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4분님의 서재입니다.

별을 연기하는 천재배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4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6:06
최근연재일 :
2024.09.19 16:21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4,644
추천수 :
816
글자수 :
119,404

작성
24.09.19 16:21
조회
327
추천
47
글자
12쪽

18. 그렇게, 입동(立冬)

DUMMY

* * * *


그렇게, 입동(立冬).

겨울이 시작되는 날.

할아버지는 홀로 떠나가셨다.


.

.

.


11월 7일 오후 6시 4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3, 3층 1실.

학교대학교병원 14개의 분향실 중 150평으로 가장 큰 분향실이 문을 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별, 고산의 장례식을 위해서였다.


[‘연예인들의 연예인’ 배우 고산 사망···향년 73세]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별]

[(충격속보)’유명 감독들의 페르소나’였던 고산 사망 충격···]

[배우 ‘고산’ 별세 | 만성 심폐 질환 투병 알려져···]


마치 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산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손을 쓸 시간도 없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지금 이 상황이 믿겨지지가 않는 건 우리 뿐인가. 혜성은 메마른 낯으로 엷게 웃고 있는 고산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전에 사진관에서 찍었던 독사진이었다.


- ‘다녀오거라.’


오늘 아침에도 인사했었는데.

혜성은 숨을 쉬기가 어렵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귀로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주고받는 대화들이 들려오고 있었고, 영정 사진 앞으로는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오갔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는 은근하게 혜성을 바라보다가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생겼는데?”

“누구?”

“쟤. 쟤는 고산 선생님이 새로 거둬들인 얜가.”

“그러지 않겠어. 왜. 영입이라도 하게?”

“뭐···고산 선생님 작고 하셨으니까 오갈 데도 없을 거 아니야. 고산 선생님이 데리고 있었던 거면 배우 하겠다는 건데 그래도 지난날 옛정을 봐서 내가 먼저 거두는 게 낫지 않나? 근데···오늘 바로 명함 주면 버릴려나? 너무 예의가 아닌가?”

“알면 관둬라. 좀.”


미친 건가.

혜성은 벽에 기대 앉은 채, 무릎 위에 얹어두었던 두 팔 위로 이마를 갖다댔다. 얼굴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할아버지가 떠나가신 날인데···’


백준범 아저씨가 1층에서 기자들을 막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자들이 없는데도 이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우리보다 빠르게 세상에 소식을 전한 기자들이 분향실까지 처들어오면 어떻게 되겠나. 혜성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귀는 닫아지지 않았다.


“형님···! 형니이이임···형님!”

“아빠아. 나 어떻게 해···나 이제 어떻게 하냐고오···”

“씨발···.”

“하아.”

“························.”


소리가 밀려 들어온다.

대부분은 고통스러운 오열이었다. 형님을 부르짖는 것은 할아버지를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유진 아저씨였고, 아버지를 부르며 곡소리를 내는 것은 유일하게 자녀로 입적된 양녀 우슬희 누나였다.


혜성은 슬쩍 눈을 들었다. 두줄이 그어진 상주 완장을 찬 채 서 있는 진성한이 혜성의 눈에 담겼다. 혜성과 별 다를 바 없는 눈이었다. 텅 빈 눈.


- ‘일단···슬희 채우자.’

- ‘나 안 찰래······나 못하겠어. 나는, 나는···’


정식으로 입적된 것은 우슬희 뿐이었다.

고인의 배우자나 가까운 친인척 하나 없는 상황. 상주 남녀 구분이 옅어진 지금이니만큼 우슬희가 완장을 차야한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으나, 우슬희는 끝내 거부하였다.


- ‘제발···! 나 못 해. 제발. 진이 아저씨. 진이 아저씨가 해주면 안 돼? 사실 말이 동생이지 아들이나 마찬가지잖아···으어엉. 나 어떻게 해에. 아빠아아아.’


조문하러 오는 이들을 무슨 정신이 있어 맞이할 수 있겠냐는 이유였다.


- ‘유진 저 새끼가 상주라고? 그 꼴을 나보고 두 눈 뜨고 보라고? 씨발, 혜성이한테 못 들었어? 최초 발견자가 저 새끼라니까? 아니 다들 의심 안해? 저 새끼가···!’

- ‘수한이 데리고 나가라.’

- ‘아아아악! 놔! 놓으라고! 놔!’


결국 백준범의 중재하에 진성한이 완장을 차게 되었다.

고산과 지내온 시간이 우슬희 다음으로 오래된 게 진성한이었고, 상속 문제로 조만간 정식으로 입적을 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성한은 혼이 나간 얼굴로 왼쪽에 완장을 찼다.

아니. 혼이 나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평소에 장난기가 많던 조재욱의 얼굴에선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매일 초코맛 우유를 입에 물고 있던 김하빈은 소주를 벌써 세 병째 들이마셔댔다.


