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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블라썸 님의 서재입니다.

힐링 테이블(A Healing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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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몬블라썸
작품등록일 :
2018.07.11 16:08
최근연재일 :
2018.08.03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330
추천수 :
74
글자수 :
127,303

작성
18.07.25 20:00
조회
69
추천
3
글자
11쪽

Ep. 3 그 남자의 밤 8화

DUMMY

“너는 바람 피워도 난 절대 안 필 거야~ Baby"


누나는 대양을 좋아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R&B 광이었기 때문에 대양의 거의 모든 노래를 꿰고 있었다.

보통 노래를 부르면 듣는 손님이 있고 같이 온 친구나 다른 선수들과 노는 손님이 있는데, 이 누나는 전자 중에서도 빠져 듣는 타입이었다.

특히 ‘김치볶음밥 잘 먹는 여자’를 부를 때에는 수많은 선수의 작업도 서비스도 마다한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나와 가사가 나오는 화면을 번갈아 보고는 했다.


노래 덕분인지 선수들의 공주 대접 때문인지 누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자리가 오래갈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박스끼리의 의미 없는 기 싸움을 하지 않고 최대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다른 박스 선수들과 만나게 되면 누가 더 잘 노는지 혹은 누가 더 나은지에 대한 묘한 영향력 싸움이 시작되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서로 아는 것이다.

가만히 장단이나 맞춰주면 모두 윈윈 할 것임을.


노래가 끝나고, 아무래도 노래를 불러야 하니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내게 노래가 좋았던 것인지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선수들을 한 명, 한 명씩 제치던 누나는 뜬금없이 내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곤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잔을 들어 천천히 목을 감싼 뒤 한 모금을 넘겼다.

조금은 뜬금없는 상황에 나는 내 앞의 푹신함을 두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뭉클한 감정은 긴장으로 바뀌었다.


누나에게선 좋은 향기가 났다.

언제 뿌렸는지 모르는 향수는 체취와 섞여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향기는 목스웨터에 고스란히 담겨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쪽으로 완전히 넘긴 머리카락과 풀려있는 눈, 볼에 닿는 스웨터의 까슬한 질감.

이 모든 것이 누나를 더욱더 관능적이게 만들었다.

색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야... 너 나랑 나갈래?”


‘...’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먼저, 기본적으로 선수들에게서 도는 말이 있다.

‘꽁x 좋아하지 마라. 네 몸값만 쓰레기 된다.’는 말.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아가씨들은 보통 선수랑 2차를 잘 안 나간다.


그도 그럴 게 아가씨들이 이런 곳에 오는 이유가 1부 장사를 마치고 남자들 비위 맞춰주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려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부 아가씨들은 대개 2차를 안 나가는 아가씨들이 많은데 굳이 힘들게 번 돈 선수랑 2차 나가는 데 쓸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애초에 아쉽지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지금같이 2차를 부르거나 혹은 따로 그냥, 그러니까 선수 입장에서도 아가씨는 예쁘니까 노페이로 나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아가씨와의 관계를 가지게 되면 아가씨들은 보통 그다음부터 대개 다른 선수를 부른다.

정복을 했으니 뉴페이스를 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보기 불편해서인지는 나도 모른다.


또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은근히 돌면 지명에게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빠져 공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손님과의 2차는 좋지 않다는 의견들이 대세다.


근데, 지금 상황은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조금 특이한 상황인 것이다.

내가 만약 2차를 나가게 되면, 나는 매우 좋겠지.

다만 다른 박스 애들은 둘째 치더라도 우리 팀도 모두 이 자리가 끝나게 된다.

그걸 감당하고 이 아가씨를 공사 칠 생각으로 그리고 한 번 해 볼 요량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이 아까운 기회(?)를 놓치느냐. 그런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누나의 향기, 누나의 눈빛, 잘 닿지는 않지만, 가끔 스치듯 느껴지는 살결은 나를 너무도 강하게 이끌고 있다.

