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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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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8.19 19:23
최근연재일 :
2024.09.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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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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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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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글자
8쪽

까 먹었습니다.(4)

DUMMY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누군가가 공격을 한 듯 라온의 방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제가 실수를 해서···.”


그릭과 세리나가 어느새 모습을 내비쳤다.


“라온 님!”

“습격입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시도가 아니라 약간의 실험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물 흐르듯 화학방응 식을 이끌어냈다.

라온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 잘못입니다.”


세리나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왜, 왜 그러세요!?”

“실험을 도중에 멈췄어야 했는데 그만 제 실수로···.”


세리나가 털썩! 같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가 죄송해요! 실험 공간부터 내드려야 했는데 제가 차마 그 생각까진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해요!”


마법사들은 연구와 실험을 아주 은밀히 진행한다.

타인이 실험자의 마법을 탐내거나, 마법 도구들을 훔쳐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세리나가 자책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아둔했습니다. 라온 님의 실험 공간도 신경 써야 했는데···.”


세리나가 이러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요. 잘못은 제가 한 게 맞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 *


라온은 새로운 방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미안함과 부담감이 동시에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다음부터 조심해야겠어.’


남의 집에 와서 이게 무슨 행패인가?

다른 집도 아니고 귀족의 대저택에서 말이다.

남작의 핏줄이 아닌 이상에야 이 난리를 피웠다면 목이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상전 대접을 받고 있었다.


‘별채에 딸린 제법 큰 실내 훈련장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다 치워 놓을 테니 거길 이용하시면 되실 거예요.’


그릭은.


‘병사들은 얼씬도 못 하게 일러두겠으니 편히 쓰십시오.’


내가 한 것이라곤 마족하나 조진 게 다인데,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밭이라도 갈아 보답해야 할 것 같았다.


* * *


그날 저녁.

에듀르 남작은 성대한 저녁 식사 자리를 열었다.

긴 테이블엔 과일과 각종 해산물이, 육류가 촘촘히 전시되듯 깔려 있었다.

자리에 앉은 에듀르의 자식들은 라온을 대놓고 쳐다보지 못했다.

에듀르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고위 귀족의 자제 분이실지도 모른다. 고대 마법사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물일지도 모를 터, 예의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상적에 앉은 에듀르 남작이 말을 꺼냈다.

그의 얼굴은 전과 다르게 생기를 찾고 있었다.


“귀인을 모셨는데 이거 참, 차린 게 별로 없습니다.”

“아닙니다. 차고도 넘칩니다. 남작님 몸은 어떠십니까?”

“덕분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지요.”


차린 게 없다니.

이슬이 맺혀 있는 과일, 싱싱한 해산물, 그리고 기름기가 찰지게 흐르는 고기들.

한 달을 쟁여놓고 생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드시지요.”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포크를 들어 고기부터 찍으려는데, 음식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느꼈을까?

에듀르 남작이 물어왔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서 같이 드시지요.”

“저희는 괘념치 말고 내 집이라 생각하며 드시면 됩니다.”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집처럼 편하게 먹겠냐고···.

사실 뒤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녀들도 불편했다.


“아, 네.”


나는 다시 그들을 힐끔 살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기를 에렌의 접시에 담아주고, 나도 고기를 담아 칼질을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 잘린 고기를 입에 넣자, 고기가 사르륵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입에 맞으십니까?”


식감과 육즙이 아주 기가 막혔다.


“네. 아주 맛있습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에렌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에렌 괜찮으니까 어서 먹어.”


나는 둘째 치고 귀족의 무서움을 잘 아는 에렌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입맛에 맞으신다니 참 다행입니다. 너희들도 어서들 들 거라.”


에듀르의 말에 자식들은 식기를 들기 시작했다.

에듀르가 입술을 적시듯 물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낮에 큰 사고가 있었다지요?”

“쿨럭!”


나는 옆에 있던 포도주를 벌컥 들이마셨다.

시녀가 바로 냅킨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입가를 대충 닦은 나는 걱정스런 표정의 에듀르 남작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송하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해 드려야 했는데, 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에듀르가 세리나를 쳐다보자, 그녀가 답했다.


“스승님껜 협소하겠지만, 실내 훈련장을 지금 치우는 중이에요.”


라온의 실험실로 이용될 것이었다.

