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리라. 님의 서재입니다.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5.11 13:26
최근연재일 :
2023.05.23 22: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7
추천수 :
15
글자수 :
54,304

작성
23.05.12 21:53
조회
25
추천
1
글자
9쪽

4. 첫 번째 프로젝트 2

DUMMY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녀석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준혁은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그런데 그 녀석이 불쑥 튀어나왔다. 준혁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표정없는 눈이 준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 안에 누군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나왔을 텐데 벽 옆에 시커먼 물체가 있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깨어나기 전 녀석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준혁이 휘두른 삼단봉이 녀석의 목과 뒤통수의 연결부위를 강타하자 녀석은 무릎부터 꺾이며 바닥으로 주르륵 무너져 내렸다. 격투기 선수들이 실신할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생각보다 쉬운데?


많이 연습하긴 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힘 조절이 잘 안됐던 건가 싶기도 했다. 생각보다 큰 덩치여서 최대한 힘을 실었고, 퍽 하는 소리가 상당히 크게 났다. 그리고 녀석이 그냥 힘없이 무너져 내렸을 뿐이었다.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녀석이 죽지는 않았을까 덜컥 걱정이 일었다.


초딩 때 아이들과 두어 번 싸워본 것이 평생 주먹 휘두른 것의 전부일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던 준혁이었다. 이렇게 사람을 때려 기절시켰다고 이야기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준혁은 얼른 왼손을 뻗어 녀석의 허벅지에 전기충격기의 침을 찔러 넣었다. 녀석이 잠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잠잠해졌다.


‘뭐든지 확실한 게 좋지.’


준혁은 녀석의 경동맥을 짚어보았다.


다행히 맥박은 뛰고 있었다. 준혁은 얼른 준비해 온 케이블타이로 녀석의 발목과 손목을 몇 겹으로 묶고, 청테이프로 눈과 입을 가렸다.


물론 눈을 가리지 않아도 헬멧과 두건을 쓴 모습밖엔 보지 못하겠지만 녀석에게 어떠한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녀석은 한동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준혁은 찬물을 한 바가지 담아와 녀석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녀석이 깨어나는 듯 몸을 움직였다.


녀석은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나더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모르는 듯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주변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썼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뭔가를 보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준혁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준비해 간 몇 천 원짜리 장난감용 음성변조 마이크에다 대고 말을 시작했다. 로봇 모드라 그런지 준혁에게도 낯선 무미건조한 로봇 말투가 흘러나왔다.


“나는 민중의 지팡이다. 만약 소리 지르면 서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좋게좋게 진행하자. 알겠나?”


이건 미리 준비해온 멘트였다.


하지만 손은 물론이고 목소리마저도 떨렸다. 사실은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이거 왜 이렇게 긴장되지?’


평소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누군가를 응징하는 상황에서 분명히 주도권은 준혁에게 있는데 왜 이리 떨리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멘트도 좀 촌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민중의 지팡이란 표현을 쓰던가?’


로봇 말투라 떨림이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들렸기를 바랐다.


녀석이 청테이프로 덮인 입으로 뭐라뭐라 웅얼거리면서 몸을 흔들었다. 케이블타이를 끊고 손발을 휘두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재주만 있다면 뒹굴 수 있었고, 잘하면 일어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히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경비실에서 올라올지도 모른다.


“알겠으면 고개만 끄덕이고 움직이진 마라.”


그러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지시를 따르는 녀석의 모습을 보자 약간 자신감이 생겼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자 긴장감이 풀리면서 떨림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녀석은 준혁보다 한참 어린 나이다. 침착해야 한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준혁은 질문을 이어갔다.


“테이프 떼면 조용하고도 분명하게 대답한다. 만약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알아듣기 힘들다 싶으면 그냥 처리해버리고 갈 테니까 잘 처신하도록. 알겠나?”


입을 가로막았던 테이프를 떼자 녀석이 나직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이름.”

“추시후....요.”

“진명대 3학년 재학 중, 작년 음주 교통사고로 신혼부부를 친 거 맞나?”


녀석이 잠시 멈칫거리더니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사고 후, 피해자에게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러자 녀석이 고개를 들어 마치 준혁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빤히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피해자들이 만나주지 않는데요 뭘. 전 사과하려 했는데............”

“정말인가?”

“제가 왜 안 갔겠어요? 합의하면 형량 줄어드는데.”


