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1
추천수 :
15
글자수 :
54,304

작성
23.05.18 18:15
조회
21
추천
1
글자
10쪽

9. 무원화 프로젝트 2

DUMMY

준혁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었다. 무원화가 묵을 호텔은 멀지 않았다. 준혁은 근처에서 호텔을 관찰할 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다. 호텔 맞은편에 적당한 높이의 상가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건물 옥상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직 해가 남아있어 누군가의 눈에 띌 염려가 있으므로 준혁은 옥상의 계단 출입구 옆 구석진 자리에 앉아 시간이 가길 기다리며 가져온 육포와 음료수를 먹고 책도 읽었다. 때론 아날로그적인 옛 방식이 더 좋을 것 같은 때가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동안 몇 명이 옥상으로 올라와 담배를 피고는 내려갔다. 다행히 그들은 구석진 곳에 있던 준혁을 보진 못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을 때쯤 준혁은 일어나 옥상 끝으로 갔다.


맞은편 호텔의 객실에 차례로 불이 켜졌다. 무원화가 묵을 객실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쌍안경으로 유심히 살피던 준혁의 눈에, 무원화가 들어왔다. 학교 프로필 사진이나 무속연구회보에서도 본 얼굴이었다.


무원화가 있는 거실 오른쪽에 방이 하나 있었다. 침대가 보이는 걸로 보아 침실인 모양이었다.


준혁은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거실에 있던 무원화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모든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엔 여전히 이른 시각이었다.


보통 프로젝트라면 아무 때나 가도 되겠지만 이번 목적지는 호텔 방이었다.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매니저가 올라올 수 있다. 이름만 호텔일 뿐, 거의 모텔 수준이라 방음이 잘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늦은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나 싶었지만 준혁은 개의치 않았다.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게 이젠 익숙하게 느껴졌다. 스나이퍼가 된 심정으로 준혁은 고달프고 외로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밤 9시.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 더 늦으면 무원화가 방에 들어갈 것이다. 나이 들면 빨리 잠든다지만 무당인 무원화가 언제 잠자리에 들지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준혁이 쌍안경을 들어 거실을 살펴보았으나 무원화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는 불이 꺼져 있는지 어두웠다.


‘이런 씨........못 본 사이에 사라져버렸네. 벌써 자려고 누웠나? 그러면 곤란한데?’


한참을 살펴보았으나 무원화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여유를 부리며 방심한 사이 목표를 놓쳐 버린 게 아쉬웠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준혁은 잠시 망설이다 호텔 방으로 이동한 뒤 숨어 있기로 했다. 어차피 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기다리려면 어두운 방에 가서 기다리다 들어오는 무원화를 맞이하던지 거실로 나갈 기회를 엿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만약 무원화가 침실에서 자고 있다면 그대로 응징 절차에 들어가면 된다. 어쨌든 방으로의 이동이 최선으로 보였다.


여전히 이동 전의 두근거림은 가시지 않았지만 집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혁의 몸은 서서히 호텔 방 안으로 옮겨갔다.


목적지인 호텔 방으로 이동하면서 먼저 활성화된 건 늘 그렇듯 시각이었다. 어둑어둑한 방의 모습이 먼저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으로 흐릿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너편에서 볼 때처럼 방이 완전히 어둡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준혁의 눈에 뭔가 불빛이 일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아래에 여러 개의 촛불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앞에 뭔가 반짝이는 것 두 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준혁은 잠시 그 점들을 응시했다.


그건..........사람의 눈이었다.






무원화는 거실에서 잠시 짐을 정리하면서 가져온 무복과 장신구를 펼쳐보았다. 무복은 파랑, 노랑, 빨강 등의 화려한 원색이 들어간 천이 덧대어 이어진, 수천 년 전의 것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 많이 쓰이던, 옷에 매다는 구리로 만든 동패나 머리에 꽂는 깃털 장식 등이 지역이나 무당의 선호에 따라 변화되다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원화는 늘 하던 것처럼 모시는 신령의 그림이 그려진 벽걸이를 가져다 방의 벽에 걸었다. 그리고 그림 밑에 수십 년을 함께 한 작고 낡은 탁자를 놓은 뒤, 동자상과 몇 개의 신령물을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물그릇 하나와 아홉 개의 초도 준비했다.


다시 거실에 나가 모레 있을 굿에 대한 관련 자료를 보다 눈에 글자가 잘 들어오지 않고 졸음이 밀려오자 무원화는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초에 불을 붙였다. 초가 타면서 늘 익숙한 냄새가 풍기자 마음이 안정되었다. 벽에 걸린 신령님이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마치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무원화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강령 주문을 한참 외웠다. 신령에게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보살핌을 청했다. 한 순배를 지나 고개를 든 무원화의 눈에 뭔가 이상하게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신령님의 그림 바로 앞이었다.


