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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블라썸 님의 서재입니다.

힐링 테이블(A Healing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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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몬블라썸
작품등록일 :
2018.07.11 16:08
최근연재일 :
2018.08.03 18: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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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8
추천수 :
74
글자수 :
127,303

작성
18.07.21 22:00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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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Ep. 3 그 남자의 밤 4화

DUMMY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렸어~~!! 어쩔 수 없었네. 춤바람~ 여인.”


뻔하고 흔한 환호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야, 너 진짜 노래 좀 하는데? 어디서 배웠니?”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하하!”


나이는 40대. 사장을 필두로 동생들을 불러서 마시는 중이라고 했다.

나를 뽑아준 사람은 무리 중에서도 비교적 어려 보였고, 우물쭈물하고 있던 것이 신참인가 싶어 귀여웠는데 노래를 잘한다니 뽑았다고 했다.


“누나 술 한 잔 받으세요.”


술 한 잔, 안주 하나. 진수는 이게 기본이라고 했다.

진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워낙 베테랑인지라 첫 일인 내가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있어도 자연스럽게 흐름을 깔아주었다.

면포를 깔고 그 위에 온더락 잔 두 개에 샷 잔 하나를 깐 뒤 온더락 잔에는 얼음을 채워 넣는다.

어떻게 드시는지 여쭤본 뒤 샷 잔에 양주를 따르고 그걸 다시 온더락 잔에 붓는다.

얼음 잔을 살짝 돌린 뒤 기호에 맞는 음료수를 적당량 채워 넣고 티슈를 덮어 흔든다.


그냥 드시면 그 자리에 두고 샷 잔에 채워 드신다면 얼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을 가려 술만 따라 낸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한 온더락 잔에는 드시고 싶다는 음료수를 따라둔다.

힐끗힐끗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손님의 술을 따랐다.

사실 내 기준에서 자연스러운 것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초짜 티가 완연히 났겠지만.


“누나~ 안주도 드세요.”


테이블에 있는 포도 한 알을 따서 손님에게 드린다.

누나라 말하며 과연 누나인가 싶지만, 손님은 누나니까.


“언니 얘 끼가 장난이 아니야. 진짜 선순데? 00야 00 한 병 더 가져와라.”


한 병 더를 외친 누나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야, 너 때문에 한 병 더 시켰으니까 네가 오늘 누나 책임지는 거다?”


당황하는 틈을 타 스리슬쩍 내 허벅지로 손이 올라온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진수를 쳐다보니 이 자식, 내 눈을 피한다.

올라온 손은 등 뒤로 흘러 허리를 감싼다.

몸이 밀착되니 숨결이 느껴진다.

코를 간지럽히는 알콜의 향기는 머리칼을 타고 진한 향수 냄새와 섞여 농익은 여자의 원숙미로 산화한다.


멈춰서 흐르지 않는 공기를 뚫어내고 샷 잔에 채워진 위스키를 원액 그대로 넘겨본다.

화한 향으로 타들어 가는 액체는 목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로 이어 흘러내려 간다.

나는 오른손으로 내 옆구리를 감싼 누나의 손을 잡고 꽉 쥐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사장을 필두로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장이 이런 식으로 양주에 맥주 몇 병을 미끼로 던져주고 누나들한테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양주를 팔아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로서는 시간당으로 돈을 받으니 오래 버티고 있는 게 중요하다.

술이 더 나온다면 사장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으니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하겠지.


“너 빠떼리 부를 줄 아니? 누나랑 그거 부르자.”


알 든 모르든 무조건 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아는 노래지만.

쿵짝쿵짝 거리는 베이스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고, 생각보다 누나는 노래를 못 불렀다.

나는 최대한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고, 그게 누나한테는 먹혔던 것 같았다.


엉덩이를 잡고 덩실덩실 부벼대는 몸과 함께 빈속에 마신 술이 몸 안에서 파도쳤다.

위장에서 식도로 역류하기도 하고 팔에서 손끝으로 다리에서 발끝으로 흐르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 속을 까보면 피보다 술이 많을 참이었다.


힘겨운 눈으로 옆을 보니 진수는 어느새 다른 한 명과 나와서 탬버린을 쳐 대고 뜨거운 열기에 뛰어나온 누나들로 홀에서는 광란의 춤사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이 파티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누나 손을 잡아 자리로 돌아온 나는 부대끼는 속을 달래기 위해 안주를 둘러보았다.

과일과 마른안주 몇 개.

속도 속이지만 밥도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르니 필사적으로 하지만 티 나지 않게 천천히 안주로 배를 불려 나갔다.

포도는 성에 차지 않으니 배나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것으로 먹고 마른안주는 오징어 위주로 먹었다.

나름대로는 자연스럽게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었는지 파트너 누나가 직원을 불렀다.


“얘, 너 밥 안 먹었니? 00야 얘 밥 좀 시켜줘라.”


