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atchCat의 서재

씨앗을 뿌려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atchCat
작품등록일 :
2017.06.26 17:42
최근연재일 :
2017.08.04 18: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976
추천수 :
24
글자수 :
182,626

작성
17.08.04 00:07
조회
18
추천
0
글자
17쪽

32화.끝은 오는가

DUMMY

“푸하!”


그것은 성녀가 흙과 돌무더기 속에서 고개를 꺼내고서 가장 먼저 내뱉은 소리였다.

그녀의 새하얬던 제복은 이미 피로 물들어서 더러워졌었지만 흙이 잔뜩 묻는 바람에 오히려 피는 전혀 보이질 않아 오히려 그쪽이 더 깨끗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고개를 내밈과 동시에 팔을 밖으로 힘을 줘서 꺼내고 곧 밖으로 기어나 올수 있었다.


“으윽······.”


겨우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쳐서 쓰러지고 동시에 아직 아침이 찾아오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새벽하늘과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라면 딱딱하게 느껴질 바닥이었겠지만 꽤나 힘든 하루를 보낸 지금은 그마저도 푹신하게 느껴졌다.


“아슬아슬했군.”


성녀가 나온 구멍을 통해 같이 따라 나온 사내는 레이튼이었다.

그는 비교적 지치지는 않았는지 아직 두 다리로 서있을 수 있었고 곧 성녀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성녀는 레이튼을 괴롭게 바라보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입과 혀를 움직일 때마다 흙 맛이 조금 느껴졌다.


“당신, 부탁이 있어······.”

“네가 부탁이라니 별일이군. 난 바로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만?”


성녀를 내려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답변을 하는 레이튼이었다.

그는 지금 성녀라도 버리고 갈 생각이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성녀는 피로에 힘들어할지언정 그에게 한 수 져줄 생각은 없었다.


“시끄러워. 어차피 당신이라면 마을에 이미 수를 써놨을 것 아니야.”

“거절한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마당에 내가 널 도울 이유가 있나?”


받은 지적에 거짓은 없는듯했지만 레이튼은 여전히 성녀의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라고는 없는 듯 했었다.

성녀는 혀를 한번 짧게 찬 뒤에 그에게 말했다.


“언젠가 당신을 죽인다는 협박을 물러줄게.”

“그건 조금 흥미롭군. 그 정도로 중요한 부탁인가?”

“그래.”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짧은 시간동안 오고 갔다.

레이튼의 눈에 들어오는 성녀의 눈동자에는 거짓이나 속일 생각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순수가 남아있던 오래전의 눈동자와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알았다. 지금 바로 찾아보도록 하지.”

“이 여우같은 자식. 잘 알고 있으면서.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어?”

“하지만 몸이 산산조각 났다면 포기해라. 내 전문 분야도 아닐뿐더러 신체부위를 일일이 찾아갈 여유는 없으니.”


성녀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레이튼은 용케 더러워지지 않은 하얀 묵주를 들고 기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곧 묵주는 밝은 빛을 내며 그의 손을 떠나 공중에 떠오르더니 어딘가로 향해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성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레이튼은 그녀를 왼쪽팔로 부축하며 그대로 묵주를 따라갔다.

불규칙적인 모양새로 변해버린 산의 땅은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발에 피로가 쌓이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렇게 멀리 걸어갈 필요는 없었다.

묵주는 뿌리째 뽑혀버린 흙과 나무 더미들 바로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얼지 않은 흙바닥이니만큼 어떻게든 파낼 수 있을 정도의 흙이었기에 성녀는 레이튼에게서 떨어진 뒤에 묵주가 있던 자리를 직접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사람을 놀래켜 놓고······. 죽어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씩씩거리면서 빠르게 손을 놀리며 파내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피로가 가득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


곧 그녀는 감탄인지 놀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해내었다.

갈색의 머리색을 가진 그 남자의 이름은.

에반이었다.

눈에 초점은 없었다.

손을 저어보지만 그에게서 반응은 없었다.

당황과 기쁨이 공존하는 성녀가 주변의 흙을 더 파내자 그의 상반신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신 차려요!”


성녀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신기하게도 그를 꺼내는 데에는 그렇게까지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하반신이라는 것이 달려있지 않았으니까.


“······.”

“역시 무리였나.”


