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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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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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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19.11.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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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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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글자
17쪽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7

DUMMY

알고로스 님이 봉인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토굴은 매우 음산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내려온 지점은 흙과 돌이 섞여있었으나 앞쪽으로 쭉 뻗은 공간은 석회암 지대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흙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종유석과 석순이 깔려있는 석회암 동굴을 사람이 깎고 가공해서 벽에 온갖 마법이 스며든 부적을 붙이고, 신의 말씀을 기록한 기다란 양피지에 신성력을 담은 인장을 성유로 굳힌 밀랍으로 봉하는 등 여러가지 조치가 취해진 이곳은 우리가 찾던 곳이 확실했다.

중간중간 물이 스며드는 곳이 있는지 축축하고 퀴퀴한 냄새가 동굴 전체에 퍼져있었고 팔라딘 모르테스는 손에서 마법의 빛을 띄워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함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너머에 암석이 아니라 흙으로 쌓인 지점이 있는데도 짐승이나 벌레가 보이지 않는 건 꺼림칙하군요."



세상에는 땅속에서 살아가는 짐승이나 벌레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것들은 틈만 있다면 계속 땅을 파내려가기 때문에 파내기 쉬운 흙이 있는 지점이 있다면 필시 벌레가 있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토굴과 이어지는 석회암 동굴에는 아주 작은 도마뱀붙이나 벌레 같은 것조차 없었다.



"가자"



모르테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했다.

일직선으로 뚫려있는 석회암 동굴은 어디서 유입되는지 모를 미세한 습기로 벽이 번들거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부적과 신성한 인장들이 벽에 붙어있었다.

대체 이 부적과 인장들은 어떻게 이런 축축한 벽에 붙어있는 걸까?

마법일까? 아니면 뭔가 과학적인 조치를 취해놨기 때문일까?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선두에 있던 모르테스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정지 신호를 보냈고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계입니다. 반응하는 타입은 아니고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차단 방식입니다."


"제가 해제하겠습니다."



마법에 능숙한 팔라딘 오리스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들어올렸다.

오리스의 검의 표면에는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주문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오리스는 검으로 지면에 마법진을 그린 뒤 조심스럽게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보라색 연기가 결계 쪽으로 흘러가더니 결계의 표면을 따라 막처럼 씌워졌고 팔라딘 오리스는 그 상태로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리스가 주문을 다 외우기도 전에 연기가 흔들거리더니 연기는 스르르 동굴 안쪽으로 한꺼번에 흘러갔다.



"뭐지?"


"문제가 있나?"


"너무 쉽게 뚫렸습니다. 신들의 봉인이라면 더 철저하게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마치 작은 짐승이나 어린애들을 막기 위한 것 같습니다."



오리스는 자신이 불러낸 보랏빛 연기를 다시 되돌려보내고는 결계가 있던 지점을 확인했으나 그녀가 발견한 것은 결계를 유지하는데 사용되던 마력석 하나 뿐이었다.

오리스는 모르테스에게 의견을 묻는 눈빛을 보냈고 모르테스는 잠깐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최소한 물리적, 마법적 함정은 없어. 하지만 신성마법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 방금 결계해제가 이곳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말 못해."


"일단 전진한다. 결계가 깨진 뒤에 알고로스 님의 기운이 한층 짙어졌다."



일단 결계가 해제된 뒤 알고로스 님 특유의 비릿한 신성력이 한층 더 강해진 게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 전진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고 나는 일행들과 함께 동굴을 나아갔다.



"야, 제니스."


"왜?"


"너 전에 나한테 빌려간 3아르겐툼은 언제 돌려줄 거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데 마르세우스?"



함정도 없고, 적도 없고, 위험도 없는 것 같자 맨 뒤에 있던 팔라딘 둘이 잡담을 시작했고 다른 팔라딘들은 그걸 짜증난다는 듯이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장 앞에 있는 모르테스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얼굴로 근처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정지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또 결계입니다."


"이번 건 어때?"


"보면 모르겠어 오리스? 또 아까랑 같은 허접한 수준의 결계야."



