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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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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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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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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3-5

DUMMY

신은아와 얘기를 나눈 다음날.

촬영을 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촬영장으로 갔다.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더 일찍 나갔는데 그 이유는 뭐.


‘나 촬영장에 보러 가도 돼?’


신은아의 마지막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녀가 촬영을 보러 오겠다는데 일찍 가서 준비하는 건 예의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장으로 가는 내내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 그래. 좋은 아침이긴 하네. 근데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어 감독은 저 자식이 왜 저러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왜 그런지는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촬영은 언제나 즐거운 일 아닙니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감독은 고개를 몇 번 가로젓더니 메이크업 스탭 쪽을 가리켰다.

나는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메이크업을 받으러 이동했다.

주인공의 평범한 친구 역할이라 굳이 메이크업을 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스탭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붓을 들고 이리저리 칠을 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나는 촬영장 이곳저곳을 눈으로 스캔했다.


“아! 쫌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요!”


스탭은 실눈을 뜨고 나를 째려봤다.

나는 찔끔해서 고개를 빳빳하게 고정했다.

하지만, 내 눈은 이리저리 촬영장 곳곳을 누볐다.

메이크업이 끝나도록 신은아는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너 오늘 준비 잘하고 왔어?”


어느새 내 뒤에 황성규가 와 있었다.

어제 촬영으로 예민하던 황성규는 사라지고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서 있었다.


“준비는 하고 왔는데, 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잘하고 말고가 어딨어? 두 씬밖에 안 되는데.”


황성규의 말처럼 오늘 촬영은 두 씬이다.

첫 번째는 황성규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나와 거리를 걸어가는 씬.

두 번째는 술에 취한 파출소에 잡혀온 황성규가 난동을 부리는 씬.

첫 번째 씬에서는 주인공의 친구인 내가 황성규의 시한부 판정을 모르는 설정이고, 두 번째 씬에서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걸 알게 되는 설정이다.

황성규의 가장 친한 친구고, 친구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촬영의 핵심이었다.

촬영 얘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한숨이 나왔다.


“두 씬이라도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긴 그렇다. 나야 그걸 알고 있는 상태니까 쉬운데, 너는 처음 알게 되는 거니까. 잘 표현해 봐. 안 그럼 어제 내 꼴 난다.”

“어제 촬영이 길어진 건 은아 때문에···.”

“뭐 은아? 둘이 말 놨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에 황성규가 재빨리 반응했다.

동갑끼리 말 놓은 게 뭐 대수라고.

나는 황성규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네. 어제 촬영 마치고 잠깐 얘기했는데, 은아가 먼저 말 놓자고 해서.”

“오오!! 그래? 나도 말 놓는 거 한참 걸렸는데. 은아가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황성규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게다가 오늘 신은아가 나타나면 그건 아마 나에게 그런 마음이 조금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는 않겠죠. 저를 언제 봤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희망 사항과 다른 말을 했다.

황성규는 푸풉 하며 입 안에 있던 공기를 뿜어냈다.


“농담이야. 농담! 그걸 또 진지하게 받네. 얼른 비켜! 나 메이크업 받게.”


황성규가 나를 밀치고 자리에 앉았고, 나는 일어나서 구석으로 걸어갔다.

구석에서 시나리오를 보며 촬영 준비를 했고, 준비하는 내내 신은아가 왔는지를 살폈다.

황성규의 메이크업이 끝나고 조감독이 무비 슬레이트를 들고 나올 때까지,

신은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첫 번째 술집, 거리 씬.

삼겹살집에서 나와 황성규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황성규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라 옛날에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즐거워한다.

술을 마시고 나와 황성규가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지고, 내가 쫓아가니 황성규는 노상방뇨를 하고 있다.

나는 황성규 옆으로 가서 같이 노상방뇨를 하며 대사를 친다.


- 너 취했냐? 왜 안하던 짓을?

- 안 취했어 임마! 나 하나도 안 취했어!

- 알았다. 알았어. 얼른 하던 일 마저 해라.


그리고, 황성규가 내게 귓속말을 한다.

황성규의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보며 소리친다.


- 이 새끼 취했네!! 뭔 쓰잘데기없는 말을 하고 있어!


황성규는 거리로 걸어가며 ‘술 한잔 하자’라고 외친다.

나는 황성규를 뒤쫓아 가며 ‘좋아. 가자.’라고 말하며 어깨동무를 한다.


“컷! 두 사람 잠깐 이리와 봐!”


어 감독이 컷을 외치고 나와 황성규를 불렀다.

황성규와 내가 어 감독 앞으로 가자마자 감독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뭔가 어색하지 않아?”

“저도 좀 그렇긴 합니다. 뭔가 밋밋한 것 같고.”


감독의 물음에 황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뭐가 어색하고 밋밋한 건지 생각해 봤다.

다른 부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황성규가 내게 귓속말을 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관객들도 황성규가 시한부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겠지만, 황성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려주지 않는 게 맞을까.

그리고, 귓속말을 들은 내 반응도 시한부와는 전혀 언급된 게 없으니 말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두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감독님. 황성규 선배님이 저한테 귓속말을 할 때 소곤거리는 느낌으로 찍으면 어때요? 관객들에게 들릴락말락하게 말이죠.”


두 사람은 내 말이 끝나고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도 그렇게 보고 있으니 내가 잘못했나 생각까지 들 무렵.

어 감독이 무릎을 탁 쳤고, 황성규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오! 그래. 그거 괜찮다. 이미 알고 있지만 성규가 친구한테 시한부라는 얘기를 했다는 걸 관객이 알 수도 있고 말이야. 다음 씬에서 개연성이 더 살 수 있겠어.”


