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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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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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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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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5-4

DUMMY

“안녕하세요. ‘쥐리’에서 김창길을 연기했던 이연후입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쥐리’ 팀에 앉아 있던 채민석과 황성규는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내 주었다.

강윤성은 인상만 쓰고 있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먼저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저를 성심껏 지도해 주신 경재구 감독님과 채민석, 황성규 선배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수상 소감을 하다 보니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많아 조금 길어졌다.

자칫 지루할 수 있음에도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하지만, 강윤성은 내 소감이 끝나기도 전 자리에서 일어나 시상식장을 빠져나갔다.

인상을 구기며 나가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소감을 마쳤다.


“앞으로도 훌륭한 연기로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활짝 웃는 얼굴로 트로피를 들어 보였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경재구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은 나의 수상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너 이따가 한턱내라!”


채민석이 내 트로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제가 사고 싶어도 못살 것 같은데요.”

“왜?”

“남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이 있는데 어떻게 사겠습니까?”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


채민석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껄걸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감독과 배우들도 다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던 분위기는 잠시 후 남우주연상 부문 시상식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다음은 남우주연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먼저 후보부터 만나 보시죠.”


애초에 ‘쥐리’의 신드롬을 따라갈 만한 영화가 없었기에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은 ‘쥐리’에서 나올 것이 확실했다.

문제는 ‘쥐리’의 남자 주연이 두 명이라는데 있었다.

물론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나 영화계에서의 위상으로 보면 단연 황성규가 채민석보다 위였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력이나 카리스마로 보면 황성규의 존재감이 채민석에 미치지 못했다.

한 영화에서 두 명이 남우주연상 후보로 나가고 그중 한 사람이 상을 탄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수상자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1999년도 천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쥐리’의 채민석씨! 축하합니다!”


수상자가 발표되자 채민석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황성규까지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황성규는 대학 선배인 채민석이 남우주연상을 받자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황성규의 얼굴에서 아주 미세한 그늘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너무나 작은 변화였다.


“감사합니다. ‘쥐리’에서 박무연 역을 연기한 채민석입니다. 먼저 경재구 감독과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성규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


채민석은 누구보다 먼저 황성규의 이름을 말했고, 황성규는 진심으로 그의 수상을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채민석의 짧은 수상 소감이 끝나고, 이어진 시상식에서 ‘쥐리’가 감독상, 작품상까지 휩쓸며 천상예술대상을 석권했다.


“이로써 천상예술대상의 모든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시상식이 끝나고 ‘쥐리’팀은 있는 술은 모두 마셔 버릴 기세로 어디로 갈까 떠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떠드는 사이 조용히 자리를 뜨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황성규였다.

나는 얼른 황성규를 잡기 위해 따라갔으나 그에게 도착하기 전 누군가 내 팔을 낚아챘다.


“이연후씨?”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나 케이픽처스에 임환수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긴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초면에 반말 비슷하게 나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지금 좀 바빠서.”


팔을 뿌리치고 황성규를 찾는데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 임환수는 내 팔을 다시 붙잡으며 고압적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얘기 좀 하지.”


이글거리는 임환수의 눈을 보니 거절해 봤자 피곤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 순간에도 ‘쥐리’팀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오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 급해요. 인사 좀 하자는데.”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케이픽처스 대표 이사 임환수.

명함은 아주 간단하게 그의 회사와 직급이 표시되어 있었다.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가 영화 몇 편 제작했습니다. 나름 흥행도 몇 편 했고요. 우리 회사에서 이연후씨한테 캐스팅 제의를 했는데 거절하셨다고?”


반말을 섞어서 말했던 처음보다는 말투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는 고압적이었다.

아무래도 원래 성격 자체가 그런 기질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영화를 제작하시는데요? 제가 거절한 캐스팅이 좀 많아서.”


내가 딱 싫어하는 타입이라 좀 세게 나갔다.


“하하!! 그렇겠죠. 이연후씨 요즘에 잘 나가잖아. 그런데, 나한테 그렇게 하면 좀 안 좋을 텐데.”

“그러니까 무슨 영화 때문에 연락을 하셨냐고요? 말 안하시면 그만 갑니다.”


내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임환수가 다시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성질 참 급하네. 저번에 ‘세이브 미’라고 전화 안 받았어요?”


당연히 기억난다.

강윤성이 출연한다고 했던 영화 아닌가.

강윤성에게 한 방 먹이려고 잠시 고민했었는데.

이 사람이 제작사 대표라니 출연 안 하길 정말 잘했다.


“아! 기억나요. 소방관 얘기죠.”

“그거 이연후씨가 나오면 크게 히트칠 텐데. 지금이라도 괜찮아요. 주연을 원하면 주연 자리도 한 번 생각해 볼게.”