모르테스는 이렇게 약한 결계를 왜 쳐놓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에게 말을 건 팔라딘 오리스에게 살짝 날카롭게 말했다.

오리스는 신중을 기하며 결계를 지켜보고, 마력을 흘려보내고, 잠깐 보더니 아까 같은 연기를 불러내지도 않고 그냥 검을 휘둘렀다.



"해제했습니다. 이 정도 결계라면 그냥 한곳에 여러겹 쳐놓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관리하기도 쉬울 텐데 대체 왜 이렇게 해놓은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리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아까와 같은 마력이 다 떨어진 마력석을 주워서 내게 보였다.

오리스의 눈에는 이렇게 허술한 방비로 신의 봉인을 감싸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감정이 엿보였고 그녀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내게 말했다.



"아까 위에서 싸운 표범 수인 마법사들의 실력이라면 이것보다 더 강한 결계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허술한 결계로 봉인을 지키고 있었다고 믿기 힘듭니다."


"함정이나 가짜 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예"



오리스는 살짝 걱정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조금 늦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함정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로스 님의 기운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결계를 하나씩 해제할 때마다 그분이 저곳에 있다는 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운은 강해지고 있다. 알고로스 님이 저기에 계신다는 의미지."


"혹시 기운만 뽑아다가 이곳에 풀어놓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방비가 너무 허술해서 되려 의심됩니다만"



토굴에 들어온 뒤로 조용히 있던 이젝투스가 한 마디 하였고 나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이젝투스. 우리는 모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마을을 향해 공성용 마법을 날리고 잔해를 수색하는 게 편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너만큼 살인을 즐기는 게 아니야 멍청아."


"뭐?!"



이젝투스가 조용히 투덜거리는 걸 들은 팔라딘 중 하나가 대놓고 말했고 그 말에 이젝투스는 발끈했으나 서로 눈싸움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다들 방금 전 표범 수인들과 전투를 벌이며 달아오른 싸움의 열기가 덜 식은 것 같다.



"사소한 잡담은 알고로스 님의 봉인을 푼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전진한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 수록 알고로스 님의 기운이 짙어지다 못해 아예 알고로스 님의 뱃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계도 없이 그냥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구불구불한 동굴 길만 있었고 말 없이 걸어가던 팔라딘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너무 어두운데 조명 좀 더 밝게 하면 안되냐 모르테스?"


"..."



팔라딘 제니스는 선두에 걸어가며 함정과 결계를 식별 중인 모르테스에게 말했으나 모르테스는 대답없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함정을 찾고 있었다.



"야 내 말 듣고 있어?"


"조용히 해 지금 생각 중이야."


"그깟 조명 좀 더 밝게해주면 어디 덧나냐?"


"너도 할 수 있잖아."


"지금 내 위치에서 조명 띄워봤자 효율이 떨어지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지."



팔라딘 제니스는 투덜대며 빛의 구슬을 머리 위에 띄웠고 주변이 한층 밝아졌으나 모르테스의 앞까지 비춰지지는 않았다.

계속 동굴을 걸어가며 나 자신의 머릿속의 생각들과 팔라딘들의 생각들이 동굴 벽에 반사된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이 자식들 엄청 시끄럽게 구네'


'이거 혹시 함정 아니야?'


'지금 이 길이 마법적인 환각 같은 건 아닌데 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지?'


'제니스 자식 쓸데없이 빛을 하나 더 띄우네. 그 마력으로 탐사나 도와줄 것이지.'



동굴은 점점 지하로 파고드는 경로로 꺾이고 있었고 곳곳에 물이 고여있는 지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조명으로 쓰고 있는 마력의 불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고 아무 일도 없는 동굴 탐험이 계속되면서 온갖 잡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제대로 된 치킨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치킨 하나 뜯겠다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차라리 모든 걸 던져버리고 치킨 연구에 몰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신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치킨 연구나 하고 싶은데 가족과 신들이라는 족쇄가 날 놔주지 않는다.



"야! 쓸데없이 마력 낭비하지 말고 빛 좀 내려!"



