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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님의 서재입니다.

별을 연기하는 천재배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4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6:06
최근연재일 :
2024.09.18 16: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2,686
추천수 :
683
글자수 :
113,927

작성
24.09.04 22:52
조회
940
추천
40
글자
17쪽

3. 쟤는 누구래?

DUMMY

“쟤는 누구래?”

“모르겠어요. 그보다 저 사람 고산 맞죠? 와···소문이 진짜였네. 진짜로 고산이 이 극장의 주인이었어요.”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더니···”

“쟤 혹시 내정자 같은 거 아니야?”

“뭐···합격자 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지 않아요? 그냥 각자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혜성은 고산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았다.


“스크린 좀 잠깐 휩쓸었다고 이렇게 큰 극장을···”

“오늘 자유연기 뭐 준비해 왔어요?”

“저는 햄릿에 나오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이걸 지을 정도는···요즘은 광고도 안 찍는 것 같던데.”

“투자 좀 받지 않았을까요?”

“누구한테요?”

“그거까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추측이잖아요. 아닐 수도 있다고요.”


열아홉 명.

혜성은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걸어올 때 스쳐 지나간 사람 수를 되짚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스물인가.’


혜성이 무표정을 유치한 채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면을 바라보는 내내,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혜성은 그들을 보는 대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네가···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있, 있어! 음.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네가! 나한테 어, 어떻게 일어악, 쓰읍.”

“저기 오늘 연기 몇 개 준비해 오셨어요?”

“······3개요.”

“전 4개 준비해 왔는데 뭐 준비해 오셨어요? 공유할까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 저기요. 진짜 오지랖이라고 보지 마시고요. 아니 오지랖이라고 보셔도 되는데···그 햄릿 독백은 안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네? 에, 왜요?”

“여기 칠성에 미친 햄릿 하나 있다던데···굳이? 다른 레파토리 준비해 온 거 없어요? 그, 보통 2개 이상은 준비해 오잖아요. 저라면 다른 거 하는 거 추천이요.”

“아, 진짜요?”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계속해서 들려온다.

속삭이는 목소리들부터 종이를 넘기는 소리, 다리를 떨 때마다 흔들리는 열쇠고리, 심지어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의 소리까지.


혜성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에 감은 눈을 유지했다.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책을 읽듯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시간은 점차 느리게 흐른다.


고산의 손을 잡고 지나쳐오면서 보았던 것들이 검은 잔상 속을 깜빡깜빡 스쳐 지나간다.


혜성이 두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주먹을 말아쥐었다.


화면이 계속해서 바뀌고, 보았던 장면들은 점점 확대되어 간다. 그만. 거대한 하늘을 담듯 커지는 화면. 손톱이 손바닥을 찌를 정도로 꽉 쥐는 순간, 저벅. 발걸음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느릿하고 여유로우나 큰 걸음걸이.

노인, 고산이다.

혜성이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기다렸다는 듯 무대 위에 선 고산의 모습이 시야에 박혀왔다.

그는 거대한 무대를 혼자 채우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왜 이제 알았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존재감이 그를 감돌고 있었다.


높다랗게 솟은 거대한 산.

그는 산처럼 보였고, 그를 비추는 조명은 꼭 운무를 연상하게 했다.


혜성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고산이 입을 열었다.


“극단 칠성의 입단 오디션을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칠성의 연출가, 우슬희라고 합니다.”


정작 말을 뱉은 것은 고산이 아니라 우슬희였다.


우슬희?

혜성이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렸다. 우슬희가 보였다. 땅에서 솟아났을 리는 없으니, 우슬희 또한 방금 고산과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고 봐야 했다.


몰랐다. 진짜 몰랐나?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식하지 못했다.

혜성이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고산을 응시했다. 그러자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챘다는 듯 고산이 혜성을 향해 엷게 웃어 보였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평범한 사람을 삼켜버리는 존재감.

저게 배우인가.

혜성이 멀거니 고산을 바라보았다.


“···고로,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저희 칠성은 여러분이 준비해 오신 자유연기를 보기에 앞서 저희가 필요로 하는 배우가 맞는지 자질을 알아보는 시간부터 가져보고자 합니다.”


그러느라 우슬희가 하는 말 중, 반은 거의 흘려듣고 있었다.


반대로 우슬희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시험생들은 크게 웅성이기 시작했다.


