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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블라썸 님의 서재입니다.

힐링 테이블(A Healing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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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몬블라썸
작품등록일 :
2018.07.11 16:08
최근연재일 :
2018.08.03 18: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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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0
추천수 :
74
글자수 :
127,303

작성
18.07.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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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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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 1 학생과 아버지 1화

DUMMY

“저는 심리상담가가 아닙니다.”

들어주는 작가 겸 요리사가 전하는 흔한 일상 속 당신들의 이야기.


굳이 제 소개를 하자면, 그러니까 저는 요리를 취미로 하는 식당 가게 주인입니다.

요리 학원에 다녔다거나 셰프같은 뭐 그런 거창한 요리사가 아니라, 그냥 맛있는 저녁밥을 만드는 그저 그런 요리사에요.

아니, 어쩌면 ‘요리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우습겠네요.


그 날의 요리는 보통 밖에서 ‘아. 이 요리를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장을 보면서 결정됩니다.

저는 매일매일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거든요.

마트에 도착하면 어머니들이 장을 보듯 오늘은 뭐가 신선한지 둘러봅니다.

보통 신선식품부터 시작해서 가공식품까지 한 바퀴를 돌며 재료들을 훑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무엇을 만들지 정하죠.

어떠한 조합이 맛이 있을지, 또 어떠한 모양으로 플레이팅 할 것인지 보통 그런 것이에요.


오늘은 습햄 마요네즈 밥을 해보려 합니다.

하하. 아까 말했었죠, 저는 제대로 된 ‘정통 요리’를 하는 그런 요리사가 아니라고요.

제 식당은 그날 제가 먹고 싶은 요리를 내놓는 그런 식당이에요.

맞아요. 사실 식당은 취미에 가까워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식당을 운영하기엔 저는 이미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이 식당에서 하루 단 한 명의 손님을 받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아는 분께서도 그걸 권유하셨고요.


자, 그럼. 오늘의 요리 재료를 골라 봅니다.

먼저 청양고추, 습햄 마요네즈 밥에 왜 청양고추냐 하면, 사실 이 두 조합이 마냥 계속 먹기에는 느끼하거든요.

청양고추로 간단한 장아찌 같은 것을 만들 거예요.

이 고추 장아찌에는 간장과 식초 그리고 참기름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전부 가게에 있으니 괜찮겠네요.

그다음은 습햄, 꼭 습햄이어야 하냐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먹어본 결과 습햄이 가장 조합이 좋았어요.

그리고 마요네즈. 마요네즈도 가게에 있으니 사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리고 마요네즈 밥에 곁들일 조미 김을 삽니다.

음. 이 정도면 다 되었네요. 캐셔에게 계산을 하고 가게로 돌아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일식집을 하셨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해산물을 잘 못 먹습니다.

특히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를요.

간혹 회는 비리지 않아 먹긴 하는데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네요.

이 이야기를 왜 했냐면, 저희 가게 구조를 설명해 드리려고요.

딱 당신이 생각하는 일식집같이 생겼다는 거죠.


손님이 바 형태의 자리에 앉아 계시면 저는 그 맞은편에서 손님이 드실 요리를 만들어 낸 뒤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손님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술은 판매하지 않아요.

그렇게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시고 제게 당신의 이야기만 들려주신 뒤 돌아가시면 되는 거지요.

오늘은 어떤 손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고 오실지 궁금하네요.


아 참, 저희 가게는 예약제입니다.

처음에는 이 이상한 가게에 사람들이 올 리가 만무했지만, 입소문이 퍼지다보니 이제는 꽤 유명해져서 많은 분이 찾아오시거든요.

지금은 뭐.. 공짜 저녁을 대접하는 푸념(?)의 공간이 되었고요.

나름 이색 식당이라는 포스팅 글도 보았는데, 그런 글들은 제가 부끄러우니 정중히 내려달라고 부탁을 드려요.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 너무 많은 사람이 아시게 되도 불편하고 또는 그저 식당이 궁금해서, 공짜 저녁을 드시러(상관은 없지만) 오시는 분들이 대다수가 되면, 하루 한 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시작한 이 가게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요즈음에도 그런 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만, 애초에 사연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니 제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이제 손님이 오실 시간이 되었으니 슬슬 요리를 시작합니다.

오늘 요리는 레시피가 너무 간단해서 조금 늦게 시작했네요.

먼저 밥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리고 고추장을 비비는 것처럼 마요네즈 밥을 만듭니다.

그리고 습햄을 꺼내 0.5센티 정도로 잘라줍니다.

너무 두꺼우면 익히는 데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통을 써도 양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너무 얇으면 식감이 떨어지고 자르기도 힘들지요.

그렇게 두어 통을 자른 뒤 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장씩 넓게 펼쳐 굽습니다.

