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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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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작은별
작품등록일 :
2024.01.16 10:26
최근연재일 :
2024.02.15 23: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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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
추천수 :
16
글자수 :
126,555

작성
24.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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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DUMMY

오래 묵은 먼지냄새와 술냄새가 섞여 진동을 했다.

낮임에도 방은 어두웠다. 두꺼운 암막커튼 때문에 빛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눈을 몇 번 깜박여 어둠에 익숙해지자 헤진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장년의 남성이 흐릿하게 보였다. 


 “하르딘. 일어나게.”


로레타 성의 유일한 정원사, 하르딘이었다. 

정원사라기보다 숲지기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손으로 배를 긁었다. 


 “뉘슈?” 


 “에스트렐라일세. 쉬는 중에 미안하나 물어볼게 있어 잠시 들렸네.” 


그는 코를 후비며 비웃었다. 


 “수도에서 올라왔다드니, 말투가 고상하신게 어제 먹은 쥐뼈다귀가 올라올 것 같구만.”


 “공주님께 무슨 말버릇이지? 어서 예를 갖추거라!” 


발끈 하는 제시를 제지했다. 


 “예이~ 그러믄입죠. 무엇을 도와드릴깝쇼?” 


 “이 그림 좀 봐주게. 혹 알고 있는 식물인가?”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그에게 다가가 가져온 종이를 내밀었다. 씻지 않은지 오래 됐는지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는 그림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대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장난이라도 치듯 종이를 후 후 불어 천장에 날렸다. 쉰내와 술냄새가 풀풀 풍겨서 헛구역질을 할뻔 했다. 


이런 자가 관리하니 성의 정원이 죄다 그 모양이지. 

나는 기대를 버렸다. 이런 자가 알고 있을 리 없는 식물이었다. 


그렇게 돌아서려는 순간 


 “맛대가리도 없는거 얻다 쓰려고 그러시유?”  


황급히 다가갔다. 


 “알고 있는 겐가?” 


 “베어베리 아니유. 거, 곰들 좋아하는거. 곰 밥 곰 밥.” 


 “맞네. 북부에서도 구할 수 있다 들었는데, 혹 이 주변에도 자라는 곳이 있는가?” 


그는 한쪽 눈을 슬쩍 떴다. 


 “있기는 있는디···곱상한 아가씨가 구하기는 힘들텐디...” 


.

.

.


눈 덮인 숲은 추웠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다. 


 “제시를 데려올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혼자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절대 안된다고 박박 난리를 치던 제시를 떠올렸다. 


- 네에에? 절대 안돼요 공주님! 체력도 약하시면서, 이 밤에 어딜 가신다는거에요! 마실을 가신대도 말릴 판에, 어디요? 마수가 득실거리는 북부의 산이요? 그것도 국경쪽으로요? 차라리 제가 다녀올게요! 어떻게 생긴건지 저한테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 마음은 고맙지만 제시··· 너는 쑥이랑 국화도 구분 못하잖아. 


- 그건.. 


- 그럼 너 이중에 뭐가 로즈마리고 뭐가 커리플랜트인지 맞춰봐. 


- 제가 로즈마리도 모를까봐요? 당연히 이거죠.


- 확실해? 


- 이건가···?


 - 처음 게 맞았어. 


 - 이잇, 이걸 어떻게 맞춰요 공주님, 둘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제시의 불평과 달리 로즈마리와 커리플랜트는 잎 모양을 제외하고는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


로즈마리는 푸릇한 빛에 청량하고 맑은 향이 강하고, 커리플랜트는 은빛 털이 촘촘하게 나있고 은은한 초콜릿 향이 풍겼다.


로즈마리는 육류 요리에 곁들여 먹기도 하고 포푸리를 만들기도 하는 비교적 흔한 식물이었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세살 짜리 어린아이도 구분 할 수 있을 텐데.  


내 믿음직한 시녀는 이쪽으로는 재능이 아예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편향된 정보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분명 잘못 가져올 확률이 높았다. 



제시는 입을 삐죽였지만 더 이상 반대하지는 못했다.



노아가 알면 싫어하겠지. 



내 충직한 기사를 생각하자 조금 양심이 아파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록 괴물 같은 속도로 회복해서 일상 생활도 가능하다고는 해도, 내 기준 그는 고작 며칠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긴 중상자였다. 쉬어야했다. 