어 감독이 빠르게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황성규도 맞장구를 쳤다.


“감독님 말씀이 맞아요. 연후 너 아이디어 좋다.”


황성규가 나를 보며 씩 웃었고, 나도 그를 향해 미소로 답했다.

어 감독은 조감독을 불러 콘티가 수정되었음을 알렸고, 조감독은 촬영과 음향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준비가 끝나고, 조감독이 무비 슬레이트를 쳤다.


노상방뇨를 하던 황성규가 나를 보며 속삭인다.


- 철규야! 나 두 달 안에 죽는다!


황성규의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 소리친다.


- 이 새끼 취했네!! 뭔 쓰잘데기없는 말을 하고 있어! 술 더 먹고 싶으면 사달라고 해!!


황성규가 거리를 향해 걸어가고 나는 그의 옆으로 어깨동무를 한다.


“컷! 좋습니다. 다음 씬으로 갈게요.”


어 감독은 흡족한 표정으로 컷을 외쳤다.

카메라를 등지고 걸어가던 나와 황성규는 컷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돌아왔다.

나는 황성규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렸지만, 돌아오면서는 황성규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흐뭇한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오는 우리 두 사람은 의좋은 형제 같았다.

첫 씬 촬영이 끝날 때까지 신은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씬은 2차 술자리를 마치고 인사불성이 된 황성규가 난동을 부려 파출소에 끌려오는 장면이었다.

시나리오 상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아마도 2차에서 황성규가 자신의 병에 대한 얘기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내가 파출소에 끌려온 황성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내용이다.

황성규는 취해서 뒤쪽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경찰과 황성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부터 촬영이 시작된다.


“준비하시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찰칵!

무비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경찰에게 내가 먼저 대사를 친다.


- 선생님! 얘가 좀 그럴 일이 있어요. 좋게 봐 주세요!

- 그럴 일은 무슨 그럴 일이야? 그럴 일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막 시비를 걸어도 돼!

- 아니. 그게 아니고. 정말 그···.


“컷! 연후 잠깐 이리와 봐!”


어 감독은 컷소리와 함께 나를 불렀다.

목소리에 냉랭함이 가득했다.


“연후야! 너 표정이 왜 그렇게 나오냐?”

“네? 제 표정이 어때서?”

“너는 지금 표정이 하나잖아. 파출소 끌려와서 억울한 표정 그거 하나.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이야? 제일 친한 친구가 시한부라는 걸 알게 됐잖아. 그걸 표현해야지!”


어 감독은 닦달하듯 내게 주문했다.

친구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면 슬픔의 감정이 있어야 할 것이고, 친구가 그런 상황에서 파출소에 끌려 왔으니 약간의 억울한 감정까지 더해져야 한다.

말이야 쉽지 이걸 어떻게 한 번에 담아낼 수 있느냐 말이다.


“이번에는 잘하자!”


어 감독이 내 등을 토닥이며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감독의 주문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촬영 시작합니다. 찰칵.”


조감독의 무비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됐다.

나는 앞에 있는 경찰을 보며 어 감독이 말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대사를 치려는 찰나 어 감독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컷! 연후 첫 번째 보다 더 안 좋잖아. 다시!”


어 감독이 큰소리를 내자 내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전생에서 20년 동안 내공을 쌓으면서 수없이 지적을 받았었다.

이 정도 혼나는 건 혼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연후의 인생으로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세 번째, 네 번째가 되어서도 어 감독이 원하는 표정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나를 응원하던 배우, 스탭들도 엔지가 계속되자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쉬었다 합시다!”


어 감독이 들고 있던 메가폰을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평소 같으면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연후야! 이것 좀 마셔!”


황성규가 종이컵에 든 커피를 내밀었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

내 감정을 헤아렸는지 황성규가 무심한 척 한마디 내뱉었다.


“너 지도 않고 잘 버틴다. 나는 너만할 때 맨날 질질 짰는데.”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로 아니야. 사실이야. 거짓말 같으면 민석이형한테 물어봐!”

“채민석 선배님이요?”

“그래! 오늘 술 한잔 하기로 했으니까 같이 나가자. 근데, 빨리 가려면 어떻게 해야지?”


황성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라고 손짓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낙담했던 마음에 용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어 감독의 말을 떠올리며 거울로 가 표정을 지어 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어 감독이 원하는 그 감정과 비슷한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어 감독이 돌아오고 촬영이 재개되었다.


“촬영 시작합니다.”


찰칵!


짜증스런 얼굴로 앉아 있는 경찰을 보며 내가 대사를 쳤다.


- 선생님! 얘가 좀 그럴 일이 있어요. 좋게 봐 주세요!


내 표정을 본 경찰의 얼굴에 약간의 떨림이 관찰됐다.


- 그럴 일은 무슨 그럴 일이야? 그럴 일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막 시비를 걸어도 돼??

- 아니. 그게 아니고. 정말 그럴 일이 있어서 그래요!!


내 대사가 끝날 때까지 감독의 컷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 황성규의 차례로 넘어가고, 황성규는 콘티에 있는 대로 정확하게 연기를 해냈다.


“컷! 좋습니다. 오늘 촬영은 이걸로 마칠게요.”


어 감독이 흐뭇한 표정으로 컷 사인을 줬다.

좀 전까지 신경질을 내던 감독은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감독님도 참. 이럴 거면서 왜 그렇게 못살게 굴어! 얼른 술 마시러 가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황성규가 군시렁대며 나의 팔을 끌었다.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고, 한낮의 열기는 적당히 식어 술 마시기 좋은 날씨였다.

촬영이 다 끝날 때까지 신은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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