벌써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역시 습햄은 맛이 없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처음에는 센 불로 굽다가 중불로 줄입니다.

센 불은 너무 금방 익어서 습햄이 ‘바삭’해 질 수도 있거든요.

많은 분이 드셔보셨겠지만 그런 습햄은 맛이 없습니다.

고기도 바싹 익히면 맛이 없잖아요? 야들야들 한 부드러운 식감이 포인트니까요.

또 하나하나 뒤집다 보면 탈 수도 있으니 중불로 구워줍니다.

한 면을 노릇노릇하게 익히고 젓가락을 오른손과 왼손에 하나씩 들어 다코야키를 뒤집듯 뒤집어 줍니다. 이 방법이 편해요.


제법 맛있게 익었네요.

이제 불을 끄고 고추 장아찌를 준비합니다.

먼저 청양고추를 흐르는 물에 씻고 꼭지를 따 줍니다.

그리고 비교적 폭이 좁고 높은 밥그릇과 같은 그릇에 가위를 이용해서 어슷썰기로 썰어줍니다.

사각사각 부드러운 소리가 납니다.

아, 두께는 1센티 정도면 돼요. 너무 얇아도 아쉽거든요. 그리고..


딸랑.


“저.. 안녕하세요.”


손님이 오셨네요.

오늘의 손님은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분이신 듯합니다.

저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날 당첨된 손님께 자동으로 문자를 전송해드리기 때문에 어떤 분이 오실지는 모르거든요.


“안녕하세요. 아직 요리가 다 되지 않았으니 잠시 앉아계시겠어요?”


“네..”


손님이 오셨지만 “어디서 오셨어요?”라던가 “뭐 하시는 분이세요?”같은 질문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궁금하지 않다기보다는 각자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가급적 먼저 물어보지는 않는 것이지요.

만약 당신께서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먼저 꺼낼 것이니, 저는 궁금함을 참고 묵묵히 요리할 뿐입니다.

물론 먼저 말문을 여신다면 당연히 받아드리지만요.


다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여쭤봅니다.

당연히 조심스럽게요.

명색이 ‘이야기를 듣는 식당’이다 보니 그 부분을 여쭙지 않을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사실 제가 궁금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모순되긴 하지만 어쨌든 처음 오셨을 때는 질문을 삼가고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궁금한 점을 여쭙는, 그것이 이곳의 방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손님이 오셨으니 속도를 조금 올려봅니다.

장아찌라 하지만 사실 겉절이 개념과 비슷해서 금방 만들 수 있어요.

먼저 아까 잘라놓은 청양고추가 살짝 덜 잠기도록, 그러니까 컵라면 물 맞출 때 진하게 먹으려고 물 적게 붓는 그 정도로 간장을 붓습니다.

그리고 식초를 세~네 스푼..? 그러니까 간장과 식초의 비율이 4~5:1쯤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참기름을 살짝 넣어줍니다.

이 참기름이 생각보다 중요해요. 넣지 않으면 청양고추가 생인지라 바로 먹기에 너무 맵거든요.

또 단순히 간장의 짠맛만이 아닌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섞여 장아찌의 맛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답니다.


자 이제 완성이 되었어요.

습햄은 접시에 담아내고 비빈 마요네즈 밥 옆에 조미김을 둔 뒤 그릇에 담은 청양고추 장아찌를 내어놓습니다.

손님이 때마침 학생분이라 더욱 좋아하시겠어요.

하긴 학생 때는 돌도 씹어 먹는다던데 무엇이 맛이 없으랴 마는요.


“여기 오늘의 요리인 마요네즈 밥과 청양고추 장아찌입니다. 드셔보셔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공짜에요?”


가끔 이런 걸 묻는 손님이 계시죠.


“네. 걱정 말고 많이 드시고 이야기나 하나 들려주셔요.”


“그렇다면.. 잘 먹겠습니다.”


손님이 식사를 시작하시면 저도 같이 밥을 먹습니다.

밥을 한술 떠서 김 위에 올리고 습햄을 반으로 쪼개 올립니다.

마요네즈의 느끼한 맛이 쑤욱 들어오는 와중에 뒤늦게 따라온 습햄의 짭짤한 맛이 섞이고 바삭한 김이 전체적으로 이들을 둘러싸 계속 입맛을 돋우는 그런 조합이네요.

특히 잘 익은 습햄이 탱글탱글하게 터지는 식감도 일품입니다.


초반에는 이 녀석들로도 충분히 맛있어서 계속 당기게 되지만 이제 슬슬 느끼해지는 것이 화룡점정을 찍을 때가 되었네요.

