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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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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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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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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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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글자
20쪽

눈물과 피로 씻는 손 #10

DUMMY

한정된 용돈으로 초코우유와 커피우유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꼬마를 본 적이 있는가?

진짜 어른들이 보기에는 전혀 어른스럽지 않은 커피 우유로부터 '어른스러운 분위기' 따위를 찾아가면서 실제로 더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선택하기를 꺼려하는 아이를 옆에서 보고 있자면 그런 아이는 보통 크게 셋으로 분류되었다.


첫번째 아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끝내 '커피 우유 같은거 마시면 잠 안와'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자신이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집어갔다.

두번째 아이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끝에 쬬꼬렛의 단맛은 질렸다면서 새로운 종류의 달짝지근함을 찾아 커피 우유를 집어들었다.

마지막 아이는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물론 여기서 돈 있는 아이나 딸기 우유를 제일 좋아하는 아이 등 위의 사례에 속하지 않는 예외도 충분히 많이 있지만 지금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관한 이야기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지금 포이부스가 보기에 신들이 딱 그런 상태였다.



"그냥 여유 있는 드워프 애들 투입하면 안되냐?"


"투오넬을 믿고 있다면 그래도 되고"


"그냥 최대한의 전력을 투입해서 순서대로 각개격파하면?"


"어느 쪽을 먼저 끝장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어?"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게임에서 동년배 친구를 멋지고 효율적으로 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신들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승리라는 이름의 뇌가 알딸딸해질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로 가는 길이 어디일지 고민하는 신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놀고있는 방탕한 이들처럼 보이지만 포이부스가 보기에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약 지뢰와 마찬가지였다.


아틀란 대륙의 북부와 남부, 레무 대륙 중 어느쪽에 전력을 어떻게 투입할지에 대해서 회의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회의는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올'쏜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고 하로나스는 어떻게든 레무 대륙의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만 이번 용들의 습격으로 전력 손실이 상당했기 때문에 연신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고뇌하였고 다른 신들은 이번에는 자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싸워댔다.



"순서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내가 조종해야지!"


"이런 중요한 분기점에서 너 같은 초보자가 조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럼 절충해서 내가 조종해도 되지? 나 조종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메인 파일럿은 안해봤어"



이난나, 알고로스, 프레두스 세 신은 서로 자기가 로봇을 조종을 하겠다고 다투고 있었는데 프레두스는 자기가 한번도 조종해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는 자기가 조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알고로스는 세력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전장에 초보자가 나서는 게 말이 안된다며 아날로그 조작으로도 고룡을 썰어버리는 자기가 조종해야 한다며 반대했고 이난나는 둘 사이를 중재하는 척하면서 자기가 조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서로 자신이 파일럿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들 옆에서는 한창 킴푸루샤와 드모'우레스, 이그니가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한정된 자원과 병력을 반으로 나눠서 두 대륙에 분산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오크들의 기세가 만만찮은 건 알지만 당장 급한 건 아틀란 대륙 아니오? 용들은 물론이고 한동안 잠잠하던 미나스 왕국과 미트라까지 움직이고 있건만"



이미 하로나스의 엘프들이 용들에게 꽤 심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 드모'우레스의 드워프 왕국군을 투입하자는 것까지는 모두가 동의했으나 레무 대륙과 아틀란 대륙에 병력을 분산 배치하려는 드모'우레스의 생각과 달리 킴푸루샤는 부대를 일단 아틀란 대륙 쪽으로 집중시키는 걸 요청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레무 대륙에서 오크 왕국의 기세는 상당하지만 그 피해는 릭샤카 왕국과 콰둔 왕국에 집중되고 있었고 하로나스의 만신전 휘하 왕국인 크나시아는 견제만 당하고 있을 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때문에 킴푸루샤의 일단 아틀란 대륙의 사태를 먼저 수습하자는 말은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그니와 드모'우레스는 반대하였다.



"발라테아는 우리에게 품은 원한이 깊은 편이야. 지금 당장은 급해서 견제만 하고 있지만 콰둔이나 릭샤카 둘 중 하나가 정리되면 바로 크나시아에 들이닥치겠지."


"그쪽 아직도 그 이야기 하고 있어? 그냥 궤도폭격으로 하나 정리하고 다른 쪽에 공룡 투입하자니까!"


"이번만큼은 이난나 말이 맞다."


"니들이 빨리 그거 정해야 우리가 투입될 곳이 정해질 거 아니야! 빨리 결정해!"



한창 누가 파일럿이 되는지에 대해 싸우고 있다가 옆에서 토론 중인 동료들을 보고 이난나는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면서 투덜거리고 알고로스와 프레두스까지 거기에 동의했지만 뜻밖에도 이그니가 그들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이 타이밍에 그걸 날려대면 간신히 투오넬이 궤도폭격 무기를 개발했다고 생각하게 한 게 다 물거품이 되잖아. 그건 적당히 상황봐서 써야지."


