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2
추천수 :
15
글자수 :
54,304

작성
23.05.12 17:46
조회
30
추천
2
글자
11쪽

3. 첫 번째 프로젝트 1

DUMMY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준혁과 별로 차이 나지 않는 나이였다.


그 부부가 행복했었는지,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갔을지 알 순 없었다. 그저 평균적으로 저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준혁같은 싱글보다 약간 더 높을 거라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사건이 없었다면 저들은 조용히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굳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혹은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고 때로 학원에 가기 싫어 도망가거나 게임 하다 부모 속을 썩이곤 했을 것이다. 그러다 서로 화해하고 밥을 먹고 함께 놀러 다니며 추억을 쌓고 사진을 보며 지난 추억을 회상하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고 아이들은 다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저들의 삶은 그저 별것 아닌 듯 보이면서도 세상의 일부분이 되었을 테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을 것이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저들의 몫은 오천만 분의 2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저들을 파괴했던 그런 사건들이 모이고 모이면 세상은 파괴되고 마는 것처럼.


분노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준혁의 작은 정의감도 사건과 판결을 용납할 수 없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분노는 찻잔 속의 태풍처럼 마음속에서만 들끓다 조용히 사그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이거다.’






준혁은 검색에 돌입했다.

혹여 문제가 생겼을 때 검색 기록을 추적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접속은 당연히 추적이 어려운 VPN을 이용했다.


아마 서버 어딘가에는 기록이 남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을 서버를 열어보고 거기서 준혁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긴 힘들 것이다. 일단 걱정은 접어두는 게 좋다.


처음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판사는 다음 순위로 미뤘다.


판사를 건드린다면 엄청나게 일이 커질 것을 각오해야 했다. 이제 시작이므로 처음엔 가볍게 하는 게 좋다.


범죄자의 신상에 대해 지나치게 잘 보호해주는 우리나라에서 이름이나 주소를 바로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경우엔 그렇지 않다. 어디 사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고 가족 관계는 어떤지와 같은 내용들이 많이 공유되어 있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도 있다.


추적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준혁이 강의실에서 가해자를 먼발치에서나마 본 건 네 번째로 학교를 찾아갔을 때였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가해자는 거의 강의에 나오지 않아 한 번 뵙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수업은 가끔 취미 삼아 참석하는 것 같았다.


대신 어둑어둑한 지하의 바에서 녀석을 보는 건 단 한 번의 방문으로도 충분했다. 바의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낯선 사람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혼자 깨작거리며 누군가를 감시한다는 건 눈치 빠른 바텐더나 종업원들에게 주목 당할 염려가 컸지만 이런 일이 난생 처음인 준혁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준혁은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리며 동태를 살피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나와 버렸다. 확인할 건 다 했다. 이제 직접 만나 볼 차례였다.


녀석은 친구에게 빌린 스포츠카로 음주운전을 하다 실수로 인도로 돌진해 사람을 치었다. 아마도 그동안 수십 번의 음주운전을 했을 것이고 녀석의 입장에선 운 나쁘게 사고가 난 것이었다.


녀석은 현장에서 뺑소니를 쳤고, 나중에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당시 상황을 시시덕거리며 늘어놓았다.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녀석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거나 누군가와 공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이 준혁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녀석을 죽이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교훈을 주고 고통받은 이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세상에 조금 알려질 수 있다면 충분했다.


준혁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하게 될,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첫 준비에 나섰다. 모자와 안경, 마스크 등으로 가릴 수 있는 건 다 가렸다. 미세먼지에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세상이라 마스크를 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삼단봉은 온라인으로 어렵지 않게 구매했다. 하지만 전기충격기는 ‘총포·도검·화약류 등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물품이라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하는 등의 절차가 까다로웠고 인적사항을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준혁은 고민하다 결국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몇 가지 비싼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만 온라인으로 이용하던 어둠의 경로와 달리, 어두운 뒷골목 어디쯤에 있을 불법 판매상을 직접 찾아가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판매점에 들어서면서는, 이대로 끌려 들어가 영 못 나오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분위기는 스산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시 여길 오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올 때도 뒤가 켕기는 곳이었다. 쓸 만한 폰도 두어 개 구입했다.


준비물을 사는 김에 권총도 하나 샀다. 이건 지나다 보이는 프라모델 판매점에서 손쉽게 구입했는데, 당연히 모조품이지만 최대한 실물과 비슷해 보이는 걸로 골랐다.


칼라 파츠가 선명하게 있어, 그냥 쓰기엔 가짜 티가 좀 났으므로 프라모델용 페인트로 약간의 금속이 닳은 듯한 흔적을 만들자 손에 쥐기 전에는 모를 정도로 진짜처럼 보였다.


