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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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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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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9.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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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5. 사법연수원 (3)

DUMMY

이태원 살인사건.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

대학생인 피해자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가해자들인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가 따라 들어왔고, 잠시 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채 발견.

경찰과 119 구급대원들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과다 출혈로 사망한 사건이다.


황당한 것은 화장실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은 두 명의 가해자 중 한 사람이 분명한데, 당시 담당 검사가 살인범으로 지목한 에드워드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아서 패터슨은 흉기를 소지한 혐의로만 기소되어 결국 살인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흉기소지 혐의로 유죄를 받았던 가해자 아서 패터슨을 다시 살인죄로 기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담당 직원과 검사의 실수로 패터슨의 출국 금지를 연장하지 않는 바람에 아서 패터슨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어이없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었다.

살인범 옆에 있던 사람은 무죄를 받고, 진짜 살인범이 외국으로 도피한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은 당시 사건에 대한 아쉬운 점들이 배심재판을 했다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 역할을 맡은 이윤후 교수가 검사에게 공소요지를 진술하라고 하면서 재판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쟁점에 대한 공방이 시작되었다.


“먼저 살인죄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는 사건 장소인 화장실에서 나올 때 피를 뒤집어 썼고, ‘우리들이 사람을 재미로 죽였다.’외쳤는 바 범죄를 자백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리는 자신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 패터슨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했지만 화장실의 구조로 볼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검사역을 맡은 앳된 대학생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사건 당시의 사진을 보며 주장을 이어나갔다.


“에드워드 리가 피를 뒤집어 쓴 것은 화장실이 매우 협소한 장소인 때문이고, 자신의 죽였다면 ‘우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손을 씻고 있을 때라는 에드워드의 말 또한 그의 과장된 행동이나 일관성 없는 진술로 볼 때 신뢰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변호사역을 맡은 사람은 이태원 살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단체 소속의 젊은 변호사였다.

그의 변호는 검사역을 맡은 학생보다 확실히 노련했다.

다음 주장으로는 이 사건의 검찰 측 핵심 증거인 피해자의 목에 생긴 자창 부분이었다.

검사는 실제 피해자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고, 사진을 본 사람들은 옅은 비명을 질렀다.


“사진을 보면 피해자의 목 위쪽에서 칼을 찌른 상흔이 뚜렷하여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키가 커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피해자보다 키가 큰 에드워드 리가 이 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검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변호사를 바라봤으나 변호사는 오히려 그런 검사의 시선을 한번 비웃어 주고는 바로 반박에 들어갔다.


“피해자는 목 쪽의 자창 외 여러 군데 찔린 상흔이 존재하고 만약 복부를 먼저 칼에 찔렸다면 주저앉게 되었을 텐데 이후 가해자가 목을 찔렀다면 피해자보다 키가 커야 한다는 전제는 성립할 수가 없게 됩니다.”


변호사의 말에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배심원 중 일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검찰의 주장들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반복되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에드워드 리의 검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왔다는 반응은 거짓말 탐지기 자체의 부정확성 및 통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탄핵되었다.

마지막으로 범죄의 과정을 에드워드 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이 해리성 기억 장애의 일종이라는 주장 또한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된 바 없다는 반박으로 완전히 가치를 잃게 되었다.

거의 논쟁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우연히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앳된 남자 대학생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의 속마음이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 아!! 배고파. 햄버거 먹고 싶다!! >


대학생의 심드렁한 얼굴과 매캐한 눈빛은 그의 마음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맞아. 배심원은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분명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 거야. 여기서 시험을 해 볼 수가 있겠어.’


뜻밖의 수확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고, 동시에 재판장석에서 이윤후 교수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양측의 주장 정리는 됐으니까 20분 쉬고 에드워드와 패터슨의 증인신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법정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렇게 1부 순서가 마무리되었다.


***


2부 순서는 에드워드와 패터슨의 증인신문이었다.

솔직히 난 그들의 증인신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가해자들 본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들이 이미 법정에서 진술한 것을 재연(再演)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내 관심은 오로지 배심원들의 마음을 보는 것에 집중되었다.

1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남자 대학생은 잡생각이 많은 녀석이었다.

햄버거로 시작한 녀석의 잡념은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한참 먹을 나이의 남자답게 생각의 대부분은 먹는 거였다.


< 왜 햄버거를 먹으러 가서 그런 일을··· 치킨이 더 맛있는데··· 치킨하니까 맥주도 땡기고··· 아··· 죽겠다··· >


대학생 옆에 있던 중년의 아주머니는 증인신문을 하는 패터슨을 보면서 흥분했다.


< 찢어죽일 새끼. 그런 짓을 하고 미국으로 도망을 가! 잡아와서 사형을 시켜야지! >


입을 꾹 다문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아이를 둔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하게 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생각을 읽으려면 그 사람을 봐야 하는군. 어디를 봐야 하는 걸까?’


나는 다시 잡생각이 많은 그 대학생을 쳐다봤다.

여전히 녀석은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이따 뭘 먹을까? 치킨에다 맥주? 아니면 삼겹··· >


시선을 녀석의 얼굴에서 손 쪽으로 옮기는 순간 거짓말처럼 들려오던 생각이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녀석의 얼굴 쪽을 봤을 때 다시 생각이 들려왔다.