“저게 뭔 소리야?”

“뭐긴 뭐야. 연기 수업 때나 배울법한 기본기를 알아보겠다잖아.”

“자질이라잖아요. 기본 테크닉이 아니라 재능을 보겠다는 거 아니에요?”

“재능을 어떻게 시험하는데? 애초에 뭐 이리 깐깐해? 여기가 무슨 소속사 배우 뽑는 자리야?”

“무슨 공연도 안 올려본 신생 극단에서 이딴···”

“연기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있다길래 면접시간이 있는 건가 싶었더니 말이야!”

“근데 무슨 연출가가 저리 젊어?”


고산과 우슬희가 들으라는 듯.

몇몇은 목소리를 죽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혜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슬희가 한 말이 일반적인 입단 시험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인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노인을 아버지라 불렀는데 성이 다르네.’


성이 고, 이름이 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고산의 웃음을 떠올린 혜성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희 입단 오디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분은 공고에 적혀있던 대로 오디션 참가비를 드릴 테니 돌아가시면 됩니다.”

“······진짜 참가비를 준다고?”

“오디션만 참가해도 10만 원을 준다더니.”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근데 시험을 안 봐도 주는 거야?”

“확실히 일반적인 연극판 방식은 아니네요.”


양녀.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었다.

···친딸도 아닌데 저렇게 부녀 사이가 좋을 수 있나. 우슬희가 고산을 대하던 태도를 떠올린 혜성이 손가락을 곰지락거렸다. 친딸이 아니어서 더 좋은 건가.


순간, 생각하기 싫은 것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혜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하지 마. 기억을 집어넣은 혜성이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이 하얀 봉투를 들고 돌아가고 있었다.


언성을 높이던 인물들이었다.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나?’


혜성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이해한 바에 따르면 배우는 어차피 노출된 직업이다.

배우로서 살길 각오했다면 저렇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혜성이 아이답지 않게 서늘한 눈으로 둘을 시선으로 쫓다, 고개를 바로 했다.


내가 저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


“···그럼 남아있는 열일, 열···여덟 분은 입단 오디션에 응한다고 생각하고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할게요. 자, 그럼 모두 무대로 올라와 주시겠어요?”


저희가 이제 내려갈 차례 같으니까요. 우슬희가 웃었다.


.

.

.


우슬희의 요청에 따라 혜성을 포함한 열여덟 명이 모두 무대에 오르는 사이. 쪽문을 열고 사람들이 등장했다.


혜성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지하에서 연습하던 배우들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온 건가. 혜성은 무대 밑, 관객석에 앉는 배우들을 응시했다. 그중에는 햄릿을 연기했던 남자도 있었다.


- ‘요 꼬마는 성한 아저씨가 햄릿을 연기하는 걸 구경하다가···’


성한.

우슬희는 남자를 그렇게 불렀다.

혜성이 자리를 잡으며 남자를 응시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중간중간 표정이 사라질 때면 지나치게 정이 없어 보인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낯이란 게 저런 걸까.


혜성이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때, 고산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웃는 낯을 유지한 채로 입만 슬쩍 움직였다.


집중해야지.

읽모양을 읽어낸 혜성이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중해야 한다. 혜성이 시선을 갈무리했다.



* * * *



“아쉽지만 시간 관계상 저희가 모든 자질을 이 자리에서 시험 해볼 수는 없어요.”


기왕이면 다 시험해 보면 좋겠지만. 우슬희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뭐. 다 시험해 볼 필요도 없긴 하지. 우리 칠성에는 이미 자질을 갖춘 배우가 일곱 명이나 있으니까. 우슬희가 아쉬움을 짧게 떨쳐내고, 박수를 한 번 쳤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 이거지. 우슬희가 무대 위에 선 시험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걸 느끼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만 보도록 할게요.”


우슬희의 눈이 유일한 소년을 향했다. 흙과 먼지, 물 자국과 떡진 머리 등으로 가려져 있지만 칠성의 연출가인 제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탐이 나긴 해.

문제는, 얼굴만은 신이 빚은 것 같은 꼬마가 재능이 있을 것인가였다. 우슬희가 표정을 굳히며 손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간단합니다! 뒤를 도세요. 그리고 틀어지는 짧은 영상을 보고, 그 영상에서 발견한 것을 저희한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관찰력.