물품 구입이 대충 완료되자 다음 순서는 최종 목적지가 될 녀석의 거주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본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따로 나와 살고 있는 집이 월세 수백 만원에다 포르쉐를 타고 다닐 정도라면 돈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준혁은 그리 크지 않은 오피스텔 주위를 먼발치에서 며칠 서성거리며 동선을 파악한 뒤, 건너편 건물로 올라갔다. 입시학원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화장실 창문으로 녀석의 오피스텔이 바라보였다.






평범한 수요일 저녁.

준혁은 낯선 오피스텔의 거실 한가운데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누군가 거실에 있었다면 어둠 속에서 해골처럼 하얀 뼈대부터 먼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귀신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도착이 완료된 후의 모습도 처음보다 약간 덜 이상할 뿐, 기괴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지나다 빌라의 분리수거함에서 주워온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쓴 모습은 뭔가 범죄자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차림새였다.


검은색 등산복과 바지 차림에다 등에 큼지막한 배낭을 멘 것까지는 그나마 봐줄 만했다. 그러나 팔꿈치와 무릎에 인라인용 보호대를 찬 것은 좀 이상해 보였다. 마치 관절 로봇 같았다.


장갑을 낀 양손에 들린 삼단봉과 전기충격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자면 연쇄살인마나 적어도 강도 쯤으로는 보였을 것이다.


도착한 후 주변을 둘러보다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준혁은 흠칫 놀랐다. 집에서 수없이 피팅 연습을 해봤지만 아직도 이런 모습이 눈에 익숙하지는 않았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은 익숙지 않은 낯선 냄새를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누추해도 자기 집이 제일 편한 건 익숙해서였다. 거기엔 시각적, 청각적 정보도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실제론 후각 정보가 가장 컸다. 낯선 곳에서 잠 못 이루는 건 후각, 촉각, 청각 순이다.






밤 10시가 넘었다.


‘이놈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길래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야?’


잠복근무도 아닌데 언제까지 주구장창 기다려야 하나 싶어 준혁은 괜한 걱정이 들었다. 오늘 그 녀석이 집에 들어올지는 알 수 없었다. 회사엔 내일 휴가를 내두었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만 다른 걱정이 또 떠올랐다.


‘올 때 오더라도 누굴 데리고 오는 건 곤란한데.’


격투 상황까지 가는 건 아주 좋지 않았다. 아니 최악이다.


체력에 그렇게 자신이 없는 편이라 준혁은 난투까지 가지 않길 바랐다. 전기충격기와 삼단봉까지 준비하고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에다 헬멧까지 쓴 터라 격투가 벌어졌을 때 훨씬 유리할 것 같긴 하지만 둘 이상이라면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이럴 때 친구와 함께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두호 녀석이 있긴 한데, 다음에.............’


준혁은 베란다 구석에 숨어 기다리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춥고 어두운 곳에서 찌그러져 졸고 있는 모습은 나름대로의 거창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거룩한 임무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어색하고 깔끔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대상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지금 이 상황도 그랬다. 하지만 어쩌랴. 떠오르는 방법이 이것 밖에는 없는 걸.


문이 닫혀 있어 기척을 못 느끼다 추위에 잠깐 잠이 깬 준혁은 그 녀석이 벌써 들어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벌써 새벽 4시가 넘었다. 아마도 이놈은 생활패턴이 완전히 야행성이다.


‘피곤할 테니 얼른 자거라.’


준혁은 주문을 외듯 반복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엉터리 주문이 효력을 발휘했을까? 잠시 뒤 그 녀석이 일어서더니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아까 준혁이 도둑고양이처럼 몇 번이나 애용했던 곳이다.


녀석이 화장실로 들어간 이후, 준혁은 베란다 문을 살짝 열고 화장실 입구로 다가갔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며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긴장 때문인지 다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달에서 걷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이 뭔가 비현실적으로 반응했다.


‘이건 현실이야. 서준혁! 정신 차려!!!!’


준혁은 속으로 계속 되뇌면서 침착하려 애썼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또다시 물밀듯이 밀려왔다.


얼마 전까진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 들어와 보니 사명감 따위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저 강도나 도둑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12. 이성동 프로젝트 1 23.05.23 16 0 11쪽
11 11. 무원화 프로젝트 4 +1 23.05.22 18 0 10쪽
10 10. 무원화 프로젝트 3 23.05.19 17 1 9쪽
9 9. 무원화 프로젝트 2 +1 23.05.18 22 1 10쪽
8 8. 무원화 프로젝트 23.05.17 21 1 9쪽
7 7. 첫 번째 프로젝트 5 +3 23.05.16 21 2 9쪽
6 6. 첫 번째 프로젝트 4 +1 23.05.16 23 1 10쪽
5 5. 첫 번째 프로젝트 3 +2 23.05.15 23 2 9쪽
4 4. 첫 번째 프로젝트 2 +1 23.05.12 25 1 9쪽
» 3. 첫 번째 프로젝트 1 23.05.12 31 2 11쪽
2 2. 사건의 시작 23.05.12 43 2 12쪽
1 1. 시작 +1 23.05.11 63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