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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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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작은별
작품등록일 :
2024.01.16 10:26
최근연재일 :
2024.02.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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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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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DUMMY

며칠동안 틀어박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마음에 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됐다.” 


향을 맡아본 내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건 팔린다. 


“시엘로, 이것 좀 봐주세요.” 


나는 예쁘게 세공된 유리병 두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뚜껑을 열었다. 

며칠 전부터 성의 정원사 하르딘과 솔라 이모와 바쁘게 상의한 것이 이 문제였다. 


 “어떤것 같아요?” 


그는 차분하게 향을 맡았다. 반응을 기다리는게 괜히 초조했다. 


 “베티버군요.”  


“맞아요.” 


 “그 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섞인 향을 알아내려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다 알지는 못할거에요. 제 식대로 정제하기도 했고, 이미지들을 강조하기 위해 솔라가 가지고 있던 향료들도 몇개 섞었거든요.”


베티버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이미지가 있다. 흙향과 비누향.

나는 그 점을 활용하여 각각 남성용과 여성용 향수를 만들었다. 


남성용에는 침엽수 몇종류와 샌달 우드, 로즈마리를 섞어서 묵직한 나무향을 강조했고 

여성용에는 바닐라와 네롤리 꽃을 첨가해서 포근한 살내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셀링포인트는, 두 개가 한 쌍이라는 점이다. 


 “하르딘 말로는 베티버가 워낙 생명력이 강해 재배가 어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원액의 함유량을 적당히 조절했어요.” 


 나는 조금 수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다른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건··· 당신거.” 


시엘로를 생각하면 이제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향. 


그를 생각하면 자연히 베티버가 떠오르지만, 그의 체향이 온전히 베티버의 향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베티버의 화한 향이 그의 고유한 체향과 섞여 따뜻하고 정갈한 냄새가 났다. 


다른 두가지의 향수와 달리 이것은 특별히 가향하지 않았다. 


조금 다듬었을 뿐.


사실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한 것은 이것이었다. 어떤 향을 첨가해도 그의 체향을 온전하게 재현해내기는 쉽지 않아서. 결국 가장 순수하고 투명한 향유가 정답이었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첫 선물이었다. 


그는 내가 만든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챈것 같았다. 


 “당신은 정말···.”


그는 벅찬듯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샐쭉 웃으며 물었다. 


 “마음에 들어요?” 


 “당신께서도 저와 같은 향이 납니다.” 


 “응. 이건 우리 둘만 쓸 수 있는거에요.” 


 “안아도 됩니까?” 


나는 허락대신 그의 품에 폭 안겼다. 강인한 팔이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그에 비해 등을 쓰다듬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그는 나를 품에 안고 깊히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아십니까? 당신이 품안에 있을때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입맞추고싶습니다. 감히 완전히 당신을 소유하고싶다는 불경한 생각을 합니다. 그 입술에 입맞추고 더 깊히 파고들면··· 어떤 느낌일까. 어떤 눈으로 나를 보실까. 받아주실까.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입술에 닿았다.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신사답게 굴고있어요. 태어났을때부터 지금까지 쭉 신사로 자라왔는데 신사처럼 행동하기 힘든건 지금이 처음입니다.”


 “당신의 나라와 문화가 다른걸 알아요. 이만큼 허락해주신것도.. 제 속도에 많이 맞춰주신거겠지요. 당신에게 내가.. 예외인게 좋아요. 저를 특별히 여기시는것 같아서 황홀할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라게되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남자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소유하고 싶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바라보는 눈빛에 홀릴것만 같았다. 몸이 닿은 모든 곳이 화끈거렸다. 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해요?” 


 “그건.. 비밀입니다. 알면 도망가고싶어질테니까.”


그는 씩 웃고는 나를 품에서 떼어냈다.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더 오래 안겨있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요. 조금 더 참아보겠습니다. 당신을 존중하니까요, 내 공주님.” 



.

.

.



시엘로의 반응도 긍정적이었겠다 더이상 개발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초기 자금이야 장신구를 팔면 어떻게든 될 것 같고 홍보는 내가 하면 되는데 유통이 문제네···” 


북부부터 중앙까지는 큰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길이 험할 뿐더러 산적도 잦게 출몰한다. 대형상단이 아니면 운반을 꺼리는데, 북부에는 대형 상단이 없고 중부에는 믿을만한 상단이 없다. 

