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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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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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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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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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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3-2

DUMMY

“단장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다른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단장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잠시 할 말을 찾던 단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영화?”

“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고요.”

“황성규가 출연하는 영화구나.”


단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뭔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영화 혹시 황성규가 권한 거니?”

“네.”

“그 영화에 뭘로 캐스팅됐는데?”

“주인공 친구역이요.”


단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 영화 시나리오 봤는데, 그 영화는 황성규하고 신은아 두 사람만 보이는 영화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 비중도 없다. 그것도 알고 있니?”

“네. 선배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출연하는 이유가 뭐냐?”


단장은 깍지 낀 손가락을 풀었다 오므리길 반복했다.

손가락의 요란한 움직임과는 달리 나에게 고정한 눈은 미동도 없었다.


“출연하는 이유요?”


비중이 적은데도 출연하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단장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바라는 일이 실제 이뤄지는 건 아직 나도 알 수 없기에.

나는 이유를 말해 주는 대신 간단하게 사실만 언급했다.


“급히 땜빵을 해야 하는데 출연할 배우가 없다고 황성규 선배가 부탁을 하셔서요. 저도 황성규 선배랑 작업을 하고 싶었고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단장은 서운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맘에도 없는 애기를 꺼냈다.


“꼭 제가 예고괴담에 출연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극단에 연기 잘하는 선배들도 많고. 강윤성 선배 같은···.”

“허헛. 그놈 참!”


단장이 알 듯 말 듯 묘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계속했다.


“안 그래도 윤성이한테 말을 해 놓기는 했는데, 나는 네가 이 역할에 더 맞다고 생각했어.”


단장의 말을 들으니 단장실 앞에서 강윤성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영화 때문이라면 쉽지 않을 거야!’

자기랑 경쟁하니 내가 안 될 거라는 말이었나 보다.


“강윤성 선배가 저보다 연기도 잘하는데요 뭘. 아마 잘하실 겁니다.”

“배역이라는 건 연기 하나만으로 되는 건 아니야.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야 되는 거지. 분명 그 역할에는 네가 더 어울렸어.”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단장의 적극적인 추천에다 강윤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니 마음이 살짝 움직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정한 일이다.

그런 하찮은 이유로 내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어쨌든 알았다.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열심히 해야 된다. 그게 하나하나 쌓여서 실력이 되는 거야.”

“네. 단장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신의 제안을 물리친 제자가 미웠을 텐데도 단장은 덕담을 잊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얼른 몸을 돌려 단장실을 나가려는데, 단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나 던졌다.


“너도 조만간 극단을 그만두겠구나. 있는 날까지 열심히 해라!”

“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짧게 대답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단장의 말에 적극적으로 부인을 하지 못한 건 나도 그런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대기실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벚꽃이 피었다 질 때까지 단조로운 극단 생활은 계속됐다.

신입 배우가 들어왔으나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갔고, 그걸 두 번 반복하니 무던한 희연도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다른 선배들은 나와 희연에게 막내 생활을 오래 한다고 나름 배려를 해 줬으나 강윤성은 전혀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쉴 만하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를 내렸고, 희연과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극단의 평화를 위해 꾹 참았다.

그러는 사이 놈을 더 기고만장하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야! 들었냐? 강윤성이 예고 괴담에 캐스팅 됐다는데?”


희연이 헐레벌떡 뛰어와 물었다.

몇 달 전 단장에게 들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희연을 빤히 쳐다봤다.


“정말이야? 드디어 영화판으로 넘어가는 건가?”

“아까 대기실에서 보니까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던데. 경쟁률이 몇 백 대 일이라나. 뭐라나.”


주연도 아닌 남자 선생 역에 무슨 몇 백 대 일?

강윤성의 허풍에 저절로 헛웃음이 났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거기 주연은 여학생하고 여자 선생이잖아.”

“그렇기는 한데.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까.”

“하하하!!! 말도 안 돼!!”


나는 크게 웃으며 두 손을 가로저었다.

불행하게도 나의 모습은 지나가던 강윤성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내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강윤성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옆에서 다 들은 것 같아서 뭐라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경쟁률이 그렇게 높다고 하니까 믿겨지지가 않아서.”

“연후씨는 원래 다른 사람 말을 잘 못 믿나 봐? 경쟁률이 궁금하면 직접 영화사에 물어보세요. 내가 백날 얘기하는 것보다 그게 빠르겠네.”

“아닙니다. 선배님 말씀이 사실이겠죠. 제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네요.”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윤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놈에게서 돌아온 건 뜻밖의 공격이었다.


“괜찮아요. 연후씨가 나한테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네? 무슨···?”