< 소주 한잔. 캬아··· >


‘저 자식은 법학과가 아니라 밥학과구만. 밥학과.’


대학생과 중년 아주머니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해야 생각을 읽을 수 있는지 감이 왔다.

생각을 읽고 싶은 대상의 눈을 보거나 최소한 얼굴 쪽에 시선을 둬야 한다.

시선이 대상의 얼굴에서 떠나면 대상의 생각은 절대 들리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나는 시선을 주은혜 쪽으로 옮겼다.

증인신문을 집중해서 보느라 그런지 주은혜에게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한번 흘끗 돌아보고 다시 증인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생각이 들리기 시작했다.


< 재혁이랑 같이 온 놈 뭐지? 꼴에 눈은 있어서··· 뭘 빤히 쳐다보고 그래. >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내가 재혁이랑 같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리 나쁜 반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거두지 않고 주은혜를 계속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 짜식. 뭐 생긴 건 괜찮네. 재혁이랑 같은 반인가? >


공부는 못했지만 동네에서 외모로는 최고였다던 아버지의 외모를 받았으니 주은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미인한테 생긴 게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더 우쭐해졌다.

우쭐한 기분으로 옆에 있던 재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재혁은 아주 심각한 얼굴로 증인신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 뭐야? 이렇게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으면 공동정범으로 기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둘 중 하나는 정범이 되고, 다른 사람은 최소 종범(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 텐데.>


재혁의 말이 맞았다.

피고인 두 사람은 모두 피해자가 살해된 현장에 있었다.

한 사람이 피해자를 살해했더라도 옆에 있던 사람이 그걸 제지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방조범은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을 모두 공동정범으로 기소한다면 두 사람 다 살인죄나 최소한 살인죄의 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배심원은 의견을 말할 수가 없는 건가? 재판장이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면 좋을 것 같은데. >


공소장 변경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 검사의 신청으로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관이 검사에게 공소장의 변경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두 명의 피고인이 공범으로 기소된 게 아니므로 공소장 변경을 해야만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었다.

재혁과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2부 순서인 증인신문도 마무리가 되었다.


“2부 순서를 마치고, 3부에서는 검사와 피고인의 최후 변론, 배심원들의 배심 결과 발표 및 선고가 있겠습니다.”

“잠깐만요. 재판장님.”


이윤후 교수가 말을 끝내려고 할 때 내가 손을 들었다.


“누구신가요?”

“네. 사법연수원 34기 김일목 연수생이라고 합니다.”

“뭐 문제 있나요?”

“아닙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배심원은 재판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없는 건가요?”


이윤후 교수가 뭔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재판장의 허락을 받으면 가능할 겁니다. 그건 왜요?”

“이 사건의 경우 공소장을 변경해서 두 피고인을 공범으로 하는 것이 훨씬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검사나 재판장이 그런 의지가 없다면 배심원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나 해서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미국의 법제를 살펴봐야겠지만 만약 그런 조항이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다들 20분 정도 쉬시고, 마지막 순서를 진행하겠습니다. 김일목 연수생은 잠깐 나 좀 볼까요.”


이윤후 교수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고,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법정에 있는 모든 시선이 쏠린 탓에 따가운 시선들을 견뎌야 했다.


“김일목 연수생이라고 했나요?”


예전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와 달리 이 교수는 버터끼가 많이 빠져 있는 발음이었다.


“네.”

“낯이 익은데?”

“저 세연대 졸업했습니다.”

“아! 그래요? 내 수업은 들었었나?”


이 교수가 아주 친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버터끼가 잔뜩 들어간 이 교수의 발성 때문에 고역이었던 그때가 생각 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이 교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왜 그래요? 그때 뭔 일 있었어요?”

“아닙니다. 너무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던 교수님이 짠해서요.”

“아하!! 그랬군요. 성적은 잘 받았었나?”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불렀다.


“네. 에이플러스 주셔서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더니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김일목 연수생. 자네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게. 나도 자네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것 같아. 연락처 좀 알려주게.”


그렇게 우리 둘은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방청석에서 재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 연락처 교환한 거야?”

“먼저 달라고 하셔서 줬지.”

“저 교수 요즘 제일 잘나가는 분인데. 대단하다. 형.”


재혁은 존경을 가득 담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재혁의 시선을 일부러 모른 체하며 천천히 법정을 빠져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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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하찮은 사건은 없다 +2 23.09.20 2,388 27 12쪽
11 011. 첫 사건 (2) +4 23.09.19 2,404 32 12쪽
10 010. 첫 사건 (1) +4 23.09.18 2,432 29 12쪽
9 009. 개업 +3 23.09.17 2,454 33 12쪽
8 008. 검찰 실무 수습 (3) +4 23.09.16 2,430 37 12쪽
7 007. 검찰 실무 수습 (2) +2 23.09.15 2,471 33 12쪽
6 006. 검찰 실무 수습 (1) +3 23.09.14 2,683 37 12쪽
» 005. 사법연수원 (3) +5 23.09.13 2,787 36 12쪽
4 004. 사법연수원 (2) +2 23.09.12 2,919 39 12쪽
3 003. 사법연수원 (1) +2 23.09.11 3,206 42 12쪽
2 002. 내 이름은 김일목 +6 23.09.11 3,421 46 12쪽
1 001. 내가 누구냐고? +3 23.09.11 4,381 5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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