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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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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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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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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4-5

DUMMY

강윤성과의 촬영이 있은 후 한동안 촬영 일정이 없었다.

촬영이 없을 때는 항상 극단에 나갔기에 극단에 나갈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 강윤성과 마주치게 되면 껄끄러울까 싶어 그냥 집에서 쉬는 쪽을 택했다.

며칠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나를 귀찮게 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 일로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지 어머니께 물으니, 아버지는 ‘금 모으기 운동’ 때문에 바쁘시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처럼 아버지는 ‘금 모으기 운동’에 진심이셨고, 가끔 TV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TV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전단을 나눠 주는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애국을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IMF 전에 사뒀던 주식이 올라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쥐리’의 촬영도 어느덧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촬영분을 거의 마쳤고, 이제 ‘쥐리’의 가장 큰 볼거리인 총격씬을 본격적으로 찍을 예정이었다.

총격씬의 스타트는 북한 특수부대 채민석 일행이 남파되어 대한민국 국방부가 개발한 폭발물 GTX를 탈취하는 장면이었다.

‘쥐리’의 명장면 중 하나로 특전사 군복을 입은 채민석이 소속을 묻는 대한민국 장교에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밝히고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 명장면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나는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촬영 날이 되자마자 나는 한달음에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오! 연후! 여긴 어쩐 일이야?”


특전사 군복에 베레모를 쓴 채민석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선배님 촬영하시는데 당연히 와서 배워야죠.”

“하하!! 별소리를 다하네. 배울 게 뭐 있다고.”

“선배님 연기를 안 배우면 누구 연기를 배웁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채민석의 연기는 배우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퍼포먼스였다.


“너 요즘에 용돈 부족하냐? 뭘 그렇게 아부를 해?”


얼굴 가득 미소를 띠는 걸 보니 채민석도 내 말이 싫지 않은 모양.

그때, 조감독이 촬영장을 정리하고, 무비 슬레이트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채민석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동료들이 서 있는 도로 쪽으로 이동했다.


“준비되셨으면 촬영 시작합니다.”


찰칵!

촬영이 시작되고, 채민석 일행이 서 있는 쪽으로 군용 지프차와 트럭이 다가왔다.

채민석이 지프차와 트럭을 세우고 지프차에 탄 장교에게 대사를 친다.


-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차에서 내리십시오.

- (뭐야? 나 연락받은 거 없어. 어서 비켜!)

- 내리십시오! 안 내리면 발포합니다.

- (발포? 이 새끼가 돌았나? 너 소속이 어디야?)


차에서 국군 장교가 내리고, 장교가 채민석의 조인트를 까기 시작한다.


- (너 소속이 어디냐고?)

- 내 소속? 알아서 뭐하간? 이 간나 새끼!


대사를 치자마자 채민석이 국군 장교를 칼로 찌르고 총격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총격전이 시작되기 전 채민석이 손을 들고 촬영을 멈춘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이거 대사가 입에 안 붙는데.”


경재구 감독의 말에 채민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당연히 입에 안 붙을 수밖에.

원작에서 했던 그 명대사가 나오지 않으니 옆에서 보기에도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경 감독이나 다른 누군가가 대사를 만들겠지만 내가 만든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잖은가.

나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감독님! 이연후씨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봐요!”


스탭 중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경 감독, 채민석은 물론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경 감독이 나를 오라고 손짓했고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슨 좋은 생각 있어?”


내가 오자마자 경 감독이 물었다.

감독은 물론이고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애가 타는지 옆에 있던 채민석이 재촉했다.


“국군 장교가 소속을 묻는 거잖아요. 그럼 소속을 밝히면 되는 거 아닐까요?”

“소속?”


경 감독과 채민석이 동시에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채민석 선배님이 북한 특수부대 소속이시잖아요. 그럼 국군 장교가 소속을 물을 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선배님 특유의 그 비장한 목소리로 말이죠.”


나는 원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을 그대로 전달했다.

내 말이 끝나자 잠깐 정적이 흐른 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경 감독의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밝아지고, 채민석은 탄성을 질렀다.

스탭들과 출연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제안에 공감을 표시했다.


“연후 말대로 한 번 가 보자. 다들 알아들었지?”


경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우와 스탭들이 서둘러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국군 장교는 지프차에 올라타고, 채민석이 지프차로 다가가면서 촬영이 재개됐다.


-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차에서 내리십시오.

- (뭐야? 나 연락받은 거 없어. 어서 비켜!)

- 내리십시오! 안 내리면 발포합니다.

- (발포? 이 새끼가 돌았나? 너 소속이 어디야?)


장교가 차에서 내려 채민석의 조인트를 까면서 ‘너 소속이 어디야?’라고 다시 묻는다.

채민석은 특유의 비장한 목소리로 장교를 노려보며 외친다.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사가 끝나자마자 채민석이 국군 장교를 칼로 찌르고 총격전이 시작된다.

