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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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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8.19 19:23
최근연재일 :
2024.09.17 19:3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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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70
추천수 :
4,298
글자수 :
129,316

작성
24.08.27 16:10
조회
6,007
추천
192
글자
9쪽

인연인가 악연인가(4)

DUMMY

* * *


라온은 한숨도 자지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양자 얽힘과 터널링에 온 집중을 다 하며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나가 피로를 씻겨주어 컨디션은 멀쩡했다.


라온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둥근 형태의 평지였다.

이동 마차와 멀어져 그릭과 대련 직전의 상황이었다.

대련이란 그저 대련일 뿐이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해선 안 된다.

세리나가 그걸 보증해줬다.


라온은 롱소드를 든 그릭을 쳐다봤다.

처음엔 맨손으로 대련을 해준다는 그였지만, 라온이 부탁했다.

그는 검으로 자신은 마법으로.

그때, 두 사람을 지켜보던 세리나가 말했다.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한 상대가 기권하면 즉시 대련을 중지하도록 하세요.”


모두 라온을 위한 말이었다.

마법사는 화력에 강하지만, 근접전에선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라온은 몸을 풀 듯 고개를 돌리며 앞꿈치를 땅에 툭툭 두드렸다.

5미터 전방의 그릭이 물어왔다.


“준비됐나?”


나는 다시 그릭을 쳐다봤다.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착 가라앉은 눈빛이 어디 하나 베어버릴 것 같이 날카로웠다.

팔 하나 잘라버리고 실수라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이 아닌가?

나와의 대련에 수치심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아, 귀족이 유랑하는 놈과 대련하려니 쪽팔릴 수 있겠구나.


나는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 숨으로 시작해 내 의식이 원소들에 집중됐고, 그릭이 내리 쉬는 숨에서 작은 파동이 엿볼 수 있었다.

그의 가벼운 손짓에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도 말이다.

돌을 호숫가에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운동 에너지 (K.E.)=½mv²


돌이 m이고 v는 돌이 물 표면에 부딪힐 때의 속도다.

다르게 생각해 m은 그릭이라 가정하고, v는 속도.

계산식은 맞지만, 계산적으로 보면 안 된다.


돌은 던져졌는데 파문을 본들 달라질 건 없었다.

이미 목을 베였는데, 피가 솟구치는 그런 것처럼.

또한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사람이기에, 그가 갖고 있는 질량과 속도는 훨씬 상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오늘 아침까지 괜히 연구에 몰두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라온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에렌에게 씩 웃어 보였다.

그때 그릭이 말했다.


“덤벼라. 세 수를 양보해 주지.”

“괜찮습니다.”


그릭이 피식 웃었다.

감히 자신과 대련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해 준다는데, 그 기회를 걷어차버리다니.

그릭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무지한 놈 같으니.”


마법사는 근거리 전투에선 허약한 존재다.

이번 대련에서 뭘 얻어갈 틈도 없이 한수에 끝날 것이다.


순간, 라온의 시야에 그가 갑자기 확! 하고 커져 왔다.

크게 치켜든 롱소드는 나를 베려는 것이 아니라, 검 손잡이로 내 머리를 깨려는 듯 내리치고 있었다.


훅!


검 손잡이가 허공에서 멈췄다.

그릭의 고개가 바로 옆으로 돌아갔다.

라온은 어느새 피했는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더니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피해?’


가볍게 들어간 공격이라고는 하나, 거칠게 살아가는 용병들도 피하지 못하는 동작이었다.

대충 기절시켜 끝내려고 했었는데, 그걸 피해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라온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자리에서 일어난 라온은 허리를 짚었다.


‘아이고 허리야.’


과연 기사다웠다.

그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양자 얽힘과 터널링을 급하게 써 버린 탓에 바닥으로 처박히듯 나타났다.

하지만 처음은 다 그런 법.


그릭이 롱소드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몸놀림이 재빠르긴 하다만···.”


그릭의 상체가 약간 기울여졌다고 싶었던 찰나.

그릭의 신형이 라온에게 튀어 나갔다.

놀랍게도 그의 몸보다 더 빠르게 라온에게 도착한 건 검면으로 휘둘러지는 롱소드였다.


쇄액!


그릭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릭은 빠르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라온이 허공에서 빙글 돌더니 자신의 뒤로 기우뚱거리며 착지하고 있었다.


‘뭐지?’