녀석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형량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의였다. 합의는 때로 고소 취하까지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감형의 한 방법이었다.


‘근데 합의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준혁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녀석의 말을 다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양자 대면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준혁은 그저 뉴스 기사와 약간의 정보를 더 접한 완벽한 제3자였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녀석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생각밖에 없을 테고, 준혁은 현명하게 이 순간을 이끌어야 했다.


“사고를 내고 피해자들이 쓰러졌는데 뺑소니를 쳤다는 건 사실인가?”

“아..........뺑소니가 아니고...........저도 당황해서 그랬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집 앞이었어요.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나도 모르게 막 집까지 와 있고 그러는...........”


녀석이 횡설수설하는 듯했지만 그런대로 말은 또 그럴싸했다. 뺑소니는 분명하지만 뺑소니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집으로 막 오고 하는 게 뺑소니라는 건 잘 모르는 모양이군?”

“정신이 없어서 그런..........죄송합니다.”

“음주운전이라 정신이 없었던 건 아니고?”

“음주까지는 아니고 한두 잔 먹은 정도였어요. 죄송합니다. 옆 차 피하다 핸들 꺾었는데 재수 없게 그분들한테 돌진해가지고............어쨌든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다시 횡설수설했지만 녀석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뺑소니에 음주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 분위기가 자신에게 불리하단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사과를 받자 준혁은 아주 잠깐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판사들도 그래서 반성문 같은 거 받고 감형해주는 거였군.’


준혁은 어떻게 할까 다시 생각했다. 여기서 놈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나면 속은 후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프로젝트의 본 목적은 아니었다.


사과는 준혁에게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필요한 거다. 준혁 혼자 마음 편하자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일단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피해자들에게 가서 사과해라. 받지 않더라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라.”

“당연하죠. 사과하겠습니다. 찾아가야죠. 제가 하고 싶던 게 사과였습니다. 당연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녀석이 또다시 사과하겠다고 숨쉴틈 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녀석의 태도는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았고 말투도 거슬렸다. 시시껄렁하고 세상을 대충 사는 인간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준혁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오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오겠다. 그땐 말로 끝내지 않겠다. 언제든 어디서든 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당연합니다. 다시 오지 않으시도록 제가........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녀석의 태도는 아주 고분고분했다. 처음의 횡설수설하던 말투는 사라지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겠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겠다는 녀석의 모습에서 어떤 교활함 같은 것이 얼핏 느껴졌다. 바닥에 누워 고개만 약간 들고 있는 녀석을 다시 후려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준혁은 삼단봉을 잡은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이내 전기충격기로 녀석의 허벅지를 찔러 기절시키는 쪽을 선택하고 말았다. 준혁은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쉽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기충격기는 그 판단을 보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처음은.........가볍게 시작하는 게 좋을 테니까.’


준혁은 판단을 미래의 자신에게 미루었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은 지금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좀 더 현명하기를 바랐다.


사실 추시후가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했든 아니든 큰 상관은 없었다. 다시 확인해보고 만약 거짓이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면 될 일이다. 좀 더 번거로워지겠지만 그 번거로움 만큼을 더해 응징해주면 된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대충 마무리는 된 것 같아 준혁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준혁의 몸도 가벼워지며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1 주나이트
    작성일
    23.09.20 00:59
    No. 1

    소재 참신 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주인공이 화끈 했으면 좋겠어요. 이 편의 마지막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민기적 거리지 마세요. 확끈하게 처리하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쓰레기처리 프로젝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12. 이성동 프로젝트 1 23.05.23 16 0 11쪽
11 11. 무원화 프로젝트 4 +1 23.05.22 19 0 10쪽
10 10. 무원화 프로젝트 3 23.05.19 17 1 9쪽
9 9. 무원화 프로젝트 2 +1 23.05.18 22 1 10쪽
8 8. 무원화 프로젝트 23.05.17 21 1 9쪽
7 7. 첫 번째 프로젝트 5 +3 23.05.16 23 2 9쪽
6 6. 첫 번째 프로젝트 4 +1 23.05.16 23 1 10쪽
5 5. 첫 번째 프로젝트 3 +2 23.05.15 23 2 9쪽
» 4. 첫 번째 프로젝트 2 +1 23.05.12 26 1 9쪽
3 3. 첫 번째 프로젝트 1 23.05.12 31 2 11쪽
2 2. 사건의 시작 23.05.12 44 2 12쪽
1 1. 시작 +1 23.05.11 63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