피는 이미 흙에 전부 흡수되었는지 복부 아래에 절단되어버린 곳에서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고 피부색은 창백하게 변한데다가 강하게 눌려 멍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곳은 벌써 괴사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나 큰 돌에 짓눌린 데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산사태에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참혹한 광경에 성녀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를 조금 세게 물기는 했지만 사람이 죽는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은 제대로 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 갈면서 그녀는 자신의 희망사항밖에 되지 않는 말을 해보기로 했다.


“···치료할 수 있겠어?”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은 더 이상 치료라고 부르지 않는다. 포기해라.”


그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의문이라면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성녀에게 있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똑같은 족속들이었으니까.

언젠가 때만 온다면 전부 없애기로 했으니까.

그 역시 특별하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나타나서는 쓸데없는 도움이나 해주던 이 남자는.

성녀에게 있어 특별해질 기회도 없었다.

성녀는 고개를 숙인 뒤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차마 감지 못했던 두 눈을 감겨준 뒤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자식들을 반드시 죽이고 말거야.”

“그런가. 예정에 변경은 없군.”

“생각해보니 그 자식들이 원인이었네. 내가 잃은 것들을 모두 생각해보면.”

“네가 말한다면 그렇겠지.”

“가자.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아.”


레이튼은 일어선 성녀를 부축하고 에반에게서 등을 돌렸다.

성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은 많았지만 그 상대가 사라졌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딱 하나.

딱 하나만 죽은 사람이 대답해줄 수만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째서 나를 살렸냐고.

많은 이가 원망하고 위선으로만 대하는 자신을.

살릴 가치가 어디에 있었냐고.

분명 그에게서 들을 기회는 없었다.


“있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성녀는 레이튼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따라 너는 꽤나 수다스럽군. 무슨 변덕이 들었나? 마음대로 해라. 제자의 푸념을 듣는 것도 스승이 갖춰야할 덕목 중 하나겠지.”


얄미운 말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이 남자는 분위기 파악은 잘 한다고 성녀는 생각한 뒤에 굳이 이 건방진 말투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질문은 그저 대리만족에 불과한 내용에 불과했다.


“나 말이지······. 그렇게 가치 있는 인간인가?”

“······.”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울분이 조금 느껴졌다.

아마 최대한 참아내고 있을 테지만.


“수도원장님도 그랬고, 당신도 그렇고 말이야. 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상상도 못해. 그럴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 스스로에게만은 정당한 이유로 모두를 해하기 위해 업을 달성하려는 인간에게 정말 가치가 있는 걸까?”

“······.”

“내게 조금이라도 손을 뻗어주는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다들 사라졌어. 왤까?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난 정말 마녀인걸까? 그 두 녀석들처럼 위선조차 싫어서 악행이나 저지르는 마녀일까?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파멸을 불러오는 마녀일까? 그렇다면 나보다 그 인간이 사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지 않을까?”


가족도 동료도 없다.

혼자가 되었고 누군가를 곁에 둘 기회도 박탈당한 그녀에게는 과연 무슨 죄가 있을까.

성녀는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혼자만 받는 고통이라면 좋았을 것을.

남에게 고통을 전염시키며 살아온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쫓아내기 위해서 그에게 일부러 위험한 일을 맡겼다.

그렇게만 하면 자신의 진면목을 알고 질색하며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곤란해 하기는 했지만 최후에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도망칠 텐데.

그런 짓을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텐데.

그는 흔쾌히 도와주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신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가 말이다.

이젠 그를 다시 볼 일이 없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대로 다시 여행을 떠나자고 성녀는 생각했다.

이 또한 좋지 않은 기억이니 빨리 잊자고 생각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

“뭐지?”


그 순간.

성녀와 레이튼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둘의 등 뒤에서.

정확하게는 방금 전에 두고 온 에반의 시체가 있는 방향에서.

눈부시게 밝은 거대한 빛이.

둘이 걸어간 곳까지 환하게 전해져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빛을 따라서.

성녀는 자신도 모르게 레이튼을 제치고 돌아가고 있었다.

뒤에서 부르는 레이튼을 무시하고서.

빛을 따라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넘어질지라도.

기어서라도 다가가게 되었다.


“아아···!”


멀리 떠나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빛이 일어나는 장소에 도착할 때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곧 실명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빛을 사이로.

성녀는 확실하게 보았다.