“단장님이 연후씨한테도 예고 괴담 추천했는데, 연후씨가 포기했다면서요. 내가 같은 역할에 오디션 본다니까 연후씨가 바로 포기했다고 그러던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가 자기 때문에 오디션을 포기했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기가 막혀 목소리로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겨우 되물었다.


“누··· 누가 그래요?”

“누구긴 누구야 단장님이 그랬지!!”


여기서 놈의 거짓말은 완전히 드러났다.

만약, 강윤성이 한 말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단장은 그렇게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사악하게 날름거리는 놈의 혀를 잡아 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단장님은 그런 말을 하실 분이 아니잖아요.”

“그래? 그럼 가서 물어보던가?”


강윤성은 뻔뻔한 표정으로 턱을 쭉 내밀며 뻗대었다.

너무나 황당한 행동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놈은 의기양양하게 입을 계속 놀렸다.


“예고괴담 안 되니까 두 씬 밖에 안 나오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하기로 했다면서?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그렇게 아무 영화나 출연하면 되나?”

“뭐··· 뭐라고?”


강윤성은 단장으로부터 내 얘기를 주워들은 것 같았다.

단장이 나를 걱정하면서 했을 얘기를 강윤성은 완전히 다른 용도로 이용하고 있었다.

열이 올라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 놈은 비열한 웃음을 보이며 사라졌다.


“저 새끼가 뭐라는 거냐?”


사정을 모르는 희연이 강윤성이 사라진 쪽을 보며 말했다.


“몰라. 또 헛소리를 하고 있네.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었는지.”


전생에 원한이 있는 건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전생이 아닌 1회차 인생이지만.

강윤성에게 당했던 것만큼 아니 이상으로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찰나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어진우 감독이었다.


[네. 감독님.]

[오래 기다렸죠. 모레 대본 리딩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네. 당연히 나가야죠.]

[좋습니다. 모레 봅시다.]


기다렸던 대본 리딩.

드디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촬영이 시작된다.

강윤성 때문에 잡쳤던 기분이 한순간에 복구되는 느낌이 들었다.

찌그러졌던 얼굴이 점점 펴지며 어느새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돌았다.

희연은 내 얼굴에서 벌어지는 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5월 중순이 되자 하루가 다르게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11월에 있을 IMF 사태의 검은 기운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기관에서는 우리나라 경제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고하고 있었고, 실제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낙관적인 전망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불과 6개월 만에 한국 경제를 나락으로 추락시킬 대위기가 옴에도 예상을 전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방관한 것일까.

그런 걸 생각하니 더워지는 날씨에도 등줄기가 서늘해지곤 했다.


경제 위기와는 별개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드디어 때를 만났다.

영화의 주 배경이 여름이니 감독이나 스탭들은 날씨가 더워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지부진한 지금까지의 진행과는 달리 앞으로의 일정은 굉장히 빡빡할 것이다.

기껏해야 3개월 정도 지속될 여름 내내 촬영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리딩을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촬영에 들어간다는 감독의 말은 촬영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할 것인지 여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대본 리딩도 서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촬영지인 군산에서 열렸다.


“연후씨.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군산의 한 건물에 마련된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진우 감독이 반갑게 맞아줬다.

배우들은 아직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네. 감독님. 잘 지내셨죠?”

“괜히 먼 곳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하네. 연후씨는 분량도 많지 않은데.”

“분량이 많지 않아도 열심히 해야죠. 괜히 저 때문에 영화가 망가지면 안 되니까.”


얼마 전 어 감독으로부터 들었던 ‘작은 배역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어 감독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이야!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 맘에 쏙 드네.”


어 감독은 마치 처음 듣는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자기가 나한테 해 준 말인데 기억을 잘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해 줄까 잠깐 고민하다 그게 더 번거로울 것 같았다.

나는 어 감독에게 들은 말을 하나 더 날렸다.


“디테일이 살아야 영화가 사는 거죠.”


내 말에 어 감독은 완전 넋나간 사람처럼 감동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지면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상황은 배우들이 하나둘 도착하면서 전환됐다.

사무실로 들어온 황성규가 어 감독과 내게 인사했다.


“어! 감독님. 어! 연후!”


감독의 성이 ‘어’씨 인데 황성규는 장난스럽게 ‘어어’거렸다.

어 감독은 황성규의 장난에 웃기만 할 뿐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뒤이어 황성규의 아버지 역할로 캐스팅된 심구 배우가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심구 배우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대선배에게 예의를 갖췄다.

내 인사를 받은 심구 선생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친구는 처음 보는데?”

“이연후라고 합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한테 부탁할 거 없어. 나 힘없는 늙은이야!”


심구 선생이 손사래를 치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일어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들어섰을 때 내 입에서 바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신은아다!”


바로 당대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여배우 신은아였다.

말로만 듣던 그녀의 미모를 보니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남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은아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은아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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