그때 뒤쪽에서 마침내 짜증이 폭발한 팔라딘 마르세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세우스는 제니스의 바로 뒤에 있어서 제니스가 띄운 마력의 불빛을 정면으로 봐야해서 눈이 부신 모양이었다.



"괜히 어둡게 했다가 기습당하는 것보다는 나아."


"내가 눈이 부셔서 안 보이는게 기습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머저리야!"


"뭐 임마?!"



슬슬 제니스와 마르세우스 사이에 감정이 격해지는 걸 보니 나는 왜 드루수스를 안데려오고 이놈들을 데려왔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사실 그놈의 짜증나는 가족과 치킨도 버리면 내 인생이 훨씬 편해질....



"잠깐!"



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의 그림자가 물러나고 깨달음이 내 뇌수를 관통하였다.

대체 왜 지금까지 이걸 깨닫지 못했던 거지?



"뭡니까? 지금 이 자식이랑 결판을 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빨리 말하십쇼."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땅꽁 못 먹는 놈아"


"저런 머저리들이랑 동료라니! 쪽팔려서 얼굴을 못들겠어!"


"저런 머저리들? 마르세우스는 그래도 괜찮은 녀석이야! 너 같은 싸게 구는 년이 욕해도 될 녀석이 아니다!"


"뭐 이 새꺄?! 오리스! 지금 이젝투스 녀석이 날 모욕했어!"


"다들 진정해!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정지를 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팔라딘들 사이의 불화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허나 나는 이제 이유를 알았다.


지금 우리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치킨과 가족을 싫어하고 부담스럽게 느낄 리가 없다.

나의 치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불멸적인 것이며 이것들을 한 순간도 버릴 리가 없건만 나는 치킨과 가족에 대해 염증을 느꼈다.

내가 치킨과 가족을 싫어할 리가 없으니 지금 나는 정신공격을 받고 있다!

나만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정신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손바닥에 알고로스 님을 제외한 만신전의 신들로부터 비롯된 신성력을 담아 내리치자 우리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그림자들이 터져나가자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고 팔라딘들은 잠깐 멍해진 채로 멈춰섰고, 방금 막 할버드와 검을 양손으로 쥐려고 하던 마르세우스와 제니스도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였습니까? 대체 뭡니까? 우리가 왜 싸우려고 했던 겁니까?"


"이게 바로 그 원인이다 마르세우스."



나는 신성력을 담은 손으로 터지지 않은 그림자 하나를 움켜쥐었다.

녀석은 내 손길에 붙잡혀서 어떻게든 달아나려고 발버둥치며 내 신성력을 갉아먹기 시작했지만 비물질적인 몸은 내 신성력을 담은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움켜쥐고 비틀어서 찢어버렸고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망령은 그대로 소멸해 사라졌다.



"이것들은 알고로스 님의 힘을 받아 지상을 떠도는 망령들이다.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을 갉아먹는 걸 보니 아마 알고로스 님이 창조신의 봉인에서 탈출하려고 어떻게든 발버둥치신 결과물이겠지."



어떻게 이 망령들이 알고로스 님의 힘을 흡수하고 알고로스 님의 권능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들이야말로 릭샤카 왕국에 퍼져있는 그림자 괴물의 정체였고 팔라딘들 중 하나가 선두에 있는 모르테스가 빛을 비추고 있음에도 계속 어둡다고 느낀 것은 아마 이것들이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증거로 내 신성력 폭발이 영향을 끼친 곳은 모르테스가 빛을 띄우고 있는 걸 감안해도 처음봤을 때보다 훨씬 밝아진 상태였다.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첫번째 결계가 깨진 시점에서 동굴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이놈들의 뱃속에 들어간 상태나 다름 없는 상태였고, 이상함을 눈치챌 때 쯤에는 이미 신성력을 전부 갉아먹힌 상태였을 테니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토굴이라는 전설이 생긴 것이었군요."



팔라딘 오리스는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는 그림자들을 보며 마법을 준비했고 나는 오리스를 제지했다.



