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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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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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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542

작성
23.09.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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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0. 첫 사건 (1)

DUMMY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하니 정 계장이 먼저 나와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계장님. 벌써 나오셨어요?”

“네. 변호사님 나오셨습니까!!”


책상을 닦고 있던 정 계장이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무슨 청소를 혼자서······ 저랑 같이 하시죠!”


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청소를 도우려 나섰다.


“변호사님은 변호사님 방이나 하시면 됩니다. 여기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검찰에 있을 때는 계장이었지만, 이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으니 호칭을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렇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 계장은 자기가 직접 말하기가 쑥쓰러웠는지 괜히 걸레질을 두어 번 하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랑 비슷한 나이나 경력을 가진 사무장들은 보통 국장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아! 네 국장님. 국장님 좋네요.”

“그럼. 명함을 맞춰 놓을까요? 그런데, 우리 사무실 이름을 어떻게?”


정 계장의 말을 들으니 머리에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률사무소를 열겠다는 놈이 사무소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 그걸 제가 아직도··· 생각을······.”

“그러셨군요. 그럼 천천히 정해서 알려 주십시오. 그때 명함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나는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왔다.


‘사무실 이름을 어떻게 정하지.’


보통 법률사무소의 이름은 세 글자를 넘어가지 않았다.

법률사무소 김앤전, 법무법인 퍼시픽 등등.

그리고 소형 펌의 경우 법률의 ‘률’을 따서 짓기도 했다.

O률, X률, O율, X율, 율O, 율X 등등.

개인적으로 ‘률’을 붙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이름인 ‘일목’을 그대로 쓰자니 부담이 가기도 하고 뭔가 좀 어색하기도 했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이름을 짓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정말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때 사무실 문에 들리는 노크 소리.


“변호사님. 손님 오셨는데요?”

“손님이요?”

“네. 김재혁 변호사님이라고. 연수원 동기라고 하시던데.”


들어오란 말을 할 것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며 재혁이 들어왔다.

녀석은 당당하게 걸어오더니 허락도 받지 않고 책상 앞에 있는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주 자연스럽다?”

“뭐 괜찮네. 이 정도면 재밌게 일할 수 있겠는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저번에 말했잖아. 나 형이랑 같이 일하겠다고.”


연수원 수료식 날 서종규 교수와 심각하게 말을 하면서 재혁을 쳐다보던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 서 교수와 나는 재혁이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이라 의견의 일치를 보았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이 녀석은 뭔가.


“그거 정말이었어?”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무슨 시추에이션이긴. 함께 하는 시추에이션이지.”


말은 농담에 가까웠는데, 재혁의 얼굴은 나름 진지했다.

마치 평생 동안 나와 함께 일을 하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야! 너 한두 달 하다가 나갈 거면 괜히 피곤하게 하지 말고 딴 데 알아봐라.”

“형! 최소한 5년은 있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내 방이 어딥니까?”


말을 마친 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재혁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고, 청소를 하고 있던 정 국장과 우리는 어색한 대치를 하게 되었다.

어색함을 깬 것은 재혁이었다.


“이 분은 누구셔?”

“인사해. 우리 일 도와주실 정성식 국장님이야. 국장님. 여기는 제 연수원 동기 김재혁 변호사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두 사람에게 약간의 소개를 보태어 주었다.


“정 국장님은 나 검찰 시보할 때 같은 사무실에 계셨던 계장님이고, 사법시험 10년 준비하시고 검찰 수사관으로 20년 근무하신 분이야. 그리고, 여기 김재혁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졸업했고, 연수원 3등으로 수료했습니다.”

“연수원 3등이면 판사를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 국장이 놀라며 물었고, 재혁은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몰라요. 이 자식이 나랑 같이 일하겠다고 해서 나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올 줄은 몰랐죠.”

“아아. 네.”


정 국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수원 동기인 나도 믿기 어려운데 정 국장이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제 방은 어디인가요?”

“일단 이 방을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 국장은 내 옆방을 가리켰다.

