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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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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작은별
작품등록일 :
2024.01.16 10:26
최근연재일 :
2024.02.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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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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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가지 마십시오. 제발

DUMMY

“오래 끌면 끌수록 우리가 불리해요.” 


공성전의 기본은 성을 거점으로 이용하여 방어하며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성 안의 물자는 바닥에 가까웠다.

급하게 성 안으로 불러들인 성 밖의 주민들까지 합친다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닷새도 버티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단기간에 끝낸다면 충분히 해볼만 합니다.” 


최근 로레타의 군대는 이리스족을 받아들이며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아직 연계가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이리스족은 로레타의 체계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기사들 역시 수도에서 훈련받은 나의 친위기사들과 검을 나누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상태.

또한 시엘로가 이끄는 궁수부대의 저력도 대단했으며, 로레타성은 난공불략의 요새로 유명했다.


수적으로 열세이긴 하지만, 로레타의 지리와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군사들을 대상으로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게 하나 더 있어요.” 


마력폭탄. 

그에 대한 대책이 없다. 


이전의 이리스족의 습격 시, 대용량의 마력폭탄을 떨어트려 성문을 부숴버리는 방법을 사용했었다. 

만일 이번 일에도 시온이 관여한게 맞다면 같은 방식을 알려주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기때문에, 그쪽도 피하고 싶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도에서 일어나는 내전에서 공을 세우기위해서는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 도착해봐야 헛걸음밖에 안되니까. 마음이 급해지면 마력폭탄을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공주님의 혜안 덕분에 성문은 최근 방비를 마쳤습니다. 제페토가 이전의 오래된 성문보다 튼튼하게 만들었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마력 폭탄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군요.” 


마력폭탄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진 마도구나 미스릴이 섞인 철밖에 없었다. 

당연히 마력폭탄에 비견될 정도로 비쌌고, 가난한 영지인 로레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아니길 빌 수밖에.” 


알면서도 대책을 세울 수 없다니.. 분했다.


“이케토스 공작은 어떤 사람이죠? 친분이 있는 것 같던데.” 


 “..아버님과 막역한 사이셨습니다. 함께 무예를 닦으며 동문서학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는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종종 나무칼로 놀아주시곤 하셨습니다.” 


 “...” 


 “기본적으로 충과 예를 중시하는 무인입니다. 비록 적이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라고 표현 하면 알맞을 것 같군요. 비록 노쇠하셨지만 수많은 전장의 가장 앞에 선 백전의 노장입니다.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닙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라.. 


그의 나이는 53세라고 들었다. 무인으로 치면 결코 적지 않은 나이.

그런 그가 검을 들고 직접 이 곳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 비앙카가 죽었다. 우리는 피루아를 쳐 그 애의 원한을 갚을 것이다.


 ‘아니야. 달라.’


루나를 언급하며 애끓던 솔라와는 달랐다. 강렬한 원한이 없었다. 말의 온도도 감정의 깊이도. 


비앙카는 이케토스 공작의 직계 혈족이 아니다. 20년도 더 전에 연락이 끊긴 사촌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공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 곳까지 직접 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 20년 전 티타르를 배신하고 피루아에게 붙은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가능성이 있는 것은 차라리 이쪽.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하는건 어때요?” 


.

.

.


로레타 군은 선전했다. 


방어를 위해 지어진 로레타 성은 공성전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시엘로가 직접 지휘하는 성벽의 궁수부대가 활을 쏠때마다 한명의 적은 반드시 쓰러졌다. 개미떼처럼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은 그 수가 어마어마 했으나, 높은 성벽을 기어오르기 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테레사경의 기사단과 수도 정예병사의 활약도 놀라웠다. 화살비를 뚫고 높은 성벽에 간신히 올라온 병사들은 기사단과 이리스족 전사들의 칼날을 마주해야만 했다. 


일반 백성들중 건장한 자와 싸울 수 있는 이는 갑옷을 입혀 후방에 세웠다. 눈속임이었다. 로바타 뿌리의 희석액을 마신 기사들은 말도 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며 광전사처럼 검을 휘둘렀다. 


- 미완성 상태긴 하지만, 로바타 덩쿨 즙입니다. 복용하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겁니다. 극도의 각성상태를 유도하여 일시적으로 통증도 느끼지 못하게 하지요. 약효는 30분 후부터 시작되고 2시간 후 최고조에 달합니다. 다만.. 주의해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 부작용이 있나? 


