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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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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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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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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3-1

DUMMY

우웅. 우웅. 우웅.

휴대폰 진동음을 듣고 겨우 눈을 뜬 나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황성규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선배님.]

[광호하고 술은 잘 마셨냐?]

[네. 해가 뜰 때까지 먹었습니다.]

[하하!! 그럴 거 같더라. 별일은 없었고?]


누구랑 먹었는데 별일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 건 예의가 아니다.


[다행히도 별일 없었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그 멤버에 별일 없다니. 하여간 너 어저께 내가 말한 거 기억나지?]

[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말씀인가요?]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만 듣고도 강렬한 울림이 왔던 영화가 아니었나.

그래도 너무 목메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싫어 일부러 건조하게 말했다.


[그래. 감독님한테 말해 놨으니까 이따 세 시쯤에 영화사 가서 인터뷰 좀 해!]

[따로 준비할 건 없나요?]

[급히 땜빵하는 거니까 크게 잘못만 안 하면 캐스팅될 거야.]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예스’를 외쳤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전화를 끊고 나는 속옷 바람에 막춤을 한바탕 추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돌아이로 볼 만한 그런 막춤을.

한참 움직이고 나니 숙취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는 얼른 냉장고에 있는 생수병을 들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찬물이 들어가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약속 시간이 세 시니 점심 먹고 준비를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방을 나서니 창을 통해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살은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연후입니다.”

“반갑습니다. 어진우입니다.”


맑은 눈에 선한 인상을 가진 어진우 감독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인사를 받았다.


어진우 감독.

한국 멜로 영화에서 한 획을 그은 감독이다.

멜로라는 소재는 신파적인 요소가 많아 진부하게 흐를 개연성이 큰데, 어 감독은 세련된 연출력으로 이를 극복해 냈다.

특히, 그의 최초 장편 영화인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당시 주된 멜로물과 차별화된 아주 사실적인 연출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었다.

주연배우, 특히나 여배우를 제대로 살리는 연출을 하지만 대신 주연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비중은 매우 낮은 게 특징.

지금 내가 출연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친구도 두세 씬 정도의 분량밖에 없는 단역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배역인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하네요.”


어 감독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닙니다. 감독님 전작을 보고 꼭 감독님과 작업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 전작이요? 단편인데?”

“네. 우연히 보게 됐는데, 감독님 연출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위험성 있는 과장된 발언이었다.

만약 어 감독이 본격적으로 작품 얘기를 꺼낸다면 내 얕은 지식이 탄로 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얻는데 이 정도의 위험은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그래요? 정말 영광인데.”


어 감독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감독님. 이번 영화 스토리가 어떻게 되죠?”

“아! 이번 영화는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사진사와 주차단속원의 애틋한 사랑 얘기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진사와 그걸 모르는 주차단속원은 서로 사랑하는데, 사랑을 이룰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주인공인 황성규와 신은아 두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전개되며, 다른 등장인물들은 철저히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어 감독은 아주 자세하게 스토리를 설명했고, 특히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의 세심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 배역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군요. 분량이 적다고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니었네요.”

“그런 게 어딨어요? 감독이라면 작은 배역이라도 다 고민을 하죠. 사실 그런 디테일에서 감독의 역량이 갈리는 겁니다.”


맞는 말이다.

명작은 예외 없이 디테일이 살아 있다.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은 작품은 반드시 티가 나기 마련인데 사소한 부분에서 티가 나고 그 티들이 모여 큰 결함이 된다.

그게 명작과 범작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네. 감독님. 저도 제 역할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겠습니다.”

“많이는 안 해도 될 거예요. 워낙에 분량이 적어서. 부탁하기도 미안하네요. 하하!!”


어 감독은 씁쓸하게 웃으며 내게 미안해했다.

몇 번이나 사과를 하니 내가 더 민망해졌다.


“감독님. 저는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저보다 나이도 한참 위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연후는 얼굴도 괜찮고, 목소리도 매력 있어서 나중에 잘 될 것 같다.”

“뭘 그런 말씀을. 저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널렸는데요.”

“널리긴 뭐가 널려? 내가 보기엔 네가 전우선보다 더 낫구만.”


내가 전우선보다 낫다고?

아무리 빈말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최고 미남 배우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은 좋았다.


“제가 무슨 전우선이랑 비교가 되나요? 감독님도 참.”

“아니라니까. 너 나중에 나랑 영화 한 번 하자. 내가 정말 잘 찍어 줄게.”


빈말인 줄 알았는데 어 감독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어 감독처럼 영화를 잘 찍는 감독과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의 장르적 한계 때문에 어 감독의 작품은 흥행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배우가 되려는 내 목표와는 맞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래도 첫 만남부터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감독님! 오늘 저랑 처음 보시는 거잖아요. 제가 연기 못하면 그때는 어쩌시려고요?”

“하하하!!! 그건 그렇네.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내 말을 들은 감독은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첫 만남부터 너무 진지한 얘기가 오가서 긴장했던 나도 겨우 한숨을 돌렸다.


