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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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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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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04

작성
23.05.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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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의 시작

DUMMY

준혁은 매일 뉴스를 보았다.


노땅들이나 보는 TV를 왜 그렇게 열심히 보냐는 소릴 들었지만 폰으로 접하는 뉴스는 좀 미덥지 못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뉴스를 접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그나마 적당한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나중에 만들어 낸 이유였다. 고3 때부터 습관처럼 매일 보던 게 시작이다 어느새 준혁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었다.


뉴스에서 사실관계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쉽지 않았을뿐더러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단순한 데이터라도 많이 접해두는 게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 믿었고, 세상의 그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뉴스를 자주 접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뉴스의 비판적인 시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뉴스 아이템들이 비리를 파헤치고 사건사고를 보도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계속 접하다 보면 세상이 약육강식이 판치는 동물의 세계 같다는 느낌만 가득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다.


준혁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크게 관계없는 일들에 대해선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지닌 채 지나치기 일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곤 했다. 세상이 누구 하나의 힘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들도 더러 있었다.


여러 사람을 자살하게 만들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기꾼이 미안하단 소리는 커녕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란 말을 지껄이며 버젓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나, 음주운전으로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들을 죽인 가해자가 초범인데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어이없는 판결 같은 걸 접할 때였다.


성폭행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6년 간 옥살이를 한 사람이 풀려난 뒤, 나중에 진범이 잡혔는데 고작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던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범죄에 대해 6년과 2년 6개월이라는 형량의 차이는 오로지 반성을 했는가와, 판사의 마음에 따른 것이었다. 억울한 사람은 당연히 항변하게 마련이었지만 법정에선 그 태도가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소위 말하는 괘씸죄가 적용되어 형량을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준혁은 경찰이나 법조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유지하려 애썼다. 사명감을 가지고 나름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때로, 썩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민중의 지팡이’나 골방에서 법전을 달달 외운 뒤 ‘존경하는 판사님’ 또는 ‘검사님’으로 불리는, 권위로 가득 찬 법조인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그들에게 얼마나 더 정의와 공정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분노와 체념이 반복되면서 그렇게 무기력함에 젖어, 그저 그런 하루를 살아가던 준혁에게 변화가 생긴 건 1년 전쯤이었다. 아니, 어쩌면 존재의 확률성에 대해 고민하던 몇 년 전이나, 과거로 돌아가고픈 끝없는 간절함이 시작되었던 십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전자의 이중슬릿 실험 같은 미시세계의 특이함에 대한 이론들은 물리학과 출신인 준혁에게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론은 이론일 뿐 거시세계의 역학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현실은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준혁의 공상이나 어떤 간절한 바람만이 양자역학에 더 가까웠을 뿐이었다.


어쨌든 준혁이 처음 접했던 양자역학을 비롯한 대학에서의 물리 수업은 여느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은 제법 흥미로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따분해질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들으며 수업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물리학과의 인기는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업은 기본 개념이나 이론, 가설 등을 살짝 소개하며 흥미를 끈 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그에 대한 수학적 검증 같은 것들로 지루하게 이어지기 일쑤였다.


준혁도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곧 하품을 하며 내가 왜 물리학과에 왔을까 하는 후회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교수의 질문에 답하는 드물고도 이상한 녀석들을 보며 저 녀석들은 분명히 사람의 탈을 쓴 이세계의 존재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준혁은 지루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수학적 풀이엔 태생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처음 설명했던 기본 개념과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들은 흥미로웠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수록 더 상상에 몰두하곤 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성적도 저세상 어딘가에 일부의 점수가 따로 존재할 것만 같은 수준의 반토막으로 나오며, 한 학기에 한 번씩 준혁을 실망시켰다.


대신 준혁이 관심을 기울인 건 게임 속 세상이었고, 가끔 뉴스를 보며 남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정도가 현실세계와 연결된 유일한 끈인 것처럼 느껴졌다.


준혁의 관심 속 세상에선 수학 문제를 풀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잘못되면 언제든지 리셋할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끝없는 후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었다. 게임에 파고들며 자연스럽게 프라모델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을 하든 집중하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나중에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겨우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준혁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물류 회사에 취업을 했다. 과에서 상위권이었던 몇 명은 전공을 살려 취업했단 이야길 들었지만 그건 딴 세상 이야기였고, 어차피 월급쟁이인 건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준혁은 직장에서 나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고, 퇴근 후나 주말이면 게임에 몰두하거나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 부럽지 않은 멍때리기에 빠져들곤 했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봄날, 창문을 통과해 길게 방바닥에 드리워진 따사로운 햇살을 보며 준혁은 빛처럼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천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약간 섬찟한 경험이 뒤따랐다.


