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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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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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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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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디스코르디아의 기나긴 밤 #2

DUMMY

바람의 교단은 대륙 간의 항해로 교역을 하는 것이 활성화된 뒤에 상당히 많은 신자를 끌어모았다.

바람은 대양을 항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고 항해사들은 바람을 다루는 바람마법사들로 뽑는 게 상식이 될 정도로 중요시되어 바람에 대한 신앙은 수많은 대륙에 퍼졌고, 그에 맞춰서 수많은 종족들이 바람의 신의 사제를 자처하였다.

바람의 신의 축복은 종족과 대륙을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내려졌기에 바람 교단은 수많은 지파가 있으나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본부나 발상지라고 할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바람의 신 발라테아는 오크들의 창조주였지만 이 사실을 숨겼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오크들은 고의로 자신들의 왕국 스칼라베이에 있는 교단을 바람 교단이 아닌 초록 교단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바람 교단과 다르다는 사실을 계속 어필해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초록 교단을 오크식으로 뒤틀려버린 바람 교단의 스칼라베이 지파 정도로 여겼을 뿐, 설마 이 초록 교단이야말로 바람 교단의 본부이자 발상지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초록 교단은 바람 교단의 수많은 지파에 대해 지금까지 손 놓고 간섭도 하지 않았으나 이 분위기는 최근들어 바뀌었다.

각 바람 교단의 지파 상층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바람의 신의 중재 앞에서 비밀리에 초록 교단의 간부로 등록되어 초록 교단에 합쳐졌고, 이 사실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금 초록 교단의 본부 신전의 중앙 홀에 바짝 엎드려 있는 이 남자, 아이올루스는 그런 식으로 포섭되어 진실을 알고 있는 자 중 하나였다.


그는 바람 교단의 크나시아 지파의 책임자였고 얼마 전, 바람의 신 발라테아의 계시를 듣고 제멋대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일을 벌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해버렸다.

바람의 신이 사태를 파악하고 급히 크세르크 지부의 모든 인원을 초록 교단의 본부로 소환했을 때, 아이올루스는 크세르크에 쌓아뒀던 모든 걸 포기하고 달아나야 했으며 지금 크나시아의 수도 크세르크에서는 괜히 지하와 뒷세계에 숨어있던 다른 교단들이 아이올루스 일당을 찾는 군인들에 의해 하나씩 박살나고 있었다.



[놈이 오고 있다! 놈이 오고 있어!]



바람의 신 발라테아는 지금 초록 교단의 본부에 강림해 있었다.

그는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으나 바람으로 이루어진 그의 손톱을 물어뜯어봤자 다시 휘몰아치는 폭풍이 그의 손톱을 대신할 뿐이었다.

바람의 신은 연신 손톱을 물어뜯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엎드려서 오크 사제들의 눈총을 받는 인간 사제 아이올루스에게 말했다.



[내가 괜히 나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회를 기다리면서 대적을 상대할 준비를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내 부하놈들은 죄다 내가 눈을 떼는 순간 사고를 치는 걸까? 코코코 녀석의 피가 너무 진하게 남은 거 아니냐? 그런데 넌 인간이구나. 혹시 하프 오크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야. 죽을 죄 정도는 아니야. 그냥 짜증나고, 열 받고, 무서울 뿐이지. 지금이라도 아바리 녀석 쪽으로 손을 써야 하나?]



바람 교단이 크나시아 제3마법병단을 사주해 포이부스 일행을 습격한 건 바람의 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바람의 신은 전 대륙에 바람 마법사와 항해사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바람 교단을 관리하느라 너무 바빴고, 직접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것에 들뜬 멍청한 크세르크 지파의 신도들은 신에게 과잉충성을 보였다.

포이부스는 바람의 신이 이번 사태에 개입했다는 걸 눈치 챈 상태였고 바람의 신은 2천년 전에 자신의 세력이 포이부스에 의해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던 악몽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신경 과민 상태로 말했다.



[그 괴물 새끼는 그 당시에도 믿을 수 없을만큼 강한 놈이었어. 어떻게 제대로 된 축복 하나 안 받은 필멸자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최고의 영웅을 죽일 수 있을까? 그것도 모자라서 내 코코코의 심장을 뜯어먹고 녀석의 힘을 거의 다 빨아가기까지 했지! 이그니 녀석이 허리가 두동강 날 뻔한 나를 놀려대며 낄낄대던 게 아직도 잠 잘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 안하냐?]


"..."


