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10,346
추천수 :
1,934
글자수 :
393,542

작성
23.09.16 12:00
조회
2,428
추천
37
글자
12쪽

008. 검찰 실무 수습 (3)

DUMMY

한봉석이 조사를 마치고 검사실을 나서자마자 나는 정 계장에게 말했다.


“계장님. 은행에 보증서 제출된 날 CCTV 좀 확보해 주세요. 그리고 보증서에 대한 지문 감식도 신청해 주시고요.”

“그건 왜?”


정 계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게 아무래도 한봉석이 서명을 위조한 것 같은데, 혹시 놈이 기술자가 아닌가 해서요. 그러면 어느 정도 말이 될 거 같습니다.”

“아하!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하여간 CCTV를 보고 더 조사해 보죠. 그리고 보증서 만약 놈이 위조를 했다면 거기서도 분명 증거가 나올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 계장은 본인이 찜찜해 하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서 그런지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바로 은행에 전화를 걸어 CCTV를 달라고 했고, 국과수에 보증서에 대한 지문 감식을 의뢰했다.

한봉석은 피해자가 대출을 받지 못하자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동생의 서명을 위조해 주고 5백만 원을 받았다.


이미 방대근씨로부터 5백만원을 받은 것은 입증이 되었기 때문에 cctv와 보증서에 있을 녀석의 지문만 있다면 놈을 기소하기에 충분했다.


봉석의 뺀질뺀질한 면상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상상을 했다.

생각만으로도 통쾌했다.


***


“검사님. 아니 시보님. 지시하신 거 다 요청했습니다.”


정 계장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계장님. 지시라뇨? 제가 뭐라고 지시를 합니까? 그냥 도와달라고 한 건데.”

“아닙니다. 이제 검사가 되실 건데요. 검사가 되셔도 잘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계장님 같은 분이 검찰에 오래 계셔야 되는데···.”

“저는 이미 한물간 사람이에요. 시보님 같은 분이 검찰에 많이 오셔야 조직이 발전하죠.”


정 계장의 말에 검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직 정년이 십 년 가까이 남은 그의 퇴직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시보님 검사 임용 발표가 언제죠?”


그러고 보니 검사 임용 최종 발표가 내일이었다.

오늘 한봉석을 조사해서 시원하게 사건을 처리했으니 내일 검사 임용 발표도 원하는 결과가 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들었다.


“내일이네요.”

“아이고. 그렇군요. 내일이면 검사님이 되시겠네요. 축하드립니다.”

“아직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요. 뭐. 축하는 내일 받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하는 정 계장에게 나도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2004년의 첫눈은 잠깐 흩뿌리다가 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혀 흘러내리면서 어지러운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내일 검사 임용 발표를 한다는 생각에 합격에 들뜬 마음과 혹시나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번갈아 들면서 잠을 방해했다.

2시가 지날 때까지 복잡한 마음에 고통을 받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목아!


눈앞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은 궁예였다.

황금빛 용포에 왼쪽 눈을 가린 당당한 모습.

TV에서 궁예를 연기하던 배우와 다르게 생겼지만 그 배우보다 더 포스가 있는 그 모습은 분명히 궁예가 확실했다.


- 궁예?

- 이놈! 궁예라니! 이 할애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느냐!!


궁예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하는 것처럼.


-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 봬서. 그런데, 할애비라뇨?

- 넌 나의 후손이다. 50대 후손.

- 후손이라고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 폐주(廢主)는 역사의 죄인이니 나의 후손들이 얼굴을 들고 살았겠느냐? 다 이 할애비의 죄로다.


마치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꿈은 생생했다.

그런데, 아무리 꿈이라도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궁예가 왜 이제 나타난 것인지 궁금했다.


- 그런데, 갑자기 저를 찾으신 이유는 뭡니까?

- 내 너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이렇게 찾아왔다.

- 올바른 길이라뇨?

- 너는 지금 공직으로 나아갈 운이 아니니 먼저 재물을 모으거라. 그러면 너의 운이 크게 트일 것이다.