그리고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디벨롭(개발, 성장, 발전).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배우의 연기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관찰력은 고산의 말마따나 배우가 대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네 가지 자질 중의 하나였다. 우슬희가 팔짱을 낀 채 검지로는 툭툭, 팔뚝을 두들겼다.


과연 어떨까.

우슬희가 저도 모르게 시선으로 꼬마를 쫓았다. 자신이 계속 무대 끝 쪽에 외딴섬마냥 떨어져 있는 꼬마를 살피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 순간, 무대 조명이 전부 꺼지는가 싶더니 준비했던 대로 프로젝트 빔이 무대 벽으로 쏘아졌다.


.

.

.


혜성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검은 두 눈에 화려한 색깔이 맺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보았는지가 까마득했다.

귓가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미친···이걸 언제까지 보라는 거야.”

“암기력을 보는 시험인 건가?”

“메모할 것도 없이 어떻게 기억하라고···”


무대 벽.

커다란 화면을 바둑판 모양으로 채운 25개의 작은 영상들이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움직인다. 그게 벌써 몇 분째였다. 혜성을 제외한, 무대 위에 오른 열일곱 명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프로젝트 빔이라 화질이 선명하지도 않은데 워낙에 원색 배치가 많아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걸로 뭘 본다는 거지. 암기력인가. 시험생 중 한 명이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같은 시험생 중 하나인 꼬마가 보였다.

고산의 손을 잡고 등장했던 거지꼴을 한 아이.

누가 봐도 진짜 거지인 애를 주워다가 뭘 하려는 건지···시험생의 표정이 안 좋아지려는 그때,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얼굴을 봄과 동시에 시험생이 몸을 굳혔다.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얼굴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영상을 바라보는 새까만 눈이 보여서였다.


‘무슨 눈이···’


사람을 잡아끈다.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이 사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기분. 시험생은 저 얼굴에 빨려 들어가는 항성의 찌꺼기 그 언저리가 된 느낌으로 그저 서 있었다.


어···? 그런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드는 순간, 영상이 끝을 맺었다.


아.


“어···저, 한 번만 더 보면 안되···안 되겠죠?”


누군가가 낸 간절한 목소리에 5분 조금 넘는 영상을 이제 막 다 본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으나 동조하진 않았다.


‘그게 되겠냐.’

‘되면 이렇게 갑자기 보여주질 않았겠지. 일단 기억력을 시험하는 게 분명해. 최대한 많이 말하는 게 장땡이야. 순서를 최대한 뒤로 미뤄서 남들이 말하는 것도 외워서 하면 가산점이 있겠지.’

‘······근데 이러면 뒤에 말하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하지 않나?’

‘대사에 대한 암기력을 보려는 건가. 아···처음 본 대사 외우기는 자신 있는데 왜 영상인 거야. 아까 뭐더라. 일단 첫 번째는 사람 발이었고, 두 번째는···’


시험생들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다시 보는 건 안 되죠. 후우. 자, 좋아요. 다들 이 시험의 룰을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주세요. 룰은 간단합니다. 손을 들고, 자신이 영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하나씩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손을 든 순서대로 진행할 거고,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던 것은 뒷사람이 다시 말할 수 없습니다. 자, 다들 룰은 이해하셨죠?”


뭐?

앞사람이 말했던 걸 뒷사람은 말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우슬희를 바라보았다.

혜성은 그제야 천천히 앞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준비하시고···”


언제 꺼졌었냐는 듯 조명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환한 빛.


‘이 빛 속에서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던 거구나.’


대단해.

혜성이 눈을 움직였다. 고산이 있는 자리를 눈으로 더듬거리는 그때, 우슬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주세요!”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아, 늦었다. 혜성이 뒤늦게 손을 들어 올렸다.



* * * *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 입으신 분.”


혜성은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사람이 마이크를 넘겨받는 걸 지켜보았다. 이로써 열일곱번째. 내 순서는 마지막으로 자동 확정이구나.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는 처음과 달리 굉장히 조용해진 채였다.


여덟 번째까지는 꽤나 활발하게 말하는가 싶었지만 열세 번째가 지나자, 사람들의 말수는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마이크를 잡고 세 가지 내지 네 가지 말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힘겹게 말한 것도 이미 앞에서 말한 거라고 매몰차게 카운트를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랬음에도.