기적이 일어나는 광경을.

너무나도 기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서.

성녀는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아! 대체 뭐가···!?”


서둘러 쫓아온 레이튼 역시 상황을 확인하자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확실하게.

기록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에반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나무더미들의 뿌리가 타원형의 모양으로 거대한 호박석 같은 물질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호박색에 살짝 투명한 돌 안에는.

상반신뿐이었던 에반의 신체가 들어있었다.

그의 상반신에 나있던 상처는 서서히 치료되고 있었으며 괴사한 부위도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라진 하반신이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건······.”

“기적이······. 주님의 기적이다······.”


성녀도 레이튼도 성서를 자세하게 읽어본 적이 있기에 그 기록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성서는 사실상 루칸 플린델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나 다름없었지만 그의 일생은 신의 말씀과 기적을 보여주는 일들로 가득했었다.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던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기적은 성서를 읽은 이라면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루칸은 밤하늘의 별을 향해 기도를 올리며 신의 마지막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이젠 나의 몸을 주께 바쳐야할 시기가 왔구나.

다음 날 아침, 그는 자신의 아들과 친분이 있는 기록관만을 데리고서 이름 모를 숲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는 옷을 벗은 뒤에 숲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어디에도 계시며 우리를 굽어 살피고 계신다.

때문에 이제는 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보호를 받는 너희는 그 분의 말씀과 믿음을 전하여라.

나는 주님에게 이 한 몸을 맡기며 그가 되리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천천히 눈을 감은 뒤에 두 번 다시 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듯 나무의 뿌리와 가지들이 그를 감싸며 호박석에 담았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성서의 기록은 끝이 난다.

그의 마지막 말은 오늘날까지 그 어떤 사제도 해석해내지 못해 아마 가장 강력한 신성마법이 될 구절이라고 모두가 예상해왔다.

그리고 성서에 적혀있던 마지막 기적을 닮은 이 상황은.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기록상으로 루칸은 부상을 입지 않았고 치료를 받는다는 내용도 없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나도 모른다.”


곧 하반신의 재생은 완료되었고 나무의 뿌리들은 감싸고 있던 에반을 서서히 놓아주게 되었다.

흙바닥 위에 떨어진 호박색의 물질은 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안에 있던 에반이 완전히 풀려나게 되었다.

성녀가 조심스레 에반의 뺨을 찔러봤지만 액체는 아니었는지 그의 머리카락도 피부도 물기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설마 하는 생각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아······.”


숨을 쉬고 있다.

살아있다.

죽어버린 그에게.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째서일까.

모두를 죽일 거라고 약속했던 성녀는.

한명만이라도 살려낸 사내를 보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그녀가 겨우 왈칵 꺼낸 말은.


“깨어나면 큰일날줄 알아······.”

“네?”


성녀의 설명을 모두 들은 에반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녀는 흠칫해서 하마터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

하마터면 쓸데없이 내뱉은 푸념까지 그에게 알려줄 뻔 했다.

겨우 표정을 유지하면서 헛기침을 하고 그의 주의를 돌린 뒤에 용건을 말하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우선은 저도 스승님도 이번 일은 비밀리에 부치기로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남에게 들킬 일이 없게 조심하세요.”

“살면서 죽을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사실상 죽지 말라는 말을 돌려말하는 성녀의 말에 에반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이 꿈을 꾸는 동안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에반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준 것이 다름 아닌 성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말았다.


“맞다. 다른 분들은요? 촌장님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잘 알려드렸나요?”


제정신이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남의 걱정인가.

정말 순진하고 남을 쉽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성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대답해주었다.


“···촌장은 혼란스러운 마을 일을 정리하느라 바쁩니다. 아마 내일 아침 제가 떠나는 시간에 절 배웅할 여유도 없겠죠.”

“어? 내일 떠나시려고요.”

“당연하죠. 당신이 의식을 잃고서 꽤 시간이 흘렀어요. 그리고 보다시피 문양에 빛도 돌아왔고요. 이미 여기에서 시간낭비를 많이 했습니다. 전 갈 길이 급해요.”


성녀는 장갑을 벗어 자신의 문양을 에반에게 보여주었다.

에반의 문양과 같은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 동이 트는 대로 다시 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당신은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네? 그러고 보니 그러기로 했었죠.”