지금 궁예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바로 오늘이 검사 임용 발표 날인데, 공직으로 나아갈 운이 없다니.


-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공직으로 나아갈 운이 없다니.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 네 이놈. 이 할애비의 말을 못 믿는 것이냐! 나를 의심하지 말고 재물을 모으거라!

- 그런 소리 하지 마시고 얼른 물러가십시오. 저는 꼭 검사를 해야 합니다.

- 이놈이 그래도!!!


궁예는 잡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내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아악!!


비명과 함께 눈을 떴을 때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갑자기 궁예가 나와 공직에 운이 없다는 헛소리를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사법시험 합격 전 빠져 있던 드라마긴 했지만 안 본 지 2년도 더 됐는데, 갑자기 꿈에 나와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개꿈 중에서도 이런 개꿈이 없었다.


‘아! 중요한 날에 이게 뭐람. 괜히 찝찝하네.’


찝찝한 마음은 검찰청으로 출근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


오후 4시 반.

검사 임용 발표까지 딱 30분이 남았다.

처리해야 할 사건 기록이 책상에 놓여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의 5분 단위로 휴대폰과 벽시계를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 시보. 떨리나?”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담당 검사 이종환이 놀리듯 물었다.


“네. 조금.”

“뭐가 떨려? 되면 내 후배가 되는 거고, 안 되면 다른 일 하면 되지.”


몇 번 말해 본 게 전부인 이 검사가 비아냥거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정 계장이 내 기분을 알았는지 슬쩍 끼어들었다.


“아이고. 검사님도. 시보님이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좋게 말씀해 주세요.”

“뭘 좋게 말해요? 사람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죠.”


이 검사는 정 계장의 말에 과민하게 반응했다.

정 계장이 검사실의 일을 거의 다 처리하다 보니 이 검사는 실력으로 정 계장을 제압하지 못하고 알량한 권위로 누르는 판이었다.

그래서, 정 계장이 뭐라고 말만 하면 예민하게 굴었다.


“그래도 검사 임용이 보통 일은 아니잖습니까? 정말 떨릴 만도 하고요.”

“검사가 뭐 대단하다고. 직장인이나 똑같죠. 계장님한테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검사가 정 계장의 아픈 곳을 건드리자 정 계장은 인상을 찡그린 채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았다.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것 같아서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건 기록을 일부러 소리 내어 넘기기 시작했다.

조용한 검사실에 사건 기록을 넘기는 소리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5시가 되었고, 게시판에 검사 임용 최종 합격자 명단이 떴다.

수험번호 순서대로 명단이 정렬되어 있었고,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수험번호를 찾아 모니터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없었다.

두 번, 세 번 찾아보고 또 찾아봐도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과 함께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뭐야? 김 시보 안 된 거야?”


이 검사의 질문에 난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바로 법무부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이 되고 상대방이 신분을 밝히기도 전 내가 먼저 말했다.


“검사 지원했던 김일목입니다. 제가 임용에서 탈락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 그건 알려 줄 수가 없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는 내 탈락의 이유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제 성적으로 임용이 안 된다는 건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확실한 건 김일목 연수생 본인의 잘못은 아니야.”

“그럼 무슨 이유죠?”


낮은 저음의 상대방은 말하기를 머뭇거리다 아주 모호하게 대답을 하고 끊었다.


“우리는 가족들의 이력도 검토합니다. 특히 부모의 이력··· 이만 끊을게요.”


부모의 이력.

그 말을 들으니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야! 야! 괜찮아! 검사 알고 보면 별것도 아냐! 변호사 해서 돈 많이 벌면 되지 뭘 그래!”


내 속도 모르고 이 검사가 웃으면서 지껄이자 정 계장이 버럭 소리를 쳤다.


“검사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보님 이러고 있는데 지금 하시는 행동이 뭡니까?”

“아니. 정 계장. 지금 뭐하는 거예요?”

“뭐하긴요. 검사님 행동이 잘못됐으니까 말해드린 거죠!!”

“그만 둔다고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이 검사는 정 계장을 항해 고함을 질렀다.

