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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님의 서재입니다.

별을 연기하는 천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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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4 16:06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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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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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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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 저기다

DUMMY


저기다.

복도에 들어선 혜성의 눈동자가 끝방 쪽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한산하네.”


혜성과 동행한 백나리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혜성은 백나리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백나리는 출입증을 발급할 때부터 여기까지 오며 받은 명함 몇 개를 명함지갑에 정리하는 중이었다.


혜성은 명함지갑을 핸드백에 넣는 백나리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 ‘아버지는 안 돼요.’

- ‘음.’

- ‘확실히 선생님이 없으시면 연습이 제대로 안 되긴 하지.’

- ‘나도 반대! 방송국에 얼굴 비추셔봤자 기사만 터지고 좋을 게 없긴 하잖아.’

- ‘그럼 누가 가?’

- ‘내가···’

- ‘건호 형도 안 돼지. 29일에 한 번 연습 빠졌었잖아.’

- ‘그럼 내가···’

- ‘형은 햄릿이잖아!’

- ‘내가 갈게.’


오늘 아침.

함께 오디션장에 다녀올지 정하는 자리에서 백나리가 선뜻 나설 줄은 몰랐다.


“좋아. 드디어 다 정리했네. 이제 들어가, 응?”


백나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웃는다.


“뭐니. 새삼 반했어?”

“·········아닌데요. 그냥.”

“그냥?”

“그냥 죄송해서요. 저 때문에 연습 시간도 뺏기시고···”

“어머? 이 꼬맹이 좀 봐. 오는내내 왜 이렇게 조용할까 싶었더니 완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잖아?”


백나리가 웃으며 시선을 낮추었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며 꽃다발이 훅 안기듯 향기가 번져왔다. 꽃 향기랑 비누 냄새. 혜성의 코끝이 냄새를 인식한 것처럼 움찔거렸다.


“혜성아. 난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야.”

“············.”

“진짠데? 난 어디 사는 쌍둥이 오빠랑 다르게 평소에 연습을 빠지지도 않는 편이고, 내가 빠지더라도 연습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걸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내가 연기를 좀 잘해.

백나리가 혜성을 따라하듯 코끝을 찡긋여 웃어보였다.


“내 오필리아는 이미 완성 직전이거든. 그래서 선생님도 내가 동행하는 걸 반대하시지 않은 거고. 그리고 혜성아. 내 꿈. 기억하지?”

- ‘나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으니까 내가 촬영에 임한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TOP 10 안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 그게 꿈이야. 깔끔하지?’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야. 목표를 이룰려면 드라마부터 캐스팅 되야 하잖아. 그래서 눈도장 찍으려고 온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오해는 접어주시죠?”


백나리가 웃었다.

해사한 웃음이었다.

혜성이 그 미소에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까?”


다시 무릎을 펴고 앞서 걷는 백나리를 따라 혜성이 뒤따라 걸었다.


.

.

.


달칵.

문이 열렸을 때, 혜성은 순간적으로 쏠리는 시선이란 이런 거라는 걸 느꼈다. 오디션 관계자라고 생각했었는지 반기던 눈들이 순식간에 놀람, 경계, 적개의 순으로 감정을 바꿔나갔다. 그리고 남은 건 무관심이었다.


입단 오디션을 치루기 위해 고산의 손을 붙잡고 들어갔을 때랑은 또 달랐다. 진짜로 고산과 함께 왔다면 난리도 아니었겠구나. 혜성은 어렴풋이 추측했다.


“저희는 이 단역만 벌써 세번째 오디션이네요.”

“처음 맡았던 아이는 이번에 영화에도 들어갔다 들었는데 왜 하차당한 거래요? 연기력은 가장 출중하지 않았나?”

“듣기로는 화면에 좀 감정이 덜 담겼다던데.”

“아아.”

“방금 들어온 저 아이까지 딱 열명이네요. 단역에 뭐가 이렇게 많이 왔대요?”

“김성태 감독님이 워낙 화면에 예쁘게 담기로 유명하잖아요. 어디서 들은 건 있나보죠.”

“···그거 아세요? 저기 당진 쪽에서 온 연기학원 애들이래요.”

“진짜?”