그릭은 잠시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치명상을 가하지 않으려 검면으로 내리친 건 둘째 치고, 녀석의 몸놀림이 파악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승패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릭은 그럴 수 없다는 듯 자기 생각을 부정하는 동시에, 몸을 틀어 롱소드를 횡으로 그었다.

이번엔 검면 공격이 아니었다.


쇄액!


롱소드가 허공을 날카롭게 훑었다.

라온은 롱소드가 훑고 지나간 반경의 30cm 떨어진 지점에 나타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마치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자신을 쳐다봤다.


* * *


세리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라온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사라질 때마다 검보라빛 스파크가 튀었다.

그릭의 좌우 옆, 그리고 뒤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넘어지고 기우뚱거리며 나타났다면, 이제는 정말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그릭이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높일 때마다, 라온의 속도도 빨라졌다.


‘저게 마법사라고···?’


세상에 저런 마법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라온은 그릭의 텅 빈공간을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 시험을 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법사가 거리도 벌리지 않고 근접전에서 저러고 있으니 더 경악할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정면에서 서로에게 뛰어들었다.

라온의 뒤로 당겨진 주먹에서 새파란 불꽃이 화르륵 피어났다.

그대로 얼굴에 꽂아 버릴 태세였다.

반면 그릭의 검신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오러였다.


그렇게 코앞에서 서로 부딪치려는 찰나.

또다시 라온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릭의 몸이 기우뚱거리며 몇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라온의 발이 그의 뒷목을 가볍게 터치하며, 뒤에서 안착했기 때문이었다.


라온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졌습니다.”


이정도면 실전적인 실험을 성공리에 끝마친 것 같았다.

반면 그릭의 눈동자에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자라났다.

만약 녀석이 진즉에 마법을 부렸다거나,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면···.

자신을 농락하는 것만 같았다.

그릭이 버럭 소리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만!”


세리나가 둘의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대련은 더 이상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뭘 봤는지 실감도 나지 않았다.


라온이 그릭에게 고개를 숙였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전한 라온은 넋 놓고 쳐다보던 에렌에게 다가갔다.


“많이 놀랐어? 오빠가 괜찮다고 그랬지?”


에렌이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 많이 놀랐지. 와··· 오빠 최고.”


두 번 다시 못 볼 광경을 본 것만 같았다.

라온은 웃으며 에렌의 머리를 헝클었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자신을 가족처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았다.

라온은 조금 전 그릭을 떠올렸다.

마지막엔 진짜 위험할 뻔했다.

그릭의 검신에 푸르스름한 것이 맺히더니, 그것이 검신의 주위 원소와 분자들을 다 녹여버렸다.

양자 터널링을 끊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파동을 추가해야하나?’


과제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값진 경험을 한 건 사실이었다.

라온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그릭은 검 잡이를 으스러지라 쥐었고, 세리나는 라온을 금덩이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로데일도 마찬가지였다.


* * *


라온은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그릭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손속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그가 전력을 다했다면, 시험도 해보지 못한 채 대련은 끝났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점점 숙달됐고, 끝내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


그릭은 말이 없었고, 세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세리나는 그저 라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지만 마치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 같았다.


자신의 고리를 재생성해 준 것도 모자라, 마법사가 근접전에서도 싸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릭 경이 기세에 짓눌려 오러까지 뽑아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마법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

계열도 다르고 학파도 다를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이것이 ‘진짜 마법’이라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어떡하지? 어떡하면 이 사람을··· 라온에게 뭘 줘야 영지로 데려 갈 수 있을까. 일단 친해져야할까?’


여러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라온을 원하는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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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2) +13 24.08.29 5,587 167 11쪽
9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갑시다.(1) +16 24.08.28 5,892 189 7쪽
» 인연인가 악연인가(4) +6 24.08.27 6,008 192 9쪽
7 인연인가 악연인가(3) +12 24.08.26 6,141 200 13쪽
6 인연인가 악연인가(2) +18 24.08.25 6,529 190 16쪽
5 인연인가 악연인가(1) +9 24.08.24 7,006 197 10쪽
4 각방 쓰셔야합니다. +10 24.08.22 7,436 222 13쪽
3 분해. +13 24.08.21 7,674 222 14쪽
2 재밌는 현상. +16 24.08.20 8,353 241 14쪽
1 마법의 물약이 아니라, 그냥 H₂O라고... +18 24.08.19 10,307 2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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