"봉인은 이 근처에 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라."



팔라딘들은 하로나스 님의 신성력을 몸에 방어막처럼 두르고 뛰기 시작한 나를 따라왔고 시커먼 어둠과 그림자가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를 삼켜버렸다.

지난 2천년 동안 알고로스 님이 내뱉은 신성력을 빨아들이며 생겨난 그림자 망령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고 팔라딘들의 신성력 방어막이 갉아먹히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팔라딘들은 옆에 있는 동료의 턱에 어퍼컷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날 따라왔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동굴은 어느 순간 끝났고 그곳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멘 물건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쪽은 검은색이고, 한쪽은 붉은색인 심장은 알고로스님의 상징이다.

그 상징은 그저 나무로 깎아낸 상징에 불과해야 했으나 동굴 끝에 도착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심장의 상징은 그 뜨거운 맥박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심장 조각이 살아 숨쉬고 있는 광경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기괴해보였고, 수많은 그림자 덩어리들이 소용돌이치며 그 심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치킨은 허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거야!'


'대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나는 잘못이 없어! 다 옆에 있는 녀석 때문이야!'


'다른 놈들을 전부 처죽이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치킨은 사실 맛없는데 세뇌당한 게 아닐까?'


'사실 조류의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과일가루 튀김이야 말로 진정한 치킨인 게 아닐까?'


'아이스 치킨도 잊지 말라고! 뒤에 있는 녀석이 맛있다고 했어!'


'민트초코 정어리 볶음 치킨이 맛있다고 하는 녀석이 저기 있네.'



온갖 의심과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속삭임들은 극에 달했고 팔라딘들 중 몇 명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내 귓가에는 그것들이 치킨을 중심으로 불화를 조장하는 걸로 들리나 팔라딘들의 귓가에는 다른 소리로 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들을 감싸며 조롱하고, 모욕하고, 거짓말을 불어넣으며 정신을 뒤흔들지만 놈들의 속삭임은 내 분노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이 닭다리 뼛다구로 강냉이를 수확&폐기해버릴 후레자식들을 다봤나 뭐가 어쩌고 저째?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민트초코 정어리 볶음 치킨? 눈이랑 콧구멍 위치를 수평으로 맞춰줄까? 잠깐만? 얼굴도 없고 입도 없어서 미각세포는커녕 혀도 없는 것들이 어딜 까불어!"



그림자 괴물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 진심과 분노를 담은 주먹이 다가오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내 주먹은 알고로스 님의 심장 상징을 감싼 그림자 덩어리들을 그대로 분쇄하였고 나는 엑토플라즈마로 변해가며 스르륵 녹아내려 소멸하는 그림자들을 짓밟아줬다.


하지만 분노에 휩싸여서 내가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알고로스 님은 자신을 봉인한 매개체인 심장 상징 밖으로 신성력과 권능의 파편들을 쏟아내고 있었으나 처음 여기에 접한 것은 지상을 떠도는 망령들이었다.

망령들은 알고로스 님의 봉인을 약하게 하는 대신 게걸스럽게 힘을 빨아먹으며 증식했고 알고로스 님은 봉인이 약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알고로스 님의 상징을 가지고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하지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어서 알고로스 님의 상징을 들지 못하고 허둥대는 그림자 하나를 찢어죽이고 뜨겁게 고동치는 알고로스 님의 상징을 들어올리며 내가 지닌 모든 마력과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불화의 신이시여, 그대의 죗값을 치를 생각이 있다면 이제 더는 회피하지 마소서. 이제 그만 감옥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소서!"



이전과는 다르게 봉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심장 상징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 불화의 신의 정수가 서서히 흘러나오며 틈을 벌렸다.

팔라딘들은 내 뒤에서 신성마법을 시전하며 나에게 힘을 보태주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갈라진 틈새에서 역설적인 밝은 어둠이 뿜어져나와 형체를 이루더니 지하 동굴 전체를 무너뜨리며 선포하였다.



[세상이여! 신들이여! 내가! 나 알고로스가 돌아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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