솔로몬도 한 수 접고 같이 머리를 싸맬 그런 고민의 시간이 내 안에서 아주 잠시간 흘렀을 때, 누나가 말했다.


“야... 너 나가.”


‘...’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잘한 것이라 생각했다.

어쭙잖게 놓쳐버린 기회를 나는 더 많은 이들을 위해서, 우리 박스를 위해서 희생했다고 자위질하고 있었다.


“... 미친 새x...”


“미안, 누나...”


그렇게 방을 나왔다.

미친놈.

미친 자식, 병x 머저리 같은 새x.

당당하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 하지 못한 나라는 병x에 대한 질책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에라이... 병x아...”


실장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의 신호가 가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정우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뺀찌 먹었어요.”


“왜? 어쩌다가. 애들은?”


“아, 저한테 2차 갈 건지 물어보길래 망설이다가 뺀찌 먹었어요. 다른 선수들은 괜찮아요.”


“어. 그래, 형 금방 갈게.”


나는 그렇게 뒷문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담배를 한 대 물고 구석진 곳에 앉아 한 모금을 빨았다.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인가. 첫 방에 잘 놀다가 뺀찌라니.

그렇게 담배를 뱉는 것인지 한숨을 뱉는 것인지 모르게 형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형은 금방 나를 데리러 왔다.

첫 방에 선수가 전부 들어가 근처에 있다가 왔다는 것이다.

형은 수혁이 형에게 끝나면 연락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내게 말했다.


“야, 잘했어. 혁수 말 들어보니 지금 분위기 나쁘지 않대. 애들도 다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다고 문자 왔다.”


참고로 ‘혁쑤’는 실장 형이 부르는 수혁의 형의 애칭 같은 거다.


“배고프지? 야, 어차피 애들 나올 때까지 혼자는 못 들어가니까. 형 여자 친구랑 밥 먹을래?”


밥을 사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해서 간 곳은 피시방.

설마 여기서 라면이나 먹자는 소린가 싶어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형의 여자 친구는 여자 실장이었다.


“여기야. 왔어? 누구?”


“어, 우리 일하는 동생.”


“애들은?”


“일 들어갔고.”


“얘는?”


“사정이 좀 있어가지고.”


“안녕~ 몇 살?”


“안녕하세요. 23살 정우에요.”


내 소개에 실장 형의 여자 친구는 뜬금없이 빵 터지며 말했다.


“풉! 야잌! 아~, 야. 너 일하러 왔니?, 얘 TC 얼마니, 아. 웃겨.”


“밥 먹음?”


실장 형이 말했다.


“아니, 아, 웃겨 아. 가자가자.”


그렇게 나는 형의 여자 친구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우리가 간 곳은 근처 부대찌개 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의 여자 친구는 여자 실장이고 원래는 아가씨 출신이라고 했다.

아가씨 때 형을 만나서 형의 권유로 마음에 맞는 애들 몇 명과 나와서 보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야, 언제 애들 데리고 같이 놀래?”


“음... 고민 좀 해보고.”


“튕기기는”


의외로 실장 형은 선수들 관리한다고 이런 미팅 자리를 피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형 말로는 이렇게 아가씨들이랑 친해지면 나중에 서로 회식 때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팀 회식 때 보도로 다른 팀을 불러서 논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회식 겸 사장에게 술을 팔아주고 특정 박스를 부르니 인지도도 높아진다고 했다.


다만 이렇게 친해지다 보면 결국 엔딩은 자기들끼리 눈 맞거나 파탄 나서 박스 운영하는 데에는 좋지 않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손님이어야 할 사람이 사적으로 만나거나 반대로 파탄 나면 부르지 않게 되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날은 평범했던 그 어떤 날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 들어간 방에 우연히 첫 방이었던 누나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6명이나 되는 선수들을 끼고 있었다.

