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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Cat의 서재

씨앗을 뿌려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atchCat
작품등록일 :
2017.06.26 17:42
최근연재일 :
2017.08.04 18: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982
추천수 :
24
글자수 :
182,626

작성
17.07.05 17:47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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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8화.인연은 닿는가(5)

DUMMY

“자···잠깐만요! 방금 건 실수! 실수입니다!”

“그 시점에서 실수로 날 맞췄다고? 그것참 대단한 솜씨네.”


왜 그런 짓을 저질러버린 것일까.

생각해보면 성녀에게는 달리 그 상황을 해결할 방법 정도는 있었을 텐데.

괜히 오해만 더 커져버린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에반은 생각했다.

이러다가는 다른 의미로 신님을 먼저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성녀님! 피! 머리에서 피나요!”

“누구 때문인데.”


성녀의 머리에서는 아까 냄비에 맞은 탓인지 피가 조금 흘러내리고 있었고 성녀는 맞은 부분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세게 맞았는데 피가 나지 않는 점에서 오히려 대단하다고 에반은 생각했다.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기본적인 신체의 내구도 정도는 평범한 사람과 비슷한 듯했다.


“그래서 당신은 대체 누구야?”


딱히 고문하거나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이번에는 칼을 거두고서 에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의심하는 듯 한 눈초리는 여전했다.

잘만 말하면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에반은 성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어···믿어주실 건가요?”

“그건 들어보고 결정할거야.”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나는 모르니까 말이야.’라고 덧붙이면서 성녀는 에반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이미 위험요소는 성녀가 직접 다 제거한 상황이었으니 지금은 천천히 이야기를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도 일단은 신님에게서 선택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그건 아까도 말했어.”


보기보다 꽤나 급한 성격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증이 섞인 말투로 성녀는 대답했다.

이미 생각했던 점이지만 이 사람은 정말로 사람을 많이 의심하는 성격임에 틀림없었다.

에반은 조금 참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랬었죠. 저도 딱히 이렇게까지 여행을 오고 싶지는 않았어요. 성녀님, 혹시 대 겨울 사태라고 아시나요?”

“오래전에 일어났던 급격한 기후 변화 말이네. 그게 어쨌다는 건데?”


아무래도 성녀는 지금 에반이 걸어왔던 곳의 상황을 잘 모르는듯했다.


“지금 마을에서는 두 번째 대 겨울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요.”

“두 번째?”


이번의 이야기는 조금 그녀의 흥미를 이끌었는지 아까의 짜증 섞인 어조는 조금 사라져있었다.

이대로 솔직하게 말하자고 에반은 생각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네. 그런데 타이밍이 너무나도 이상했어요. 제 팔에 문양이 나타난 일도 이틀 정도 전의 일이었거든요. 저는 그날 집 앞을 지나가던 음유시인 한 분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요.”

“······.”

“음유시인은 제가 신님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저는 싫었어요. 위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농사나 짓고 사는 일이 더 편하고요.”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제가 가기 싫다고 말한 다음날 아침···아니면 새벽부터일지도 모르지만요. 하여튼 그때부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아직 봄인데 눈이 내리는 것이 이상했고 분명 신께서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도망치듯 여행을 시작했다. 이거지?”

“엇. 정확한데요.”


이 정도만 듣고도 에반의 상황을 이해했다.

생각보다 머리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에반의 머릿속에서는 성녀에 대한 평가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성녀는 조금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있는 장소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게 말이죠. 이 숲에 들어오고 나서 두 번이나 저 괴물들을 만났어요.”

“용케도 살아남았네.”

“아뇨. 저쪽에서 저를 그냥 보내줬어요.”

“뭐?”


지금 생각해보더라도 이상했다.

두 번째의 경우야 미처 못 봤다고 치더라도 첫 번째의 경우에는 바로 눈앞에까지 놓고도 그냥 못본척 넘어가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의도적이었다.


“마침 저희 마을에 들렀다 가셨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가까이에 계시구나하고 생각은 했었는데 추종자들이 한꺼번에 어딘가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말았어요. 설마 아직 이 숲에 계신건가라고 생각하니까 문양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알려주더라고요. 그걸 쫓아가니까 여기에 도착한 겁니다.”

“내가 성녀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고?”

“마을 촌장님이 인상착의를 알려주셨어요.”

“젠장. 이래서 내가 이런 옷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성녀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성녀 본인은 원하지 않았던 사실임에 틀림없다.

계속해서 ‘이래서 교황청 녀석들이란.’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다시 에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상황은 잘 알았어.”

“믿어주시는 건가요?”

“일단은 말이지.”


성녀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에반의 발을 묶고 있었던 흙이 스르르 무너지더니 이내 다시 땅과 하나가 되었다.

더 이상 성녀는 에반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에반에게는 너무나도 길고도 기쁘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같이 여행을 계속하자는 제안 또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돌아가.”

“네?”


하지만 돌아온 말이라고는 매정한 대답뿐이었다.

멍하니 서있는 에반을 향해 성녀는 장난기 하나 없는 말투로 에반에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당신이 함께해도 짐에 불과해. 애초에 방금 전에도 위험했었고.”