백나리와 혜성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대화들은 빠르게 오고 갔다.


“개인적으로 따로 온 애는 혜성이 너랑 저기 저 조금 덩치 큰 아이밖에 없나보네.”


혜성이 속삭이는 백나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말이 엑스트라지, 화면에 단독샷이 잠깐 잡히는 단역이라 그런지 아역배우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있었다. 한두명은 본 기억도 있었다.


“다들 친해보이네요.”

“알음알음 서로 알게되는 세계란 거지. 쟤네 셋은 같은 학원 출신인가 봐. 저기 둘도.”


혜성이 작게 속삭이자 백나리가 화답했다.

혜성은 놀이공원 때의 경험으로 백나리가 원래 남들의 대화나 시선을 신경쓰는 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속닥거려주는 게 긴장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도.


혜성은 티를 내지 않는 백나리의 상냥함에 슬쩍 입꼬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혜성이 살짝 웃는 순간, 대기실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혜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목을 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게 오디션에서 굉장한 장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긴장한 낯을 했다.


“무슨 애엄마가 저렇게 예뻐?”

“······애엄마랑 애기가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둘 다 진짜 인형 같다···.”

“사, 상관없어요. 드라마에선 조화가 중요하잖아요. 애가 저렇게 예쁘면 오히려 중심되는 아역들 외모가 죽어서 잘 안 뽑으려고 할걸요?”

“그럼, 그럼.”


오디션을 보는 아이의 엄마들이 속닥거리는 소리에 백나리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이었다.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대기실 문이 덜컥 열렸다.


피곤에 찌든 얼굴과 종이만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짚은 짝다리. 오디션 스태프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남자의 등장이었다.


“어, 이제 곧···<내일을 맞이하는 아침> 1화 단역 추가 오디션 시작할 예정인데요. 어, 감독님께서 지금 오디션 참가자 전원 모두 심사장으로 와주시라고 하시거든요?”


이게 맞나.

자신이 눈이 침침해졌나 전달받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에 도착한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한 스태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전원. 어···저 따라서 이동하실까요?”



* * * *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 처음에 연기력 보고 연기 제일 잘하는 애 뽑아놨더니 카메라에 감정이 안 담기고, 두번째로 탈락자 중에서 아무나 면접으로 고르려고 하니까 확 느낌이 오는 애가 없고. 세번째 오디션은 카메라에 담기는 것만 봐야지.”

“나중에 엑스트라 하나 찍자고 방송촬영용 카메라 싹 쓸어온 거 알면 위에서 말 나올걸요.”


오디션장에 남아있는 방송촬영용 카메라를 이렇게 다 쓸어오면 어쩌냐. 임동원이 심사장에 가득한 카메라를 바라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들은 심사장을 사각지대 없이 조명하는 중이었다.


“야. 너는 지금 걱정을 하는 거야, 저주를 퍼붓는 거야?”


김성태가 카메라 설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살짝 미간을 좁히자마자 바로 주름따라 일그러지는 얼굴이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성질머리가 더러웠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라는 놈이. 이렇게 카메라를 가져다써도 위에서 된다고 납득이 갈만한 애가 나타나길 빌어줘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제 말은. 아 왜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너, 오늘 제대로 물건 하나 못 건지기만 해.”

“왜 저를 걸고 넘어져요. 장작가님 요구사항이 뭔 말도 안 되는 칸 진출한 미감(미술감독) 수준인 게 문제인거구만!”


이러다 죽겠다 싶은 임동원이 제자리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칸 미감 수준은 무슨.”


그런 걸 요구했으면 장작가가 방송국 폭파시키기 전에 김성태가 먼저 장작가 작업실을 폭파시켰을 터였다. 김성태가 코웃음을 치는 순간이었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심사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김성태 PD는 문쪽으로 걸어가며 검지로 임동원을 가리켰다.


납득이 갈만한 애가 안 나타나면 두고보자는 뜻이었다. 임동원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김성태와 임동원이 저도 모르게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메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본능이었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 영역 안으로 한 명의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11번]이라는 이름표를 가슴팍에 단 소년을 따라 두 명의 고개가 움직였다.