사무실은 변호사실 4개, 회의실 1개, 상담실 1개와 가운데 직원들이 쓰는 공용 공간으로 이뤄져 있었다.

정 국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녀석은 가져온 짐을 자신의 방으로 옮겼다.

개인 컴퓨터와 법률 서적, 문구류 등이었다.


“뭐야? 벌써 준비해 온 거야?”

“당연하지. 준비해 놔야 고객을 받을 거 아냐? 근데, 법률사무소 이름이 뭐야?”

“그거? 아직 못 정했는데.”

“으음··· 일혁 어때? 법률사무소 일혁. 형 이름에서 ‘일’ 따고 내 이름에서 ‘혁’ 따고. 고민할 필요 없잖아.”


일혁.

괜찮은 것 같았다.

‘혁’자가 들어가니 혁신이나 혁명 같은 역동적인 느낌도 들고.

‘일’자는 일등과 같은 최고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럼. 얼른 명함 좀 파줘.”


재혁은 이미 자신의 책상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재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사무실을 나와 정 국장에게 말했다.


“국장님. 저희 사무실 이름은 일혁입니다. 법률사무소 일혁. 명함 좀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 국장은 이마의 땀을 닦아 낸 후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어 그런지 얼굴에 찾아온 미소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


“근데, 너 이러는 이유가 뭐야?”


김이 나는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마신 내가 재혁에게 물었다.


“이유라니?”

“네 성적이면 판사, 검사도 될 수 있고, 김앤전도 갈 수 있는데, 왜 이러냐고?”

“판사나 검사는 내 체질이랑 안 맞아. 맨날 주어진 일 처리나 해야 하고 윗사람 눈치 봐야 하는 거 딱 질색이야.”

“뭐 여기는 주어진 일 처리가 없냐? 여기는 주어진 일이 없어서 일 찾으러 다녀야 되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


재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키득거렸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건지 녀석의 얼굴에 근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야! 변호사 일을 하고 싶으면 김앤전에 가면 되지. 왜 개업을 하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런 형은 왜 개업을 하고 그래요?”

“나야 검사 지원해서 떨어지고 나서 갈 만한 데가 없어서 그런 거지.”

“나도 형이랑 비슷해. 김앤전이나 대형 로펌은 조직이 너무 커서 판검사나 비슷하지 않나 싶어. 난 좀 더 자유롭게 일하기를 원해.”


재혁의 얼굴이 이전보다 나름 진지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내 사무실을 택한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많은 법률사무소 중에 굳이 내가 만든 이 사무실에서 일하려는 이유가 뭐야.”

“음. 일단 형이랑 2년 동안 같이 지내서 편하고 만만하다고나 할까.”

“까불지 마라.”


난 목소리를 깔고 녀석에게 주의를 줬다.

재혁은 장난스럽게 두 손을 모아 비는 자세를 취하더니 말을 이었다.


“실은 나도 연수원 들어오면서부터 개업할 생각이었고, 누구 같이 할 사람 없나 하고 알아봤는데, 형이 딱 적임자라고 생각했어.”

“적임자?”

“응.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뭘 빼먹을 게 없나 하고 의도를 갖고 만나는데, 형은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 게다가 형은 다른 사람들한테 없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

“특별하다니?”


사법시험이라는 고시를 합격하고 모인 사법연수원에서 특별한 것은 오로지 학습능력과 그에 따르는 성적이다.

그런 것이라면 재혁보다 특별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재혁이 지금 나에게 특별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을 했잖아. 그것도 내 앞에서 여러 번 했었지. 지금까지 난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했어.”

“그··· 그건···”


재혁의 마음을 읽어 몇 번 성과를 나타낸 적이 있었다.

민사 모의재판 때나 배심재판 세미나에서 말이다.

녀석은 그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왕 개업할 거 형이랑 같이 하면 더 잘 될 것 같아서 그랬어. 형이 안 되는 거 내가 하고, 내가 안 되는 거 형이 하면 우리 잘 나갈 것 같지 않아?”

“그야 그렇겠지.”