“저의 스승님께서 이번에 당신이 세운 공을 인정해서 당신이 고향에 도착할 때까지 직접 보호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돌아가는 길에 위험할 일도 없겠죠. 아침에 저희의 숙소 앞에서 마중 나오실 테니 그분과 함께 가세요.”


성녀의 스승이라 하면 레이튼뿐이었다.

그의 실력은 에반도 눈앞에서 보았으니 확실히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운 정이나마 든 성녀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성녀는 일부러 인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는 바쁜 몸이에요. 그리고 더 이상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위험한 일에 아무 생각도 없이 몸을 던지는 사람은 제 쪽에서 사양입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저는 이곳에 없을 겁니다. 아마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죠.”

“으윽······.”


생각해보니 에반은 너무 몸만 앞서서 행동한 일이 많았다.

게다가 그 결과로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최후에는 한 번 죽었다고 봐도 좋았다.

성녀를 여러 번 놀래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민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더욱 침울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는 에반에게 성녀는 방금과는 달리 친절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에반도 놀라서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신은 확실히 성녀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좋아요. 저의 스승님을 통해 수도로 보고가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한 포상이 당신에게 내려지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처음 보는.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성녀의 진심어린 웃음이었다.

항상 표정이 없거나 찡그리기만 했던 그녀가 진심으로 미소 짓는 표정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에반은 생각했다.

그리고 성녀는 생각했다.

에반 덕분에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것을.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수도원장님에게서 느꼈던 것을.

남아있는 모든 인간들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또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줬다는 사실을.

이 남자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그 대신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자고 결심했다.


“당신의 미래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 성녀가 기도드리겠습니다.”

“아······.”

“그럼 안녕히······.”


성녀는 에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에반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말이다.

말할 시기를 놓쳐버렸기에 이 말을 늦게라도 해야 할지 알수없었다.


“어떻게 하지?”


혼자서 곤란해 하는 에반은 그저 침대에 쓰러져 골똘히 고민해보기로 했다.


작가의말

오늘은 오후에 에필로그가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스토리가 끝은 아니나 이번 괴담 사건 조사편은 마무리됩니다.

공모전 마지막날까지 힘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씨앗을 뿌려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33화.구원을 바라며 17.08.04 17 0 19쪽
» 32화.끝은 오는가 17.08.04 19 0 17쪽
32 31화.Forget me not(4) 17.08.03 14 0 14쪽
31 30화.Forget me not(3) 17.08.02 15 0 20쪽
30 29화.Forget me not(2) 17.08.02 18 0 11쪽
29 28화.Forget me not(1) 17.08.01 25 0 14쪽
28 27화.되감기(6) 17.07.31 21 0 22쪽
27 26화.되감기(5) 17.07.31 20 0 14쪽
26 25화.되감기(4) 17.07.28 21 0 8쪽
25 24화.되감기(3) 17.07.27 25 0 9쪽
24 23화.되감기(2) 17.07.26 20 0 9쪽
23 22화.되감기(1) 17.07.25 21 0 7쪽
22 21화.괴담조사(11) 17.07.24 26 0 10쪽
21 20화.괴담조사(10) 17.07.21 24 0 9쪽
20 19화.괴담조사(9) 17.07.20 30 0 15쪽
19 18화.괴담조사(8) 17.07.19 28 0 15쪽
18 17화.괴담조사(7) 17.07.18 32 0 11쪽
17 16화.괴담조사(6) 17.07.17 35 0 13쪽
16 15화.괴담조사(5) 17.07.14 87 0 12쪽
15 14화.괴담조사(4) 17.07.13 40 0 9쪽
14 13화.괴담조사(3) 17.07.12 97 0 12쪽
13 12화.괴담조사(2) 17.07.11 40 0 9쪽
12 11화.괴담조사(1) 17.07.10 107 0 10쪽
11 10화.자격 박탈 17.07.07 47 2 9쪽
10 9화.이유는 필요하다 17.07.06 56 2 11쪽
9 8화.인연은 닿는가(5) 17.07.05 50 2 11쪽
8 7화.인연은 닿는가(4) 17.07.04 48 2 13쪽
7 6화.인연은 닿는가(3) 17.07.03 54 2 11쪽
6 5화.인연은 닿는가(2) 17.06.30 150 2 12쪽
5 4화.인연은 닿는가(1) 17.06.29 133 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