준우 형 말을 들어보니 저번에 얼핏 술값만 200이 나왔다던데, 도대체 얼마를 버는지 모르겠다.


“노래하는 정우입니다.”


“어? 너 그때 대양?”


왠지 모르게 잘하면 고정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야, 너 그때 왜 갔어.”


“...? 누나가 나가라 했잖아.”


술을 많이 먹긴 한 것 같았는데 누나는 그때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것 같았다.


“야! 그런다고 나가면 어떻게 해!”


미친 x인가... 선수 입장에서 손님이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꾸물대고 있자, 누나는 지갑을 꺼내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게 주며 말했다.


“야, 용돈 해라.”


나는 무슨 돈 백만 원이나 주는 줄 알았다, 물론 이 돈이면 무려 5시간짜리 일이지만.

돈 주는 데 마다할 사람 없을 것이다.

나는 건넨 돈을 냉큼 받아 챙기고 마이크를 들었다.


“대양 불러줄까?”


“김치볶음밥 잘 먹는 여자 불러줘. 나 그 노래 완전 좋아하는 거 알지?”


다행히도 지금 모인 선수 중엔 대양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혹은 있었어도 나만큼은 아니던가.

반주가 흘러나오고 노래가 시작되자 누나는 여전한 모습으로 선수들의 케어를 마다하고 TV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 노래에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잘만 캐면 큰 공사가 될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누나가 불쌍해 보였다.


마치 비 온 날 길거리를 헤매다가 가게 앞에 앉아 축 처진 채로 앉아 있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인도 없이 거리 생활을 하느라 지쳐버린, 흙탕물에 절어 관리되지 않은 털을 힘없이 떨구고 낑낑대며 추위에 떠는 강아지.

그런 강아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고 그 잘나빠진 선수들을 또 제치고 누나는 내 옆에 앉았다.

누나의 스위치는 ‘대양 노래’인 게 확실하다.

그곳의 누구도 나보다 떨어진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지만, 누나는 주인을 그리워하는 강아지처럼 내 옆에 앉아있었다.


삶이 고단했을까, 누군가를 그리워했을까.

아무래도 전 남자친구가 대양 노래를 잘 불렀던 걸까.

안쓰러움에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어 손끝을 들었지만, 나는 머리칼을 매만져주지도, 어깨를 붙잡아주지도 못하고 그저 허공만을 맴돌다 소파 뒤에 올려 두었다.

누군가를 동정하기에는 쥐뿔도 없는 게 누나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야... 웨이터 불러.”


누나는 웨이터를 불러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내보냈고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어깨를 붙잡고 한참을 기대어 있었다.

커다란 유리 뒤로 야경이 보이는 고급스러운 방, 가죽 소파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가의 테이블.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 위에 놓여 푸른빛을 내뿜는 수백만 원은 할 법한 양주 몇 병.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화려한 조명의 불빛들.

껌뻑이는 TV에서 소리없이 송출되고 있는 뮤직비디오.

누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조심스럽게 흐느끼고 있었음을 어깨에 기댄 누나의 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찬란함 속에서 적막이 흐르고, 그렇게 그녀와 나의 쓸쓸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p. 3 그 남자의 밤 8화 end.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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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p. 3 그 남자의 밤 4화 18.07.21 70 3 12쪽
10 Ep. 3 그 남자의 밤 3화 18.07.20 65 3 12쪽
9 Ep. 3 그 남자의 밤 2화 18.07.19 69 3 11쪽
8 Ep. 3 그 남자의 밤 1화 18.07.18 66 4 11쪽
7 Ep. 2 메롱바 그녀 4화 18.07.17 9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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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p. 2 메롱바 그녀 1화 18.07.14 91 4 11쪽
3 Ep. 1 학생과 아버지 3화 18.07.13 199 4 11쪽
2 Ep. 1 학생과 아버지 2화 18.07.12 15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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