김과 마요네즈 밥 그리고 습햄을 한 입 크게 먹은 뒤 배어 나오는 풍미를 충분히 음미하다가, 방금 만든 고추 장아찌를 하나 들어 간장에 잘 스며들게 푹푹 찍은 뒤 맛을 봅니다.

입 안, 혀에 진하게 남아있는 느끼함을 뚫고 식초와 간장의 상큼한 짠맛이 날카롭게 파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한 입 씹으면 느껴지는 청양고추의 알싸한 매운맛은 지금까지의 모든 느끼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각각의 맛들을 잘 갈무리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살짝 뿌렸던 참기름은 자칫 너무 강할 수 있는 청양고추의 매운맛을 코팅하듯 덮어 부드럽게 하며 고소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장아찌의 가장 큰 매력은 다시 한번 마요네즈 밥을 부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처음엔 머뭇거리던 학생도 한 입 들더니 매우 만족한 듯 보입니다.


“저..기 혹시 밥 조금 더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즐거울 때는 바로 요리를 먹는 사람이 맛있게 드셔주실 때가 아닐까요.

본의 아니게 과식을 하게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날 요리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지나 그릇에선 달그락 소리가 나고 즐거운 포식의 시간은 끝이나 학생이 다시 말문을 엽니다.


“후아.. 진짜 잘 먹었습니다. 너무 배불러서 숨도 못 쉬겠어요. 감사합니다.”


“잘 드셨다니 저도 다행이네요. 오늘은 날이 추우니 따듯한 차 한 잔 어때요? 학생분이시니 녹차로요. 티백뿐이지만..”


“아.. 뭐든 감사합니다.”


포트에 전원을 올리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찬장 안에서 머그잔과 녹차티백, 블랙커피를 준비합니다.

저는 블랙커피를 좋아하거든요.

한 잔에는 티백을 한 잔에는 커피를 조금 담고 어느덧 뜨거워진 물을 담습니다.

따듯한 물에 녹아 풀리는 은은한 녹색의 향기와 물을 들이듯 덩치를 불려가는 진한 흑색의 향기가 조용한 가게 안을 가득 채웠던 요리 냄새들을 밀어내고 슬그머니 자리를 잡습니다.


뜨겁게 들어왔다가 따듯하게 넘어가는 한 모금, 그리고 예상했던 정적.

보통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오지만 막상 그걸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하시는 분은 많지 않아요.

어렵게 땐 한 마디가 후에는 끓어 넘치는 냄비 속의 물처럼 흘러 감정을 토해내는 경우는 많지만요.

다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곳의 ‘규칙’을 모르는 분은 계시지 않아요.

조금 기다릴 뿐입니다. 감정이 가라앉아 재구성될 때 까지요.


“음.. 그러니까요..”


어렵게 땐 첫 마디가 시작됩니다.


“사실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음..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저희 아버지요..”




Ep. 1 학생과 아버지 1화 end.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처음뵙겠습니다. 레몬블라썸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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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1화 18.08.01 74 2 11쪽
21 Ep. 4 풋내기 사랑 4화 18.07.31 55 2 11쪽
20 Ep. 4 풋내기 사랑 3화 18.07.30 60 2 11쪽
19 Ep. 4 풋내기 사랑 2화 18.07.29 103 2 12쪽
18 Ep. 4 풋내기 사랑 1화 18.07.28 59 2 11쪽
17 Ep. 3 그 남자의 밤 10화 18.07.27 67 2 11쪽
16 Ep. 3 그 남자의 밤 9화 18.07.26 76 3 12쪽
15 Ep. 3 그 남자의 밤 8화 18.07.25 70 3 11쪽
14 Ep. 3 그 남자의 밤 7화 18.07.24 75 3 11쪽
13 Ep. 3 그 남자의 밤 6화 18.07.23 69 3 14쪽
12 Ep. 3 그 남자의 밤 5화 18.07.22 71 3 12쪽
11 Ep. 3 그 남자의 밤 4화 18.07.21 71 3 12쪽
10 Ep. 3 그 남자의 밤 3화 18.07.20 65 3 12쪽
9 Ep. 3 그 남자의 밤 2화 18.07.19 69 3 11쪽
8 Ep. 3 그 남자의 밤 1화 18.07.18 66 4 11쪽
7 Ep. 2 메롱바 그녀 4화 18.07.17 98 3 11쪽
6 Ep. 2 메롱바 그녀 3화 18.07.16 95 4 12쪽
5 Ep. 2 메롱바 그녀 2화 18.07.15 72 4 12쪽
4 Ep. 2 메롱바 그녀 1화 18.07.14 92 4 11쪽
3 Ep. 1 학생과 아버지 3화 18.07.13 199 4 11쪽
2 Ep. 1 학생과 아버지 2화 18.07.12 151 5 11쪽
» Ep. 1 학생과 아버지 1화 +2 18.07.11 43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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