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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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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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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8

DUMMY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한국 극장.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지역인 충무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극장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2000년대 말까지 개봉하는 영화들은 거의 한국 극장에서 시사회를 가졌을 정도였다.

1998년 멜로 기대작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의 시사회 또한 한국 극장에서 열렸다.

그런데, 멜로 영화의 개봉일이 6월초라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다.

멜로 영화라면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봄이나 가을에 하는 게 맞기는 한데.

제목에 ‘한여름’이 들어가니 여름에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겨울에 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여러 가지 이유로 개봉 날을 잡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 보였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개봉일이 초여름인 6월초로 잡히게 되었다.

시사회장인 한국 극장에 들어서니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 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포토존을 지나쳐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기자 하나가 소리쳤다.


“이연후씨! 포토존에서 포즈 좀 취해 주세요.”


나를 알아보는 기자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찍은 영화는 ‘삼인자’ 단 하나뿐이다.

삼인자가 나름 화제성은 있었으나 흥행을 하지 못했고, 내가 맡은 역이 비중 있는 역도 아니었는데 나를 알아보다니.

당황하여 멀뚱멀뚱 서 있는데 기자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뭐해요?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주춤주춤 포토존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뻘쭘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그 기자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 진짜! 포즈 좀 잡아 봐요!”


소리를 지르는 기자 옆으로 다른 기자들의 짜증 가득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기자들을 보고 있자니 표정은 경직될 대로 경직됐고,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손만 흔들고 있으니 한마디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셔터질을 멈추고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 와서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뭐하냐? 웃어. 웃어.”


황성규였다.

그는 자연스레 웃는 얼굴로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황성규가 포즈를 잡아 주자 나도 자신감이 생겨 얼굴에 자연스런 미소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던 기자들이 다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몇 차례 포즈를 취한 뒤 포토존 밖으로 내려오자 황성규가 물었다.


“너 무대 인사 처음이냐?”

“네.”

“어쩐지 사진 찍을 때 포즈가 엄청 어색하더라. 사진 찍는 것도 배우가 잘해야 할 일 중에 하나야. 집에서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틈나면 포즈 잡는 거 연습해 둬.”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황성규는 빠른 걸음으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자 꽤 많은 관객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멜로 영화라 그런지 여성 관객들이 남성 관객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은 황성규가 들어오자마자 옅은 비명 소리를 질러대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한민국 탑배우다운 인기였다.

하지만, 황성규는 관객들의 반응에도 시크하게 인사를 한 번 하고 나서 마련된 자리로 가 앉았다.

내 자리는 그의 자리에서 몇 자리 옆으로 떨어진 자리였다.


“떨지 말고 그냥 인사나 하고 내려온다 생각해.”


황성규가 자리에 앉으면서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전생에서 나는 단역 배우로 살았기 때문에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인사를 한 것도 거의 독립 영화 수준의 작품이었고, 관객들의 관심도 없어서 썰렁한 극장에서 했기에 흥도 나지 않았었다.

이렇게 관객들이 많고, 기자들까지 온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려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연후야! 얼굴이 왜 그래? 쫄았어?”


신은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자존심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서 얼른 다른 핑계를 댔다.


“쫄기는. 극장이 좀 더워서 그래. 너는 잘 지냈어?”

“나야.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요즘 영화 찍고 있어.”

“무슨 영환데?”

“박물관 옆 식물원이라고. 이 영화랑 좀 다르긴 한데 스토리가 좋아서 재밌게 찍고 있어.”


‘박물관 옆 식물원’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인정받는 멜로영화다.

두 작품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신은아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활동은 몇 년 후 막을 내리게 된다.

나는 개인적인 소망을 넌지시 그녀에게 밝혔다.


“이 영화도, 그 영화도 다 잘 될 거야. 너같이 훌륭한 배우가 오랫동안 활동했으면 좋겠다.”

“하이고! 또 그 소리 하네. 나 오랫동안 할 거라니까 왜 그러셔. 그런 말 그만하고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


내가 막 대답을 하려는 찰나 그녀는 황성규 옆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마음 같아서야 그녀를 쫓아가 언제 먹을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신은아의 뒤를 이어 심구 선생과 어진우 감독이 등장했고, 시사회의 사회를 맡은 개그맨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지금부터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시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어진우 감독님과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겠습니다. 감독님, 배우님들 앞으로 나와 주세요”


어진우 감독과 황성규를 필두로 배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울리고 나는 심구 선생의 뒤를 따라 무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다리에 힘을 팍 주고 겨우 무대에 서 있었다.


“먼저 어진우 감독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어 감독이 인사를 하자 관객들이 옅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아무래도 배우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기에 의례적인 반응 정도에 그쳤다.

