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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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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9
추천수 :
15
글자수 :
54,304

작성
23.05.19 21:48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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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10. 무원화 프로젝트 3

DUMMY

준혁은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해보았다. 그러나 무원화의 머리 속에 든 것들을 다시 끄집어낼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준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신령의 그림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준혁은 자신이 들고 있던 명아주 줄기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림 속의 신령도 뭔가 비슷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령의 모습은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은 준혁과 달랐지만 알록달록한 옷이 아닌 게 뭔가 가능성을 열어주는 듯했다. 모자는? 마침 모자까지 거무스럼한 밀집모자를 쓰고 왔다.


‘오토바이 헬멧이 아닌 게 어디야? 이 정도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준혁은 신령이나 사자 노릇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둘러대고 입막음을 시도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일 것이다. 죽이지 않고 해결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준혁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무릎을 꿇은 채로 옆으로 쓰러져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무원화는 한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준혁은 일부러 촛불 앞으로 옮겨 섰다. 양쪽으로 몇 개의 촛불이 옆을 비추고 있었지만 정면을 비추는 촛불은 없었다. 무원화의 눈에는 어두컴컴한 형체 정도만 보일 것이다. 준혁은 검은색 마스크를 더 올려 눈만 보이게 하고 밀짚모자는 푹 눌러 썼다.


한참 뒤에야 무원화가 깨어났다.


준혁은 일부러 촛불 앞으로 옮겨 섰다. 양쪽으로 몇 개의 촛불이 옆을 비추고 있었지만 정면을 비추는 촛불은 없었다. 무원화의 눈에는 어두컴컴한 형체 정도만 보일 것이다. 준혁은 검은색 마스크를 더 올려 눈만 보이게 하고 밀짚모자는 푹 눌러 썼다.


한참 뒤에야 무원화가 깨어났다.


끙끙거리며 겨우 깨어난 무원화는 숨이 가쁜지 심호흡을 하려다 눈앞에 서 있는 준혁을 보곤 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더니 다시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벌벌 떨면서 힘겹게 앞으로 모았다.


‘이러면 된다. 됐어. 진짜인 줄 알고 있다.’


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먼저 말을 하진 않았다. 무원화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난 뒤 결정할 생각이었다.


벌벌 떨고 있지만 그래도 상대는 이 분야의 프로였다. 수십 년간 사람을 상대하면서 닳고 닳은 노련한 눈으로 한순간에 가짜라는 걸 알아챌지도 모른다. 괜히 누구라고 먼저 이야기했다가 질문이 훅 들어오면 난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무원화는 온몸을 벌벌 떨고 손을 비비며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하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신분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다른 그 무엇과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이쪽 세계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무원화는 곧이어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마도 무가에서 흔히 쓰는 기도문이나 주문 같은 것을 외는 것처럼 뭔가를 빠르게 읊어나갔다. 단어들이 완전히 생소했다.


눈을 감고 한동안 뭐라 웅얼거리던 무원화가 가만히 실눈을 떴다. 준혁은 꼼짝않고 그 눈을 응시했다. 서늘한 눈빛을 마주친 무원화가 다시 화들짝 놀라며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높이 들어 마주 빌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단어들이 약간 귀에 들어왔다.


“아이고! 사자님! 사자님! 이리 행차하시니 소녀를 데려 가시려나이까. 어쩌시려나이까.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같은 말을 반복하던 무원화를 준혁은 말없이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하려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입막음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배짱 좋은 친구 두호 녀석이라면 실실 웃어가며 마구 놀려줬을 것만 같았다. 녀석의 그런 배짱이랄까, 임기응변 같은 게 그렇게 부러울 줄은 몰랐다. 하지만 두호는 지금 옆에 없다.


한참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던 준혁이 어렵게 입을 뗐다.


“네가 네 죄를 알겠느냐?”


목에 힘을 준 채로 최대한 근엄하게 내뱉었지만 목소리엔 어색함이 잔뜩 묻어났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너무나도 진부한 멘트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나와버린 말이었다.


그래도 실수한 건 아니니까 이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긴장된 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무원화의 대답이 준혁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소녀의 죄라면..........어찌하오리까.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헌데 정녕 소녀를 데려가시려나이까? 어쩌시려나이까?”


무원화가 다시 말을 하긴 했지만 준혁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곧바로 인식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구효범 교수의 일 때문인지, 제대로 된 굿을 하지 않아 신령이 노한 것인지, 또는 다른 어떤 일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전혀 갈피를 못 잡는 모양이었다.


