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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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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작은별
작품등록일 :
2024.01.16 10:26
최근연재일 :
2024.02.15 23: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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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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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수 :
126,555

작성
24.01.2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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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DUMMY

“하, 하하 뭐라? 자비? 자비이~?” 


 “으하하하하” 


솔라를 중심으로 왁자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나는 웃지 않았다. 이건 먼저 바닥을 보이는 사람이 무조건 지는 싸움이다. 

나는 단언하듯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후, 수도의 정예군단이 옵니다. 북부 정벌을 위해.” 



 “거짓이다. 수도는 왕위 다툼중이야. 이 곳까지 군사를 보낼 여력이 없어.” 


 “역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네요. 하긴, 시온이 한번 쓰고 버릴 패한테 이런것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타입은 아니니까.” 


아주 짧은 시간, 처음으로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먹혔다. 



역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구나, 시온. 

내가 말했잖니. 큰 일을 맡길 사람에게는 정확히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마음 속에 의심과 불신이 싹트게 되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라고. 


나는 목에 닿인 칼은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내전은 이미 끝났고, 지금 왕위에 있는 건 내 동복 오라비 에스테반입니다. 그는 북부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던 선왕과 달라요. 에스테반은 자신의 첫 업적으로 로레타의 오랜 골칫거리인 소수일족들을 정리하기로 결정했어요. 무력으로.” 


 대놓고 치는 블러핑이다. 토벌 명령같은건 당연히 없다. 수도와 연락이 닿지 않는 지금, 국왕이 죽었는지 오라버니는 무사히 왕위에 올랐는지는 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저들도 모른다. 저들이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이 나라의 공주라는 것, 그리고 평소라면 방치되어있던 무법지대 북부에 와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니 물러나세요. 지금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들은 올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전멸합니다. 알고 있을텐데요. 추위와 기아로 약해빠진 로레타의 군대면 몰라도, 잘 먹고 완전 무장한 수도의 정예병사들을 상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다는거.”


 내 말의 진위여부를 가늠하듯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인정하마. 꽤 흥미롭구나.”


넘어왔나? 


 “한데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그저 군대를 보내서 토벌해버리면 될텐데 말이다.” 


역시 그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두 번째 패를 꺼내들 때였다. 


 “세 가지 이유가 있죠.” 


 “첫째. 집권 초기에 불필요한 피는 뿌리고 싶지 않으니까.” 


 “둘째.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고 해서 변하는건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셋째.” 



머릿속으로 단서들을 조합했다. 


20년 전 루이스가 이리스족에게서 훔쳐온 보석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아름답던 내 어머니, 루나.


어머니와 꼭 닮은 외양, 어머니와 비슷할 나이대, 직계혈족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을법한 비정상적인 분노. 

눈 앞의 여자는 어머니가 줄곧 그리워하던 언니, 솔라일 것이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내뱉었다.



 “어머니의 일족인 당신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어머니를 언급하는게 유효할지는 확신 할 수 없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동생의 자식임과 동시에, 혈족을 죽인 원수의 자식이기도 하므로. 



하지만 지금 믿을건 그것밖에 없었다. 또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모님. 루나의 딸 에스트렐라입니다.” 



 “뭐?” 


 “루나의 딸?” 


루나의 딸이라는 말에, 이리스족 전사들이 웅성거렸다. 우리 엄마를 아는 자들일까? 

솔라의 얼굴에도 짙은 혼란이 어렸다. 


 “퍽 닮긴 했다만···.네가 루나의 딸이라는걸 어떻게 믿지?” 


 “이거면 증명이 될까요?” 


나는 늘 하고다니던 목걸이를 풀어 내밀었다. 몇 안되는 어머니의 유품. 솔라는 천천히 곡도를 내리고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그에 따라 노아도 천천히 검을 내렸다. 예리한 곡도가 사라지자 목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리는게 느껴졌다.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만 더 검이 깊게 들어갔다면 정말로 위험했을 것이다. 


 “이건...” 


눈에 띄게 동요하는 솔라에게, 오른쪽 뒤에 서있던 우락부락한 전사가 물었다. 


 “뭔데, 솔라. 아는 물건이냐?” 


 “···내가 직접 만들어 준거야. 18살 생일 선물로.” 


