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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블라썸 님의 서재입니다.

힐링 테이블(A Healing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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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몬블라썸
작품등록일 :
2018.07.11 16:08
최근연재일 :
2018.08.03 18: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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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6
추천수 :
74
글자수 :
127,303

작성
18.07.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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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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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Ep. 3 그 남자의 밤 3화

DUMMY

“00피시방!”


피시방을 들어가니 카운터를 기준으로 입구 쪽에 실장 형 그리고 6~7명쯤 돼 보이는 선수들이 보였다.

실장 형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따로 불러 여기서 쓸 가명을 정하자고 했다.

그럭저럭 무난한 이름들이 나오다가 너는 배우 하정x를 닮았으니 정우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 특기가 노래고 우리는 소개를 할 때 ‘~하는’을 붙이는 게 기본이니 ‘노래하는 정우’로 가자고 했다.

알 게 뭐야. 그러자고 했다.


오늘은 멤버들이 풀로 출근한 날이라고 했다.

어제 봤던 매니저 형이 출근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간략히 말해주었다.

보통 피시방에 정액을 들어두고 게임이든 뭐든 하다가 실장 형이 연락을 받으면 일시 정지를 하고 일을 나간다는 거다.

난 어차피 게임을 하지도 않았고 돈도 아까워 그냥 아무 자리에나 앉아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우리 쪽에는 사람이 없어도 빈자리가 항상 남아 있었는데 적어도 9시부터 이 구역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 것 같았다.

뭐 분위기가 묘하니 굳이 여기 껴서 하고 싶지는 않겠지.

다행히도 충전용 잭은 피시를 이용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모바일 게임이나 웹서핑 따위를 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 소식 없던 실장 형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뉴욕~ 뉴욕~’거리는 벨소리였다.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뉴욕 노래’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실장 형의 벨소리는 출근, 곧 돈을 벌 기회였기 때문이다.

뉴욕이 뜨면 우린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실장 형은 간단히 전화로 위치를 묻고 차키를 챙겼다.

여담으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벨소리는 Jay-z의 Empire State Of Mind 후렴구란다.


“가자.”


실장 형의 한마디에 게임을 하고 있던 놈들도 웹서핑이나 동영상을 보고 있던 놈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짐을 챙기고,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시 정지’를 해달라는 한 마디를 남기며 올라갔다.

조폭마냥 우르르 몰려가 검은색 스타렉스에 탔다.


차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숫자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수들이라 살이 찐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뒤에 네 명, 중간에 네 명씩 차에 탔는데 보통 뒤에는 짬이 안 되는 나 같은 놈들이 타고 중간은 비교적 짬이 되는 선수들이 타는 형식이었다.


“부왕!”


경쾌한 출발. 드디어 첫 일이다.

나도 꽤나 꾸미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선수들이 괜히 선수들이 아니다.

키도 대부분 170cm 후반에서 180cm 중반으로 큰 편들에 하나같이 깔끔하고 멋들어지게 입고들 왔다.

뭐. 그래도 나는 특기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싶다.


사실 노래를 꽤 오래전부터 불러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해서 스물셋인 지금에는 적어도 어디 가서 노래로는 꿀려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노래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더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다.

특히나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첫인상도 나쁘지 않은데 적당히 입 좀 털어주다가 노래방으로 데려가면 성공률 100%였으니까.


“끼익!! 덜컹!”


‘와. 씨. 뭐야. 뒤질 뻔했네.’


실장 형의 화려한 드리프트(?).

차를 뺄 때부터 거침이 없는 게 뭔가 험하게 몰 것 같아 좌석 뒤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만약 잡지 않았었다면 난 아마 옆 유리를 부수고 뛰쳐나가 지금쯤 길바닥에서 뒹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운전 실력에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덜컹! 덜컹!”


이 차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혹 규정 속도를 지키면 차가 터지든지.

풀 엑셀에 감속 없이 과속방지턱을 넘으니 차가 하늘로 날아갈 기세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익숙한 듯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심지어 과속방지턱을 넘기 전에 엉덩이를 살짝 떼서 완충을 시키는 선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 싸움이라 그런지 운전이 거의 레카 수준이었다.


“끼익!”


그렇게 죽기 살기로 도착한 장소는 조금 낡아 보이는 노래방.

우리는 실장 형의 뒤를 따라 들어갔고 형은 노래방 사장님과 짧은 대화 후 우리를 방문 앞에 일렬로 대기시켰다.

키순에 따라 1조 4명과 2조 4명이 정해지고 실장 형이 먼저 들어간 뒤 몇 분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


“야. 1조 들어와.”


1조의 대부분은 180cm에 가깝거나 그 이상인 놈들이라 나는 2조에 속해있었다.

