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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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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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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3,542

작성
23.09.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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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2쪽

015. 게임 아이템 사기 (3)

DUMMY

철딱서니로부터 받은 캡처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제 배미(배틀 오브 미들의 약자)에서 영약을 샀는데 뭐가 나왔는줄 아심? 출시된 지 몇일 안 된 바로 그 보라색 영약. 나오자마자 생각난 건 맨날 나를 쪽 주던 알리사 그년. 나는 바로 그년을 찾아 미친 듯이 들판을 돌아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냈다.


바로 결투를 신청했고, 그년은 코웃음을 치며 내 결투를 받았지. 내가 보라색 영약을 가진 걸 모르고 말이지 ㅋㅋ.. 결투 시작. 나의 칼이 알리사를 몇 번 베었고, 드디어 드러낸 알리사의 알몸. 그 년은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리며 발악했다. 푸하하하!!! 너네들도 이 기분 한번 느껴 봐라.


“작성자가 KBS99?”


캡처본을 읽은 재혁이 중얼거렸다.


“99학번인 거 같아. 이름은 김씨나 강씨겠지.”

“그렇겠네. 방송국에서 그런 글을 썼을 리는 없고.”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캡처본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재혁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 게시물만으로는 작성한 KBS99가 넥스트 소프트와 관계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이 글이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거가 되기 어려울 텐데.”


맞는 말이다.

게임을 이용하는 유저가 허풍으로 지껄인 소리라면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고, 그 게시물이기에 고의나 과실로 평가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게시물을 통해 회사의 책임을 물으려면 그 게시물을 회사의 직원이나 관계자가 작성했어야 한다.


“지금까지 보라색 영약을 사용한 것이 확인된 사람은 류성욱 혼자야. 더구나 그 게시물이 작성된 시점은 보라색 영약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고. 그때 그런 허풍을 칠 만한 이유가 있을까?”


내 말을 들은 재혁이 미간을 찡그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형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때 그런 거짓말을 할 만한 쪽은 회사밖에 없어. 우선 지금 당장 뭐 입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 하나씩 증거를 찾아보자.”

“좋아. 일단 네가 소장 작성해서 접수를 해라. 나는 KBS가 누군지 알아볼게. 넥스트 소프트에도 한 번 찾아가 봐야겠어.”

“소장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을까?”


재혁이 걱정스런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그렇게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뭔 걱정이냐? 내가 상대방 변호사라고 밝힐 것도 아니고. 그냥 유저라고 할 건데.”

“아아!! 그렇구나.”

“너 가끔 보면 똑똑한 놈이 맞나 싶다.”


재혁은 멋쩍었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서둘러 내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며 책상에 놓여 있던 캡처본을 챙겼다.

그런데, 지금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단어 하나가 유독 눈에 거슬렸다.

KBS99는 ‘며칠’을 ‘몇일’로 잘못 쓰고 있었던 것이다.


***


며칠 후.

재혁이 소장을 작성하여 법원에 접수했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5천만 원.

의뢰인들이 주장하는 손해액은 8천만 원이었으나 보라색 영약이 출시되기 전 그들이 구매했던 다른 아이템의 구매액을 감안하면 3천만 원은 보라색 영약이 출시되지 않았어도 아이템의 구매에 어차피 지출될 돈이었다.

손해배상 청구를 담당할 법원은 서울중앙지법 단독재판부였다.

다행히도 게임에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젊은 남자 판사에게 배당이 되었다.


“너 아는 판사냐?”

“학교에서 유명했던 선배님이야. 워낙 대선배라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재혁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나보다 세 살 많았지만 서울 법대 재학 시절 합격하여 사법연수생 시설까지 치면 법조 경력은 10년에 가까웠다.


“그래도 젊은 판사니까 잘해 주겠지.”

“모르겠네. 그 선배가 워낙 공부만 하셔서 이런 거 잘 이해해 주실지 모르겠어. 게다가 우리가 대리하는 의뢰인들이 모범생들은 아니잖아.”