솔라는 떨리는 손으로 섬세하게 음각된 목걸이의 표면을 어루만지더니, 익숙하게 목걸이를 조작했다.

투둑, 알약 몇개가 떨어지고. 그 안에 자리한 초상화가 드러났다. 활짝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루나···" 


 “어머니는 늘 이리스족을 그리워하셨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겁니다.” 


“하···”


 “정말 어머니를 위한다면, 항복하세요.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첫눈이 내리기 전에 북쪽산 너머로 후퇴한다면, 피루아는 그대들을 쫓지 않을거에요.” 


잠시 울컥 하는 듯 이를 악문 솔라는 목걸이를 꽉 움켜쥐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서운 기세였다. 


​ “항복? 웃기지 마라. 원수를 갚을 기회가 눈앞까지 왔는데, 복수를 포기하라고?” 


“···.”


 “아니. 우리는 물러서지 않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지. 빌어먹을 피루아의 씨를 말릴 것이다. 너 역시 마찬가지다. 예외는 없어.”


 “가여운 사람. 아직도 시온에게 놀아나고 있나요?” 


솔라의 눈썹이 치솟았다. 


“생각해본적 없습니까? 그 많고 많은 소수 일족들 중, 왜 하필이면 이리스족인지.” 


이 말까지는 하고싶지 않았다. 내 어미의 비참한 죽음을 이 사람에게 알리고싶지 않았으니까. 


왕이 데려온 이국의 무희. 예의도 모르고 언어도 모르는 야만인 정비. 맨발로 걸어다니고 손으로 음식을 먹으며 품격이라고는 없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했다. 왕 역시 곧 흥미를 잃었고, 버려진 무희는 정적으로부터 선물받은 독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엄마 이 쿠키 먹어도 돼요? 


그 날을 떠올릴 때면 늘 그렇듯 사위에 붉은 아지렁이가 일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 어머니는 독이 든 쿠키를 먹고 죽었죠.”  



그날 어머니는 분명 쿠키에 독이 들었음을 알고 있었다. 


- 안돼. 이건 선물받은거란다. 


당시 살벌한 왕궁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크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 



 “루이스 피루아의 6번째 정비이자, 시온의 친모가 준 쿠키를 먹고.” 



아마 카멜리아 비도 정말로 그 쿠키를 엄마가 먹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카멜리아 비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으니까. 


하지만


- 더러운 야만인 계집.


쏟아지던 비난과 멸시를 기억한다. 

우리 엄마의 죽음에 그녀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 



 “시온의 어미가 내 어미를 죽였어요. 해서, 내 오라비가 그의 어미를 죽였지요.당신이 나를 죽이게 하고, 내 오라비가 당신을 죽이게 만듦으로써 시온의 복수는 완벽해지겠군요.” 



이제 솔라가 갈등하는 것은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흔들면, 그러면 넘어올 것 같은데.. 



"모르겠나요? 이 모든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지나간 일에 더이상 헛된 피를 흘리지 말란 말입니다."


입 밖에 내자마자 깨달았다. 




실수다. 




그녀는 분노하여 탁자를 쾅 치며 일어났다. 


“닥쳐라! 지나간 일? 헛된 피? 니가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


  “그 애는 그냥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이리스의 빛이고 기쁨이었어!”  

 

그녀의 눈에는 오래된 원한과 켜켜히 쌓인 슬픔들이 새겨져있었다.  

 

 “세상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의 사랑을 받던 그 아이, 새들과 함께 노래하고 바람과 함께 춤을 추던 그 아이! 그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훔쳐가서 제멋대로 꺾어가서 망가트려 놓고! 잊으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느냐!” 


그녀는 핏발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용서 못해. 찢어 죽일 루이스 피루아도,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모든 자들도! 다 죽여버릴것이다.” 


 “네가 정말 루나의 딸이라면 말해봐라. 그 아이가 시들어 말라갈 때 너는 어디서 무엇을 했지? 결국 너도 다 똑같아.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피루아일 뿐이다!”


그 서늘한 기세에 손에 땀이 흘렀다.  


 “복수를 포기하라고? 아니! 어림도 없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포기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이미 패는 모두 내보였다. 남은건 밀어붙이는것 뿐이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뭐라?” 


  “루나의 딸을 죽이고 그 아들의 원수가 되시란말입니다!”   


 “하라면 내가 못할 성 싶으냐!” 