“그건 움직일 수가 없어서······.”

“사람의 머리에 냄비를 맞추는 재주 따위는 필요 없어.”


확실한 정론이었다.

산속에서 농사나 짓고 살아온 전투에 있어서 에반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이야 운 좋게 살아서 넘겼지만 만일 그 상황에서 성녀가 기절하기라도 했다면 에반도 성녀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금은 운이 좋았다면 매우 좋았다고 결론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아니더라도 에반은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산속의 지리나 야생 동물이나 먹을 수 있는 식물 구분법 정도는 에반에게 있어서는 주특기였고 이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내세우기도 전에 성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두 번째 대 겨울 사태가 일어났다고 했었지? 마지막으로 눈을 본 것은 어디였어?”

“문양이 방향을 바꾸기 전이었네요.”

“그리고 지금은?”

“아······.”


에반은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하늘을 향해 쳐다보았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내리고 있었던 눈이 지금은 단 하나도 내리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뛰어온 거리는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는데 아무리 날씨는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전에 나라 곳곳에 걸쳐 일어났던 대 겨울 사태라면 지금 이곳에서도 눈이 내리고 있어야만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에반을 향해 성녀는 말을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내 생각이지만 당신이 말한 두 번째 대 겨울 사태는 분명 당신을 쫓아서 일어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여기는 아직 눈이 내리지 않는거지. 당신이 움직여서 쫓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럴 수가······.”

“아마 당신이 한 곳에만 머무른다면 이 상황은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을 거라고 일단 나는 생각해.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돌아가는 편이 더 좋겠지.”


‘물론 이건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야.’라고 말한 뒤에 성녀는 말을 마쳤다.

성녀의 생각을 들은 에반은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대 겨울 사태는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고 만일 가만히 있으면 피해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신에게 한마디 따지러 가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에 일어났던 첫 번째 경우 역시 자기 때문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죄책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한단 말인가.

에반이 자신을 보러오는 것이 싫었다면 왜 굳이 어릴 적의 기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어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

나는 그저 한낱 농부에 불과한데.

아무 말이 없던 에반을 보고 있던 성녀는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침묵을 먼저 깼다.


“일단 마을까지 가는 길은 함께 해드리겠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말을 빌리던 상인의 마차에 얻어 타던 당신은 그대로 살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성녀의 말투는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존댓말로 돌아갔다.

매정한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짜증이나 의심할 때와 같은 어조는 조금도 섞여있지 않는 말투였다.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이고 너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강조하고 싶은 그녀 나름대로의 상냥함일지도 모른다.

성녀의 말에 에반은 고민할 수조차 없었다.

만일 이 여행을 계속한다고 할지라도 성녀 입장에서 에반은 도움 따위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짐이라도 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에반은 성녀의 말에 조용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좋아요. 날이 밝는 순간 떠나겠습니다. 우선은 쉬도록 하죠.”


<···>


마을에 도착하는 대로 돌아가자고 에반은 생각했다.

이번 대 겨울 사태가 얼마나 오래가게 될지 인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피해가 더 커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어제와 같은 괴물들을 만난 이상 그 누구라도 계속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공포를 경험하게 되면 이는 오랫동안 습관으로 뿌리박히게 된다.

잊고 싶어도 쉽게 잊을 수 없고 잊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몸이 습관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 얼마나 더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행동은 자신의 생애에 걸쳐 가장 어리석었던 짓이었다고 에반은 생각했다.

차라리 나쁜 경험을 했다 생각하고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자.

성녀님이라면 분명히 신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대 겨울 사태도 끝나게 될 것이다.

에반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마을에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저게 뭐죠?”

“···아무래도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에반의 눈앞에는 지도에 그려진 대로의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에반이 살던 마을처럼 평화롭게 사람들이 일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에반이 향하던 등불 마을은.

급하게 만든 나무와 부서진 가구들을 동원하여 만든 벽을 이용해 무언가로부터 막아내고 있는 상당히 방어적인 마을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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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Forget me not(1) 17.08.01 25 0 14쪽
28 27화.되감기(6) 17.07.31 21 0 22쪽
27 26화.되감기(5) 17.07.31 2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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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되감기(3) 17.07.27 25 0 9쪽
24 23화.되감기(2) 17.07.26 21 0 9쪽
23 22화.되감기(1) 17.07.25 21 0 7쪽
22 21화.괴담조사(11) 17.07.24 27 0 10쪽
21 20화.괴담조사(10) 17.07.21 24 0 9쪽
20 19화.괴담조사(9) 17.07.20 30 0 15쪽
19 18화.괴담조사(8) 17.07.19 28 0 15쪽
18 17화.괴담조사(7) 17.07.18 32 0 11쪽
17 16화.괴담조사(6) 17.07.17 36 0 13쪽
16 15화.괴담조사(5) 17.07.14 87 0 12쪽
15 14화.괴담조사(4) 17.07.13 40 0 9쪽
14 13화.괴담조사(3) 17.07.12 98 0 12쪽
13 12화.괴담조사(2) 17.07.11 40 0 9쪽
12 11화.괴담조사(1) 17.07.10 10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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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인연은 닿는가(2) 17.06.30 15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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