1조 애들이 들어가고 소개하는 소리가 들린 뒤 다시 문이 열렸다.


“2조 들어와라.”


습습후후.

긴장이 몰려온다.

드디어 시작이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내 인생 첫 방을 들어갔다.


불이 켜져 있는데도 어두컴컴한 방은 자욱한 담배 연기와 슬그머니 올라오는 술 냄새에 마치 퇴폐업소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 몇 병과 음료수 몇 캔 그리고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이어서 시야에 들어오는 아줌마 셋. 상석에 앉아있는 아줌마는 비교적 젊고 날씬해 보였다.

그녀는 오른팔을 테이블 위로 올린 채 담배 하나 물더니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우리를 훑었다.


‘저 아줌마가 메인인가 보네.’


왼쪽에는 삐쩍 마른 아줌마가 글라스에 술을 따르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돈깨나 벌었음직한 묵직한 아줌마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아무리 일이라지만 나이 많은 아줌마들 비위나 맞추며 놀아야 한다니.

아가씨 손님은 없나..?

제발 오른쪽 아줌마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우리 조 첫 선수가 입을 뗐다.


“2조 1번! 달리는 야생마에요!”


첫 선수가 운을 떼자 자연스럽게 2번 3번 선수 순서로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 차례.


“2조 4번! 노래하는 정우입니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멘트는 쳤는데, 뒤이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방 불빛이 어둑어둑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홀로 내 안의 민망함과 겨루고 있을 때, 오른쪽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얘. 애들 어린 거 봐. 나 아무래도 아까 걔로 해야겠다. 너넨 누구 고를래?”


마른 아줌마가 이야기했다.


“난 야생마. 야 너 진짜 웃기다. 호호호.”


상석의 아줌마도 말했다.


“야, 김 군아!”


아마도 실장 형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애들 내보내고 이야기 좀 하자.”


“네! 누님들. 애들 사이즈 괜찮...”


실장 형이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얼떨결에 화류계에서의 첫 소개를 끊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멍하게 카운터에 달린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이라 떨렸다기보다는 너무나 한순간에 지나가서 어안이 벙벙했다.

오래되 먼지가 쌓인 시계의 초침은 노익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똑 딱 똑 딱 흘러가고 있었다.

한 바퀴쯤 돌았을까, 뜬금없이 내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떨림은 생각보다 한 박자 늦게 나를 찾아왔다.


어느덧 내 심장소리에 맞춰 초를 세고 있을 때 실장 형이 나왔다.

실장 형은 꽤 골 때리는 일이 생겼다는 표정으로 매니저 형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매니저 형의 손짓으로 1조 1명, 2조에서 1명이 방으로 들어가고, 대화를 마친 매니저 형은 우리에게 돌아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사장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차에 탔다.

모두가 차에 타 문이 닫히자 매니저 형이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메인 손님이 실장 형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형이랑 두 명 넣든지 아니면 다른 데서 부른다고 하니까 형이 들어간 거고. 이해하지?”


“네.”


나야 모르지만 다들 알겠다고 하니까 뭐 그런가 보다 했다.

어쨌든 첫 일거리가 파투가 나서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좋게 생각해보면 ‘그 아줌마들 비위 맞추며 노느니 차라리 잘 됐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첫 일인데...’하는 생각도 든다.

모쪼록 오늘 일은 이게 끝이 아니니까.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대해보는 수밖에.


돌아온 피시방에서 나는 슬슬 선수들과 제대로 된 인사를 했다.

어쨌든, 식구인데 이 일 같이하려면 어느 정도 친분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인원은 실장 형과 매니저 형을 제외하면 나까지 8명이라고 했다.

제일 많을 때는 12명까지 있던 적도 있었다는데, 차에 너무 껴서 타야 하다 보니 나름 적정 인원을 정한 것이 8명이란다.


매니저 형은 원래 선수였는데 실장 형과 오래 일하다 눈에 들어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실장 형은 이 구역을 넘겨주고 강남으로 발을 넓혀보겠다고 했단다.

‘뜨거운 녀석들’을 프랜차이즈화한다나 뭐라나.


한편, 우리 멤버 에이스는 나보다 두 개 위의 남혁이 형, 나랑 동갑인 진수였다.

둘이니 투톱인가. 하여튼 남혁이 형은 키가 크고 스타일이 좋았다.

중저음 톤의 목소리에 떡 벌어진 어깨, 좋은 몸에서 나오는 깔끔한 핏.

그러다 보니 아줌마, 아가씨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좋았지만,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선 최고의 인기였다.

남자가 봐도 매력 있는 남자였으니 이해가 갔다.


진수는 마른 미소년 형의 선수였다.