자꾸 사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갓 모양의 밀집모자를 쓴 준혁을 저승사자로 보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고 갓을 쓴 저승사자는 몇십 년 전에 TV에서 처음 등장한 이미지일 뿐이었지만 준혁에게도 무원화에게도 그런 모습은 저승사자를 먼저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게 먹히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쪽으로 밀고 가야겠어.’


준혁은 구효범 교수의 일에 대해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 그 남자에게 품은 마음이 독이 되어 죽게 한 죄를 알겠느냐?”


준혁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자 무원화의 몸이 더욱 바들바들 떨렸다.


“아.......알고 있나이다. 언젠가 오시리라 믿었나이다. 그 죄를 벌하시려거든 달게 받겠나이다. 헌데 사자께서는 어느 곳 색계에서 오셨나이까. 정토에서 오시리이까. 데려가려면 박산중디나 별성을 데려가실 일이지 소녀를 데려가 무엇에 쓰시려나이까.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무원화는 저승사자에게 잡혀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뼈와 핏줄부터 나타나는 모습을 본 뒤라 그것이 사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역시 무원화는 사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하지만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 세계와 관련된 이야기와 이름은 사람들이 지어낸 것일 뿐, 원래부터 존재하던 건 아니었다.


준혁은 목을 가다듬고 더욱 꾸짖듯이 말했다.


“네 죄는 구천을 떠돌아도 모자라고, 지옥에도 자리가 없을 터이니, 대체 무엇으로 그 업을 갚을 수 있겠느냐?”


준혁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말을 길게 하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모든 게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


“죄......죄는 달게 받겠나이다. 사자시여. 이 한 몸 살아남는다면 그 죄 뿐 아니라 다른 죄도 회개하고 살겠나이다. 사자께서 ....... 오셨으니 이 한 몸을 어찌 하오리까?”


무원화는 어떤 처분이든 내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저승사자와 대면하는 이 순간을 최대한 빨리 모면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준혁은 무속에서 3과 9를 신성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침 초도 9개가 켜져 있었다.


“이승에서 지은 죄는 살아서 갚아야 할 것이니, 회개하는 마음으로 천 배를 아홉 번에 아홉 번을 하여라. 아홉에 아홉 번이 끝나는 것을 지켜볼 터이니 네 죄가 조금이라도 덜어지게 된다면 때를 가려 다시 오겠노라.”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천 배를 아홉 번에 아홉 번 하겠나이다.”

“정성이 부족하면 온몸의 쉰 아홉 구멍에서 피를 쏟고 객사한 뒤 그 영 또한 흩어질 것이니 정성을 다하라.”

“정성을.......정성을 다하겠나이다.”


온몸의 구멍이 쉰아홉 개인지 몇 개인지 준혁은 알지 못했다. 그저 나오는 대로 말한 것이었을 뿐인데 제정신이 아닌 무원화는 무슨 말이든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기세였다.


이제 사라질 차례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라지는 모습까지 보여줄까 하다가 혹시 긴장해서 사라지는 게 잘 안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행동하기로 했다. 아니, 그 전에 해둘 말이 있었다.


“네 오늘 일을 누구에게라도 이른다면 천기누설로 역시 온몸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라. 알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녀 감히 어디서 천기를 함부로 토설하리이까.”

“허면 너는 지금부터 천 배를 하도록 하여라.”

“하겠나이다. 사자께서 명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무원화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뒤로 물러나 절을 하기 시작했다. 무가의 절은 승려나 일반인이 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눈을 감아서인지 기력이 없어서인지 무원화의 몸은 연신 휘청거렸다.


준혁은 그 자리에서 이동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이동을 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무원화는 눈을 감고 있었고, 어둠을 배경으로 삼은 덕분이었는지 의외로 빨리 집중이 되었고 몸이 홀가분해졌다. 입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외며 비틀비틀 절을 하고 있는 무원화의 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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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무원화 프로젝트 4 +1 23.05.22 1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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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첫 번째 프로젝트 5 +3 23.05.16 23 2 9쪽
6 6. 첫 번째 프로젝트 4 +1 23.05.16 23 1 10쪽
5 5. 첫 번째 프로젝트 3 +2 23.05.15 23 2 9쪽
4 4. 첫 번째 프로젝트 2 +1 23.05.12 26 1 9쪽
3 3. 첫 번째 프로젝트 1 23.05.12 31 2 11쪽
2 2. 사건의 시작 23.05.12 44 2 12쪽
1 1. 시작 +1 23.05.11 6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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