주연까지 생각해 본다니 정말 이 사람이 날 원하는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지금 출연하는 DMZ도 있고, 이런 사람이랑 엮이면 정말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촬영 중인 작품이 있어서 출연할 수 없습니다.”

“그 ‘공동경계구역 DMZ’ 말인가? 그거 라디오에서 게스트나 하면서 먹고 살던 감독이 제대로 찍을라나 모르겠네.”


임환수는 나에게 고압적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방창욱 감독까지 씹어댔다.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그에게 더 이상 잡혀 있고 싶지 않았다.


“방 감독님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님이 되실 거예요.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아이고. 의리는 있네. 방 감독이 그렇게 되면 나는 제리 브룩하이머가 되겠구만. DMZ하고 우리 영화하고 누가 잘 되나 한 번 보자고. 우리도 요즘 핫한 배우 하나 있거든. 강윤성이라고. 걔가 이번에 뜰 거야.”


임환수의 입에서 강윤성의 이름이 나왔다.

내가 수상 소감을 할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그놈과 무례하게 나를 끌고 와서 자기 얘기만 했던 이 사람.

이런 걸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임환수에게 목례를 하고 ‘쥐리’팀에 합류하기 위해서 자리를 떴다.

그렇게 천상예술대상은 막을 내렸다.




‘쥐리’팀의 회식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가까운 광화문의 한 고깃집에서 있었다.

신인상, 남우주연상, 작품상까지 거머쥔 ‘쥐리’팀은 고깃집의 셔터를 내리고 죽을 기세로 술을 마셔댔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스탭이 나올 정도로 술자리 페이스가 빨랐고, 밤 1~2시가 되자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새벽까지 이어질 줄 알았던 술자리는 거창했던 시작과 달리 금세 막을 내렸다.

다음날 촬영이 있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이렇게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황성규는 회식 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회식 자리에서 그는 채민석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고, 채민석도 고마움을 표시하며 어느 회식 자리보다도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내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연말에 다시 한 번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회식 다음날.

의외로 회식이 일찍 끝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얼른 준비를 하고 남양주 촬영장으로 가니 방 감독과 스탭들 몇몇만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제 왜 안 오셨어요?”


나는 방 감독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내가 거길 가서 뭐해. 작품을 출품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다른 감독님도 만나고 배우들도 보고 그러면 좋잖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이 영화 어떻게 찍을지 연구나 하지.”


딱 방 감독다운 말이었다.

조금만 사교성이 있어도 더 많은 작품을 찍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긴 그런 방 감독이기에 작가주의적인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지만.


“참! 너 신인상 받았지?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너 수상 소감에 내 얘기는 했냐?”

“아뇨. 감독님은 쥐리 찍을 때 얼굴 한 번 본 게 전부여서.”


농담인 줄 알았는데 방 감독의 표정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이럴 때 보면 방 감독은 어린 아이 같은 면도 있었다.


“죄송해요. 감독님. 앞으로 상 받으면 감독님 얘기는 꼭 할게요.”

“그래. 그래. 꼭 해라!”


표정이 풀어진 감독은 가도 좋다고 손짓했다.

나는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오늘 촬영할 시나리오를 펼쳐 들었다.

오늘은 남북한 병사들이 북한 초소에서 서로 어울려 노는 장면의 촬영이 있었다.

내가 처음 북한 초소에 갈 때부터 몇 번 만나 친해져서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장면.

이렇게 분위기 좋은 장면을 촬영할 때는 부담도 덜한 편이다.

마지막에 나와 이명현이 북한 장교와 진아균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부담감이 엄습했다.


“연후 나왔냐?”


한참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데, 손광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나오셨어요.”

“어제 신인상 축하해. 근데 내 얘기는 왜 빼먹었어.”


아차!

방창욱 감독은 얘기를 안 했어도 손광호 선배는 빼먹으면 안 되는데.

손광호 선배가 양보해 준 덕분에 내가 ‘쥐리’에 출연하게 된 건데 말이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됐어. 됐어. 그냥 농담한 거야.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 얘기하면 수상 소감 하루 종일 해도 다 못하겠다. 앞으로도 그냥 몇 사람만 얘기하고 말아라.”


손광호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웃으며 넘겼지만 그래도 이번 수상 소감에 말하지 않은 건 큰 실수였다.

갑작스런 수상이라 이렇게 된 거지만 앞으로는 소감에서 꼭 말해야 하는 사람은 미리 적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고 있던 손광호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웃음기를 거두며 물었다.


“형님들은?”

“네?”

“채민석, 황성규 말이야. 형님들은 괜찮았어?”


농담을 하며 실실 웃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숨 막힐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할까 내가 느낀 것을 말해야 할까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런저런 고민을 한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그때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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