아줌마들보다는 아가씨들이 찾는데 워낙 입담이 좋아서 고정도 많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건 아니고, 호불호는 갈리지만 귀엽다고 앉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선수들은 대체로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놈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애가 이런 일을 하러 왔나 싶은 수준의 애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의외로 이쪽 일은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루 만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생각보다 돈이 안 돼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애가 여기서 일을 하나’ 생각했던 그 녀석은 내 출근을 기준으로 몇 주 동안 단 두어 번의 일을 겨우 나가고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

자정 무렵 슬슬 배가 고파질 때쯤 매니저 형이 입을 열었다.


“밥 먹으러 가자.”


‘밥도 먹는구나.’


개중에 몇몇은 다른 곳으로 가고 몇몇은 피시방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과 나는 밖으로 나와 바로 그 건물 1층에 있는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한 명, 두 명 메뉴를 고르고 오늘 나는 첫 출근이라 매니저 형이 사준다고 메뉴를 고르라 했다.


“저는 김치볶음밥이요. 잘 먹을게요. 형.”


형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메뉴를 기다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을 못 했는데, 가장 싼 메뉴인 김치볶음밥이 6천 원.

이제 돈도 거의 떨어졌고 담배 살 돈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해초쪼가리, 단무지 그리고 장국으로 최대한 배를 채워본다.

밤을 새우려면 충분히 배가 불러야 하니까.


다행인 건 멤버들이 그 가게 단골이라 주인아주머니와 친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밥도 무한리필에 밑반찬도 넉넉히 주셨다.

우리가 무슨 일은 하는 줄은 알고 그러는지.

어쨌든 내 입장,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밑반찬을 주워 먹고 있을 때였다.

매니저 형의 전화가 울렸다.

콜이 들어온 모양이다.


‘밥은 어떻게 하지.’


“이모, 콜 들어와서 밥 한쪽에 모아주세요.”


“오야~ 다녀들 오그라.”


의외로, 아니 당연한가.

이런 케이스가 많았던 모양인지 이런 경우에는 밥을 한쪽에 치워두고 다녀와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입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음식을 욱여넣고 피시방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다시 차에 탔다.

두 번째 콜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간 곳은 첫 번째 노래방과 달리 꽤 널찍한 노래주점 같은 곳이었다.

가운데에 홀 형식으로 노래방 기계와 큰 테이블이 있었고 그 뒤쪽으로 몇 개의 방이 있었다.

손님은 여자 사장과 아주머니 몇 명, 우리는 그 전처럼 소개했고 첫 콜에 들어가지 못한 진수,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뽑혔다.

그리고.


“얘, 너 노래 잘하니?”


내가 뽑혔다.




Ep. 3 그 남자의 밤 3화 end.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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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3화(Season 1 완결) 18.08.03 69 2 12쪽
23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2화 18.08.02 59 2 14쪽
22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1화 18.08.01 74 2 11쪽
21 Ep. 4 풋내기 사랑 4화 18.07.31 55 2 11쪽
20 Ep. 4 풋내기 사랑 3화 18.07.30 62 2 11쪽
19 Ep. 4 풋내기 사랑 2화 18.07.29 104 2 12쪽
18 Ep. 4 풋내기 사랑 1화 18.07.28 59 2 11쪽
17 Ep. 3 그 남자의 밤 10화 18.07.27 67 2 11쪽
16 Ep. 3 그 남자의 밤 9화 18.07.26 76 3 12쪽
15 Ep. 3 그 남자의 밤 8화 18.07.25 70 3 11쪽
14 Ep. 3 그 남자의 밤 7화 18.07.24 75 3 11쪽
13 Ep. 3 그 남자의 밤 6화 18.07.23 70 3 14쪽
12 Ep. 3 그 남자의 밤 5화 18.07.22 71 3 12쪽
11 Ep. 3 그 남자의 밤 4화 18.07.21 71 3 12쪽
» Ep. 3 그 남자의 밤 3화 18.07.20 66 3 12쪽
9 Ep. 3 그 남자의 밤 2화 18.07.19 69 3 11쪽
8 Ep. 3 그 남자의 밤 1화 18.07.18 66 4 11쪽
7 Ep. 2 메롱바 그녀 4화 18.07.17 98 3 11쪽
6 Ep. 2 메롱바 그녀 3화 18.07.16 95 4 12쪽
5 Ep. 2 메롱바 그녀 2화 18.07.15 72 4 12쪽
4 Ep. 2 메롱바 그녀 1화 18.07.14 92 4 11쪽
3 Ep. 1 학생과 아버지 3화 18.07.13 199 4 11쪽
2 Ep. 1 학생과 아버지 2화 18.07.12 151 5 11쪽
1 Ep. 1 학생과 아버지 1화 +2 18.07.11 433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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