큰 덩치에 팔뚝에 문신을 새긴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담담한 얼굴로 재혁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리 것만 하자고. 어차피 소송은 요건만 입증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 그러자.”

“근데, 형. 넥스트 소프트는 가 봤어?”

“응. 며칠 전에 상담 신청을 해 뒀는데, 내일 담당자를 만나게 해 준다고 그러더라.”

“잘 됐네.”


재혁과 나는 창밖을 보며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때, 정성식 국장이 한 손에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변호사님. 상대방 변호사가 답변서를 제출했습니다.”


정 국장이 서류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내용물을 꺼내 보니 김앤전 법률사무소의 소송위임장과 답변서였다.


“이번에도 김앤전이네.”


중얼거린 걸 들었는지 재혁이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가져가며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넥스트 소프트 같은 돈 많은 회사가 어딜 쓰겠어? 당연한 거 아냐.”

“청구금액이 5천만 원밖에 안 되는 소송에 수임료는 수억 들이겠네.”


오늘따라 유난히 아이스아메리카노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저번에도 이겼는데 이번에도 이겨 주지 뭐.”

“그래. 이번에 박살 내고 추가로 단체소송 들어가자.”


나는 재혁과 정 국장을 번갈아 보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전혀 빈말이 아닌 것이 이번 소송은 청구금액은 적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다.

넥스트 소프트가 기망을 해서 유저들의 돈을 편취한 것이 밝혀지면 우리 의뢰인들뿐만 아니라 보라색 영약을 얻기 위해서 돈을 지출했던 유저들이 전부가 소송전에 뛰어들 테니까.

결국, 넥스트 소프트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김앤전에 이 소송을 맡긴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넥스트 소프트 본사는 8층 건물이었다.

게임 회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게 다소 낡은 외관에 특별한 조형물조차 없었다.

넥스트 소프트 사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건물 꼭대기 층에 걸려 있는 간판뿐.

간판은 나름 신경을 썼는지 세련된 디자인이었는데, 오래된 건물에 걸려 있다 보니 오히려 어색하게 보였다.

이런 외관 때문에 넥스트 소프트가 상암동 DMC나 판교로 이전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의 내부는 외부와 전혀 달랐다.

깔끔하게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심플하지만 고급스런 인테리어는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회사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리셉션 데스크에 있는 안내 여직원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오늘 상담 예약한 김일목이라고 합니다.”

“잠시만요.”


여직원은 앞에 있는 키보드를 두드려 예약을 확인했다.

얼마 후 예약이 확인되었는지 여직원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상담 예약 확인되셨고요. 2층 12번 상담실에 계시면 담당 직원이 오실 겁니다. 여기 방문증을 출입구에 찍으시면 들어가실 수 있으세요.”


여직원이 방문증을 내밀었다.

나는 방문증을 받아들고 천천히 출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출입구에 있는 카드 인식기에 방문증을 갖다 대니 출입문이 열렸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출입구 뒤에 서 있던 보안요원이 검색기를 갖다 댔다.

두 차례의 검색을 통과한 나는 방문객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상담실이 어림잡아 스무 개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안내를 받은 12호실로 들어갔고, 10분쯤 기다리자 담당 직원이 들어왔다.


“아이템을 잃어버리셨다고요?”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인사도 없이 대뜸 물었다.

표정으로만 봐도 이런 류의 상담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정말 귀하게 구한 건데.”

“아이템 이름이 뭐죠?”

“보라색 영약이요.”


남자는 가져 온 종이에 뭔가를 적다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입을 반쯤 벌린 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들을 수가 있었다.


< 보라색 영약이라고? 이 새끼 뭐지? >


예상치 못했던 그의 마음에 깜짝 놀라 입이 벌어졌다.

입을 벌린 나와 남자는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먼저 정신을 차린 남자가 물었다.


“보라색 영약이라고요? 그걸 어떻게 구하셨죠?”

“어떻게 구하다뇨? 가게에서 샀죠.”


당황한 남자가 당연한 걸 물어봤고, 나는 당연한 대답을 했다.