총격전 끝에 국군은 전원 사살되고, 채민석 일행이 GTX를 탈취한다.


“컷! 좋아. 민석아 이리 와서 봐 봐!”


경 감독은 채민석을 오라고 손짓했고, 촬영분을 같이 봤다.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던 두 사람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사가 나오자 마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촬영분을 끝까지 본 두 사람은 흡족한 얼굴로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채민석은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연후야! 너 때문에 이 씬 살았다!”

“저 때문에 살다뇨? 다 선배님이 잘 살렸기 때문에 산 거죠.”

“하하하!!! 그런가?”


간단한 대사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살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이 대사도 마찬가지다.

이 대사를 다른 사람이 했다면 채민석이 한 것처럼 맛이 살았을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쥐리’의 명장면은 탄생했다.




나머지 촬영을 다 마치니 해가 어둑어둑 넘어가고 있었다.

스탭들은 촬영 장비를 챙기고, 배우들은 각자 차를 타고 촬영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연기를 하거나 촬영을 돕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현장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경재구 감독이 나를 불렀다.


“네. 감독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

“오늘 고마웠다. 그 대사는 어떻게 생각한 거냐?”


전생에서 이미 본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소속을 물으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보통은 인민군이라고 할 것 같은데, 네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해서 소름이 쫙 돋았다.”


경 감독은 소름이 돋았을 때 생각이 나는지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듣고 보니 감독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북한군이라고 하면 인민군이라고만 생각하지 그렇게 정식 명칭을 붙이지는 않으니까.

만약 내가 이 대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쥐리’의 시나리오를 쓴 경 감독이 이 대사도 만들었을 것이다.

명대사를 만든 원작자에게 칭찬을 듣고 있자니 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어도 감독님이 그 대사를 만드셨을 거예요.”

“정말?”

“네. 감독님이 ‘쥐리’ 시나리오 다 쓰신 거잖아요. 이 영화에 얼마나 주옥같은 대사가 많습니까? 이 영화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겁니다.”


내 말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일어날 사실에 근거한 말이었다.

물론 그것까진 알지 못하는 경 감독은 내 말을 듣더니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아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너무 고맙다. 네 말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꼭 그렇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무리 잘하시면 됩니다. 감독님.”


사실대로 말했는데 이렇게 기뻐하니 이연후로 다시 살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얘기를 끝내고 집에 갈 채비를 하려는데, 경 감독이 갑자기 한마디 날렸다.


“연후 너 나한테 원하는 거 있냐?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 줄게.”


내 말에 취해 기분이 들떠 나온 말이었다.

어쩌면 쉽게 넘길 수도 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뇌리 속을 스치는 영화가 있었다.

‘쥐리’ 바로 다음 경 감독의 연출작 ‘애국가를 부르짖으며’.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 ‘일미도’ 다음 두 번째 천만 영화 ‘애국가를 부르짖으며’였다.


“감독님. 지금 준비하고 계시는 작품 있죠?”


내 말을 들은 경 감독은 들떠 있던 표정을 얼굴에서 지웠다.


“준비하고 있는 영화? 있기는 한데, 그건 왜?”

“저 감독님하고 그 영화 같이 하고 싶습니다. 저를 꼭 써 주십시오. 물론 제가 그때까지 잘 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경 감독은 내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싶었을 것이다.

시나리오는커녕 줄거리도 듣지 않은 놈이 덜컥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니 말이다.

경 감독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무슨 영화 기획하는지 알기나 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감독님 영화인데.”


때로는 뻔한 말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경 감독은 내 말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잠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감독이 입을 열려는 찰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연후하고 무슨 재밌는 얘길 하십니까?”


손광호였다.

갑자기 나타난 손광호의 모습에 우리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광호가 여기 어쩐 일이야?”

“뭐. 저 자르고 찍는 영화가 얼마나 잘 되나 보려고 왔죠. 촬영은 잘 됩니까?”


손광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손광호에게 ‘쥐리’에 출연하지 말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험악한 상황까지 갔지만 내 뜻을 손광호에게 강하게 전달했고, 내 말이 먹혔는지 그는 ‘쥐리’ 출연을 접었다.

쥐리에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손광호의 결정 때문이었다.


“선배님 덕분에 촬영 잘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네가 잘하니까 그런 거지 내가 뭐 도와준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삼인자’ 찍으면서 선배님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민석이형은 어디 가셨어?”


손광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마도 채민석을 만나러 온 모양이었다.


“채민석 선배님 방금 전에 가셨는데. 전화 드려볼까요?”

“아냐. 아냐.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왔어.”


‘다른 일’이라는 말에 경 감독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손광호가 다른 일로 왔다는 것은 채민석, 황성규 아니면 경 감독일 테니까.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연후! 너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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