백나리는 탈수증세를 보여서 응급실로 실려간 지 오래.

유일하게 멀쩡해보이는 백건호만이 두 눈이 붉어진 채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으나, 혜성의 눈에는 보였다. 꽉 쥔 주먹에서 뚝뚝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통.’


혜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깥을 내다보았다.

개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이 백준범의 눈치를 보느라 건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백준범은 두 얼굴을 가린 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울고 있는 강수한을 착잡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를 피는 백준범을 처음 본 혜성은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에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다. 제 마음처럼. 혜성이 끝을 모르고 내려가는 것 같은 슬픔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물에 빠지는 기분.

그러나 혜성은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게, 고통이었다.



* * * *


11월 22일.

혜성은 달력에 표시된 날짜를 바라보며 다소 놀란 얼굴을 했다.

벌써···그렇게 되었나. 혜성이 눈을 깜빡였다. 11월 7일부터 22일까지, 지나간 시간이 한 순간에 혜성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뭐가 없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는 줄도 모르고. 그냥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만이 떠올랐다. 하루에 두세번 백건호나 백나리 등 형누나들이 자신을 끌고서 무언가를 입에 넣어주며 슬퍼하는 얼굴도 떠올랐다.


혜성이 눈을 깜빡였다. 뭐지? 혜성이 다시 상념에 잠기려는 그때, 누군가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혜성이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몸을 굳혔다. 그러나 한 순간이었다.


차갑지 않아.

혜성이 고개를 들었다.


“···혜성아.”


백건호가 슬픈 얼굴로 혜성을 내려다보았다.

형이 언제 왔지? 순간, 혜성이 눈동자를 굴렸다. 인제 보니 낯선 자리에 모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백준범과 유진.

우슬희와 진성한, 조재욱과 도정우, 백나리와 강수한 그리고 김하빈까지. 모두 모인 채였다. 왜 다 여기있지. 수한이 형은 유진 아저씨가 옆에 있는데 왜 소리를 안 지르지? 혜성이 이해못할 상황에 눈을 깜빡이는 그때.


“그럼 작고한 고산의 지인이자 변호사로서, 고산의 유언장을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준범이 입을 열었다.

연이어 딸깍, 녹음기 켜는 소리와 카메라가 돌아가는 소리가 혜성의 귓가로 들려왔다.


“우선 상속세와 증여세는 가지고 있는······”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대부분은 알아듣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혜성은 그저 귀로 들어오는 말을 가만히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고산이 소유한 영화 제작사 산에 대한 지분 17.3%와···”

“···사업체까지는 유진에게 증여하며···”


혜성은 고산의 유언이 집행되는 내내 슬퍼보이는 얼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진을 포함하여 형 누나들의 얼굴은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 정의내리기엔 복잡했다. 복잡해보였다.


예언 같은 직감이 혜성을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오늘을 기점으로 어쩌면, 많은 게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예감이었다.


“대학로에 위치한 극장 칠성에 대한 지분 및 소유는 양녀 우슬희에게···”


혜성은 그저 피곤한 낯으로 끝없이 흘러들어오는 말에 몸을 맡길 따름이었다.


.

.

.


그리고 그날.

혜성은 대학로 근처에 위치했던 고산과 칠성 단원들의 2층짜리 단독주택 집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상속받았다.


- ‘혜성아. 이게 형님 서재로 들어가는 마스터키랑 비밀번호다. 집을 어떻게 쓰든지는 네 자유지만 이건 너에게만 남겨준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면 안 된다.’

- ‘···예.’

- ‘그리고 이건 네 앞으로 남겨진 네 재산이다.’

- ‘재산이요? 돈은···’

- ‘형님이 그러셨다. 네가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긴 돈은 쓰고 싶어하지 않아한다고.’

- ‘············.’

- ‘충분히 이해한다. 쓰기 싫은 돈은 쓰지 않아도 돼. 그건 네 마음이니까. 하지만 형님은 네가 궁핍하게 살기를 원하시진 않으셨다. 그러니 그 마음만큼은 들어드릴 수 있지 않겠니.’


혜성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찢어버렸다. 이미 한 번 보았으니 잊어버릴 일은 없었다.


혜성은 잘게 찢은 종이를 혹시 몰라 물에 적셔 한 번 더 뭉갠 뒤에 쓰레기통에 버린 뒤. 손에 남은 통장과 마스터키를 바라보았다.


사업가인 유진에게 넘어간 사업체와 지분, 연출가를 꿈꾸는 우슬희에게 돌아간 몇백억짜리 칠성 극장, 작품에 집중하기를 바랐던 진성한에게 주어진 상가 건물과 현금 등.

다른 모두에게 준 엄청난 것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혜성에게는 그 무엇보다 귀중한 선물이었다.


- ‘어떻게 이렇게 딱 바라는 대로 주시고 가시냐.’

- ‘···산타 할아버지도 아니고 진짜로.’