"너 그렇게 안봤는데 엘릭서 아깝다고 게임 끝날 때까지 쥐고 있다가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가 되어서야 손에 쥐고 있는거 생각나는 타입이었냐 이그니?"


"난 그런 감성파가 아니야. 철저한 효율주의자지."



포이부스는 이런 신들의 회의에 끼지 않고 하로나스 옆자리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나무 정령왕 헤카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빠, 결론은 언제날 거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총대매고 상황을 정리하거나 뭔가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안 나겠지."



포이부스는 신들의 회의와는 별개로 현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즈뮤와 즈메이 남매만 매수, 세뇌, 타락시킬 수만 있다면 전선 중 하나를 커버하게 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포이부스는 어떻게하면 고룡의 강인한 정신을 꺾어버리고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악신들의 말대로 적 중 하나를 궤도폭격으로 박살내버릴 때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아군의 타격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 치킨 개량을 끝내고 프렌차이즈 이름을 뭘로 정할지 같은 깊은 고찰과 판단이 요구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뭔가를 부수는 것보다는 더 훌륭한 튀김옷 배합을 연구하고, 더 좋은 육질의 고기를 만들어내고, 더 맛있는 소스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싶건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포이부스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면서 치킨을 뜯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수많은 타협을 해왔다.

처음 이그니가 현실에 푸른 불길로 나타나 원시부족의 주술사였던 그에게 말을 건 순간부터 포이부스의 운명은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신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신들이 뭐라고 해도 랭크 승급전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키보드와 마우스 앞에서 자세를 잡은 아이처럼 가족들과 편하고 나태하게 살면서 치킨을 뜯는다는 거청한 꿈을 가지고 있는 포이부스에게는 안타깝지만 일단 세상에 휘몰아치는 전쟁의 광기를 걷어내야 그에게 시간이 생길 것 같았다.



"포이부스"


"예, 하로나스 님."



그때 잠자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던 하로나스가 조용히 포이부스를 불렀고 사실상 엄마 같은 존재라 감히 반항할 생각을 하지 않는 포이부스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자 여신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이번 일 40%, 잡아온 용들 생각 10%, 가족생각 25%, 치킨생각 25% 비율로 정신팔고 있었죠? 눈앞의 회의에 집중하세요."


"...?!!"



포이부스는 자신의 머리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있는 하로나스를 보고 엄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들어온 엄마한테 들킨 중학생처럼 화들짝 놀랐다.

혹시 자신 역시 노예가 아닌 장난감에 불과했던 게 아닌지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생각을 시작하는 포이부스를 보고 하로나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 치킨 생각할 때마다 왼쪽 눈꼬리가 살짝살짝 떨리더군요. 그 떨리는 횟수와 딴 생각할 때 손가락을 탁자에 긁는 버릇의 비율을 보고 알아낸 겁니다. 이그니한테는 안들키게 조심하세요."


"예"



자기자신조차 그런 버릇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자기 버릇을 파악한 하로나스를 보고 포이부스는 약간의 두려움과 동시에 안도를 느꼈다.

가족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명목상이나마 그의 주신인 이그니조차 모르는 버릇을 알고 있는 하로나스가 그만큼 자신을 관심깊게 보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만약 말하는 신이 하로나스가 아니라 이그니였다면 포이부스는 무한한 공포와 절망 만을 느꼈겠지만 자비로운 여신이 말해주는 것이었기에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잡담은 이만하고, 당신은 어느쪽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여신은 아직까지 별다른 답을 내놓고 있지 않는 제사장이자 주술사이자 사제이자 자식 같은 이에게 물었고 질문을 들은 자는 어머니를 위해서 귀찮은 기분을 저 멀리 발로 차서 치워버리고 대답했다.



"이번 일에는 하로나스 님의 영토인 크나시아와 킴푸루샤 님의 백성들이 있는 레헴 왕국이 걸려있습니다. 감히 신들의 소유물 중 하나가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 같은 것이 어느 쪽이 중요하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미나스 왕국의 미트라 신과 벨파스트 왕국의 키안 신이 손을 잡기는 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그리 굳건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건... 그렇군요. 만약 고룡들이 습격을 걸어온 타이밍에 미나스 왕국군이 움직였다면 수습이 불가능한 수준의 사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미나스 왕국군은 용들의 습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죠."