 도르륵 도르륵 볼펜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했지만 해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공주님!” 


 “제시!!” 


나도 모르게 반색하며 일어났다. 그렇지않아도 연락이 없어서 걱정이 되던 차였다. 


 “왜이리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다친건 아니지? 밥은 먹었어?” 


 “숨넘어가겠어요 공주님. 일단 부탁하셨던 거요.” 


그녀는 작은 구를 내 손에 쥐어준 후, 곧이어 그간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시온 전하가 에스테반 전하의 상대가 될 리 있나요. 수도를 고립시키고 왕위를 차지하려고 티타르왕국과 손을 잡아 작당한것 같은데, 에스테반 전하께서 이기셨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곳에서 이케토스 공작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수도는 그대로 시온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곧 수도에서 공주님을 데리러 오실거에요. 미카엘 안드레아 백작을 친히 보내신대요.” 


 “미카엘 오라버니가?” 


내가 왜 미카엘 오라버니를 잊고 있었지? 


단번에 화색이 돌았다. 미카엘은 대상단의 단주이자 내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라버니와 몇번이나 서로 목숨을 구해준 친구이자 전우.


중앙에서 연락이 오는것도 기쁜데 미카엘이 이 곳까지 온다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

.

.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대형견같이 순한 눈망울의 사내가 헤헤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프랑코! 어서 들어오게.”


내 집무실에 방문할 때면 그렇듯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따듯한 차가 들려있었다. 추위에 약한 나를 배려해주는 상냥한 사람. 


오늘은 뭐가 더 있는지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쿠키였다.


 “공주님께서 부르셨다고 하니 식당의 알렉스가 줬습니다. 요새 공주님께서 부쩍 마르신 것 같다나. 뿐인가요? 마주치는 족족 모두 공주님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겁니까?”


나는 미소지었다. 북부 성 사람들은 겉보기에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나는 이제 그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조만간 인사 하러 가야겠군.”


 나는 프랑코에게 쿠키 하나를 건넸으나 그는 ‘알렉스가 알면 저를 쥐잡듯 잡을걸요’ 라며 거절했다.


 쿠키 하나를 한입 와삭 베어물었다.설탕을 거의 넣지 않은 쿠키는 늘 그렇듯 퍼석한 밀가루 맛이었다. 설탕도 우유도 버터도, 이 곳에서는 말도 안되는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식지도 않은 쿠키에서는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짜 맛있네. 태어나서 먹은 쿠키 중에 가장 맛있어. 수도의 어떤 디저트 부럽지 않은 걸. 꼭 고맙다고 전해주게.”


 “공주님께서는 늘 누군가의 최선을 최고로 쳐주시는 경향이 있지요.”


 “아니야, 진심일세. 수도로 돌아갈 때 몰래 데리고 가고 싶을 정도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알렉스는 못 드립니다. 저희 성의 훌륭한 요리사인걸요.”


 “그의 쥐 고기 요리를 더 이상 맛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군. 어느 날 알렉스가 납치당한다면 나인 줄 알게.”


프랑코는 소리내서 웃었다. 그도 내가 처음 성에 왔을 때의 일을 떠올리는 듯 했다.


 “아직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까?”


 “첫 만찬의 메인 요리로 팔뚝만한 쥐가 통째로 상 위에 올라왔는데 잊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지났기에 할 수 있는 농이었다. 내가 이 곳에 온 지도 어언 세 달. 심술궂었던 요리사는 어느 새 내가 우울할까 염려하며 몰래 꿍쳐두었던 재료들을 털어 쿠키를 만들어 보내고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부루퉁했지만말이다. 


  “그걸 또 남기지도 않고 전부 드셨지요.”


 “음식이 부족해서 백성들이 죽어간다는데 어찌 하겠는가. 다 먹을 수밖에. 그리고···. 시각적으로 좀 강력해서 그렇지 맛은 좋았네. 이제는 닭고기가 올라오면 오히려 서운할 지경이야.”


 그날의 만찬은 공주가 온다고 야단법석 신경을 쓴 식사는 아니었으나 악의적으로 조작한 식사도 아니었다. 그 정도면 북부에서 온 자신을 맞는데에 부족함 없는 식사였다. 그렇기때문에 먹을 수 있었다. 요새 식탁에는 여전히 쥐고기가 올라왔지만, 꺼림칙해하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형체를 알 수 없게 완벽히 조리된 상태로 나왔다. 