혜성은 바로 다음 순서가 자신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긴장감 없는 표정으로 우슬희 주변에 앉은 배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비디오를 돌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제시하는 순서.

사람들이 먼저 들었다고 주장해도 단호하게 아니라 말하고, 어디다 적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미 말한 것이나 없는 것을 말하면 놓치는 법 없이 정확하게 짚어낸다.


흥미로워.

혜성은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는 걸 느꼈다.

그때였다. 혜성의 손에 마이크가 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있었다.


‘아. 이제 내 순서구나.’


열여덟 번째.

혜성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열일곱 번째 발표자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혜성은 그 표정을 가만히 눈에 담다가 천천히 정면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우슬희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이제 마지막인가요?”


마지막.

혜성이 볼을 긁적였다.

손을 조금 늦게 들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순서가 뒤로 밀릴 줄이야. 혜성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ㅡ ·········


마이크에 잡힌 작은 숨소리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뻗어나갔다. 침묵이 흐른다. 다들 하나라도 말하면 다행이라는 표정.


혜성은 메마른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감각에 날이 섰다. 모든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감각은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아까 보았던 것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혜성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 ‘자신이 영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하나씩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라고?

검은 바닷속에서 물고기 떼처럼 방금 보았던 장면들이 헤엄치는 걸 느끼며 혜성이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 건 날이 새도록도 할 수 있다.


.

.

.


딸깍.


ㅡ 12번 영상에 고양이 다리 사이로 고양이 꼬리가 16번 등장했고


딸깍.


ㅡ 꼬리가 바닥에 닿은 것은 여덟 번. 꼬리에 잔디가 닿았던 것은 두 번. 꼬리가 고양이의 오른쪽 다리를 건드린 것은 한번, 꼬리가···


딸깍. 딸깍. 딸깍. 딸깍딸깍딸깍···

하. 계수기를 누르다가 손가락이 저린 건 또 처음이네.

꼬마가 말하던 것을 계수기로 체크하던 우슬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속사포로 쏟아질수록 무대 위에 같이 서 있는 사람들의 황당해하는 얼굴 또한 진화를 해나갔다. 낯선 것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주 일품이었다.


우슬희가 꼬마가 말하는 것을 계속 체크하면서 고개를 내렸다.


[3][1][1].

계수기가 가리키는 숫자는 손가락이 저린 것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311개. 312개. 313개. 314개···

이미 앞서 말했던 이들 모두를 합쳐도 많은 숫자인데,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간다.


‘이런 미친···’


우슬희는 계수기를 계속해서 누르며 마이크를 쥔 꼬마, 천혜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을 뱉는 것에 고민하는 기색이 없다. 끝날 기미도 없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이 너무나 어울렸다.

마치···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사람처럼.

우슬희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돌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아버지가, 괴물을 주워 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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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74 기작경장
    작성일
    24.09.14 00:09
    No. 1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요. 사람들이 상식이 있으면 저렇게 하진 않을텐데. 1970년대나 80년대도 아니고. 어린애를 주워다가 연기를 시킨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99 별빛한량
    작성일
    24.09.17 11:25
    No. 2

    판타지 소설에서 왜 현실성을 찾나요?? 개연성 밥말아 먹은 막장드라마도 잘만 방영하는 세상에서..

    잠시 현실을 떠나 즐거움을 느낄수 있다면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잼있어요!!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0 시금치나물
    작성일
    24.09.17 17:36
    No. 3

    중학생조차 라이벌로 의식할 정도인데, 오디션 현장에서 저렇게 사담을 많이할수 있을까 싶네요. 그리고 재미와는 별개로 주인공이 미성년자라서 거취 문제가 신경쓰이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4.09.17 18:01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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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저기다 +2 24.09.11 642 38 12쪽
9 9. 사랑스러운 부름이건만 +3 24.09.10 656 34 14쪽
8 8. 아역 배우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2 24.09.09 696 34 13쪽
7 7. 작은 곰 +3 24.09.08 715 38 16쪽
6 6. 그것이 문제로다 +2 24.09.07 764 35 18쪽
5 5. 진짜 난리도 아니었다 +3 24.09.06 818 3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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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혜성이 문틈 너머로 뻗었던 손을 가져왔다 +4 24.09.04 1,077 41 15쪽
1 1. 그림자에 잠긴 집안 +4 24.09.04 1,459 4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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