처음엔 촛불이 흔들려서이거나 그을음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일렁임이 점점 짙어지며 점점 흰색으로 변하고, 뒤이어 붉은 색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진 흰색이 뼈의 모습을 갖추며 서서히 공중에 나타나 서로 맞춰지고, 붉은색들은 그 뼈를 감싸는 핏줄들로 얽히고설키며 사람의 형상 같은 것으로 갖춰져 갔다. 아홉 개의 촛불이라 그리 밝진 않았지만 사람의 형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어둠은 아니었다.


무원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합장한 손도 어느새 멈추었다. 눈도 감겨지지 않았다.


지금껏 신령을 모시고 때로는 장군도 모셨다. 드물게는 원한에 사무친 아이의 영도 모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굿을 할 때도, 아파서 죽기 직전일 때도, 정신이 혼미할 때도 그 영들을 어렴풋이 느낀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몸으로, 마음으로 그들을 느끼려 애썼지만 그 실체는 희미했고, 그것이 정말 그들의 영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두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차원이 달랐다.






두 개의 눈동자를 보며 준혁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다못해 개나 고양이의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동그랗게 뜬 그 눈은 주위의 둥글고 희게 모양진 얼굴로 이어지며 사람, 그것도 중년 여자의 눈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전혀 깜박임은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눈 아래에 코가 있고 입은 커다랗게 열려 있었다. 역시 입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뭔가 끄으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준혁은 움직이려 했다. 도착을 완료하기 직전 약간의 이동이 가능한 틈을 이용해 뭔가 조치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준혁의 몸도 놀라움으로 인해 얼어붙어 있었다.


움직여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꿈에서 깨려 할 때 많이 겪었던 가위눌림처럼 뭔가 생각은 열심히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망설임인지 마비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짧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준혁은 어느새 도착을 완료했다. 두 개의 눈과 벌어진 입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확실히 끄윽~거리는 소리였다. 숨을 들이쉬고 싶으나 공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가슴과 폐가 심하게 경직되었을 때의 상태였다.


‘이런 씨........여기에 왜 사람이 있어? 무원화 교수? 끝났네. 들켜 버렸으니 이제 끝난 거다.’


준혁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까 방이 좀 불그스럼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촛불이라곤 생각 못했네. 겨우 두 번 만에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나?’


무원화를 죽이지 않는 한 그녀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할 것이다. 준혁이 뼈와 핏줄부터 시작해 어딘가로 이동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경찰의 추적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해서 언젠가는 준혁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결정적인 비관의 순간이 약간의 희망으로 바뀐 것은 그녀가 그대로 기절해버리면서 시작되었다. 숨을 들이쉬기 곤란할 정도로 몸이 경직되었던 탓인지 무원화는 끄으윽~소리를 몇 번 더 내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준혁은 이대로 다시 사라져야 할지, 이왕 온 김에 무원화가 초래한 구효범 교수의 죽음에 대해 뭔가 사과나 뉘우침이라도 받고 떠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일단 이 여자가 날 본 건 분명하고, 깨어나면 흐릿하겠지만 완전히 잊지는 못하겠지? 지금 여기서 사라져버리면 이걸 영원히 떠벌리고 다닐 테고.......... 그럼 입막음을 해야 하는데, 죽인다? 잘못을 하긴 했지만 죽여야 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고..........내 정체를 숨기자고 누굴 죽인다는 건 더 끔찍하지. 젠장. 골치 아프게 생겼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쉬우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매번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리라 생각했고, 두 번 뿐이었지만 나름대로 잘 해결해왔다.


근데 이 여자는 준혁이 이동해서 도착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똑똑히 봐버렸다.


뭔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12. 이성동 프로젝트 1 23.05.23 16 0 11쪽
11 11. 무원화 프로젝트 4 +1 23.05.22 18 0 10쪽
10 10. 무원화 프로젝트 3 23.05.19 17 1 9쪽
» 9. 무원화 프로젝트 2 +1 23.05.18 22 1 10쪽
8 8. 무원화 프로젝트 23.05.17 21 1 9쪽
7 7. 첫 번째 프로젝트 5 +3 23.05.16 21 2 9쪽
6 6. 첫 번째 프로젝트 4 +1 23.05.16 23 1 10쪽
5 5. 첫 번째 프로젝트 3 +2 23.05.15 23 2 9쪽
4 4. 첫 번째 프로젝트 2 +1 23.05.12 25 1 9쪽
3 3. 첫 번째 프로젝트 1 23.05.12 30 2 11쪽
2 2. 사건의 시작 23.05.12 43 2 12쪽
1 1. 시작 +1 23.05.11 63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