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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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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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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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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542

작성
23.09.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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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13. 게임 아이템 사기 (1)

DUMMY

“그만 돌아가! 되지도 않는 사건 갖고 와서 귀찮게 하면 어쩌냐!!”


정 국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남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정 국장을 보다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국장님. 왜 그러세요?”

“별일 아닙니다. 예전에 사건으로 알게 된 앤데, 되지도 않는 사건을 갖고 와서는······”


정 국장이 혀를 끌끌 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가 또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 게임도 모르는 새끼가··· 아! 씨발 그냥 갈까? >


어지간히 기분이 나쁜지 그 마음이 남자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정 국장이 그런 남자를 보며 거칠게 말했다.


“이놈이 어디서 인상을 쓰고 그래···!”

“왜 그러세요? 그래도 국장님 믿고 오신 손님인데.”


나는 정 국장을 말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남자가 마음으로 말한 ‘게임’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1998년쯤 스타크래프트, 리니지를 필두로 한 온라인 게임의 광풍이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오히려 세를 넓혀 가고 있는 상황에 게임 관련 소송은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제 방으로 가서 말씀을 나눠 보시죠.”


나는 남자를 내 방으로 안내했다.

정 국장은 나와 남자를 보면서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게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싶습니다.”


팔뚝에 어지럽게 새겨진 문신과 대조적으로 그의 눈은 아주 해맑았다.


“왜 게임회사에 소송을 하시려는 거죠?”

“게임 회사가 아이템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어떤 사기를 쳤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말이죠. 어떻게 된 거냐 하면······.”


***


며칠 전 남자의 단골 PC방.

구석에 있는 남자 전용석에 남자가 앉아서 ‘배틀 오브 미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은 유럽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를 이용해 몬스터를 잡고 능력치를 키워 자기가 지배하는 영역을 넓혀 간다는 뻔한 스토리의 게임이었다.


“야! 이 씨바알! 이게 뭔지 아냐? 이 좁밥들아!”


남자가 주위에 몰려있던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거 보라색 아냐? 와아!! 너 완전 대박났네!!”


친구 무리 중 한 놈이 소리치자 다른 놈들도 워워 하며 호응했다.


“야!! 언능 해 봐! 알리사 한번 벗겨 봐야지.”


알리사는 게임 캐릭터 중 금발에 가슴과 둔부를 비정상적으로 강조한 여성 캐릭터였다.

새롭게 출시된 보라색 영약을 쓰면 캐릭터를 알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유저들은 보라색 영약을 알리사에게 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남자의 수중에 보라색 영약이 들어온 것이다.


“기다려 봐. 내가 눈독 들이던 년이 있으니까 그년 지나가면 바로 쫓아가서 써야지!”


남자가 이리저리 마우스를 움직여 자신의 캐릭터를 맵 곳곳으로 이동시켰다.

캐릭터는 남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재빠르게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모니터에 나타난 알리사 캐릭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깄다!!”

“김점순? 닉네임이 김점순이야? 푸하하!!!”


남자 뒤에 있던 한 친구가 웃자 다른 사람들까지 따라 웃었다.


“이 자식들이 뭘 모르네. 진짜 여자들은 저렇게 촌스럽게 닉네임을 짓는다. 그래야 남자들이 안 꼬인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말은 걸어 봤냐?‘

”몇 번 쪽지를 날렸는데, 대답 없다가 나중에 쌍욕을 하더라고. 저년이!!“


남자의 눈이 이글이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남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김점순‘ 캐릭터 쪽으로 이동시킨 다음 채팅으로 ’김점순‘을 도발했다.

그러자, ’김점순‘도 도발을 피하지 않고 남자에게 맞섰고, 둘은 곧 싸움에 돌입했다.


”됐다. 이제 보라색 영약을 써야지. 맛 좀 봐라! 이년아!!“


남자가 보라색 영약을 사용하고 몇 번 검을 휘두르자 ’김점순‘이 입고 있던 갑옷이 벗겨졌다.