재혁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법조계 어디에서나 탐을 내는 인재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재혁의 생각을 확실히 알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장막이 단번에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정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의뢰인이 상담하고 싶다고 오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직 사무실 정리도 안 끝났는데 벌써 의뢰가 들어온 건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개업하자마자 처음 온 의뢰인을 돌려보낼 필요는 없었다.

정리가 안 끝났다 뿐이지 사건을 못 받는 건 아니니까.


“네. 들어오세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 국장이 삐쩍 마른 40대 중반의 남자와 같이 들어왔다.

짙게 잡힌 이마의 주름, 축 처진 양쪽 눈과 입꼬리를 보면 누구라도 ‘속상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네. 이 분 제가 예전부터 알던 분인데, 약사십니다. 근데, 큰 병원 건물 안에 약국이 들어서서 약국이 허가되면 안 된다고 소송을 했는데, 1심에서 졌나 봐요. 그래서 이렇게 오셨습니다.”


약사를 대신해 정 국장이 설명을 했고, 약사는 정 국장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국의 개설에 관련된 문제라면 일반 민사법이나 형사법이 아니라 약사법과 관련이 있었다.

첫 사건부터 특별법 문제라니 부담이 되었다.


“보건소에서 약국 개설이 불법이라고 결정했는데, 병원 측에서 김앤전을 변호인으로 써서 행정소송 1심에서 뒤집었습니다.”

“김앤전이요?”


나도 모르게 놀라 되물었다.

김앤전이라면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었고, 이름값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존재였다.

내 모습에 약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검찰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나왔다 그래서 찾아왔더니, 이런 애송이들이라니. 다른 곳을 알아볼까. >


약사의 속마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정 국장이 나섰다.


“약사님. 무슨 생각하시는지 압니다. 김앤전이랑 싸우는데 우리 변호사님들이 많이 모자라 보인다는 거죠?”


정 국장은 나와 같은 능력이 없으면서도 약사의 마음을 귀신같이 꿰고 있었다.

약사는 그의 말에 뜨끔한 탓인지 몸을 약간 들썩였다.


“여기 계신 김일목 변호사님은 검찰에서 시보할 때 현직 검사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 해결하신 분이고요. 김재혁 변호사님은 서울 법대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등으로 졸업한 분이에요. 3등!!”

“아아!! 그러시군요.”


정 국장의 말에 약사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처진 입과 눈꼬리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항소심 급하니까 일단 믿고 맡겨 봐요. 연수원 바로 수료한 변호사님들이 법률지식은 가장 따끈하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니까.”

“그럼 비용은 좀 어떻게?”

“할인되냐고? 그렇게 깎고 시작하면 재수 없어서 될 것도 안 돼요. 비용 문제는 나랑 나가서 얘기합시다.”


정 국장은 서둘러 약사를 데리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약사가 우리를 돌아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나와 재혁은 약사에게 답례를 하고 얼이 반쯤 빠져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 사무실의 첫 수임 사건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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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하찮은 사건은 없다 +2 23.09.20 2,386 27 12쪽
11 011. 첫 사건 (2) +4 23.09.19 2,402 32 12쪽
» 010. 첫 사건 (1) +4 23.09.18 2,430 29 12쪽
9 009. 개업 +3 23.09.17 2,453 33 12쪽
8 008. 검찰 실무 수습 (3) +4 23.09.16 2,428 37 12쪽
7 007. 검찰 실무 수습 (2) +2 23.09.15 2,469 33 12쪽
6 006. 검찰 실무 수습 (1) +3 23.09.14 2,682 37 12쪽
5 005. 사법연수원 (3) +5 23.09.13 2,785 36 12쪽
4 004. 사법연수원 (2) +2 23.09.12 2,917 39 12쪽
3 003. 사법연수원 (1) +2 23.09.11 3,204 42 12쪽
2 002. 내 이름은 김일목 +6 23.09.11 3,419 46 12쪽
1 001. 내가 누구냐고? +3 23.09.11 4,380 5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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