가만 두면 정 계장이 폭발할 것 같아 내가 나섰다.


“계장님. 괜히 저 때문에 그러지 마시고, 저랑 잠깐 나가시죠.”


나는 서둘러 정 계장의 자리로 가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정 계장은 나를 따라 검사실을 나섰고, 우리가 검사실을 나설 때까지 이 검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검사실을 나간 나와 정 계장은 다시 검사실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


정 계장과 술자리는 몸을 못 가눌 정도까지 이어졌고, 나는 정 계장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술자리에서 이 검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정 계장은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출근을 하지 않으면 중징계를 받아야 할 사유였지만, 정 계장이 곧 그만 두는 사정과 그동안 검사실의 일을 도맡아 했던 점을 고려하여 청에서는 그냥 넘어갔다.

그로 인해 이 검사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일을 하던 그는 수시로 나와 눈을 맞추려 노력했다.

일을 나눠서 할 수 없겠냐는 그의 간절한 눈을 나는 가차 없이 외면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나의 검찰 실무 수습도 마무리가 되었다.

이종환 검사실에서 나의 마지막 사건은 한봉석을 기소하는 것이었다.


“내가 위조한 게 아니라고요. 방대근 동생이 직접 서명한 거예요.”


한봉석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했다.

나는 은행의 CCTV 영상과 보증서에 나온 지문 감식 결과를 그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한봉석씨 이래도 잡아뗄 거예요?”

“이게 뭔데? 이걸로 필적 감정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법정에 가서 한번 그렇게 말해 봐!”

“으으!! 이 새끼가!!”


한봉석이 몸을 들썩거리며 덤벼들려고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수갑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한봉석씨! 자꾸 그렇게 흥분하면 바로 긴급체포합니다. 조심하세요!!”


그러자 한봉석은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해졌다.

그게 검찰 실무 수습의 마지막이었다.


검찰 실무 수습을 끝으로 사법연수원 수료를 위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됐다.

연수생들은 법원, 검찰, 로펌이나 사내 변호사 등으로 진로를 정해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갈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검사 임용에서 미끄러진 이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잠시 방황했다.

물론 나의 첫 번째 목표는 검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검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명 로펌이나 좋은 회사들도 있었지만 조직의 일원이 되어 부속품처럼 지내는 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미 검사를 지원했었던 나를 반갑게 맞아 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끝없이 주저 않아 있을 수는 없었다.

뭐든 새롭게 목표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나만의 길.

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민은 수료식 전까지 계속되었고, 마침내 나는 나의 갈 길을 정했다.


“개업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서종규 교수는 깜짝 놀라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016. 게임 아이템 사기 (4) +3 23.09.24 2,165 31 11쪽
15 015. 게임 아이템 사기 (3) +4 23.09.23 2,152 28 12쪽
14 014. 게임 아이템 사기 (2) +2 23.09.22 2,214 30 12쪽
13 013. 게임 아이템 사기 (1) +1 23.09.21 2,327 35 11쪽
12 012. 하찮은 사건은 없다 +2 23.09.20 2,386 27 12쪽
11 011. 첫 사건 (2) +4 23.09.19 2,402 32 12쪽
10 010. 첫 사건 (1) +4 23.09.18 2,430 29 12쪽
9 009. 개업 +3 23.09.17 2,453 33 12쪽
» 008. 검찰 실무 수습 (3) +4 23.09.16 2,429 37 12쪽
7 007. 검찰 실무 수습 (2) +2 23.09.15 2,469 33 12쪽
6 006. 검찰 실무 수습 (1) +3 23.09.14 2,682 37 12쪽
5 005. 사법연수원 (3) +5 23.09.13 2,785 36 12쪽
4 004. 사법연수원 (2) +2 23.09.12 2,917 39 12쪽
3 003. 사법연수원 (1) +2 23.09.11 3,204 42 12쪽
2 002. 내 이름은 김일목 +6 23.09.11 3,419 46 12쪽
1 001. 내가 누구냐고? +3 23.09.11 4,380 5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