에듀르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은인이신데, 더 못 해 드려 미안할 뿐입니다.”


나는 손을 세차게 저었다.

차고도 넘쳤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

“어서 드시지요.”


그렇게 다시 식사가 시작되려는데.


똑. 똑. 똑.


커다란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 것은 그릭이었다.

그가 예를 취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가?”

“그게···.”


그릭이 에듀르 남작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인 채 속삭였다.

순간, 에듀르 남작의 표정이 정지가 된 듯 경직됐다.


“사실인가?”

“네.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에듀르 남작이 어금니를 꽉 물며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정녕···.”


나는 들고 있던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에듀르 남작의 얼굴을 굳어 가는데,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난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마족이라도 다시 찾아왔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에듀르 남작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애써 미소를 띠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여봐라, 라온 님의 잔이 비었구나.”


하녀가 다가와 나의 잔에 포도주를 채워주었다.

에듀르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에듀르 남작은 드릭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에듀르 남작은 창가를 쳐다봤다.


“사실인가?”

“네. 던전이 맞습니다.”


에듀르 남작의 눈이 꾸욱 감겼다.

영지에 나타난 던전을 수차례 닫아왔지만 이제 한계였다.

생각해 보면 마족과 계약도 나쁘지는 않았다.

마족의 금은보화로 던전을 닫아 영지를 지켜냈으니까.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던전을 닫을 여력이 없었다.

그만한 병사도, 용병을 구할 돈도.


던전은 계속해서 생겨나는데 갈수록 난이도까지 올라간다.

다른 영지의 영주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병력을 내줄 리도 만무하고.

에듀르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릭이 말했다.


“라온 님께 부탁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 무리일 게야. 민폐고.”


영지 내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인원이라곤 서른 명의 병사와 그릭뿐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라온이 합류한다?

라온이 얼마나 강한진 모르겠지만 던전을 닫긴 힘들 것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기사들과 용병, 마법사까지 이끌고 들어간다.

거기에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는 치유 마법사까지.

이렇게 원정대의 조화를 완벽하게 갖춰도, 공략하기가 갈수록 힘이든 것이 던전이었다.

라온이 합세한다고 해서 달라지긴 힘들다.

개죽음일 뿐이었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라온에게 부탁이라, 귀인께 민폐만 끼치는 일이었다.


* * *


한편, 라온은 에듀르 남작의 자식들과 힐끔힐끔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었다.

제각각 여러 감정들이 얽혀 있는 눈빛들이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톡, 톡, 톡.


라온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창가에 앉은 까마귀가, 자신을 보며 부리고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시녀가 까마귀를 쫓으려는 듯 창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저리 가지 못해··· 어?”


그녀가 살짝 놀랐다.

까마귀가 뭘 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만···.”


창가로 라온이 다가가 까마귀가 물고 있는 종이를 받아냈다.


[에듀르 남작의 영지에 던전이 생겼다더구나, 거기가서 가서 재미있는 걸 보여 주마.]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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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2) +7 24.09.11 3,720 144 11쪽
19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1) +11 24.09.10 3,914 1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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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 먹었습니다.(4) +6 24.09.08 4,286 150 8쪽
16 까 먹었습니다.(3) +11 24.09.07 4,584 158 8쪽
15 까 먹었습니다.(2) +9 24.09.06 5,005 153 11쪽
14 까 먹었습니다.(1) +10 24.09.04 5,029 167 12쪽
13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2) +6 24.09.03 5,032 173 15쪽
12 별의별 것들을 내가 다 본다.(1) +13 24.09.02 5,276 16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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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2) +13 24.08.29 5,589 167 11쪽
9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1) +16 24.08.28 5,895 189 7쪽
8 인연인가 악연인가(4) +6 24.08.27 6,012 192 9쪽
7 인연인가 악연인가(3) +12 24.08.26 6,145 200 13쪽
6 인연인가 악연인가(2) +18 24.08.25 6,531 190 16쪽
5 인연인가 악연인가(1) +9 24.08.24 7,007 197 10쪽
4 각방 쓰셔야합니다. +10 24.08.22 7,437 222 13쪽
3 분해. +13 24.08.21 7,677 222 14쪽
2 재밌는 현상. +16 24.08.20 8,357 241 14쪽
1 마법의 물약이 아니라, 그냥 H₂O라고... +18 24.08.19 10,310 2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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