거실에서 방으로 처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호기심의 발로였을 뿐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던 순간, 그저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돌아와야 할 일상은 그대로였다.


십여 분 정도가 필요했던 이동 시간이 1분 정도로 당겨졌을 즈음 준혁은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초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음주운전하다 두 명을 치어 한 명을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한 명에게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을 입힌 채 뺑소니를 쳤던 운전자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피해자들은 결혼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신혼부부였으며 저녁식사 후 동네산책을 나섰다 중앙선을 넘어 인도까지 돌진한 차량에 치었고, 길가에서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남자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2달을 버티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고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것은 우연한 사고치고는 피해가 컸고, 이제 막 미래를 기약한 신혼부부였으며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가해자는 운전 중이었으므로 교통사고 특례법 상의 과실치사 혐의만 받았다.


판결문은 아주 근엄하게 다음과 같이 공개되었다.


‘음주운전이긴 하나 피해자가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여지가 부족하고,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는데다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를 하였으므로, 사회교화를 위해 지나친 엄벌은 지양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양형을 적용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다.’


피해자가 현장에서 곧바로 즉사하지 않고 2개월 후에 사망한 것을 양형에 적용한 것이나 여러 요소들을 최대한 고려해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려주지 못한 법원의 판단이 아쉽다고 평하며 기자는 끝을 맺었다.


사람들은 이번에 걸린 것이 처음일 뿐, 그 전에 수십 번의 음주운전이 있었을 거라며 엄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엄하고도 굳건했다. 세상을 판단하는 법전과 법조인들의 준엄함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준혁의 회사에서도 이 사건은 화젯거리가 되었다.


“음주운전에다 뺑소니까지 치고 사람까지 죽었는데 집행유예라....... 판사가 신이야 뭐야? 어떻게 그런 판결을 내냐? 참 나.....”


준혁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막 휴게실로 들어오던 물류1팀장이 화를 내자 뒤따라오던 몇몇도 같은 생각인 듯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고 흥분하며 말을 덧붙였다.


“젊은 사람들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놨는데 사고 친 놈은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잘 살아가겠네. 집행유예면 그냥 마음속으로 반성하는 척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이거 분명 뒤에 뭔가 있어.”

“그러게. 두 달 뒤에 죽었으니 직접 죽인 게 아니란다. 이게 말이 돼? 결정적 원인제공 한 거잖아? 법이란 게 전혀 상식적이지 않아. 개판이야. 개판.”

“왜 그럴까? 법 만들 때 여러가질 다 고려하지 않나? 왜 맨날 이상한 판결만 나오는 거지?”

“그야 이상한 판결만 뉴스에 나오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긴 그렇겠지. 그래도 이건 영 아니잖아?”

“그게 다 합의제도 때문이라던데요.”

“합의가 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면 법원에서 엄청나게 감형을 해준대요. 그래서 가해자는 기를 쓰고 합의하려 하는 거고요.”

“아니, 피해자가 합의 안 해주면 될 거 아냐? 난 왜 합의해주는지 이해가 안 되던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게, 법원은 양자 간의 원만한 해결을 우선하기 때문에 합의를 먼저 권고하기도 하고요, 합의해서 합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나중엔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합의로 간다더라구요. 공탁금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합의 안 하면 피해는 피해대로 보고 돈은 돈대로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그래서 대부분은 결국 합의 한다고.”

“아니 합의가 선택이어야지. 이게 필수가 되면 어떡하냐고?”

“필수는 아니고 선택이긴 한데 강요된 선택이겠죠.”

“거의 협박 수준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경우도 꽤 있다던데.”

“검사도 문제야. 애초에 음주랑 뺑소니로 제대로 기소했으면 양형기준이 다를 텐데 대충 하니까 판사가 선고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음주 사망사고 중 집행유예가 한 2/3쯤 되던가.........술 쳐먹고 사람 치어 죽여도 대부분은 감옥살이 안 한다는 거 아냐?”

“그놈이 그놈이야. 다 나빠. 우리 빼고.”


사건 하나로 휴게실이 또 시끌벅적해졌다. 사람들은 금방 뭐라도 할 기세였다.


그러나 준혁은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또 잊어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갈 것이다.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없어서였다.


준혁은 휴게실을 나와 물류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장에 닿을 듯 쌓여 있는 박스들이 차분하고도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거기엔 슬픔이나 연민 같은 감정이 없었다. 물론 따뜻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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