상과 달리 제대로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보다 먼저 느껴진 것은 뭔가가 불에 구워지는 소리였고 즈뮤는 자신의 코안에 이미 매캐한 연기와 기분좋은 고기 굽는 냄새가 공존하는 걸 깨닫고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야야야야! 고기가 타고 있잖아! 화력 좀 줄여!"


"아 진짜, 아까는 더 늘리라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



그녀가 본 광경은 자신이 갇혀있는 지하 감옥 한가운데에 고기 굽는 그릴을 가져다놓고 그 밑에 장작에 불의 숨결을 불어넣는 동생 즈메이와 손질된 소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는 아르드바르였다.

그녀는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가 주변 풍경과 구속되기는커녕 원수와 같이 소고기를 구워먹는 동생을 보고 사태를 파악하고 커다란 가슴 깊숙한 곳에 차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이 배신자 새끼!"


"아 깜짝이야! 누나 언제 일어났어?"


"이 누님은 신들한테 정신적으로 고문받으면서 견디고 있는데 원수랑 타협해서 동족을 팔아먹고 소고기나 구워먹어?! 넌 진짜 최악이다 이 용도 아닌 도마뱀 새끼야!"


"아니 누나 그게 아니라..."



불화의 신 알고로스가 불어넣은 의심은 전부 거짓일 뿐이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즈뮤가 본 순간 진실이 되어버렸다.

즈메이는 족쇄와 사슬에 묶인 채 난동을 부리는 누나를 말리려다가 즈뮤가 몸을 뒤틀면서 날뛸 때 나오는 먼지가 소고기 쪽으로 날아오는 걸 보고 기겁하며 말했다.



"누나 진정해! 기껏 구워놓은 소고기에 먼지 들어가잖아!"


"억울해! 너무 억울해! 저걸 동생이라고 진짜!"



즈뮤는 이성을 잃고 발광하기 시작했고 포이부스는 밥상 앞에서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즈뮤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시련을 준비 중이던 이난나는 날뛰는 즈뮤의 귓가에 사악한 말을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안녕? 나는 사랑의 여신 이난나야! 지금부터 널 내 사랑의 권능으로 세뇌할 생각인데 괜찮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즈뮤는 날뛰던 것을 멈추고 공포에 질렸지만 여신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즈메이와 포이부스는 저 미친년이 이제 좀 진정했구나라는 표정으로 구운 소고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을 사랑하게 만들어줄게!


"아, 안돼!"



지금 즈뮤가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고기 접시였다.

즈뮤는 이대로 소고기를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몰라 두려웠다.

그렇다고 동생 쪽을 바라볼 수도 없었고 적인 아르드바르를 보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즈뮤는 눈을 질끈 감고 저항하기 시작했고 그런 즈뮤의 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즈메이와 포이부스가 다가왔다.



"먹는 게 남는거라고 소고기 좀 먹어봐라. 딱 알맞게 구웠다."


"당장 꺼져!"


"누나 이건 다 누나를 위해서였어. 잡혀온 뒤로 쫄쫄 굶었는데 좀 먹어봐"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니까!"



즈뮤는 실눈조차 뜨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집게에 들린 구워진 살치살이 입안에 들어왔고 즈뮤는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뜰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고 소고기를 음미하였다.



"젠장! 눈물나게 맛있네!"


"그런데 왜 눈 감고 있어 누나"



즈뮤는 동생과 원수가 구워준 소고기를 먹으면서 눈을 뜨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고 사랑의 여신은 자신의 권능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려는 암컷 용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잘 놀고 있네. 재미있으니까 조금 더 지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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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눈물과 피로 씻는 손 #12 +17 20.07.13 1,300 5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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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눈물과 피로 씻는 손 #1 +10 20.06.11 1,295 51 14쪽
212 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6 +12 20.06.10 1,375 62 18쪽
211 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5 +10 20.06.09 1,327 7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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