 “베어베리만 구해서 얼른 돌아갈테니까, 뭐.” 


들키기 전에 돌아가면 된다. 



베어베리(bearberry) 


겨울에 열리는 탐스러운 붉은 열매가 특징인 식물로, 곰들이 환장을 하고 달려들어 베어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달콤한 향과 달리 열매는 쓰고 텁텁한 맛이 나서 식용으로 쓰지는 않고, 잎만 달여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에 사용했다.


보이는 족족 곰형 마수들이 먹어치워서인지, 베어베리는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절벽 주변에서만 자랐다. 

 

베어베리는 곰형 마수들을 유인하는 가장 좋은 먹이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이라면, 반경 5km 안의 곰형 마수들은 죄다 몰려들 것이다. 




반목하는 두 집단을 협력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

공공의 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소 위험부담도 있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게 잘 먹히니까. 



눈 속을 얼마나 헤멨을까, 길을 잃은게 아닐지 걱정이 될 때 쯤 하르딘이 말한 절벽이 보였다. 


 “아, 찾았다!” 


절벽의 중턱에 뿌리를 뻗은 메마른 가시나무에 루비처럼 붉은 열매가 달려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빛이 눈보라 속에서도 선명했다. 


마침 비교적 가까운 곳에 탐스러운 베어베리 하나가 열려있었다. 


아슬하게 닿을 것도 같았다.  


나는 손을 뻗었다. 



.

.

.


그 시각 로레타 성.


서류를 품에 안은 시엘로 백작은 에스트렐라의 방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공주님.” 


 “...”


 “주무십니까?” 


시엘로는 시간을 확인했다. 다소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평소 에스트렐라의 생활 패턴으로 보았을때 잠자리에 들었을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내일 있을 영지민들 재판으로 급하게 상의 드릴 일이 있어 잠시 들렸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니 돌아가세요..”


뭔가 이상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일을 미룰 에스트렐라가 아니었다. 특히나 이리스족 정착과 폭동을 일으킨 영지민에 관한 사안은 최근 일중독자 공주님의 최대 관심사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시엘로는 빈 침대와, 시선을 피하는 시녀를 발견했다.


금새 상황을 파악한 그는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건만···

이 사고뭉치 공주님이 또 무슨 일을 치시려고···



 “공주님은 어디 계시지?” 


시녀는 답 없이 꾹 입을 다물었다. 


 “분명 공주님의 뜻일테니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 어디로 가셨는지만 말해라.” 


 “...제 주인은 공주님이십니다. 백작의 명을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게 제 주인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면요.” 


그녀가 평범한 시녀가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백작의 말에 눈 똑바로 뜨고 대거리할줄은 몰랐다. 


 “이 시기의 북부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너도 알고 있을텐데. 성 밖을 벗어나셨다면 어디든 위험하다. 마수도, 티타르 군사도, 그분께 불만이 가득한 영지민들도.” 


에스트렐라의 안전을 거론하자 조금 망설이는 듯 했으나 여전히 입을 다문 채였다. 


 “좋아. 그렇다면 이렇게 묻지. 내가 밤 산책을 나가려 하는데 어디로 가면 좋겠나.”



.

.

.



뻗은 손은 한참 모자랐다. 


 “이럴 줄 알았지.” 


쉽게 가나 했더니..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지. 손이 쉽게 닿았다면 곰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빠르게 단념하고 가방을 열어 준비해 온 로바타(lobata) 줄기를 꺼냈다.


추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덩쿨성 식물로, 뿌리와 줄기 모두 수십미터를 뻗어간다.  


주위의 양분을 모조리 흡수하는 탓에 로바타가 점령한 땅에는 어떤 식물도 가꿀 수 없다. 로레타 성의 정원이 황폐해 진 것은 로바타의 영향도 컸다. 


주변의 식물과 기둥을 감고 올라가 제거하기도 어려운 골칫덩이이지만, 겨울에도 얼지 않는 줄기만큼은 그 어떤 밧줄보다 질기고 튼튼했다. 


나는 로바타 덩쿨의 한쪽 끝을 가까운 나무에 고정하고 다른 한쪽 끝을 내 몸에 감았다. 



 “내가 진짜...별 짓을 다 한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아래에는 시꺼만 강물이 성을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떨어지면 죽을 것이다. 


