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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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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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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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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1

DUMMY

방창욱 감독과 만나기로 한 날.

3호선 신사역 4번 출구에서 내러 간장게장 골목을 지나니 허름한 빌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들이 모두 모이기엔 너무 작은 곳이라 왜 이곳을 잡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오늘 대본 리딩이 아닌가?’


의문은 건물에 들어서면서 더욱 그 강도를 더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마 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출연 배우들이 전부 모여 리딩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왜 여기로 오라는 거지?’


약속한 건물 4층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의문은 해소되지 못했다.

사무실의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노크를 했다.

4층 사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은 건 방창욱 감독과 이명현 두 사람뿐이었다.


“연후씨! 반갑습니다. ‘쥐리’에서 연기 좋던데요.”


이명현이 커다란 입을 귀까지 밀어 올리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화면에서 볼 때와 달리 실물로 보니 뒤에서 후광이 비칠 정도의 미남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놀라 주춤거리다 겨우 인사를 받았다.


“네. 형님. 반갑습니다. 이연후입니다.”

“처음 봤는데 형님이라네? 붙임성이 좋은가 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이명현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생동감 있게 변했다.

채민석, 손광호에 필적할 만한,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도 더 대단한 평가를 받는 배우.

이명현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저보다 두 살 많으시다고 들어서···. 제가 붙임성이 좋은 건 아니고요. 하하!!”

“알았어요. 그래도 형님이라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가는 거야.”

“네. 형님.”


지금까지 만났던 채민석, 황성규, 손광호보다 나이 차이가 훨씬 적었기에 ‘형’이라고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명현이 밝은 얼굴로 맞아 준 덕분에 더욱 마음이 편했다.

첫 만남치고는 아주 좋은 출발이었다.


“자. 두 사람 인사 끝났으면 일 얘기 좀 할까?”


우리 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방창욱 감독이 끼어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바로 방창욱 감독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방 감독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두 사람하고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거야. 두 사람은 남한 병사 역할이고 광호나 아균이랑은 상황이 다르니까.”


손광호는 북한군 중사 역할, 진아균은 북한군 전사 역할이었다.


“감독님. 대본 리딩은 따로 안 하시나요?”

“나는 따로 안 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굳이 다들 모여서 대본 맞춰 보는 것보다는 관련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


방 감독은 확실히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의 단호한 말투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도 다 같이 모여서 하는 게 훨씬 로맨틱하지 않아요?”


이명현이 능글능글 웃으며 방 감독에게 물었다.

로맨틱?

이명현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로맨틱하긴 하지. 그래도 영화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이번에 너희들이 맡은 역할은······.”


방 감독의 말이 시작됐다.

감독은 우리에게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남한 병사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감정을 요구했다.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한 병사들과 어울렸지만 결국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하게 어울릴 수 없었던 심리.

파국에 이르러서 어울렸던 북한 병사에게 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다.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었다.


“잘 생각해서 표현해 보라는 거야. 너무 스트레스 받을 거 까지는 없고.”


10분 넘게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줘 놓고 이렇게 말을 하다니 황당했다.

황당한 건 이명현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님. 그렇게 어려운 주문을 하면서 굉장히 쉽게 말씀을 하시네요.”

“아! 내가 그랬나? 미안미안.”


방 감독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웃고 있는 방 감독의 얼굴에 뭔지 모를 고민이 있어 보였다.

나는 내 생각이 맞는지 조심스럽게 방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얼굴에 그늘이 좀 있으신데.”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이 어린 친구가 관상을 보나?”


방 감독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얘기를 해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으음. 아직 영화의 엔딩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않았는데, 그게 고민이야!”

“혁수(이명현)가 아프리카로 가서 광필(손광호)을 만나는 걸로 하신 거 아니었어요?”


이명현의 말에 방 감독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정하기는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공동경계구역 DMZ’의 엔딩은 남북 병사들 4명이 나오는 사진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꽤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관객들 사이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회자되었으며, 엔딩을 찍게 된 이유도 방 감독이 밝힌 바 있다.

원래 방 감독은 혁수가 죽지 않고 아프리카에 가서 광필을 만나는 장면으로 밀었는데, 제작자와 논의 끝에 혁수가 자살하는 마지막 엔딩 씬이 나온 것이라고.

지금 방 감독은 그걸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방 감독의 고민을 풀어 줘야 했다.


“감독님!”

“어? 왜?”

“시나리오 보니까 미국인 관광객이 사진 찍는 걸 혁수가 막는 씬이 있던데, 그걸 엔딩에 쓰면 어때요?”


방 감독과 이명현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차이가 있었다.

이명현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눈이라면 방 감독의 눈은 비밀을 들킨 것 같은 눈.

방 감독은 말을 살짝 더듬으며 물었다.


“무··· 어?”

“그러니까, 미국인 카메라의 시선을 4명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 주는 거죠. 과거를 추억하는 것처럼. 사실 카메라는 과거를 찍는 물건이니까.”


이명현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방 감독은 눈이 커지며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소리쳤다.


“야! 너 정말 무당이야? 아! 소름 돋는다. 소름!”


방 감독이 오른손으로 왼팔을 쓸어내렸다.

