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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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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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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수 :
54,304

작성
23.05.1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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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 무원화 프로젝트

DUMMY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였지만 사실 두 번째 프로젝트도 준혁과 약간은 관련이 있는 주제였다.


집단의 조직적인 공격에 의한 개인의 파멸이란 점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성추행 무고 건이었다.


유명한 언어학자였던 피해자는 어떤 여성의 무고로 몇 년 동안 성추행 관련 재판에 휩쓸려 세간의 주요 이슈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피해자는 무죄 판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재판에 휩쓸리는 동안 고인의 언어학자로서의 명성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대학교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해 쫓겨났다. 이후로 고인은 아무런 연구도 하지 못한 채 원망스런 날들만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서 승소한 이후, 무고로 상대를 고소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의욕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던 고인은 체념한 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으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진상을 규명했으면 해결되었을 사태를 이토록 악화시킨 것은 여성단체들이었다. 학교의 여학생회가 먼저 이를 문제 삼으며 공고문을 붙이는 등 교수를 집요하게 공격했고, 학교 측에 파면을 요구했다. 뒤이어 학교 밖의 여성단체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고 피켓시위를 하며 사태를 키웠고 재판이 끝나는 몇 년 동안 고인을 공격했다.


사실규명에 앞서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개인정보를 언론이나 SNS에 유출하고 비난부터 시작하는 태도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요소였지만 당시엔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았다. 우려를 표명하는 순간 함께 엮여 사회적으로 매장될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 여부와 상관없이 성추행에 대한 엄벌은 당연한 것이지만 ‘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법의 취지가 성범죄를 다룰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했다.


통상적인 법적 판단에 비해, 성범죄는 심리적 요소가 크고 증거가 거의 없어 한쪽의 일방적 주장이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는데, 이 사건에서는 이런 점이 완전히 무시되었을 경우 어떻게 무고한 희생자가 나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교양수업에서 고인의 강의를 들었고 저서까지 몇 권 구입했었던 준혁으로선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이해되지 않는 정황이 너무나 많았다. 고인은 그저 순수한 학자로 보였을 뿐, 파렴치한 성추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생각으로 돌아섰을 만큼 한 때 세간의 보도와 분위기는 대단했다.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을 때도 기다리면 진실이 밝혀질 거란 생각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무죄 판결 이후 이어진 교수의 죽음을 접하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준혁은 피해를 입었다고 거짓 주장했던 가해 여성과 여학생회, 여성단체는 물론 이들의 주장을 더욱 부풀려 마치 가십거리 마냥 보도했던 언론 등에 대한 검색에 들어갔다.


당시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고 SNS에서도 활발하게 정보가 공유되었기에 이 사건 역시 포털에서 검색만 해도 충분한 양의 정보들이 넘쳐났다. 가끔 실명이 가려진 경우도 있었지만 교차 검색 등으로 대부분은 알아낼 수 있었다.


대상의 범위가 너무 넓어 조정하는 과정에서 준혁은 무고 가해자와 여성단체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여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지금 모두 졸업한 상태였다. 당시의 판단기준을 사회에 진출해서도 여전히 갖고 있을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일단 우선순위에서는 뒤로 미루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것이 있다면 어떤 자극적인 주제라도 마다하지 않는 탐욕적 경향의 언론들에게도 어떤 훈계나 응징이 필요해 보였다.


때론 한통속으로 뭉치기도 하고 때론 분열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권력욕과 경제적 이득에 대한 집착이었고, 정의감 같은 건 극히 일부의 기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 대상이 너무 광범위했고, 언론에 대해 응징하게 되면 그들은 곧바로 뭉쳐 준혁을 ‘테러리스트’라 매도하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은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고의 당사자인 무원화 교수는 다른 직업도 갖고 있었다. 바로 무당이었다. 구효범 교수가 무속 언어학 연구를 위해 찾았을 때 무원화 교수는 교수가 아니라 약간 이름 있는 무당이었다.