나는 내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중턱에 위치한 베어베리들을 가지고 올라오는건 절대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베어베리 몇 개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았다.  


작고 소중한 내 팔근육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무거운 겉옷을 벗어 내려놓았다.찬 바람에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심호흡을 하고 벼랑을 타고 내려갔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몸이 흔들려 몇번이나 발을 헛디딜뻔 했다.



- 아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에스테반 이죽대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 암살자 대비 훈련을 시키겠다며 밧줄 하나만 딸랑 주고 성벽을 타고 내려오라고 했다. 


- 시끄러.


- 말대꾸 할 정신 있으면 발 밑 좀 살피지? 그러다 떨어진다?  


내가 버벅이는 꼴을 보고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아 안해! 안한다고! 


- 어허, 동생을 염려하는 이 오라비의 깊은 뜻은 모르고. 어어, 거기 밟으면 안되지. 떨어진다 떨어진다~


에스테반은 히죽 웃으며 깐족거렸다. 


- 에스테반 피루아! 이런거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 우리 서로 잘하는거 하자니까?


-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좀 잘 배워라. 


그는 느른하게 기지개를 펴며 덧붙였다. 


- 나 올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할 거 아냐. 




그때는 이걸 진짜로 줄은 몰랐는데.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침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버티지 못한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작은 몸은 바람이 부는대로 힘없이 나부꼈다.


벼랑에 부딛히기 직전,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잡는데에 성공했다.



마침내 베어베리에 손이 닿을 정도까지 내려왔다. 

두 다리로 몸을 고정하고, 한 손으로는 줄을 잡은 채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뻗은 손에 열매가 걸렸다. 


열매를 채집해 가방에 넣었다. 양팔이 벌써 후들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에스테반 말대로 운동을 열심히 해두는건데. 


바들거리는 팔로 간신히 벼랑을 오르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하. 진짜 죽을 뻔 했네.” 



손은 다 쓸렸고 과도하게 힘을 쓴 팔이 후들거렸지만,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다. 씩 웃음이 나왔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일어나야 했다. 당장이야 격한 운동으로 체온이 올라 괜찮다고 해도, 곧 땀이 식어 얼어붙을 것이었다. 저체온증으로 죽는건 사양이었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마수들이 몰려오기 전에 로즈마리로 베어베리를 감싸 향을 풍기는 것을 막아야 했다.


베어베리를 지닌, 젊은 인간 여자? 


그리즐리를 위해 차려진 만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지간한 약초나 허브들로는 어림도 없었고, 로즈마리정도는 되어야 베어베리의 향을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방을 열어본 나는 헛웃음 지었다. 



 “정말... 쉽지않네···" 



 “제시...”



 “이건··· 커리 플랜트잖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이미 늦었다. 



거대한 그리즐리 한마리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침흘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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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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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24.02.15 29 0 12쪽
23 당신과 같은 향이 나요 24.02.15 32 0 12쪽
22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24.02.14 22 0 12쪽
21 다들 뒈지면 죽여버린다 24.02.14 48 0 10쪽
20 뭐긴, 반격 시작이다 24.02.13 59 0 12쪽
19 가지 마십시오. 제발 24.02.01 41 0 12쪽
18 항전한다 24.01.31 29 0 12쪽
17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24.01.30 99 0 12쪽
16 그렇게 웃으시니 꼭 별(estrella) 같아서 24.01.29 63 0 13쪽
15 내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24.01.29 52 0 13쪽
14 나를 좋아해요? 24.01.28 82 0 12쪽
»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24.01.27 28 0 11쪽
12 폭동 24.01.26 63 0 12쪽
11 형편없는 환자 무서운 의사 24.01.25 30 0 12쪽
10 협상을 시작하지 24.01.24 64 0 12쪽
9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24.01.23 72 0 12쪽
8 어떻게든 살아만계십시오 24.01.22 58 0 13쪽
7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24.01.21 77 1 12쪽
6 가장 깊은 악몽 24.01.20 53 1 12쪽
5 늑대 일족의 습격 +1 24.01.19 72 3 12쪽
4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24.01.18 76 3 12쪽
3 한겨울에 찬물 목욕 24.01.17 90 3 11쪽
2 쥐고기를... 먹으라고...? 24.01.16 87 2 11쪽
1 프롤로그 +1 24.01.16 160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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