제 아무리 연락과 통신 수단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시대라고 해도 신들끼리는 얼마든지 실시간으로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키안은 용들을 포섭했다는 사실을 미트라에게 알리지 않았고, 미트라 역시 적극적으로 레헴과 뉘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 시도가 차단되자 바로 포기하고 되려 대균열 인근의 영토를 야금야금 삼키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는 두 동맹이 레헴과 뉘른의 공격에 급히 손을 잡기는 했지만 서로를 완전히 믿고 있다는 건 아니라는 의미였고 포이부스는 그 틈을 찌르자는 건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고룡 가뭄의 브리트라가 우리에게 한 번 격퇴되었다고는 하지만 놈의 힘은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놈은 지금 미나스 왕국 쪽으로 도주했고 필시 스목이라는 고룡이 이끄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용들의 무리에게 합류하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나스 왕국과 우리 동맹들의 국경지대인 최전선 쪽은 간첩 색출에 적극적이지만 내륙 부분에는 아직 우리가 침투시킨 간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을 시켜서 둘 사이를 이간질해 놈들이 미나스 왕국에서 날뛰게 하는 것이 어떨지요?"



스목이 이끄는 용 무리는 처음부터 미나스 왕국을 통과해 벨파스트 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위치를 모르지만 브리트라가 이끄는 패잔병 무리는 급하게 미나스 왕국으로 들어갔고 포이부스는 이미 전투 직후 모르테스의 팀을 붙여놨기 때문에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즈뮤를 심문한 결과와 전황으로 보아하건데 미트라 신과 키안 신과 용들 사이에는 큰 신뢰가 없다는 게 판명되었고 브리트라는 전투로 알아본 결과 성미가 굉장히 급하기 때문에 약간의 자극만 준다면 충분히 미나스 왕국 내에서 미쳐 날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군요. 한번 진행해보세요."


"모든 것은 종족의 어머니이신 하로나스 님을 위해!"


"손발이 오글거리니까 그런 건 하지 마세요 포이부스"


"옙"



포이부스는 장난스럽게 대답을 하면서도 모르테스가 가지고 있는 번개 정령 통신기와 연결된 통신기를 꺼내 지시를 하달하였고 몇 분 뒤 모르테스로부터 즉각 시행하겠다는 응답이 날아왔다.

제 아무리 전능한 미트라 신이라고 해도 고룡과 고룡이 이끄는 용 무리가 국내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레헴 왕국을 침공할 여력 따위는 남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었다.



"모르테스 같은 베테랑이 맡았기에 처참하고 끔찍한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대는 고룡입니다. 모르테스가 사소한 실패를 했을 경우를 대비한 방어병력 재구성은 꼭 필요합니다."


"결국 병력 투입은 필수라는 소리군요. 그럼 슬슬 정리합시다."


톡톡



하로나스는 탁자를 크게 2번 손가락으로 쳐서 의견이 개껌 대신 비글 입에 물린 베개처럼 사분오열된 신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말했다.



"아틀란 대륙과 레무 대륙에는 드모'우레스의 의견대로 드워프 병력을 동일하게 분산배치하고 그 대신 궤도폭격 플랫폼들을 아틀란 대륙 쪽으로 돌리고 미트라와 키안 사이에 이간계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도 하로나스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로나스의 말에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올'쏜 역시 동의했으나 킴푸루샤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눈치였고 로봇을 가지고 다투던 신들 중 하나인 알고로스가 물었다.



"그럼 갓 엔진은?"


"로봇은 일단 케트라 산의 본부에서 대기. 상황을 봐서 사태가 급하게 돌아가는 쪽에 투입하도록 하죠. 그 전까지 알아서 파일럿 정하세요."


"그보다 잡아온 고룡들 복종시켜야 하는데 도와주실 분 계십니까? 가급적이면 말로 설득하고 싶은데 고집이 워낙 세서 저로는 벅찹니다."


"네가 그것들을 안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살다보니 별 일을 다보는군."



포이부스가 즈뮤를 말로 설득하고 싶다는 말에 하로나스를 제외한 신들 대다수가 놀라며 말했고 포이부스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저를 치킨에 완전히 미친 놈으로 보고 계시는데..."


"그럼 아니냐?"



이그니가 코를 후비적거리면서 하는 말에 포이부스는 너무 정론이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지만 정신차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건 맞지만 저 같은 놈도 정도와 자제라는 단어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잡아온 저 즈뮤라는 고룡은 상당히 강력하고 유용한 전력이 될 게 분명합니다. 가급적이면 사지 멀쩡한 상태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포이부스는 비록 자신에게 패배했지만 1:1로 자신과 싸워서 한순간이나마 우위를 점한 즈뮤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였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원한으로 미쳐 날뛰는 브리트라나 즈메이와 달리 자신에게 큰 원한이 없이 가족들과 친척들이 복수하겠다고 뛰쳐나온 걸 따라왔다는 점도 영입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고룡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당장 무언가 즐길 거리를 찾는 신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결국 포이부스는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절 도와주시는 분의 의견을 참고해서 마도 공학 메카 공룡의 다음 Batch 2 버전의 개선 방향을 결정 하겠습니다!"