“감독님. 시나리오 주시고, 리딩할 때 연락 주세요.”

“그래. 알았어.”


어 감독은 내게 시나리오를 건넸고,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어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한 말 진심이다. 너 정말 전우선보다 잘생겼어!”


나는 몸을 돌려 인사를 하고 얼른 방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캐스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어 감독을 만나고 캐스팅을 확정받은 뒤 나는 가족들과 설날 명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여전히 주식에 꽂혀 있었고, 나를 볼 때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식 얘기를 해서 명절 내내 도망가기 바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내 근황을 물었고, 내가 영화를 찍었다고 하자 굉장히 기뻐했다.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것 마냥 사인을 해 달라고 하는 친척들도 있었다.

그렇게 설날 명절을 정신없이 보내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영화 ‘삼인자’는 편집 등 영화 후반 작업이 한창이었다.

간간이 들리는 말로는 영화가 굉장히 잘 나와서 흥행이 기대된다고 했다.

사실 ‘삼인자’가 몇 년 뒤에만 제작됐어도 훨씬 더 흥행했었을 것이다.

개봉 당시 국내 영화 산업이 크게 흥하지 못한 때였고, 마침 IMF까지 겹치는 시기여서 그렇지 재미만 따지면 따라올 영화가 없었다.

불운이라면 불운이었지만 그래도 수작으로 남아 꾸준히 사랑을 받았으니 크게 보면 성공은 거둔 셈이었다.


그리고, 나의 후속작인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촬영 계획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쌀쌀한 봄 날씨에 촬영할 수는 없었다.

곧 대본 리딩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연락은 딱히 없었다.

연락이 없으니 영화가 엎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황성규나 어 감독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쪽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도 극단에 출근은 해야 했다.

영화 스케줄 때문에 극단에 출근을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진 엄연히 극단에 소속된 몸이었다.

오랜만에 극단에 출근하려니 설렘과 짜증이 교차했다.

친구 희연이나 다른 극단 식구들을 만나는 건 기분 좋고 설레는 일이었으나 오직 하나 강윤성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놈의 생각만 해도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짜증이 솟구쳤다.

극단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희연의 모습이 보였다.


“연후야! 명절 잘 보냈냐?”


희연의 목소리를 들으니 방금 전까지 솟구쳤던 짜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잘 지냈지. 너는 떡국 좀 먹었냐?”

“떡국은 무슨. 그냥 집에 있는 라면이나 끓어 먹었다.”


나는 희연이 당연히 고향인 충주에 다녀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라면을 끓여 먹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했다.


“왜? 집에는 안 내려갔어?”

“내려가서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이번에는 그냥 안 내려갔어.”

“그래도 부모님이 기다리실 텐데.”

“어쩌겠냐? 이 얼굴 보여드리는 게 불효인데.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희연이 이런 고민을 갖고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친한 친구라고 하면서도 명절을 저렇게 지내는 걸 몰랐다니 괜히 미안해졌다.

이런 내 맘을 알아차렸는지 희연은 껄껄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영화는 잘 끝났냐? 다른 영화 잡힌 건 있고?”

“‘삼인자’는 잘 끝났고, 황성규 선배가 영화 하나 소개해 줘서 곧 촬영할 것 같아.”

“오오!! 이제 잘 나가는 배우가 되셨네. 부럽다. 부러워!”

“강윤성은 어떠냐? 똑같냐?”


내가 강윤성 얘기를 꺼내자 희연의 미간이 바로 찌푸려졌다.


“그 새끼야 여전하지. 연기 좀 한다고 맨날 배우들한테 뭐라 하고. 하여간 여기서는 강윤성이가 왕이야. 왕.”


희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턱을 치켜들고 거만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강윤성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참! 단장님이 너 오면 단장실로 오라고 하시던데.”

“나를?”

“응. 어서 가 봐.”


곰곰이 생각하니 단장이 말했던 ‘예고괴담’이 떠올랐다.


“알았어. 갔다 올게.”


나는 단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기 전 문을 두드리려는데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단장실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단장실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나왔다.

바로 강윤성이었다.


“이연후씨! 오랜만이야. 영화 찍느라 바쁜가 봐? 극단에는 나오지도 않고.”

“선배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짬을 내서라도 들를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녀석 때문에 관두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강윤성은 턱을 치켜 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하든가 말든가. 그나저나 단장님 만나러 온 건가? 영화 캐스팅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단장님이 오라고 하셔서.”

“영화 때문이라면 쉽지 않을 거야. 어서 들어가 봐.”


말을 마친 강윤성은 쌩하고 사라졌다.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이 무슨 말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장실로 들어섰다.

단장은 나를 보자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거기 앉아라! 영화는 잘 마무리했니?”

“네. 단장님도 잘 지내셨어요?”

“그래. 그나저나 저번에 말했던 영화 생각해 봤니?”


역시 예상한 대로 ‘예고괴담’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플랜이 잡혀 있는 상태.

지금까지 잘 챙겨 준 단장의 제안을 거절하기 참으로 껄끄러웠다.

말을 하려다 말길 여러 번.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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