”앗싸!! 좀만 더 휘두르면······“

”야! 야! 빨리빨리 해 봐!!“


친구들이 계속 재촉한 탓인지 남자의 손놀림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러나, 보라색 영약의 효과는 거기까지였다.

남자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김점순‘의 옷은 벗겨지지 않았고, ’김점순‘은 남자에게 반격을 가해 남자도 갑옷이 벗겨졌다.

동등한 입장이 된 두 캐릭터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그 싸움의 승자는 ’김점순‘이었다.


야! 등신새끼야. 다시는 까불지 마라. 다음에 또 깝죽대면 형이 가만 안 둔다!


마지막 채팅을 끝으로 ’김점순‘은 유유히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뭐야? 보라색 영약도 별 거 아니잖아?“

”씨발. 소문이 완전 개 구라였네. 아!! 열 받어!!“


남자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쌍욕을 하며 투덜댔다.

모니터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남자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리쳤다.

키보드가 박살 나며 파편이 튀었고, 친구들은 남자의 눈치를 살피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보라색 영약을 썼는데도 알몸이 안 됐다는 건가요?”


남자는 입가에 묻은 게거품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게임에서 캐릭터를 알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을 믿었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되나요? 아무리 캐릭터라고 해도 알몸으로 만드는 건 윤리 규정에 위반될 텐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여간 유저들 사이에서 그 소문이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다들 보라색 영약을 사기 위해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보라색 영약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상점에서 영약 상자를 사면 됩니다. 제가 보라색 영약을 얻으려고 쓴 돈이 3천만 원 정도 됩니다.”

“뭐요? 3천만 원?”


예상외의 많은 액수였다.

말을 마친 남자는 시무룩해지다 못해 턱을 길게 늘어뜨리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3천만 원이면 지금 나한테도 큰돈인데, 하물며 20대 중반의 남자에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당장 대성통곡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뭔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요?”

“그게 영약은 상점에서 사더라도 상자를 열기 전까지 색깔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뭐가 나올지 몰라요. 회사에서 보라색 영약의 나올 확률이 약 1%라고 했기 때문에 신나게 샀죠. 그런데, 거의 천 개쯤 샀을 때 겨우 하나가 뜬 거예요. 게시판 가서 보시면 지금 이 문제로 난리난 걸 아실 겁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대충 봐도 확률형 아이템을 출시해 놓고 그 확률을 지키지 않았던 것, 보라색 영약을 먹으면 상대방 유저를 알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의 출처 등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좋습니다. 이거 한번 게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 보죠.”

“변호사님. 그런데, 제가······”


남자의 난처한 얼굴.

무슨 얘기를 꺼내려는지 짐작이 갔다.


“돈 때문에 그런 거죠?”

“네.”

“그 게임 하는 유저가 선생님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몇 명 구해 봐요. 그럼 적당히 나눠서 내면 되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알겠습니다.”


남자가 손바닥으로 머리를 치더니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남자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사람들 많이 모아서 오세요. 그러면 그럴수록 부담이 줄어듭니다.”


***


남자가 사무실에서 나간 뒤 나는 곧바로 재혁의 방으로 건너갔다.


“재혁아. 너 배틀 오브 미들 해 봤어?”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재혁은 황당한 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해 봤냐고?”

“몇 번 하다 말았는데. 왜요?”

“아까 강 사무장이랑 얘기하던 놈 있지. 걔가 그 게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 게임 오타쿠들이나 하는 건데, 뭔 문제가 있지?”


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를 보며 자기 옆으로 오라 손짓했다.

손짓을 따라 재혁의 옆으로 가자 재혁이 배틀 오브 미들 사이트를 실행해 보여 줬다.

처음 캐릭터를 고르는 화면을 보니 갑옷을 입기 전 여자 캐릭터의 복장이 엄청 야하게 보였다.


“이거 때문에 여자 캐릭터 고르고 여자 흉내 내는 놈들이 꽤 많어. 그거 알면서 쫓아다니는 덜떨어진 놈들도 있고. 뭐 하여간 인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쫌 그래.”