형들의 말대로.

아무 걱정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을 원했던 혜성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혜성은 가만히 가만히 마스터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재로 걸어가는 내내 사방이 조용했다.


지난 보름간 익숙해진 적막이었다.

다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가끔씩 저를 들여다보려고 올 때 빼곤, 극장에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니.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운함은 없었다.

혜성 또한 남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혜성이 마스터키를 서재 출입문에 가져다대었다. 집 내부인데도 잠금 장치가 설치된 출입문이 삐리릭, 소리를 내며 잠금 해제를 알렸다.


혜성은 초록색으로 변한 LED 글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을 당겼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책 냄새가 혜성에게로 몰려들어왔다.

종이 냄새는 오래된 고목나무 냄새와 비슷하다. 바람은 그 사이를 지나며 숲길을 연상케 하고, 천장까지 쭉 뻗은 책들은 두꺼운 나무 몸통을 떠오르게 한다.


혜성이 천천히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 ‘서재에 들어가면 말이다, 혜성아. 서재 책상 위에 진한 나무 상자 하나가 있을 거다. 키보드처럼 긴 상자일텐데. 음. 그걸 열어보면 USB가 있을 거거든? 그걸 꼭 확인해보렴.’

- ‘······그것도 할아버지가 전해주신 건가요?’

- ‘그래. 제일 처음으로 보는 건 꼭 초록색 USB여야 한다고 하더구나.’

- ‘···알았어요.’


혜성은 따로 불러서 조용히 속삭였던 백준범의 말을 떠올리며 책상으로 걸어갔다. 전달해주셨던 대로, 나무로 만든 보관함이 있었다. 덜컥, 걸쇠를 여니 고급스러운 케이스 안에 담긴 USB 십수개가 보였다. 대충 세워봤을 때, 16개는 되어보였다.


혜성은 그 중에서 초록색 USB를 꺼내며 컴퓨터를 켰다.


[14세.]

초록색 USB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 고산의 필체였다. 혜성이 적힌 글자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혜성은 마우스를 움직여 USB에 저장된 [혜성이에게]라는 영상을 틀었다.


ㅡ 혜성아.


익숙한 얼굴이 컴퓨터를 가득 채웠다.

쓸어넘긴 은백색 머리, 잘 차려입은 검은 한복, 엷은 웃음. 고산이었다.


혜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떠나가는 길목 끝까지 남겨진 이들만 생각하신 당신 덕분에. 혜성이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에서 소리없는 눈물이 흘렀다.


- ‘자네는 누군가?’


이제서야 실감나는. 떠나간 이를 향한, 뒤늦은 작별이었다.


- ‘길을 잃었나?’


할아버지.

소실되지 않는 기억은 처음 만났을 적, 다정하게 웃고 있던 고산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겨우 79일.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79일이 혜성의 등을 떠밀었다.


둥지 밖으로.

세상으로.


‘············할아버지.’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 Kirnan
    작성일
    24.09.19 18:12
    No. 1

    겨우.... 겨우 79일이라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된거잖아요... 할아버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장금
    작성일
    24.09.19 21:52
    No. 2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칠성 단원들이 있잖아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별을 연기하는 천재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당분간 유동적입니다 24.09.09 133 0 -
공지 혜성은 스팸 문자를 받고 있다 (24.09.18) 24.09.08 461 0 -
» 18. 그렇게, 입동(立冬) NEW +2 14시간 전 328 47 12쪽
17 17. So cute you (눈물웃음) +4 24.09.18 523 49 15쪽
16 16. 초코? 녹차? 아니면 치즈? +5 24.09.17 627 53 13쪽
15 15. 오미혜가 부정했다 +6 24.09.16 670 45 14쪽
14 14. 대본 받았어요 +4 24.09.15 695 51 15쪽
13 13. 9월 8일 22시 43분 +3 24.09.14 708 51 12쪽
12 12. <내일을 맞이하는 아침>의 주인공 +3 24.09.13 798 47 15쪽
11 11. 누구냐? +1 24.09.12 713 45 13쪽
10 10. 저기다 +2 24.09.11 715 43 12쪽
9 9. 사랑스러운 부름이건만 +4 24.09.10 733 40 14쪽
8 8. 아역 배우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2 24.09.09 770 38 13쪽
7 7. 작은 곰 +3 24.09.08 795 42 16쪽
6 6. 그것이 문제로다 +2 24.09.07 847 39 18쪽
5 5. 진짜 난리도 아니었다 +3 24.09.06 910 39 17쪽
4 4. 17분 7초 +3 24.09.05 946 41 13쪽
3 3. 쟤는 누구래? +4 24.09.04 1,045 46 17쪽
2 2. 혜성이 문틈 너머로 뻗었던 손을 가져왔다 +4 24.09.04 1,203 46 15쪽
1 1. 그림자에 잠긴 집안 +5 24.09.04 1,614 54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