- 심박수와 신진대사가 빨라지는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활성화를 시키는 것이지 무한정 강하게 만드는 약이 아닙니다. 무리하게 움직인다면 분명 신체에 부담을 주게 될겁니다. 


피를 토하며 자신의 몸을 나무에 부딛혀오던 그리즐리를 떠올리자 쉽게 이해가 갔다. 


- 알겠네 고맙네. 


 ‘확실히.. 조심해서 사용해야겠군.’ 


그런 위험 부담을 지면서까지 병사들에게 로바타 덩쿨 즙을 복용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


이건 초기에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야만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

.

.


예상 외로 격렬하고 강한 저항에 부딛히자 이케토스 공작은 다소 당황한 것 같았다. 

공격 세가 주춤했다. 


 “인정하마. 제법이구나, 시엘로. 이것 까지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나도 전력을 다하마.”


그는 군사들을 물리고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마력폭탄이었다.  



저걸 터트리면 이 계획은 시도도 할 수 없다.


시엘로가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망루에 올랐다. 강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고 전장의 상황이 한눈에 보였다. 

전선의 가장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눈부신 오후입니다, 이케토스 공작.” 


우리가 있는 곳은 전장 한 가운데였지만, 나는 이 곳이 왕궁의 연회라도 되는 마냥 경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적군의 장수가 아니라, 동맹국의 귀족을 대하는 것처럼. 


명예를 아는 자. 예의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백전의 노장. 

그는 어떻게 반응할지 조금 고민한 듯 했지만 곧 예를 갖추어 답했다. 


 “티타르 왕국의 이케토스 공작. 피루아의 별 에스트렐라 공주님을 뵙습니다.” 


 “역시 내가 이 곳에 있다는걸 알고 있었군요? 일단은 비밀인데 누가 알려줬을까···”


그는 답하지 않았다. 


 “뭐, 상관 없어요.” 


나는 아름답게 웃었다. 


 “그 믿을만한 이가 로레타 성의 전력에 관한 정보도 주었기를 바라죠. ” 


그의 눈에 흥미롭다는 듯 이채가 스쳤다. 


 “당신은 로레타를 점령할 수 없어요.”


 “허어?” 


 “통상적으로 공성전을 할 때에는 공격측이 수비측의 3배가 되어야 할만 하다고 본다지요? 하나 로레타는 천연의 요새입니다. 그 5배가 넘는 병력으로도 뚫기 어렵지요. 이 곳에 상주하는 병력만 5천, 내가 데려온 수도의 정예 기사만 800입니다. 공작에게는 승산이 없어요.” 


내가 부른 숫자는 실제 병력의 거의 10배였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바타 덩쿨로 인해 비약적으로 상승된 무력, 일반 시민들의 눈속임은 내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만들어보일테니까. 


그는 손으로 차양막을 만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만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지략도 갖추셨군요. 담대하시기도 하고..”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위화감이 들었다. ‘담대’하다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통했나? 


 “이케토스의 안주인은 대대로 용맹하고 담대한 여인이였죠.”  


그의 다음말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혼인 동맹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공주님.” 


설마.. 


 “공주님과 저 말입니다. 마침 몇년 전에 제 처가 세상을 떠나 홀로 지내는 중이었거든요.”


지금 뭐라고?


저자가···


노아가 검을 움켜쥐었다.

내 나이의 두배도 넘는 사람에게, 그것도 후처라고? 


시엘로가 그를 향해 화살을 쐈다. 그는 검으로 여유롭게 화살을 쳐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원래.. 로레타정도는 빠르게 쓸어버리고 최대 속도로 수도로 진군할 예정었습니다만.. 이것 역시 나쁘지 않은 복수일 것 같군요.” 


나는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1차 북부 정벌시 루이스 피루아는 비앙카를 인질삼아 데려갔다. 

지금 그는, 나를 데려감으로써 그 치욕을 씻겠다는 뜻이다.  


 “나쁘진 않을 겁니다. 우리는 루이스 피루아와 달리 명예를 알고 레이디를 존중하니까요. 당신을 욕보이는 일도 없을거고, 이케토스 영지의 안주인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게 신경쓸겁니다.”


그의 얼굴은 진중했다. 


 “당신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흘간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 내리시길.” 


 그는 구혼자에게 갖추는 예를 취하고는 병사들을 이끌고 유유히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게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성 문을 포위한 것 말고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 무엇보다 큰 압박이었다. 