“그··· 그렇죠. 하하!!”


< 그럴 리가 없는데. 보라색 영약이 나갈 수가 없는데. >


내 귀에 들린 남자의 마음은 분명 ‘보라색 영약이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나갈 수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보라색 영약을 아예 만들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누구에게만 판매한 것인가.


“혹시 그게 나와서는 안 될 그런 건가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나 속마음을 더 들을 수 있을까 찔러봤지만, 특별히 다시 들려오는 건 없었다.

남자는 가져온 종이에 뭔가를 마구 적더니 종이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여기 간단한 질문이 있으니까 적어 주세요. 적어 주시면 제가 사무실에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네.”


종이에는 내 아이디, 등급 등과 함께 아이템의 구매 시기, 분실 시기 등의 질문이 있었다.

질문 중 눈에 띄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아이템은 언제 구매했는지, 몇일 후에 분실했는지


‘몇일’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조급해 보이는 얼굴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고 있느라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작성한 나는 종이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종이를 받아들고 상담실을 나가 사무실로 올라갔다.


‘저놈이 KBS99인가? 99학번 치고는 늙어 보이는데···.’


99학번이면 80년생 전후인데, 남자는 분명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였고 다섯 살 정도의 갭이 있었다.


‘이름만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은데.’


어떻게 이름을 확인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찍 남자가 나타났다.

좀 전까지 초조하던 얼굴은 어디 가고 슬쩍 미소를 띠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고객님. 고객님이 보라색 영약을 구입한 내역이 검색되지 않습니다. 그날에 고객님이 구입하신 건 빨간색 영약이었어요.”

“어? 분명 보라색 영약이었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남자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달랬다.


“고객님.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빨간색이 보라색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고객님들이 가끔 오시기도 하고요.”


< 이 새끼 나이 처먹고 색깔도 구별 못 하나. 후훗. 보라색 영약은 너 같은 놈한테 가는 게 아냐!! >


남자는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하며 마음속으로 딴말을 하고 있었다.

‘나 같은 놈한테는 팔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가 다시 나를 불렀다.


“고객님. 뭔가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고요. 저희 회사에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 해결되신 걸로 알고요.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명함 하나 주실 수 있으신가요?”

“명함은 왜요?”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가 급정색을 하며 물었다.

나는 남자가 좋아할 만한 이유를 말해줬다.


“오늘 너무 친절하셔서 게시판에 칭찬 글 좀 올리려고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하하!!”


남자는 사양하는 것 같이 말을 했지만 이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고 있었다.

그가 내민 명함에 그의 소속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운영지원본부 배틀 오브 미들팀 김범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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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게임 아이템 사기 (4) +3 23.09.24 2,165 31 11쪽
» 015. 게임 아이템 사기 (3) +4 23.09.23 2,152 28 12쪽
14 014. 게임 아이템 사기 (2) +2 23.09.22 2,214 30 12쪽
13 013. 게임 아이템 사기 (1) +1 23.09.21 2,327 35 11쪽
12 012. 하찮은 사건은 없다 +2 23.09.20 2,386 27 12쪽
11 011. 첫 사건 (2) +4 23.09.19 2,402 32 12쪽
10 010. 첫 사건 (1) +4 23.09.18 2,430 29 12쪽
9 009. 개업 +3 23.09.17 2,453 33 12쪽
8 008. 검찰 실무 수습 (3) +4 23.09.16 2,428 37 12쪽
7 007. 검찰 실무 수습 (2) +2 23.09.15 2,469 33 12쪽
6 006. 검찰 실무 수습 (1) +3 23.09.14 2,682 37 12쪽
5 005. 사법연수원 (3) +5 23.09.13 2,785 36 12쪽
4 004. 사법연수원 (2) +2 23.09.12 2,917 39 12쪽
3 003. 사법연수원 (1) +2 23.09.11 3,204 42 12쪽
2 002. 내 이름은 김일목 +6 23.09.11 3,419 46 12쪽
1 001. 내가 누구냐고? +3 23.09.11 4,380 5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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