[그 빌어처먹을 빨갱이 괴물 녀석은 혼자서도 도시 정도는 얼마든지 밀어버릴 수 있는 새끼라고! 알아들어? 니가 어떤 괴물을 끌어들였는지 이해하냐? 그 괴물 새끼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려놓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해봤냐고!]


"으어어어!"



바람의 신이 엎드려있던 아이올루스의 귀를 잡고 그를 들어올리자 아이올루스는 귓바퀴를 통해 끊임없이 요동치는 폭풍으로 이루어진 발라테아의 몸 때문에 귀가 먹어버렸다.

그는 고막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리는 귀를 감싸지도 못한 채 비명을 지를 뿐이었고 발라테아는 그를 놔버리고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고 사제!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발라테아 님과 돈은 항상 옳은 법입니다! 발라테아 님에게 버금갈 정도로 위대한 돈을 좀 얹어주면 녀석을 회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만 녀석은 돈으로 회유될 녀석이 아니다. 녀석은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한다]


"그럼 녀석이 원하는 걸 돈으로 사서 유혹하면 됩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액수가 부족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도 눈 먼 채로 사용되면 쓸모가 없는 법. 녀석이 원하는 것에 대한 지혜를 내려주신다면 녀석을 회유해보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왕이자 교황이며 사제인 오크의 대답에 발라테아는 분노를 삭히고 잠깐 생각을 하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놈이 정말로 내가 관여했다는 걸 모를까? 아니야, 그놈은 이상한데 집착을 하는거지 멍청이는 아니니 알고 있을 거야. 내 말을 안 듣는 명예 밖에 모르는 베스코스 쪽으로 유도해서 공멸을 노려봐야 하나? 아니지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건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해. 그럼 남은 건...]



바람의 신은 생각보다 늦게, 그러나 다급하게 오크들에게 물었다.



[아직 비장의 패를 보일 단계는 아니다. 그리고 비장의 패를 제외하고도 효과적인 패가 하나 있지. 내가 지난번에 치킨을 어떻게 한다고 했지?]


"너무 바쁘셔서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간 없다고 하셨습니다"


[안건은 처리했나?]


"아직입니다. 아모스 접경지역을 다른 신들도 노리고 있으니 군대를 배치했다가 상황을 봐서 점령하는 게 더 중요하다 말씀하셔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당장 내 이름으로 모든 지파에 명을 내려라. 과일 가루 치킨을 금지하고, 진짜 치킨에 대해 공표한다. 이에 반발하는 놈은 내 이름으로 일족을 멸해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결정에 대한 반발은 나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예외는 없다는 걸 명심해라!]



최고 사제는 너무나도 급진적인 개혁안을 내놓는 신에게 살짝 놀랐지만 발라테아가 방금 전까지 극도의 신경과민에다 분노에 빠진 상태였다는 걸 떠올리고는 지금 그에게 거스르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순순히 복종하였다.



"예, 돈보다 위대하신 발라테아 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이를 거스르는 이들은 가장 중요한 돈을 빼앗기고 그 다음 중요한 목숨마저 빼앗길겁니다!"



최고 사제이며 동시에 스칼라베이의 왕인 햅우거 3세는 여전히 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아이올루스를 발로 차서 치워버리고 명을 내렸다.

단 1주일 만에 세상의 모든 발라테아를 숭배하는 바람 마법사들과 바람의 사제들은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네트워크를 통해 햅우거 3세가 왕이 아닌 최고 사제로서 명령을 공표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시간부로 부정하고 매우 이단적이며 지금껏 신들의 뜻을 왜곡하고 신성한 재물을 부정하게 갈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악한 이들의 상징인 과일 가루 치킨의 말살을 명한다. 위대하고 신성하며 부유하신 바람의 신께서는 자신들 몰래 이러한 끔찍한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시고는 통탄을 금치 못하셨으며 차후 치킨을 과일 가루 튀김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이들은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며 모든 신전과 지파의 요리사들은 진정한 치킨의 조리법을 터득할 것을 명한다. 위대하고 부유하신 발라테아 님의 대리인, 최고 사제 햅우거 3세 직인.



##



나의 이름은 탄'메펫! 이하 생략!

우리는 지금 며칠인지도 모를 여행 끝에 릭샤카 왕국의 부라나 지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라나 지방의 이름 모를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신전 앞에 모여서 항의를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사제님만 치킨을 맛있게 먹었냐옹!"


"나도 그런 줄 몰랐다옹!"