“아, 누나 저 원래 안주 킬러라 그래요. 밥은 다음에 따로 사주세요. 헤헤.”


밥을 시켜주는 건 고마운데 여기서 밥이나 먹고 있다가는 맥시멈 1시간이다.

극구 만류하며 겨우 본래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인제 보니 진수가 살짝살짝 눈치를 주고 있었는데 배도 고프고 정신도 없어 사인을 알아채지 못했다.

망할 놈, 아까는 시선을 피하더니. 그래도 정신 차려야지.


1시간에 3만 원. 이 중 만 원은 실장 형에게 소개비 명목으로 나가고 나에게 떨어지는 돈은 2만원이다.

5시간을 일해도 고작 10만 원이다.

지금이야 분위기가 좋아서 2시간가량 놀고 있지만 언제 이 자리가 끝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와 게임을 제안하며 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3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언니, 이제 나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 남편온대.”


“언니 나도.”


“그래? 계산은 어떻게 할까. 겟돈에서 빼?”


“응~”


뭔가 일이 있을 것만 같던 내 생각과는 달리,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산을 하고 나가버렸다.

차후에 일을 조금 더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보통 이쪽에서는 아줌마를 대상으로 한 보도가 많다고 했다.

내 첫 손님이 그랬듯이 유흥을 위한 계를 열고 일정 금액 이상 돈이 모이면 노래방이나 가게에서 보도를 불러서 놀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나는 리그 첫 진출에 첫 타석에서 홈런을 날려 사장님에게 몰래 영입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락처를 달라기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진수가 따로 말해주기를 고정 손님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보통 그 날 정말 재미있게 놀거나 선수가 마음에 들었을 때 누나들이 혹은 누나에게 부탁받은 사장님이 번호를 따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경우 대기 중에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출근하게 될 수도 있는데, 보통은 실장 형에게 말하고 형이 그 장소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덧붙여서 이건 정말 비밀인데 이렇게 고정이 많이 쌓이게 되면 일하는 곳에서 나가 다이렉트로 고정 손님만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런 케이스 자체가 상당히 드문 경우였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나중에 콜 오면 자신도 껴서 들어가자는 말을 하며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보통 일이 끝나면 멤버 중 짬 되는 한 명이 혹 혼자 갔을 때는 자신이 실장 형에게 끝났다고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진수가 매니저 형과 통화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남은 한 명과 담배를 태우며 고생했다느니 하는 어쭙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화를 마친 진수는 실장 형 일은 끝났고 지금 다른 콜이 들어와서 거기를 들렸다가 우리 가게로 올 거라 했다.

딱히 할 것 없는 흡연자가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노가리나 까며 차를 기다렸다.


진수는 보통 일이 끝나면 가게 입구에서 기다리면 안 되고 살짝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손님들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 입구를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쪼록 가게 앞 편의점 구석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두, 세 대 폈을 때쯤 실장 형의 차가 들어왔다.

진수는 사장님께 받은 돈을 실장 형에게 주고 실장 형은 자신의 몫을 뺀 뒤 다시 우리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


첫 봉급이라 불러야 할까.

어쨌든 첫 일에 대한 보수를 받은 나는 묘하게 올라오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본래 3시간을 조금 넘겨야 했을 페이가 사장님이 잘 놀았다며 4시간을 쳐주어 8만 원을 받았다.

하루 8만 원, 심지어 아직 오늘이 끝이 난 것도 아니다.


잘하면 하루 10만 원을 넘게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달이 30일, 300만 원. 정말 250만 원도 꿈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시 피시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붕 뜬 마음으로 주머니 속 8만 원을 움켜쥐고 있었다.


“형, 정우 일 되게 잘하던데요? 특히 노래 진짜 잘해요.”


“어, 그래? 이 새끼 난 놈이네. 인마 많이 벌어서 형 차나 바꿔주라.”


“하하. 아녜요.”


피시방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져 자리에 앉았다.

술로 속은 쓰렸지만 반대로 마음은 가벼웠다.

그러다 갑자기 식당에 먹지 못하고 두고 온 김치볶음밥이 생각났다.

형에게 잠깐 밥을 먹고 오겠다고 말하고 가본 식당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오지 않아 밥을 치웠다고 했다.

보통 2시간 정도까지 기다려준다는 것으로 봐선 일을 나가면 못 먹고 허탕을 치면 돌아와서 먹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깟 김치볶음밥 하나에 좌절할 틈이 없었다.


가게를 나와 근처 편의점을 찾아갔다.

해장을 시켜줄 매운 라면 하나를 고르고 물을 부었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온몸에 퍼져있던 알콜기를 싹싹 긁어내려 간다.

풀려있던 눈동자는 다시 초점을 되찾고, 묘하게 두근거렸던 심장은 그 떨림을 멈추었다.


편의점 문밖을 나선다.

