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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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연병장에 집합해 주십시오. 순번대로 대련 훈련을 벌이게 될 겁니다.”
슈트가 대련 훈련에 임하자, 유로스가 대련 상대를 자청했다. 그 순간 틴트의 인상을 구겼다. 검술 성적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슈트는 하위권, 유로스는 최고의 솜씨를 자랑했다.
‘아니지. 검술 실력만이 좌우하는 건 아니지.’
틴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슈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슈트의 움직임은 다른 생도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슈트의 경우, 주정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주 넘어지는 추태를 보였지만, 지간테를 몰아 본 경험이 많은 틴트에게 그것이 결코 가볍게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생도들이 안정적으로 서는 것과 걷는 것에 집착한다면, 슈트는 여러 관절이 유기적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에 치중했다. 물론 중심을 잡기는 훨씬 힘들어지지만, 움직임은 대단히 부드럽고 인간적이었다. 노비스의 골격으로 그런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주정뱅이처럼 유연하다 못해 흐느적거리는 듯한 움직임은 한번에 하나의 관절밖에 못움직여서 로봇처럼 절도있지만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다른 생도들과 격이 달라 보였다.
“좋겠지. 한번 신동의 솜씨를 볼까?”
틴트는 유로스에게 탑승 허가를 냈다.
슈트는 대련용 지간테에 탑승한 상태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리가 달린 지간테는 기본적으로 밀폐형이었다. 그 덕분에 에테르 바디의 누출도 적은 편이었지만, 암흑 속에 홀로 놓인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슈트는 자신의 몸에서 에테르 바디를 방출시켜 지간테의 내부를 채워 나갔다. 가죽이 빠직 빠직 소리를 내면서 부풀어 올랐고 골격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머리를 밖에 내놓던 연습용 지간티어 노비스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붉은 마안석에 맞춰서 에테르 바디에 불의 기운을 깃들이자, 곧 시야가 확보되었다.
주변은 온통 붉게 보였다. 마치 붉은 셀로판지로 주변을 보는 느낌이었다. 골격이 제법 다른지라, 탑승감 역시 달랐다.
‘그건 그렇고, 마치 내 몸같이 느껴지는군.’
목의 구멍으로 밖을 내다볼 때는 몸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간테 머리에 붙은 눈으로 보니,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 보려고 했지만, 비틀거리는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고, 그것이 다른 생도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슈트는 그런 비웃음을 무시하고 최대한 대련용 지간테의 한계와 골격 구조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대련장에 들어서자, 제법 많은 구경꾼들이 자리해 있었다.
‘어라, 아직 리그전을 벌이는 시기도 아닌데…….’
슈트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정도 지간테 사용자들이 익숙해진 다음, 실력을 가리기 위해서 리그전을 벌였다. 그리고 리그전에는 지간티어를 스카우트하고자 하는 귀족이나 상인들, 용병단에서 구경하러 오게 마련이었다.
리그전도 시작하기 전부터 미숙한 지간티어들의 대결을 보러 온다는 것은 슈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놈, 어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걸?”
“슈트 라이엔이라는 놈인가? 아무래도 싹수가 없어 보이는데?”
관객들은 슈트와 유로스를 품평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놈이 유력하지. 검술 1위에다가 다른 성적도 나쁘지 않다더군. 반면 슈트라는 놈은 검술이 최하위권이라고 하네.”
일찌감치 와서 슈트를 평가하는 사내들은 바로 도박사들이었다. 오락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간티어 양성소들의 학생들이 벌이는 대결은 큰 오락거리였다. 지간테 간의 대결은 부상자가 드물고, 볼거리로서 충분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지간티어 양성소 외의 장소에서도 지간테의 대결이 곧잘 벌어지긴 했지만, 무료로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전투가 벌어진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리그전이 시작되면 도박판이 벌어지기 때문에, 사전에 정보를 얻고자 들어온 도박꾼들이 제법 있었다. 지간티어 양성소의 교관들은 그런 도박꾼들에게 생도들의 성적이나 특징 등을 살짝 알려 주고 돈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후후, 한번 신동 씨의 지간테 조종 실력을 보도록 할까?”
유로스는 호기 있게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도박사들이 그의 움직임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지간테를 능숙하게 타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선적이고 뻣뻣하지만 안정적인 움직임이었다.
반면 상대하는 슈트 역시 달려 나왔지만, 그 움직임은 주정뱅이처럼 상체가 안정되지 못하고 크게 흔들리는 움직임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도 왠지 힘들어 보였다.
‘어라?’
유능한 도박사로 이름 높은 커먼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히 쓸데없는 동작도 크고 흐느적거리면서 발걸음도 느린 슈트의 지간테와 민첩하게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유로스의 지간테가 격돌한 지점이 생각과 달랐다.
분명 양쪽 끝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왔는데 격돌한 곳은 중앙이 아니라 유로스가 나온 입구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유로스는 격돌하면서 검으로 슈트의 어깨를 내리쳤지만, 슈트는 그것을 어깨로 맞으면서 허리 부분에 파고들었다.
쿵!
굉음과 함께 두기의 지간테가 바닥에 넘어졌다.
‘허어! 이거 운이 좋은 건가?’
커먼은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간테는 아무래도 인간의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균형 감각이 중요했다. 그래서 몸을 많이 기울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슈트의 어깨는 유로스 기체의 허리에 가서 부딪친 것이었다. 당연히 유로스는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슈트 밑에 깔린 유로스의 목에는 슈트가 들이댄 지간테용 목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운이 좋았어. 넘어지면서 상대랑 엉켰으니.”
곁에 있던 사내가 침을 찍 뱉으면서 말했다.
“유로스란 놈도 별거 아니군.”
“눈만 버렸어. 넘어졌으니 오늘 대련은 끝인가?”
도박사들은 투덜대면서 엉덩이를 털고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 듯싶었다.
“이번 대련은 네 승리다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상대를 넘어뜨리는 녀석은 패배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틴트 교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슈트의 실력을 알아볼 만한 안목이 있는 이였지만,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의 관심사는 훈련용 지간테들이 부서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음 훈련 스케줄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슈트는 승리자로서 영광을 누리진 못했지만, 내심 흡족했다. 유로스와 격돌 지점을 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유로스는 직선적인 움직임이라, 한 걸음 한 걸음의 보폭이 작았다. 반면 슈트는 걸음 수는 많지 않았지만, 여러 관절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보폭도 컸고 무게중심도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
자신의 유기적 움직임은 직선적인 움직임보다 훨씬 더 효과가 뛰어난 것이었다. 물론 지간테의 골격이 형편없어서, 전신 깁스를 한 환자가 전력 질주하는 듯한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지만 골격을 개선하면 자신의 움직임은 진가를 발휘할 것이 틀림없었다.
추가로 그가 기뻐한 것은 검술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가 검술에 약한 이유는 몸을 지나치게 사려서였다. 목검이라도 맞으면 뼈가 부러져 나갈 수도 있고,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그는 자신 있게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간테는 달랐다. 지간테의 팔과 다리가 부서진다고 자신이 아픈 것도 아니고, 불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슈트는 자신 있게 나서서 어깨로 상대의 검격을 막아 낸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검에 맞아서 넘어지다가 운 좋게 유로스를 깔아뭉갠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슈트는 지금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듀람의 뼈대를 개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투박한 은색의 기사 듀람. 그것이 슈트의 마음을 빼앗은 가장 큰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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