비록 연구 때문이었지만 무원화는 구효범 교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상당히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친밀함은 연구자와 연구 상대 사이의 친밀함이었을 뿐 다른 요소는 없었고, 그런 사이에서 성추행으로 고소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냥 약간의 다툼이 고소로 이어졌고,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시시비비를 넘어서면서 나중에는 교수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된 채 집요한 공격이 이어졌다.


사실 무원화는 사태를 그토록 악화시킬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합리적 관점으로 해석 가능한 이 시대에서 수천 년 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무속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구효범 교수가 연구를 위해 찾았을 때, 무원화는 무속을 알릴 수 있는 운명적 만남으로 여겼다. 그러나 구효범 교수가 떠나려 했을 때, 무원화는 다른 감정적인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몇 번의 감정적 호소에도 불구하고 구효범 교수의 생각이 바뀌지 않자, 무원화는 운명을 거역하는 자를 심판하는 심정으로 나섰다. 좋은 방법이 아닌 건 알았으나 연구가 끝나 더 이상 자신이 필요 없어졌다는 데 대해 무원화는 참을 수 없었다.


무원화는 방법을 찾던 중 여학생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후에는 자신의 의도와 통제를 벗어난 상태에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무속이 전통으로 인정되어 몇 개의 학교에서 필요로 한다는 점은 천운이었다. 거기엔 구효범 교수에 대한 무고를 계기로 여학생회와 여성단체의 힘을 입어 학교 측에 압력을 가했던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학교에선 사건에 대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 했던 것인지, 무원화나 여학생회 등에 대한 무마 차원인지 모르지만 무속에 관련된 과목을 개설했고, 무원화는 졸지에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무속은 민속학의 일환으로서 교양 과목으로 마련되었을 뿐,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있을 리 없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가끔 찾는 정도에 불과했다.


무속이 신의 대리인 역할에서 추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잘 인식되지 못했다. 이제 곧 사라져 갈 허황된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었으며, 사이비 종교보다도 더 사이비인 것쯤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무원화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이 많은 이들에겐 굿을 비롯한 무당의 행위와 말들이 통하는 세상이 있었고 그곳에서 무원화는 나름 인정받는 무당이었다. 더구나 번듯한 대학교의 교수 직함을 가진 상태라 그 명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접신과 같은 초자연적 행위가 모두 신내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무원화에겐 때때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것이 신내림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어떤 원리로 어떤 때에 이루어지는지는 명확히 알기 힘들었다.


무원화는 그것이 수양이 부족한 자신의 탓으로만 여길 뿐,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운명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서울에서 굿을 할 때가 훨씬 많았지만 무원화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은 늘 낯선 곳이었다. 자신에게 가끔 내리는 영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저 신내림이나 몰입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 소위 지방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뭔가 푸근한 느낌이 있었고 자신감도 충만했으며 웬만하면 신내림이 가능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나왔으나 무원화의 마음을 채우는 건 지방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 있을 대형 굿판을 위해 두어 시간 자동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경북의 어느 도시였다. 사흘 동안 수업도 없어 무원화는 이곳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굿은 모레였다.


늘 그렇듯 굿에다 모든 것을 쏟고 나면 녹초가 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굿을 하기 전이었다. 어떤 곳인지 둘러보며 자신과 일체화 될 영을 찾아보는 시간은 늘 흥분되는 경험 중 하나였다.


비록 현대화된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었지만 조금만 도시에서 벗어나면 숲이 있고 신당이 있었고,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그 아래에 뭔가 신비로운 것들이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곳들이 펼쳐져 있었다.


작가의말

두 번째 프로젝트 나갑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시원찮음.


그냥 접어야 하나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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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무원화 프로젝트 23.05.17 22 1 9쪽
7 7. 첫 번째 프로젝트 5 +3 23.05.16 2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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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첫 번째 프로젝트 2 +1 23.05.12 26 1 9쪽
3 3. 첫 번째 프로젝트 1 23.05.12 31 2 11쪽
2 2. 사건의 시작 23.05.12 44 2 12쪽
1 1. 시작 +1 23.05.11 6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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