 “역시 공주님께서는 다정하십니다.”  

 

 “자네가 더 그러한 것 같은데. 이리 매번 찾아와 신경써주는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 곳에 어떻게 적응 했을지 모르겠어. 고맙네. 아주 많이. ”


골든 리트리버같은 얼굴에 순박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 그보다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이십니까요?” 


 “이 근방에 유리병이나 세공품을 제작하는 자들도 있는가?” 


 “있기는 있습니다만.. 수도에 비해 수요가 적어서 품질은 낮고 가격은 높습니다. 어지간하면 수도에서 제작하시는게 좋을텐데요.. 배는 비싸게 받으니까요.” 


아니. 그럼 내수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수요가 만들어지고 기술이 쌓이면 가격도 적정선을 찾을 것이었다. 


 “괜찮네. 그들에게 이런 모양의 유리 병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주겠나?” 


미리 그려두었던 그림을 내밀었다. 

향수의 향만큼 중요한게 향수 병의 디자인이었다. 

두 개의 투명한 병이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하나의 쌍을 이루는 구조였다. 


디자인은 분명 아름다웠으나 그걸 받아드는 프랑코의 표정은 그러지 못했다. 


 “이정도 퀄리티의 병을 만들려면 필시 어마어마한 값을 부를텐데요..” 


이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나는 프랑코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열어 확인한 프랑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공주님..!” 


수도에서 가지고 온 금붙이의 전부가 들어있었다. 


 “받게.” 


 “이걸 어떻게.. ” 


 “그거면 충분할테지. 남는 돈이 있다면 굶는 자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게.” 


이 마음 여린 남자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아무도 북부를 위해 이렇게까지는 해주시지 않았는데..” 


“이제 쓸모 없어져서 처분하는것 뿐이야.”


조금 더 있다가는 과한 공치사를 들을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아, 며칠 뒤 수도에서 전령이 온다고 하는군. 오라버니의 절친한 친우이신 미카엘 안드레아 백작이 직접 온다고 하니 맞이할 준비에 신경써주게.” 


 “미카엘 안드레아 백작께서 직접이요? 언제 오신답니까?” 


.

.

.


그가 북부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사흘 후였다. 


 “미카엘 오라버니!” 


나는 뛰듯이 다가가 포옹했다. 그는 아직도 내가 6살내지는 7살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익숙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냈어 에스트렐라?”


 “에스테반 오라버니는 무사해?” 


 “녀석. 숨좀 돌리자꾸나.” 


얼굴 보자마자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게 그는 능청을 떨었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한점 남은 불안감마저 맑게 개이는 것 같았다. 


 “북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카엘 안드레아 백작. 시엘로 알베르토입니다.”


시엘로는 예를 갖추어 미카엘 오라버니를 맞았고, 미카엘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미카엘은 시엘로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관찰했다.


분명 웃고있는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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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24.02.15 28 0 12쪽
23 당신과 같은 향이 나요 24.02.15 32 0 12쪽
22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24.02.14 22 0 12쪽
21 다들 뒈지면 죽여버린다 24.02.14 48 0 10쪽
20 뭐긴, 반격 시작이다 24.02.13 58 0 12쪽
19 가지 마십시오. 제발 24.02.01 40 0 12쪽
18 항전한다 24.01.31 28 0 12쪽
17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24.01.30 98 0 12쪽
16 그렇게 웃으시니 꼭 별(estrella) 같아서 24.01.29 63 0 13쪽
15 내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24.01.29 52 0 13쪽
14 나를 좋아해요? 24.01.28 82 0 12쪽
13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24.01.27 27 0 11쪽
12 폭동 24.01.26 63 0 12쪽
11 형편없는 환자 무서운 의사 24.01.25 30 0 12쪽
10 협상을 시작하지 24.01.24 64 0 12쪽
9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24.01.23 71 0 12쪽
8 어떻게든 살아만계십시오 24.01.22 58 0 13쪽
7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24.01.21 77 1 12쪽
6 가장 깊은 악몽 24.01.20 53 1 12쪽
5 늑대 일족의 습격 +1 24.01.19 72 3 12쪽
4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24.01.18 76 3 12쪽
3 한겨울에 찬물 목욕 24.01.17 90 3 11쪽
2 쥐고기를... 먹으라고...? 24.01.16 87 2 11쪽
1 프롤로그 +1 24.01.16 159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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