그제야 불어오는 찬 바람은 내 주머니 속 7만 원 남짓한 돈이 거짓이 아님을, 내가 첫 일을 무사히 마치고 번 돈임을 실감시켜주었다.

나는 이빨에 껴있던 건더기 수프를 빼내어 우물거리다가 삼키고 이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일하고 난 뒤의 식사.

그리고 담배 한 모금.


충분히 천천히 빨아들이고 여유롭게 내뱉기를 반복한다.

돌아온 피시방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었다.

밤은 길고 술을 마셨으니 잠이 올 터였다.

적어도 새벽 5시까지는 버텨야 하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마셔 줘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그 날 콜의 전부였다.

새벽 5시쯤 되자 슬슬 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첫날이고 돈맛도 보았으니 아직 남아있는 기운으로 새벽을 버티고 있었다.

실장 형은 집에 갈 사람은 먼저 퇴근하라고 한 뒤 나와 일을 나가지 못한 다른 두 명, 매니저 형과 함께 남았다.


아침 9시쯤 되고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자 실장 형은 이제 퇴근하자며 차키를 챙겼다.

매니저 형 말로는 보통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는 경우가 없는데, 우리 형님만 선수 관리 겸 큰 도로까지는 데려다준다고 했다.


선수가 내릴 첫 번째 장소에 도착하자 형은 오늘 일을 나가지 못한 두 명에게 만 원씩을 꺼내 주었다.

원래는 선수가 일을 나가야 하는데 오늘은 형이 일을 들어가게 되었으니 차비 삼으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근육 있는 깡패 양아치인데 의리는 있는 모양이다.

내가 내릴 때쯤에는 고생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날은 완연히 밝았고 도시의 사람들은 이미 출근했을 시간.

나는 뒤늦게 출근하는 사람,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아줌마들을 지나 소소히 그리고 분주하게 시작되는 아침을 뒤로한 채 골목길 내 집 앞으로 돌아왔다.


뭔가 진이 빠졌다.

고작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지만 며칠이 지난 듯 오래도록 느껴졌다.

도시의 밤, 그 안에서 일에 찌든 내 몸은 아침의 피곤함을 부여잡고 벽에 기댄 채 털썩 그 자리에 쭈그려 앉게 만들었다.

다만, 뻐근한 몸과 달리 입꼬리는 나도 모르게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일과를 마치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계단을 올랐다.


밤새 나를 기다렸을 내 작은 방에는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먼지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더 날아다닐 수 없도록 커튼을 ‘탁’ 치고 볕을 맞아 빠득빠득해진 장판 위에 지친 몸을 뉘었다.


낡은 창틈 사이에서는 바람이 새는지 커튼을 툭툭 건드려 빛을 들여보냈다.

든 볕은 내 얼굴을 비추더니 다시 사라지고 비추고 다시 사라졌다.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p. 3 그 남자의 밤 4화 end.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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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3화(Season 1 완결) 18.08.03 69 2 12쪽
23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2화 18.08.02 59 2 14쪽
22 Ep. 5 널 만나러 가는 길 1화 18.08.01 73 2 11쪽
21 Ep. 4 풋내기 사랑 4화 18.07.31 55 2 11쪽
20 Ep. 4 풋내기 사랑 3화 18.07.30 60 2 11쪽
19 Ep. 4 풋내기 사랑 2화 18.07.29 103 2 12쪽
18 Ep. 4 풋내기 사랑 1화 18.07.28 58 2 11쪽
17 Ep. 3 그 남자의 밤 10화 18.07.27 67 2 11쪽
16 Ep. 3 그 남자의 밤 9화 18.07.26 76 3 12쪽
15 Ep. 3 그 남자의 밤 8화 18.07.25 69 3 11쪽
14 Ep. 3 그 남자의 밤 7화 18.07.24 75 3 11쪽
13 Ep. 3 그 남자의 밤 6화 18.07.23 67 3 14쪽
12 Ep. 3 그 남자의 밤 5화 18.07.22 71 3 12쪽
» Ep. 3 그 남자의 밤 4화 18.07.21 70 3 12쪽
10 Ep. 3 그 남자의 밤 3화 18.07.20 65 3 12쪽
9 Ep. 3 그 남자의 밤 2화 18.07.19 69 3 11쪽
8 Ep. 3 그 남자의 밤 1화 18.07.18 65 4 11쪽
7 Ep. 2 메롱바 그녀 4화 18.07.17 98 3 11쪽
6 Ep. 2 메롱바 그녀 3화 18.07.16 95 4 12쪽
5 Ep. 2 메롱바 그녀 2화 18.07.15 72 4 12쪽
4 Ep. 2 메롱바 그녀 1화 18.07.14 91 4 11쪽
3 Ep. 1 학생과 아버지 3화 18.07.13 199 4 11쪽
2 Ep. 1 학생과 아버지 2화 18.07.12 151 5 11쪽
1 Ep. 1 학생과 아버지 1화 +2 18.07.11 42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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