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은 눈빛을 방 감독에게 보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떻게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걸 똑같이 말하냐고? 너 점쟁이야?”

“아! 감독님도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그저 그렇게 끝내면 멋있겠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린 건데.”


방 감독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이명현은 나와 방 감독이 웃고 있으니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오늘 되게 성공적이야. 성공적!”


이명현의 한마디는 오늘의 나를 제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처음 만난 스타 배우와 금세 친해졌고, 거기다 방 감독의 고민까지 해결해 줬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했던 이명현의 말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얼마 전 종합촬영소가 세워져 ‘공동경계구역 DMZ’의 판문점 세트가 이곳에 들어섰다.

나는 구리 쪽을 통해 남양주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한강변을 따라 북한강까지 가는 길을 택했다.

가는 내내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했다.

강변을 따라 피어난 노란 개나리꽃이 1999년의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45번 국도를 타고 삼봉리 쪽으로 좌회전을 해서 조금만 가니 종합촬영소가 보였다.

주차장에 내려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마술처럼 판문점 세트가 나타났다.

세트장에는 이미 스탭과 배우들이 모여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분은 여주인공 임영혜가 판문점에 방문하는 씬과 이명현과 손광호를 만나는 씬이다.

촬영 둘째 날이었으나 어저께 고사를 지내고 촬영은 간단하게 끝낸 걸 감안하면 본격적인 첫 촬영이었다.


“어! 왔냐?”


내가 인사를 하자 방창욱 감독이 손을 들며 말했다.


“촬영은 시작하신 거죠?”

“응. 저기 임영혜 있잖아.”


판문점 건물 사이에 서 있는 임영혜가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모가 뛰어난 여배우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다.

몇 번 TV에서 단역으로 나와 시선을 끌다 화장품 cf가 대박을 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외모에 미치지 못하는 연기력 논란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래도 워낙 외모가 출중하다 보니 작품은 끊이지가 않았다.

방창욱 감독은 이 작품에서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배우를 원했는데 그를 만족시킬 만한 여배우라면 임영혜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과연 방창욱 감독의 의도대로 임영혜는 지성과 섹시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오! 역시 임영혜는 임영혜네요.”

“그렇지. 그래도 영어 연기를 해야 해서 좀 걸리긴 하네.”


임영혜는 극중에서 스위스 장교 소피아 역할을 맡았다.

그냥 미국인이 쓰는 영어로 연기를 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스위스인이 하는 영어라니.

스위스는 공용어가 세 개나 되는 나라인데 말이다.

감독의 걱정은 영화 개봉 후에 해외에 수출되면서 현실화된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서 잘 하겠죠.”

“그래. 그것까지 걱정할 새가 없다. 그나저나 너 저번에 말해준 거는 엔딩 그렇게 가기로 했다.”

“혁수가 자살하는 것으로요?”

“응. 제작사 쪽에서 그게 좋다고 그러네.”


방 감독의 말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감독이 처음 설정한 제3국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는 것이 영화의 설정상 오히려 나을 수도 있었다.

임영혜가 연기하는 스위스 장교의 아버지가 6·25 전쟁 포로였고, 제3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사람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체제 대결에 희생양이 된 혁수와 광필이 아프리카 제3국에서 만난다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었다.

감독의 아쉬움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그를 위로했다.


“감독님. 의미를 찾으려면 그 엔딩이 낫지만 관객한테 감동을 주는 건 흑백 사진 엔딩이 훨씬 나을 거예요.”

“하하!! 너 배우하지 말고 감독해라. 내 옆에서 몇 편 조감독하면 내가 책임지고 입봉시켜 줄게.”


방 감독은 웃음 반, 진지함 반을 섞어 말했다.


“그럴까요? 근데, 저는 감독하기엔 너무 잘생겼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 나는 감독하기에 딱 맞는 얼굴이냐?”


방 감독의 질문에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눈에서 나에게 어떤 대답을 바라는 간절함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원하는 말을 해 주려는 찰나 조감독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감독님. 촬영 준비됐습니다.”


방 감독이 조감독에게 시선을 돌린 사이 나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조감독이 방 감독에게 지시를 받은 뒤 무비 슬레이트를 들고 판문점 세트로 걸어 나갔다.

조감독이 세트 앞으로 등장하자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임영혜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촬영 준비를 마쳤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찰칵!”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임영혜는 남측 판문점에서 북측 판문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좀더 제대로 보기 위해 그녀의 정면 모습을 촬영하는 카메라 옆으로 이동했다.

스위스 군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임영혜의 모습은 단아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으며 나의 시선은 온통 그녀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그러다 촬영 중인 임영혜와 시선이 마주쳤고 그녀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녀의 미소가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님 촬영을 위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고 그 걸음이 마치 나를 향한 것처럼 느끼는 순간.


“컷”


방 감독이 ‘컷’을 외쳤다.

‘컷’ 소리를 들은 임영혜는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사이 다시 그녀의 발걸음이 시작되었으며 목적지는 내가 있는 쪽이었다.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나는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둘러봤다.

옆에 있던 카메라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그녀가 반갑게 인사했다.


“이연후씨! 맞으시죠? 반가워요. 임영혜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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