성 안의 물자는 빠른 속도로 떨어져갔다. 

상대가 대용량의 마력폭탄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다. 

성을 개방했지만 모두를 수용하기는 무리였다, 길거리에는 노숙자와 부랑민들이 넘쳐났고 얼어죽는 사람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공주님, 살려주세요.” 


내 치맛자락을 붙들고 울먹이는 자들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마침내 마지막 날 밤.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망토를 뒤집어쓰고 조용히 성문 밖을 향했다. 


그래, 이게 옳은 거야. 

수도로 돌아가도 어차피 정략결혼을 할 예정이었다. 

적국의 공작이라면 신분도 나쁘지 않았다. 


인질로 잡혀와 늘 우울하게 지내던 비앙카.

자식조차 가지지 않고 정원 한구석의 들풀처럼 말라가던 그녀. 

적국의 왕족이라는 애매한 신분은 그녀의 보호막도 되어주었지만, 그녀를 외롭게만들기도 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 그녀 같이 살게 되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혼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내 목숨 하나로 이들 모두를 살려준다 해도 기꺼이 응할진데, 

하물며 결혼쯤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오빠가 알면 화내려나.’ 


마지막으로 로레타 성을 한번 바라보았다. 

처음 이 곳에 왔을때는 마냥 차갑고 무거워보이던 성이,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던가. 


그러니까 이건 희생따위가 아니야. 


단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떠오르려는 얼굴을 애써 고개를 저어 흩어냈다. 


그때였다.



 “가지 마십시오.”



시엘로였다. 

겉옷도 입지 않은 채였다. 

입김이 밤 공기에 하얗게 흩어졌다. 


다행이다. 한번쯤은 보고 가고 싶었다. 

이 무뚝뚝하고 정 많은 남자를.


나도 모르게 얼굴이 풀어질 것 같았지만, 냉랭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왜죠? 이게 옳은일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질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더이상 백성들의 피해를 눈감을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나 하나만 가면 물러나주겠다니, 어딜 보아도 남는 장사가 아닙니까.” 


 “안됩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 


 “분명.. 있을겁니다.” 


 “아직은 없다는 뜻이군요.” 


정곡이었다. 


 “이 결혼은 내게도 나쁜 선택이 아니에요. 티타르 왕국의 공작이라. 에스테반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후에도 유용하게 쓰일 혼처겠지요. 어차피 정략혼을 할거라면 타국의 공작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는 화를 참듯 꾹꾹 눌러 말했다. 


 “이케토스 공작은 제 아버지의 친구입니다. 진심으로 아버지뻘 되는 사람의, 그것도 후처자리에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경과 무슨 상관이죠?” 


 “안됩니다. 이렇게는 못가십니다.” 


 “왜죠?” 


회색 눈이 일렁였다. 


 “그건...” 



 “제가 공주님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는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간신히 뱉어냈다. 



 “좋아합니다. 그러니 가지 마세요. 제발.”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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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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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당신과 같은 향이 나요 24.02.15 32 0 12쪽
22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24.02.14 22 0 12쪽
21 다들 뒈지면 죽여버린다 24.02.14 48 0 10쪽
20 뭐긴, 반격 시작이다 24.02.13 58 0 12쪽
» 가지 마십시오. 제발 24.02.01 41 0 12쪽
18 항전한다 24.01.31 28 0 12쪽
17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24.01.30 98 0 12쪽
16 그렇게 웃으시니 꼭 별(estrella) 같아서 24.01.29 63 0 13쪽
15 내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24.01.29 52 0 13쪽
14 나를 좋아해요? 24.01.28 82 0 12쪽
13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24.01.27 27 0 11쪽
12 폭동 24.01.26 63 0 12쪽
11 형편없는 환자 무서운 의사 24.01.25 30 0 12쪽
10 협상을 시작하지 24.01.24 64 0 12쪽
9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24.01.23 71 0 12쪽
8 어떻게든 살아만계십시오 24.01.22 58 0 13쪽
7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24.01.21 77 1 12쪽
6 가장 깊은 악몽 24.01.20 53 1 12쪽
5 늑대 일족의 습격 +1 24.01.19 72 3 12쪽
4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24.01.18 76 3 12쪽
3 한겨울에 찬물 목욕 24.01.17 90 3 11쪽
2 쥐고기를... 먹으라고...? 24.01.16 87 2 11쪽
1 프롤로그 +1 24.01.16 159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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