"팔다리만 멀쩡하면 되는 거지?"


"짜식이 그런 건 이 누님한테 진작 말하지 이런건 내 전문이야! 내가 누구냐! 사랑의 여신 이난나! 마음만 먹으면 원수끼리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나라고!"


"다 비켜! 이번만큼은 양보 못해!"



그 말이 나오자마자 알고로스, 이난나, 프레두스가 앞다퉈서 즈뮤에게 가려고 하였고 포이부스는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낸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간 직후였다.

포이부스는 그때 어쩌다보니 시선이 옆으로 향했고 코카트리스 병아리들에게 무등을 타고 자신들을 몰래 엿보고 있던 작아진 즈메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즈메이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누나에게 가고 있는 신들을 멈추려고 달려가려고 했지만 이대로 즈메이를 놔주면 신들에게 살해당할 것 같았는지 코카트리스 병아리들이 즈메이를 붙잡고 뜯어말리고 있었다.


코카트리스 병아리들에게 잡혀서 바둥바둥하던 즈메이는 시선을 느낀 건지 포이부스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포이부스는 방금 전까지 신들을 보고 있던 즈메이의 눈에서 신들에 대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포이부스는 천천히 즈메이에게 걸어왔고 포이부스를 본 코카트리스 병아리들이 즈메이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즈메이는 포이부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신들을 막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병아리만큼 작아진 용은 너무 급했던 건지 바닥의 돌뿌리를 보지 못하고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포이부스는 넘어져서 바닥에 구른 작아진 고룡을 손바닥 위에 올리며 말했다.



"뭘 하려고?"


"놈들이 누나에게 못 가게 막을 거야"


"어떻게?"


"마력도 봉인당하고 체구도 작아져서 힘도 약해졌지만 물어뜯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누이를 위해 신들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즈메이의 기상은 높게 사줄만했지만 기상과는 별개로 그래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포이부스는 알고 있었다.



"그만둬라. 지금 그 모습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다. 깨물어봤자 이갈이하느라 아무거나 물어뜯는 새끼고양이 취급당할 뿐이다. 네가 변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태어날 때부터 강자인 용이 언제 이런 취급을 당해보겠는가?

즈메이는 신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제대로 깨닫고는 충격을 받아 3개의 머리를 휘청거렸고 포이부스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았다.

신들에게 용은 그저 다루기 힘든 위험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장난감에 불과하기에 결국은 신들이 투정을 부리면서 후려치면 박살나게 되어있다.

하물며 포이부스와 하로나스에 의해 극도로 약해진 현재의 즈메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즈메이가 이난나의 발목을 물어버린다면 아마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자신의 발목을 문 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차버릴 것이다.

뒤늦게 자신이 찬 것이 작은 삼두룡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즈메이는 몸이 터져서 죽어있을 것이다.

지금 포이부스가 즈메이를 막는 것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죽인 삼두룡은 딱 한 마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너희 부모였나?"


"그건 마자타브 아저씨였어."


"그럼 넌 왜 나한테 덤빈건데?"



포이부스는 부모의 원수도 아닌데 자기한테 그렇게 달려들었던 거냐며 즈메이를 살짝 이상하거나 혹은 모자란 아이 보듯이 바라보았고 즈메이는 벌컥 화를 냈다.



"마자타브 아저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우릴 돌봐주신 분이라고!"


"용족의 원한에 대해 나한테 말할 때 언급이 없던 걸 보면 네 누나는 그 아저씨 생각을 별로 안하는 것 같던데?"


"아저씨가 예전에 한번 누나 훈육한다고 꼬리로 등짝을 쳤거든"


"어쨌든 너랑 나 사이의 원한은 그리 안 깊다는 소리지? 네 누나를 위해서라면 나와 조금 타협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때? 아직 신들께서는 포탈에 도착하지 않았다."



즈메이는 포이부스의 제안에 살짝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3개의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바닥을 보면서 고민하였다.

마자타브 아저씨의 원한과 누나의 목숨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이미 즈메이의 마음속에 대답이 나왔지만 오래된 원한을 한순간에 누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즈메이는 결국 3명의 신들이 서로 먼저 포탈을 나가겠다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원수의 앞에서 3개의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


누이를 위해 고개를 숙인 용의 모습에 포이부스는 웃으면서 용을 데리고 포탈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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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눈물과 피로 씻는 손 #1 +10 20.06.11 1,295 51 14쪽
212 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6 +12 20.06.10 1,375 62 18쪽
211 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5 +10 20.06.09 1,326 7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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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3 +23 20.06.05 1,506 5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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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에라스무스의 고생길 #2 +10 20.05.28 1,455 68 12쪽
202 에라스무스의 고생길 #1 +15 20.05.27 1,804 62 11쪽
201 죽음을 파는 자 #7 +15 20.05.26 1,445 6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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