"어쨌든 저희는 확실하게 전했다옹? 5년 내로 모든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치킨을 뜯어고치셔야 합니다옹."



고양이 수인들은 아예 고양이가 직립보행하고 있는 털이 수북한 모습부터 인간이 고양이 귀와 꼬리만 달린 수준인 모습까지 다양했고 얼굴까지 완벽한 고양이인 기사들이 이젠 자기들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고, 큰일이라면 큰일이다옹. 앞으로 이전까지 부르던 치킨을 과일 가루 튀김이라고 부르고, 새나 공룡의 고기를 기름에 튀긴 걸 치킨이라고 부르라는 신전과 왕가의 명이 내려왔다옹. 옆의 야만적인 오크 왕국처럼 이 사항을 위반한다고 목이 잘리지는 않으니 천천히 바꿔나가면 된다옹."



갑옷을 입은 고양이 기사들 중 젊은 기사가 마르세우스의 질문에 친절하고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마르세우스는 고양이과 수인들의 관습대로 캣닢의 꽃과 잎에 은화를 싸서 기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별 이상한 걸로 다 난리군. 그럼 수고하슈"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아직 우리 담당 마을이 14개나 남았다! 그리고 너! 자꾸 냐옹냐옹하는 사투리 좀 쓰지 말라고 했지! 촌놈 같아 보이잖아!"


"죄송하다옹!"



까맣고 윤기나는 털이 얼굴에 난 귀엽고 젊은 고양이 기사는 노란 치즈빛 털을 지닌 고참에게 혼나면서 떠나갔다.

그들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신전 앞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걸어간 우리는 잠깐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결국 이 불편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마가렛이 내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이게 당연한 일이지! 아니, 뭘 그렇게 놀라냐 너흰? 이게 올바르게 된 치킨이다."


"꾸이?!"


"넌 왜 놀라는 건데..."



아니 왜 다들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 시행되는 걸 보고 놀라는 건지 모르겠다.



"저희야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뒤집히는 걸 보니 충격이긴 하네요."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갑자기 진짜 치킨에 대한 공표라니? 그것도 2개 왕국이 거의 동시에! 혹시 레무 대륙만이 아니라 뮤 대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저희야 누명을 벗을 기회가 온 것이니 기쁘지만 뭔가 꺼림칙한데요"



마가렛과 에라스는 물론이고 엘프들까지 자기들끼리 수근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지금이라면 진정한 치킨에 대해 모르고 자란 이들에게 처음보는 치킨은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는가에 대한 논문을 29페이지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게임에 참가한 신들은 게임 중에는 자기 신도들이 제물로 바친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룰이 있다. 아마 신들도 과일 가루 입힌 맛없는 튀김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사제들한테 한 소리 한 게 아닐까?"


"그런가요?"



이제와서 풍습처럼 자리잡은 과일가루 치킨이 퇴출되고 있다는 건 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우리는 부라나 지방을 수색하기 위해 그나마 부라나 지방에서 가장 큰 마을인 칼미나 마을의 여관에 자리를 잡으려 하였다.



"20명이 들어갈 방이 없단 말입니까?"


"여관주인인 제가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런 시골에 여관방이라고 해봤자 10명 정도 묵으면 다행인 수준이에요."


"그렇다옹! 우리 여관 좁다옹! 그래도 10명 정도는 받을 수 있다옹!"



회색 고양이 수인인 여관주인과 그 딸인지 아들인지 모를 아이는 자신들의 자랑하기 힘든 낡은 여관의 상태를 지적하며 말했다.

확실히 20명이 묵을 수 있는 크기는 절대 아니었고 이 근방에 여관은 이것 하나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촌장한테 허락받고 야영이라도 해야겠군."



누구는 여관에 묵게 하고, 누구는 야영하면 차별대우라는 소리가 나올 테니 그냥 전부 야영을 하던가 해야겠다는 판단 하에 우리는 칼미나 마을의 이장을 찾기 위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촌장님? 농사 지으러갔다냐! 저기 언덕 2개를 넘고 개울 하나 건넌 다음 숲 옆에 논과 밭이 있는데 거기에 있을 거다냐!"



당연한 소리지만 촌장이라고 떵떵거리며 쉬고만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촌장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일을 하러 나간 상태였고 에라스가 내 귓가에 조용히 말을 하였다.



"이거 무슨 극장에 종종 나오는 초보 희곡작가들이 쓰는 불쏘시개급 대본 중간에 나오는 분량 채우기용 연계 임무 초입부 같은 느낌이 나는데요?"