그래도 어 감독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열정을 다해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인사치고 다소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다음으로 장원 역을 맡으신 황성규 배우를 소개합니다.”


황성규의 이름이 불리자 관객석에서 큰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여성 관객의 호응도도 좋았지만 그렇다고 남성 관객들의 호응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가 누구인지 보여 주는 한 장면 같았다.

황성규의 짤막한 인사가 끝나고, 신은아의 인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림 역을 맡은 신은아입니다.”


반응은 황성규보다 확실히 덜 했다.

특히, 여성 관객보다 남성 관객의 환호가 많았는데, 환호성을 지르던 남자들도 같이 온 여자가 눈을 흘겨 환호를 멈추는 장면이 보이기도 했다.


“황성규 오빠만 좋아하지 마시고, 저도 좀 좋아해 주세요.”


신은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마지막 멘트를 하자 관객석에서 웃음과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제 심구 선생의 순서가 지나면 바로 내 차례였다.

두 명의 탑배우와 한 명의 원로배우를 거쳐 내 이름이 불린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극장이 썰렁해지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올 무렵.

인사를 하는 심구 선생이 관객들을 보며 ‘니들이 굴맛을 알어!’를 외쳤다.

관객들은 자지러졌고, 개그맨은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썰렁함이 예상되는 가운데 심구 선생의 활약까지 더해지니 눈앞이 아득했다.


“다음은 황성규 배우 친구 역할을 하신 이연후 배우입니다. 큰 박수로 맞아 주세요!”


내 이름이 나올 때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숨을 들이마시고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는데, 잠깐 적막이 흘렀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는데 어떤 여자 관객 하나가 ‘꺄악’하는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관객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웃더니 이내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내 줬다.


“안녕하세요. 칠구 역을 맡은 이연후입니다. 관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객석에서 ‘잘생겼다’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극장 안은 다시 한번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개그맨이 나와 황성규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성규 형님! 긴장 좀 하셔야겠는데요. 이연후 배우 인기가 장난이 아니네요.”


황성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황성규 배우가 알겠다고 하십니다. 자. 무대 인사 시간은 끝났고요. 바로 영화 상영 들어갑니다. 영화 끝나고 어진우 감독님이 남아서 질문 받으신다고 하시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남아서 감독님 얘기 듣고 가세요. 다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개그맨의 멘트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칠 듯이 뛰던 내 심장도 영상과 함께 잦아들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

황성규와 신은아의 설레는 감정 표현과 소소한 만남들이 재미를 선사했고, 관객들은 가끔 웃음을 터뜨리며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초반이 지나가 나와 황성규가 술을 마시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리는 장면, 술에 취해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감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성규가 아버지인 심구 선생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알려 주면서 짜증을 내는 장면에선 여자 관객 중 일부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황성규와 신은아의 만남이 엇갈리고, 황성규가 마지막을 준비하며 영정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거의 모든 관객이 눈시울을 붉혔다.

드디어 황성규가 죽고 신은아가 사진관을 찾아와 자신의 사진을 발견하고 밝게 웃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훌쩍이다 못해 거의 통곡을 하는 관객도 나타났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자 관객들은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 감독과 배우들 모두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감독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편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 고마워. 다음 작품 찍게 되면 연락할게. 꼭 같이 작업하자!”


어 감독은 내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그의 눈을 보니 진심으로 나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을 맡아서 대단할 것 없는 연기를 했는데도 이렇게 믿어 주다니 어 감독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네. 감독님. 꼭 연락주세요.”


어 감독은 관객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남았고, 나는 배우들을 따라 극장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온 황성규는 로비에서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이 좀 적기는 했지만 그건 신은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심구 선생에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서 선생은 쉽게 자리를 떠났다.

나도 심구 선생과 같은 처지라 생각하고 휘적휘적 밖으로 나가려는데, 여자 관객 하나가 사인지를 내밀었다.


“사인해 줘요!”

“제가 아직 사인을 못 만들어서. 다음에 해드리면···.”

“그냥 이름 쓰는 게 사인이죠. 제 이름도 적어 주세요. 이혜림.”


무뚝뚝한 그녀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준 사인펜 뚜껑을 열고 사인지에 내 이름과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내 첫 사인이었다.


“고마워요. 앞으로 잘 되실 거예요. 내가 보는 눈이 있거든요.”


말을 마친 이혜림이 사라지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관객들이 하나둘 주위로 몰려들었다.

관객들은 사인을 요구했고, 나는 얼떨결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새 사인을 다 끝내고 옆을 지나던 황성규가 내게 소리쳤다.


“오! 연후! 벌써 스타됐네. 마지막 촬영 때 보자! 나 먼저 간다!”


황성규가 손을 흔들었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쥐리’의 마지막 촬영은 일주일 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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