그것 또한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 * * *



혜성은 자신이 걷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중년의 사내 둘을 의식하며 걸었다. 아마 저 둘이 이번 오디션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사람들이겠지.


혜성은 발자국 스티커가 붙어있는 곳 아무데에나 서라는 말을 따라 움직이며 생각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게 마무리했다고.


“자, 여러분. 지금 종이를 나눠주고 있으니까요오. 종이를 다 나눈 다음에 제가 신호를 주면 이 종이를 접어보고 비행기를 날려주시면 됩니다아. 아시겠죠오?”


어설픈 말꼬리 늘이기가 반복되는 설명을 아이들이 지루한 낯으로 경청했다.


혜성은 종이비행기를 접기 위한 종이를 받아들면서 귀를 쫑긋였다.


“저 덩치큰 애가 고산 선생님이 보냈다는 열네살 그 아이인가?”

“···선생님이 여덟살 구하는데 열네살을 보내기에 무슨 애길래 굳이 보내나 싶었는데 쟤는 좀···몇번이지? 9번?”

“어? 근데 9번은 열네살이 아닌데요. 일곱살인데요. 일곱살?”

“뭐? 저게 일곱살이라고?”


어른들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반적으로는 들리지 않는 게 정상이긴 하겠지.


“열네살은···열네살은···11번, 11번인데요?”

“11번?”

“···십일버어언?”


위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두꺼운 색종이를 나눠주던 스태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심사에 들어가는 거니까 자유롭게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움직이고 놀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어주시면 됩니다아아. 서로 안 보인다 생각해주시고, 카메라 신경쓰지말고 움직여주시면 되요오오! 자, 시작해볼까요오오?”


들려오는 스태프의 목소리를 들으며 혜성의 눈이 깜빡였다. 그때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수많은 눈동자가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얼굴이 달라진다. 웃는 얼굴. 행복하다는 듯 접히는 눈웃음. 실룩거리는 볼. 풍선을 들고 내달리는 걸음. 기우뚱거리는 몸. 하하하. 웃음소리와 놀이공원의 음악이 들려온다.


혜성은 천천히 눈꺼풀을 감았다.


.

.

.


“야, 김성태!”


SBA 예능국 PD이자 김성태의 동기인 윤철환이 회의실을 뻥, 차고 들어왔다. 그 뒤로 윤철환을 말리기 위해 빠르게 걸어오는 걸음소리가 쫓아왔다.


“네가 오늘 오후 내내 SBA 여유분 카메라 다 처먹었다며! 우리가 오늘 카메라가 두 대가 부족해서 얼마나 뛰어다녀야 했는지 알···무, 뭐···허?”


윤철환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들었다.


“·········.”


회의실 벽에 걸린 TV 화면 속에서 인형처럼 생긴 아이가 행복한 웃음을 지은 채로 비행기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누구지?

윤철환이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빠르게 흩어졌다.


아이가 움직였다.

내달렸다.

두 팔을 비행기처럼 뻗은 채, 한 손에는 종이비행기를 들고. 아이들 사이를 스스로 비행기가 된 것마냥 종횡무진하는 아이를 따라 윤철환의 동공이 커져갔다.


분명 실내고 에어컨 말고는 바람 하나 불어오지 않을텐데 아이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풀어헤친 하얀 셔츠가 펄럭거린다. 언덕을 쓸어내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땀 한 방울이 아이의 이마를 천천히 흐른다.

아이는 행복하게 웃는다.

무지개처럼 휘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 안으로 빛들이 윤슬처럼 부숴진다.


윤철환은 숨을 죽였다.


“피디님, 진정을 좀 먼저 하시고오···어?”

“···와.”

“············뭐예요?”

“와아아.”


뒤따라 쫓아오던 사람들이 윤철환의 어깨 너머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모두들 무어라 한 마디를 보태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하나 없는 영상이 그냥 그렇게 해야만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영상 속에서, 햇살 한 줌이 아이의 머리카락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그걸 보는 모든 사람들은 가슴이 녹는 느낌을 받았다.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가 간질거린다.


아름답다.

아이가. 그리고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저렇게 산다는 게 부럽고, 저렇게 살지 못하는 게 억울해질만큼.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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