"나도 지금 그 생각났네. 이러고 분명 촌장한테 갔더니 촌장과 농사꾼들이 몬스터에게 습격당하고 있겠지. 그게 아니면 이상한 놈들한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거나."


"요즘 최신 유행은 거기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찾아가고, 거기도 없어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식으로 뺑뺑이 돌리다가 관객이 지칠 때 즈음에 사건이 터지는 겁니다."


"두 사람 뭐해요? 촌장한테 안 가나요?"



그러나 우리들이 느끼는 위화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엘프들과 마가렛이 벌써 저 멀리까지 가서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나와 에라스가 아까 마을에 있던 고양이 수인이 알려준대로 언덕 2개를 넘고, 평야지대를 가로지르고, 숲을 하나 넘어간 뒤, 개울을 지나, 또 숲을 지나서, 숲을 지나고... 숲을...



"우리 길 잃은 거 아니야?"



아니 왜 계속 숲만 나오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거지?



"이젝투스! 니가 선두였잖아!"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이젝투스가 길치였던 건지 아니면 그 고양이 수인이 설명을 대충한 건지 몰라도 우리는 어느새 숲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헨젤과 그레텔마냥 돌과 빵조각으로 길을 표시해놓은 건 아니지만 다행히 우리 일행이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 온 것인지는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발자국보고 뒤로 돌아가자"



그렇게 3시간 정도 개고생하다가 간신히 숲에서 나오자 칼미나 마을에서 만든 밭과 논이 보였다.

곳곳에 식용버섯을 키우기 위해 조잡하게 만든 나뭇잎을 엮어만든 차양막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작물들과 캣닢과 개다래와 밀을 키우는 논밭이 녹색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고양이 수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다냥?"



마침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치즈 색깔 고양이 아낙네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경계가 가득한 얼굴을 하였다.

몸에 털이 곤두서고, 수염이 빳빳하게 펼쳐지고, 등이 어깨만큼 올라갔으나 에라스는 능숙하게 캣닢으로 싼 동전을 슬쩍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는 잠깐 이 근처를 둘러보고 있는 여행객인데 여관에 자리가 없어서 마을 근처에서 야영이라도 할까 해서 촌장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촌장은 저쪽이다냥!"



고양이들은 조금 미심쩍다는 얼굴이었으나 일단 받아먹은 것이 있기 때문에 순순히 촌장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촌장은 밀과 캣닢을 키우는 밭 한가운데에서 한창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그냥 고양이인지 아니면 노출증 걸린 어린 고양이 수인인지 모를 작게 꼬물꼬물 거리는 아이들이 촌장이 잡은 벌레를 발톱으로 짓뭉개고 있었다.



"누구다옹?"


"지나가던 여행객인데 여관에 방이 부족해서 야영을 하려고 합니다. 별건 없지만 이건 저희의 성의표시입니다."



에라스는 능숙하게 이번에는 개다래나뭇잎과 캣닢의 잎을 교차로 감싸고 그걸 캣닢의 줄기를 끈 삼아 묶은 은화를 슬쩍 건네주었다.

촌장은 잠깐 주변의 눈치를 봤으나 저 멀리 다른 고양이가 우리에게 받은 뇌물의 향기를 음미하는 걸 보고는 천천히 잎을 펼쳐서 은화는 주머니에 넣고, 4장의 개다래 나뭇잎과 캣닢의 잎과 줄기를 순서대로 냄새 맡으며 말했다.



"질이 좋은 개다래와 개박하다옹. 요즘 여행객들은 대부분 무례했지만 이렇게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옹. 얼마든지 묵으라옹! 혹시 특제 캣닢 맥주가 필요하면 일 끝나고 마을에서 보자옹!"



촌장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고 우리는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나왔다.

역시 릭샤카 왕국에 들어오면서 대량으로 구매한 캣닢과 개다래는 효과만점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에라스가 내게 말했다



"생각보다 별 일은 없었네요?"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네 에라스. 꼭 등장인물들이 안심할 때가 되었을 때 뒤통수를 치는 법이니."



포이부스는 순탄한 적이 없었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바짝 경계를 했으나 그들이 마을에 돌아갈 때까지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결국 포이부스가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과 달리 저녁이 되어서 일 나간 고양이 수인들이 다 돌아왔고 포이부스 일행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먹고 즐기고 잠이 들었다.


작가의말

괴물임니다 님 후원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 및 설정 문의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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