여자 캐릭터의 몸매를 보고 있으니 아까 상담했던 녀석이 왜 보라색 영약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재혁아. 게임 회사에서 보라색 영약을 팔기 시작했는데, 그 약을 먹고 싸움을 하면 상대방을 알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소문이 났데.”

“정말? 그런 약 있으면 졸라 비쌀 텐데.”


재혁은 보라색 영약의 효과보다 가격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아까 그 자식 보라색 영약 사려고 3천만 원 썼다고 하더라.”

“아. 그래.”


재혁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상당히 놀랄 것으로 기대했던 내가 오히려 녀석의 담담한 반응을 보며 놀랐다.


“뭐야? 3천만 원인데?”

“이 형 참 답답하네. 아저씨들이 레니게이드에 처바르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만.”


재혁은 무덤덤하게 한 게시물을 보여줬다.

게시물의 내용은 한 리니지 유저가 게임 아이템을 위해 5억이 넘는 돈을 썼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댓글이 그 유저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더한 놈도 많은데 뭘 그 정도로 징징대냐는 것이었다.

댓글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내게 재혁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 가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 거야.”

“그렇네.”

“근데, 그 사람은 왜 소송까지 한데?”


댓글을 보느라 멍하게 있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보라색 영약이 출시될 때 나올 확률이 1%라고 했는데, 그 확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보라색 영약을 먹으면 상대방이 알몸으로 변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것도 출처가 불분명하고.”

“아이템 확률이야 회사 시스템을 조회하면 될 거고, 문제는 소문을 낸 게 회사가 마케팅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냐 아니면 유저들 사이에 헛소문이 돈 거냔 건데.”


재혁은 단번에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었다.

회사가 헛소문을 내서 아이템 판매 마케팅을 한 것이면 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한다.

하지만, 불법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액은 또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난감한 문제였다.

재혁은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내게 말했다.


“근데, 형. 이거 손해배상액을 어떻게 확정할지도 문제가 되겠어요. 이래저래 복잡한데 안 하면 안 되나?”

“야! 귀찮다고 안 하고, 복잡하다고 안 하면 뭘 하고 사냐?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도 아니고.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한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기회?”

“그래. 요즘 젊은 사람들 게임 안 하는 사람 어딨냐? 그 사람들한테 이름을 알릴 수도 있고, 당장 이 사건 잘 되면 이번에 온 의뢰인 같은 사람들이 또 올 수도 있고. 이건 무조건 해야 돼.”


이제 개업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는 신생 법률사무소에 이 정도 사건이면 훌륭한 사건이었다.

내 말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재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게임 아이템 사건의 서막이 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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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게임 아이템 사기 (4) +3 23.09.24 2,165 31 11쪽
15 015. 게임 아이템 사기 (3) +4 23.09.23 2,153 28 12쪽
14 014. 게임 아이템 사기 (2) +2 23.09.22 2,215 30 12쪽
» 013. 게임 아이템 사기 (1) +1 23.09.21 2,329 35 11쪽
12 012. 하찮은 사건은 없다 +2 23.09.20 2,388 27 12쪽
11 011. 첫 사건 (2) +4 23.09.19 2,404 32 12쪽
10 010. 첫 사건 (1) +4 23.09.18 2,432 29 12쪽
9 009. 개업 +3 23.09.17 2,454 33 12쪽
8 008. 검찰 실무 수습 (3) +4 23.09.16 2,430 37 12쪽
7 007. 검찰 실무 수습 (2) +2 23.09.15 2,471 33 12쪽
6 006. 검찰 실무 수습 (1) +3 23.09.14 2,683 37 12쪽
5 005. 사법연수원 (3) +5 23.09.13 2,787 36 12쪽
4 004. 사법연수원 (2) +2 23.09.12 2,919 39 12쪽
3 003. 사법연수원 (1) +2 23.09.11 3,206 42 12쪽
2 002. 내 이름은 김일목 +6 23.09.11 3,421 46 12쪽
1 001. 내가 누구냐고? +3 23.09.11 4,381 5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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