나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를 쏘아보며 노아에게 외쳤다.


“노아! 경은 반드시 살아서 이 모든 일들을 에스테반 전하께 전하라!”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이리스족 전사들이 곡도를 빼들고 천천히 포위를 좁혀왔다. 노아 역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죽는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지. 피루아의 핏줄.” 


솔라는 금방이라도 나를 벨 듯 곡도를 빼들었다.



그때,



 “와아아아!!” 


멀리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시엘로 백작.” 


- 한 시진이 흘러도 오지 않으시면, 문제가 생겼다고 간주하고 구하러 가겠습니다. 

- 어떻게든 살아만 계십시오. 


잠깐의 주의가 바깥으로 쏠린 틈을 타 노아는 빠르게 솔라를 밀쳐냈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상황을 알아챈 이리스족 전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무서운 힘으로 십여개의 검을 한번에 밀쳐낸 노아는 탁자를 발로 찼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탁자가 벽에 부딛혔다. 사람들이 일순 주춤 했다. 노아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른 반경만큼 사람들이 물러섰다. 그는 나를 적이 없는 벽쪽으로 두고, 내 앞에 지키듯 섰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의지는 분명했다.


앞을 막는 자는 죽일 것이다. 


전신에 피어오르는 기세가 살벌했다. 명명백백한 살기에 이리스족 전사들은 흠칫 했으나, 솔라가 명령했다. 


“물러서지 마! 고작 한 놈일 뿐이다!” 


  “하아압!!!” 


수십명의 이리스족 전사들이 곡도를 빼들고 덤벼왔다. 사정거리는 훨씬 짧았지만 그래서 더 위협적이고 경로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정거리가 짧아 한번에 공격할 수 있는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 

 노아는 압도적인 힘과 실력으로 착실하게 적을 베어나갔다. 일자로 내리긋는 검술에 사람들의 팔과 다리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공주를 노려!” 


 솔라가 발을 구르며 외쳤다. 

전사들이 노아의 뒤에 있는 나를 노리기 시작하며 상황은 역전되었다. 


노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몸은 하나였다. 동시에 들어오는 두 개의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의 검술은 지독하리만큼 강한 압도적 힘으로 찍어누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공격적인 검이었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검은 아니었다. 


노아는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은 대충 흘리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공격은 맞으면서 나를 지켰다. 

차츰 그의 팔다리에도 상흔이 늘어갔다. 

바깥에서는 로레타군의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노아의 상처가 늘어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오래는 못버텨.’ 


초조한 마음에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솔라!! 이것이 진정 그대가 바라는 일입니까?”


"하아압!"


그때, 노아의 방어선을 뚫은 이리스족 전사 내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나를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이건 못 피한다.


나는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여 질끈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이 늘어있는걸 볼때마다 가슴 두근거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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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24.02.15 27 0 12쪽
23 당신과 같은 향이 나요 24.02.15 32 0 12쪽
22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24.02.14 22 0 12쪽
21 다들 뒈지면 죽여버린다 24.02.14 48 0 10쪽
20 뭐긴, 반격 시작이다 24.02.13 58 0 12쪽
19 가지 마십시오. 제발 24.02.01 40 0 12쪽
18 항전한다 24.01.31 28 0 12쪽
17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24.01.30 97 0 12쪽
16 그렇게 웃으시니 꼭 별(estrella) 같아서 24.01.29 63 0 13쪽
15 내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24.01.29 52 0 13쪽
14 나를 좋아해요? 24.01.28 82 0 12쪽
13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24.01.27 27 0 11쪽
12 폭동 24.01.26 63 0 12쪽
11 형편없는 환자 무서운 의사 24.01.25 30 0 12쪽
10 협상을 시작하지 24.01.24 64 0 12쪽
»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24.01.23 71 0 12쪽
8 어떻게든 살아만계십시오 24.01.22 58 0 13쪽
7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24.01.21 77 1 12쪽
6 가장 깊은 악몽 24.01.20 53 1 12쪽
5 늑대 일족의 습격 +1 24.01.19 72 3 12쪽
4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24.01.18 76 3 12쪽
3 한겨울에 찬물 목욕 24.01.17 90 3 11쪽
2 쥐고기를... 먹으라고...? 24.01.16 87 2 11쪽
1 프롤로그 +1 24.01.16 158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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